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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동학 천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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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매와 동학기행 <10> 동학혁명 위령탑(東學革命 慰靈塔)우금치 전적지를 찾은 일행'동학기행' 일행이 드리는 심고心告 우금치 전적지牛金峙 戰蹟地1894년 10월 23일부터 25일, 11월 8일부터 11일까지동학군과 관군의 격전이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장소. 1894년 10월 16일경 전봉준과 손병희가 각각 이끌던 남접과 북접의 동학군은 논산에서 합류하였다. 같은 달 21일 2만여 명의 동학농민군은 서울 진격로에 있는 충청감영 소재지 공주로 북상하기 시작하였다. 세 길로 나누어 공주를 압박한 동학군은 이인역, 봉황산, 효포 등지를 차례로 점령하였으나 25일에 감행한 웅치 공격은 관군과 일본군의 저항으로 실패하고 만다. 관군측의 병력도 증강되어 경리청 소속 부대 외에 일본군 1개 대대까지 가세하여 2천여 명에 달하였다.경천점으로 ..
탐매와 동학기행 <9> 요천과 남원 시내 하경 감상김병종 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협력전시 PAPER⁺JAM《낯익은 도시, 낯선 이야기》  2025년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첫 전시가 개막했습니다. 전시 제목은 “낯익은 도시, 낯선 이야기”입니다. 이번 전시는 김병종 화백과 페이퍼 아티스트 이지희 작가의 작품들이 모여 꾸며졌습니다.  페이퍼 아티스트 이지희 작가의 작품들은 지난해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던 체험전시 “페이퍼 잼(PAPER+JAM)”의 전북권 공립미술관 순회전시의 일환으로 남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아시아와 유럽, 남미의 대형 종이 작품들 속에 김병종 화백의 글과 그림들이 적절히 스며듭니다. 김병종 화백은 세계를 여행하며 도시와 지역이 품은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화첩기행』(1~5권)과 『시화기행..
탐매와 동학기행 <8> 구례 쌍산재촬영 차 쌍산재를 방문했던 김혜영씨를 윤기연 군과 나란히 세우고  한 컷. 조선의 명천名泉으로 소문난 '당몰샘'의 물맛을 확인하는 일행.전라남도가 지정한 '민간정원'에 위촉된 후로 탐방객들이 급증한 모습이다.'쌍산재'는 '운조루' '곡전재'와 함께 구례 3대 전통가옥으로 불리운다.아랫쪽 살림채에서 글방으로 오르는 죽림계단.'쌍산재'에 오르면 드넓은 잔디정원이 펼쳐진다.이 구역도 매화와 산수유가 어우러진 모습이다.과거엔 볼 수 없었던 사랑채가 복원되어 있었다.품격있게 복원된 사랑채를 둘러 본다.사랑채를 돌아 나오는 길, 담장아래 피어난 '히어리'의 앙증맞은 자태를 만난다.'히어리'는 남녘에서도 그리 흔치 않은 꽃이다.'광한루'에 들어 서자니 여기저기 잔뜩 물이 오른 버드나무의 연노랑 색감이 눈길..
탐매와 동학기행 <7> 지리산 연곡사국보 제53호 동승탑통일신라 시대의 다른 승탑보다 기단부가 높고 세부적인 조각수법은 치밀하다.연곡사에 현재 남아 있는 승탑 가운데에서 가장 이른 시기로 통일신라말의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보물 153호 동승탑비 귀부는 지대석과 한돌로 네다리를 사방으로 뻗고 있어 마치 납작하게 엎드린 모습을 연상시킨다.오른쪽 앞발을 살짝 든 귀부의 정상에는 장방형의 비좌를 마련하고 있는데 비좌의 네 측면에는 구름무늬를고부조로 장식하였으며, 그 윗면 주위로 복판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머리는 떨어져 나간 것을 다시 붙여 놓았다.  거북의 등문양은 앞쪽으로는 파상곡선으로 이루어진 새 깃 모양의 조익형 무늬이고 뒤쪽으로는 육각의 갑문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이수는 삼산형으로 고부조의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그 ..
탐매와 동학기행 <6> 해질녘,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소노캄 여수에 체크인.해지기 전에 오동도 한바퀴울창한 동백숲 산책.성웅 이순신 장군의 외침이 유독 크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숙소를 나와 첫번째 일정으로 선택된 돌산 향일암에 올라...거북의 머리에 해당한다는 지점이 온통 건물에 점령당한 현실. 지리산 자락 악양의 '화사별서'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실제 모델인 조씨 고가로, 조선 후기의 안채 건물과연못 등이 남아있어 주변 풍광과 잘 어울리는 고택인데 내부 정리중인 듯온통 어수선한 모습이었다.모든 문이 잠긴채로 고택 내부는 전에 보이지 않던 제실이 복원되어 있었고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건물은 철거되는지 비계가 설치된 모습이었다.조씨 고가 뿐만 아니라 고샅길과 정겨운 돌담들이 이어지는 멋스런 동네이다.화개천변 산자락에 조성된 차밭..
탐매와 동학기행 <5> 다리로 연결된 고군산군도 맨 끝에 위치한 장자도.선유도해수욕장과 망주봉이 보이는 풍경'앉으면 백산 서면 죽산'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백산성' 오르는 길백산성은 작은 언덕 수준이지만 이곳에 오르면 사방 백리가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뉴욕에 거주하시는 두 부자께서 원래 계획했던 코스의 출발점은 바로 이곳이었다.허나 본래의 계획에 수정을 가하다 보니, 남쪽 바닷가에서 급히 윗녘으로 올랐다가다시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동학혁명백산창의비아랫쪽으로 유장하게 흐르는 동진강과 기름진 호남평야가 보인다.저 동진강을 가로막아 농민들에게 수세를 요구했던 조병갑의 횡포는 동학혁명의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동학정에 올라 외치는 하늘이시여! 이것이 나의 천명! 이것이 나의 천명!! 이것이 나의 천명!!! 이매창은 조선 중기의..
탐매와 동학기행 <4> 해남 설아다원설아다원 梅林설아다원과 그늘을 제공하는 녹나무 행렬오근선 마승미 부부가 97년 부터 일군 두륜산 자락의 '설아다원'두륜산 가련봉이 빼곡히 고개를 내민 모습이다.차밭 맨 위쪽 언덕에 오르면, 좌측의 강진만과 우측으로 완도 일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장소인데 날씨가 흐린 탓에...차밭과 매화숲 거닐기에 동참한 설아다원 견공.차밭을 한바퀴 돌아 내려오는 길.얼마 전 흥보가 완창 발표회를 연 마승미 명창의 소리 한 대목.맨 왼쪽이 마승미 여사의 부군되시는 오근선 선생이시다.암튼 내가 인정하는 조선 제일의 멋쟁이 부부라는 사실.
탐매와 동학기행 <3> 사적 127호 진도 남도진성 (珍島 南桃鎭城) 조선 초기에 왜구가 해안을 자주 침범하여 해안과 섬 지방에 성을 쌓고 수군을 파견하였다.당시 이 곳의 지명이 '남도포'였으며 만호가 책임자로 파견되었기 때문에 '남도포수군만호진성'이라 하였다.기록에 의하면 남도포에 만호가 처음 생긴 것은 조선 세종 20년(1438년) 정월의 일이다.이로 미루어 보면 현재 남아있는 성은 세종 20년 이후에 쌓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의 둘레는 610m, 높이 2.8m ~ 4.1m 에 이르며, 성문과 옹성 등도 형태가 뚜렸하다. 남도석성은 수군만호진성으로는 그 유적이 잘 남아 있다.진도 남도석성 내 관아터 발굴조사는 남도석성 내 관아터 일부를 대상으로 유구의 존재 유무와 성격 및 잔존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