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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추일계와 소산화보

꽃과 풀을 그리는 화훼화는 산수화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된 동양 회화의 대표적인 분야이다.

하지만 역대 동양화론에서는 화훼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이론서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소산小山 추일계鄒一桂(1686~1772)의 《소산화보小山畵譜》는 중국 화론서 중 보기 드물게

화훼만을 대상으로 쓰인 이론서로서 독자적인 의의를 지닌다. 

 

··· 추일계는 청대淸代 시기에 활동했던 공필채색 화훼화 분야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1727년 진사가 된 후 내각학사, 예부시랑 등의 직책을 맡아 오랫동안 관직을 지냈다. 특히 건륭제

시기에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소위 '사신화가詞臣畵家'로서 황제의 명을 받들어 다수의 그림을 제작했다.

그는 화사한 채색과 정교한 필치의 화훼화를 추구했으며, 절지, 분경 등의 소재를 즐겨 그렸다. 특히 정통

문인이자 화훼화가인 운수평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의 뒤를 이어 청대를 대표하는 화훼화가라 평가

받아왔다. 또한 추일게와 화풍을 공유하는 장정석, 마윈어, 장부, 전유성, 여성, 추원두 등 일련의 화가들

에 의하여 형성된 화훼, 화조화 경향은 청대 궁중회화의 주요한 흐름 중 하나로 정착하게 된다.

 

··· 먼저 《소산화보》의 전체적인 구성을 살펴보면서 간략한 내용 소개와 더불어 서술상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소산화보》는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은 서문에 이어 '팔법사지八法四知', '각화분별

各花分別', '취용안색取用顔色'의 순서로 되어 있으며, 하권에는 짧은 글들과 별권 성격의《양국보洋菊譜》가

실려 있다. 각 장에는 화훼화에 대한 저자의 논의, 이전 시대의 화론에 대한 주석, 화훼화의 대상이 되는 대표

적인 꽃과 풀의 종류, 화훼화의 기법 및 재료 등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화훼화라는 단일 화목만을

총망라한 것이다. 먼저 책의 서문을 살펴보면, 저자의 집필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옛 사람이 그림을 논할 때 산수화에 대해서는 상세히 하고 화훼화는 간략히 다룬 것은, 산수를 높이 여기고

화훼를 경시해서가 아니라. 그 이유는 화훼가 북송시대에 성하였으나 서희, 황전이 학설을 세우지 않아서

그 법이 후대로 전하지 못한 것이다. 요컨데 그림은 만물에서 형상을 본떠 이를 취하는 것인데, 스승으로부

터 배워서 전하지 않고 스스로 임모臨慕해 분본紛本을 전하는 것을 일삼으니 생기生機로 운영하여 하나의 

꽃과 하나의 꽃받침을 보고 자세히살피고 유심히 관찰하여 그 소이연所以然(그리된 까닭)을 터득하면

운치와 풍채가 자연히 생동하여 천지만물이 나에게 있을 것이다.

 

··· 이처럼 관찰에 근거한 창작 및 형사形寫, 즉 형태의 닮음을 중시하는 것은

《소산화보》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태도이다. 서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사람을 그리는 일에 비유한다면, 귀, 눈, 코, 입, 수염, 눈썹 등을 하나하나 똑같이 갖추면 신기神氣가 절로 나오니,

형形이 결여되고 신神이 온전한 것은 아직 없었다. 요즘 화훼를 그리는 자들은 꽃봉오리와 꽃받침이 완전하지 않고

꽃이 홀수인가 짝수인가의 구분이 없으며 싹과 움을 갖추지 않으니, 이는 산에 용맥龍脈이 없고 물에 맥락脈洛이

없으며 전절轉折, 향배向背, 원근遠近과 고하高下가 구분이 되지 않으면서 그 필법이 고고하다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으며, 이를 어찌 이치라 하겠는가! 이 책에서는 화훼의 생리를 우선으로 보고 운필은 그 다음이며, 그 뒤에

지와 분을 쓰는 여러 가지 기법을 덧붙이고 이전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은 것을 보충하였으니, 후학들을 위해

이끌어주는 다리가 될 것이다. 보는 자들이 그 뜻을 잘 알고 알맞게 사용한다면 예藝가 도道로 나아갈 것이다.

 

 

 

 

추일계, <화국>, 107.3×51.0cm, 종이에 채색,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추일계는 화훼화를 그리는 일을 인물화와 산수화 화법에 비유하여 화훼화를 그릴 때

중시할 점을 논하고, 그에 따라 앞으로 책의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밝히고 있다.

 

··· 창작에서 대상의 형태와 특질을 우선시하는 추일계의 태도는, 대상을 통해 작가의 정情을 표현한다고

보았던 운수평의 주정주의 主情主義적인 논의와 다소 상반되는 면모이다.

추일계의 화훼화는 대상의 외관을 세심히묘사하는 데 매우 충실하면서 운수평의 그림에 비해 비교적 생경하고

형식화된 분위기가 있는데, 이러한 점이 운수평 과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 추일계는 그림 하나에 100여 종의 꽃을 담은 예도 있다. '각화분별' 장에 실린 꽃 중에서

국菊, 삼월국三月菊, 석국石菊, 남국藍菊, 승혜국僧鞋菊, 만수국萬壽菊, 파사국波斯菊 등 다양하며 여기에

더하여 하권의 《양국보洋菊譜》에는 서양국화 36종까지 거론하였다.

 

 

 

 

운수평, <화훼>, 116.5×54.2cm, 비단에 채색,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추일계, <추화구종>, 118.2×101.5cm, 종이에 채색,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전유성, <화양국>, 112.7×57.5cm, 종이에 채색,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추일계, <장원홍狀元紅>, 《묵묘주림》, 63.0×42.4cm, (그림 부분), 종이에 채색, 1746,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추일계, 《화훼도책》, 제5엽, 31.7×27.0cm, 비단에 채색, 중국 북경 고궁박물원.

 

 

 

인용: <꽃과 동물로 본 세상> 중 박도래 논저 <화훼화가 추일계와 《소산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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