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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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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연회도 1 사연도 · 친림연회도   중묘조서연관사연도첩(中廟朝書筵官賜宴圖帖) 표지1535년경, 지본채색, 42.7×57.5cm, 홍익대학교박물관 1535(중종30)년 중종(中宗)이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서연관(書筵官)들에게 내려준 연회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중종은 왕세자가 강학(講學)에서 『춘추(春秋)』를 마치게 되자, 서연관들의 노고를 치하하여 연회를 내려주었다. 연회는 경복궁의근정전(勤政殿) 앞뜰에서 베풀어졌는데, 왕이 내려준 주호(酒壺)가 등장하고 서연관들이 열을 맞추어 앉아 한 사람씩 어사주를 받는장면을 묘사하였다. 무용과 음악이 연주되고, 과음(過飮)한 관원들이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으로 보아 서연관들끼리의 자유롭고흥겨운 연회였음을 알 수 있다. 화면의 구성은 궁중행사도에서 취해진 좌우대칭형의 구도와 ..
고구려 회화의 대對 일본 영향 고구려 회화의 대對 일본 영향   우리나라의 미술 문화가 일본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부터이며 그러한 흐름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특히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가 일본의 아스카 조정에 회화 · 서예 · 조각 · 각종 공예 · 건축 등 다방면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미술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회화가 미친 영향이 특히 컸다. 고구려 출신의 화가로 제일 먼저 주목되는 인물은 너무나 잘 알려진 담징(曇徵)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그는 610년 3월에 승려 법정(法定)과 함께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오경(五經)을 알고 또한 채색 및 지묵을 능히 만들었으며, 일본에 맷돌 만드는 법을 전했다고 한다.      일본 나라현 주구지(中宮寺) 소장, 비단에 자수, 잔편 액자  현..
고구려 회화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와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했던 고구려.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데는 웅혼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훌륭한 선진 문화를 일구었기에 가능했을 터. 고구려가 지녔던 진취성과 창의성은 놀라울 정도. 우리 민족문화의 형성을 선도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더불어 미술 문화의 발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각종 미술문화재를 통해 알 수 있다. 고구려 미술이나 문화에서 간취(看取)되는중요한 현상은 국제성이라 할 수 있겠다. 고구려는 중국은 물론 서역과도 교류하여 필요한 것을 취해서 문화 발전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았다. 초기에는 한(漢)나라와 동진(東晉)의 영향을, 그 후에는 육조(六朝)의 영향을 섭렵하였고, 고분의 말각조정(抹角藻井) 천장이나 각종 문양, 일부 복식과 악기의 그림..
지울 수 없는 이미지 (3) 지울 수 없는 이미지  (3) ●  8·15해방에서 한국전쟁 종전까지 (사진 -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6. 피란민과 전쟁 고아  길가에 버려져 울고 있는 아이. (1950. 8. 8)    피란봇짐을 지고 가는 소년. (1950. 7. 27)     포화에 쫓긴 피란민들이 뛰어가고 있다. (영덕, 1950. 7. 29)       좌), 천안 읍내를 피란민들이 황급히 통과하고 있다. (1950. 7. 7)우), 한 소년이 시레이션(전투식량)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다. (진주, 1950. 9. 30)    피란민의 긴 행렬. (1950. 8. 15)       피란민 행렬. (왜관 다부동, 1950. 9. 6)                파괴된 대동강 철교를 넘어서 피란민들이 남하하고 있다. (평양, 1..
지울 수 없는 이미지 (2)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 ●  8·15해방에서 한국전쟁 종전까지 (사진 -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4. 전화에 휩싸인 한반도    포화에 그을린 중앙청.  (1950. 10. 18)     1·4후퇴 전날 밤, 건물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상), 포화에 그을리고 불타버린 중앙청과 부속건물. (1950. 10. 27)하), 서울시청.  (1950.  10.  1)     인민군이 물러난 후 시청앞 광장에 각종 공문서들이 불태워지거나 버려져 있다.(1950. 10. 27)     (1950. 11. 1)     전쟁 잔해로 굴뚝만 남았다. (1950. 11. 4)    서울역. (1950. 10. 1)    하늘에서 내려다본 중앙청과 경복궁 일대. (1951.  3. 16)        전화로 폐..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 지울 수 없는 이미지  (1) ●  8·15해방에서 한국전쟁 종전까지 (사진 -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1. 1945~1949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미 제24사단 사령관 하지 중장과 제7함대 사령관 킨 케이드 제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총독부 아베 노부유키가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였으나 조선에 대한 통치권은 존속되다가 오키나와에 있던 미 제8군단(제7사단, 제24사단) 부대가 그해 9월 8일 인천에 상륙하여 다음날 서울에 입성해 조선총독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았다. (1945년. 9. 9)      1. 오후 4시, 조선총독부 광장에서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장기가 내려지고 있다. (1945. 9. 9)2. 오후 4시 30분, 미군들의 경례 속에 성..
왕가의 문장 왕가의 문장 THE ROYAL COAT OF ARMS 스페인 태국 룩셈부르크 바티칸 부탄 덴마크 리히텐슈타인 사우디아라비아 포르투칼 캄보디아 모나코 네덜란드 레소토 벨기에 통가 노르웨이 바레인 영국 부루나이 쿠웨이트 안도라 스웨덴 요르단 카타르 역사 속의 왕가 부르봉 왕가 로마노프 왕가 합스부..
절집 주련(柱聯) 글귀 절집 주련(柱聯) 글귀   백암산 백양사      今日巖前坐  금일암전좌  오늘 바위 앞에 앉았네.  坐久煙雲收  좌구연운수앉은지 오랜만에 구름 걷히고一道淸溪冷  일도청계냉 한줄기 맑은 계곡물은 차가운데千尋碧嶂頭  천심벽장두 천 길 푸른 봉우리 우뚝하구나.白雲朝影靜  백운조영정아침 흰 구름 그림자 고요하고明月夜光浮  명월야광부밝은 달은 밤에 더욱 빛나네.身上無塵垢  신상무진구몸에는 온갖 더러움 없어졌으니心中那更愚  심중나갱우마음속에 다시 무슨 근심 있으랴.- 해운각 - 굴거리 나무 군락을 등에 두고 금강대(金剛臺)에 좌정한  만암 선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靈山會上言雖普  영산회상언수보부처님께서는 영산회상에서 법을 설하셨지만小室峰前句未親  소실봉전구미친달마는 소림굴에서 말을 잊고 지냈네.瑞艸蒙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