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이미지 (1)
● 8·15해방에서 한국전쟁 종전까지 (사진 -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4. 전화에 휩싸인 한반도
포화에 그을린 중앙청. (1950. 10. 18)
1·4후퇴 전날 밤, 건물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상), 포화에 그을리고 불타버린 중앙청과 부속건물. (1950. 10. 27)
하), 서울시청. (1950. 10. 1)
인민군이 물러난 후 시청앞 광장에 각종 공문서들이 불태워지거나 버려져 있다.
(1950. 10. 27)
(1950. 11. 1)
전쟁 잔해로 굴뚝만 남았다. (1950. 11. 4)
서울역. (1950. 10. 1)
하늘에서 내려다본 중앙청과 경복궁 일대. (1951. 3. 16)
전화로 폐허가 된 종로구 내수동 일대. (1950. 10. 18)
중앙청 앞 세종로. 지금의 문화관광부 자리. (1950. 11. 1)
페허의 잿더미 속에서도 시장이 열렸다. (1951. 7. 6)
뼈대만 남은 서울역앞 세브란스 병원. (1950. 11. 24)
파괴된 한강 철교. (1950. 12. 23)
복구된 한강 철교와 인도교6. (1951. 6. 12)
전쟁중 임시수도 부산. (1950. 8. 3)
수원 장안문. (1951. 1. 25)
미군기들의 폭격으로 불타고 있는 낙동강 일대. (1950. 8. 18)
주저앉은 철교. (공주, 1951. 1. 27)
파괴된 낙동강 철교. (1950. 9. 21)
동굴 속의 북한 무기공장. (1950. 11. 19)
상), 한 가장이 불타버린 집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다. (1951. 5. 14)
하), 한반도를 초토화 시킨 포탄 탄피더미. (1951. 9. 6)
임진강 부교로 탱크가 진입하고 있다. (1951. 6. 22)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전쟁중임에도 평화롭게 보이는 어느 농촌마을. (1951. 5. 29)
5. 학살
함흥. (1950. 10. 101)
학살 후 암매장된 시신을 마을 주민들이 수습하고 있다.
(충주, 1950. 9. 29)
학살 현장을 마을 사람들이 수습하고 있다.
(진주, 1950. 10. 2)
학살 현장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찾는 가족들.
(전주, 1950. 9. 27)
'공산 게릴라'들이라고 판결을 받은 39명의 사형수들이 사형집행장으로 끌려나오고 있다.
현병들이 총살 집행을 위해 사형수들을 묶고 있다.
처형 준비
사격수들이 정렬하고 있다.
좌), 지휘관의 권총소리에 맞춰 헌병들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고 있다.
우),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형수를 권총으로 확인사살하고 잇다.
헌병이 낫을 들고 사형수를 묶었던 새끼줄을 끊고 관에 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처형된 사형수들의 새끼줄을 풀고 시신을 관 속에 넣고 있다.
대전형무소 정치범들을 트럭에서 끌어내리고 있다.
아비규환 속에서 한 사형수가 용케 살아남았지만 곧 다시 처형되었다.
경찰과 헌병들이 죄수들을 등 뒤에서 사살하고 있다.
인민군에 부역한 혐의로 연행되어 온 대구 근교 마을 주민들.
(1951. 4)
상), 처형 후 헌병들이 부역자들을 삽으로 묻고 있다.
하), 9·28 서울 수복 후 색출된 인민군부역자들이 연행되고 있다.
(서울, 195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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