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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석조각상 조선왕릉의 석조 조각상은 통일신라시대 원성왕릉(괘릉)과 고려 공민왕릉의 전통을 이어 받으면서 송나라의 유교식 묘제를 참고하여 조선식으로 세련시킨 것이다. 이에 대한 규정은 1474년(성종 5)에 편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자세히 나와 있다. 《국조오례의》는 국가에서 행하는 다섯가지 의례에 대한 준칙을 세운 것으로 그중 하나인 흉례凶禮에 관한 91개 조항 중 치장治葬조에 능침의 문신석과 무신석에 대해 자세히 규정해 놓았다. 명칭은 옛 문헌에는 문석인, 무석인으로 되어 있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문신석, 무신석으로 불리고 있다. 장조 융릉 왼쪽 문신석 뒷면, 1789년, 높이 217.7cm, 경기 화성시 안녕동 (좌), 태조 건원릉 왼쪽 문신석, 1480년, 높이 232.3cm, 경기 구리시 인창동 (우)..
인상주의 정원 2 (上), 에두아르 마네, , 1874년 (下),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 1874년. 이 그림들은 모네가 그린 마네의 초상과 더불어 인상주의의 역사에서 권위 있는 화가 셋이 아르장퇴유에 위치한 모네의 최초 정원에서 각자 작업을 했던 결정적인 순간의 기록이다. 물론 르누아르는 훗날 이 그림을 화실에서 그렸다고 말했지만, 그림의 현장감으로 보아 설득력은 떨어진다. 모네는 자신이 르누아르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마네가 이렇게 속삭였다고 기억했다. "저기 있는 저 친구는 재능이 전혀 없군. 자네가 친구로서 저치에게 그림을 그만두라고 주언해주게" 이런 미묘한 경계 속에서도 마네와 르누아르는 둘 다 카미유의 삼색 부채를 이용한 인상적인 (그리고 아마도 정치적인) 그림을 그렸고, 실제 모네가 정원일을 하는 ..
인상주의 정원 1 존 레슬리 브렉 (모네의 정원에서), 1887년경. 19세기 후반부터 지베르니의 정원에 모여들었던 여러 미국 화가, 이른바 '지베르니스트' 중 한 사람이었던 브렉은 1880년대 말에 모네의 개인 정원을 드나들 기회를 얻어 그곳의 풍요롭고 다채로운 꽃들을 묘사했다. 앙리 마르탱,
청 왕조 초기 문인화 근현대 동아시아 화단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팔대산인八大山人(1626~1705)과 석도石濤(1542~1707)는홍인弘仁(1610~1644), 석계石溪(1612~1673)와 함께 사승화가四僧畵家로 꼽히는 청 초 유민화가遺民畵家이자 17세기 개성화파個性畵家의 핵심 인물이다. 산수는 물론 화훼(사군자 포함) · 영모 · 소과 · 초충  · 어해등 다양한 화목을 잘 그린 두 사람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필묵을 구사하여 창작 주체의 독자성을 성취해낸대가였다. 그 과감하고 감각적인 화풍은 18세기 양주화파楊州畵派, 19세기 해상화파海上畵派, 20세기 전통화파傳統畵派로 계승된 문인화의 새로운 조류를 이끌었다.  황안평, , 1674년, 종이에 먹, 97.0×60.5cm, 중국 남창 팔대산인기념관.       팔대산인과 ..
추일계와 소산화보 꽃과 풀을 그리는 화훼화는 산수화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된 동양 회화의 대표적인 분야이다. 하지만 역대 동양화론에서는 화훼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론서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소산小山 추일계鄒一桂(1686~1772)의 《소산화보小山畵譜》는 중국 화론서 중 보기 드물게 화훼만을 대상으로 쓰인 이론서로서 독자적인 의의를 지닌다. ··· 추일계는 청대淸代 시기에 활동했던 공필채색 화훼화 분야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1727년 진사가 된 후 내각학사, 예부시랑 등의 직책을 맡아 오랫동안 관직을 지냈다. 특히 건륭제 시기에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소위 '사신화가詞臣畵家'로서 황제의 명을 받들어 다수의 그림을 제작했다. 그는 화사한 채색과 정교한 필치의 화훼화를 추구했으며, 절지, 분경 등..
명대明代 강남 문인들 꽃에 빠지다 명대明代에는 강남 소주蘇州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종류의 꽃을 그린 화훼화가 크게 유행했다. 소주의 문예계를 선도한 심주沈周(1247~1509)가 문인풍의 화훼화를 새롭게 개척하면서 이 장르는 문인화의 주요 화목으로 부상했다. 오랫동안 문인화의 소재가 되었던 매화, 난초, 송죽뿐 아니라 각종 화훼와 초목, 과일과 채소 등의 식물 소재는 전통적으로 우위을 점해왔던 화조화를 압도하며 다른 양상 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는 직업 화가들의 주요한 장르였던 화훼화가 문인화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또한 다양한 작가군의 등장과 함께 그내용과 형식 및 표현이 다변화되어 화훼화의 혁신을 이룬 시기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10여 종에서 수십여 종에 이르는 화목花木과 화초를 5~10m에 이르는 긴 두루마리에..
금대金代 동물 초상<소릉육준도> 현재 북경北京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는 는 금대金代(1115~1234)의 희소한 회화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1220년이라는 분명한 하한 연대를 지니고 있는 회화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 니고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기년명 회화는 창작연대가 확실한 진작으로서의 의의뿐 아니라, 전칭 작품 및 문헌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해당 시기 회화의 성격을 신빙성 있게 규명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가 된다는 점 에서 중요하다. 또 의 경우, 유명한 당 태종의 무덤 소릉昭陵에 있는 부조 (1637~649)을 토대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금대의 회화에 대한 현재까지이 연구 성과는 다른 시대에 비해 매우 미진한 편이다. 소수의 연구 성과들도 대부분 산수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인물화나 화조영모화에 대한 연구는 그간 ..
중국 묘실의 화훼도 장성 묘(張姓 墓) M6 후실 동남벽, 요, 하북성 선화구. 중국 벽화에서 화훼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당대唐代부터이다. ···· 요대遼代에는 벽화가 중원 지방보다 내몽골 지역에서 더 많이 그려졌다. 특히 선화宣化에 있는 장씨張氏 집안의 묘실에 들어가면 여러 형태의 화훼도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어 마치 꽃의 천국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오대 이래로 발전을 거듭해왔던 화훼도의 표현이 정정에 이른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 선화요묘宣化遼墓에는 화훼도 외에도 다른 여러 주제가 그려져 있지만, 화훼도가 단연 시선을 끈다. 화훼도에는 이전 시대의 모든 표현 양식이 망라되면서 새로운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매우 흥미롭다. 장문조 묘(張文藻墓) 후실 북벽, 요 1093년, 하북성 선화구. 왕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