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이미지 (3)
● 8·15해방에서 한국전쟁 종전까지 (사진 -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6. 피란민과 전쟁 고아
길가에 버려져 울고 있는 아이. (1950. 8. 8)
피란봇짐을 지고 가는 소년. (1950. 7. 27)
포화에 쫓긴 피란민들이 뛰어가고 있다. (영덕, 1950. 7. 29)
좌), 천안 읍내를 피란민들이 황급히 통과하고 있다. (1950. 7. 7)
우), 한 소년이 시레이션(전투식량)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다. (진주, 1950. 9. 30)
피란민의 긴 행렬. (1950. 8. 15)
피란민 행렬. (왜관 다부동, 1950. 9. 6)
파괴된 대동강 철교를 넘어서 피란민들이 남하하고 있다. (평양, 1950. 12. 3)
강추위와 눈길 속에 이어진 피란민 행렬. (강릉, 1951. 1. 8)
유엔군이 흥남에서 철수한 후 부두를 폭파시키고 있다. (흥남, 1950. 12. 24)
끝없이 이어진 피란민 행렬. (1951. 1. 5)
구호양곡을 배급받은 소년. (서울, 1951. 3. 19)
미군이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누어 주고 있다. (원주, 1951. 8. 1)
좌), 미군으로 부터 초콜릿을 받고 있는 어린이. (1951. 6. 27)
우), 미군들이 아이들에게 구호품을 나눠 주고 있다. (1951. 7. 3)
고아원으로 실려 가는 아이들. (1950. 11. 2)
부산의 어느 고아원. (1951. 3. 22)
7. 포로
인민군을 생포하고 있는 국군. (1950. 8. 12)
시계방향으로* 포로들이 심문을 받고 있다. (대전, 1950. 10. 30) * 주먹밥을 배식 받고 있는 포로들. (1950. 10. 30)* 포로들이 임시수용소로 가기 위해 줄을 섰다. * 포로로 붙잡혀 온 촌민들이 임시수용소에서 대기하고 있다. (1950. 11. 11)
임시수용소에서 포로들을 촬영하고 있다. (부산, 1950. 12. 1)
포로들을 검색하고 있다. (1950. 9. 20)
임시 포로수용소. (부산, 1950. 8. 18)
부산 근교의 임시 포로수용소. (1951. 2. 26)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열을 지어 식사를 하러 가고 있다. (부산, 1950. 10. 19)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인민군 패잔병들을 연행하고 있다. (1950. 10. 2)
임시 포로수용소 여자 포로. (부산, 1951. 1. 12)
미군 포로들이 반전 플래카드를 들고 시가지를 행진하고 있다. (평양, 1950. 8)
8. 정전회담과 휴전
정전회담장 부근의 유엔군측 헬기 기장과 북한측 안내원. (개성, 1951. 7. 8)
정전회담장에 나타난 북한측 대표.
왼쪽 부터 중공군 대표 세팡, 덩화, 가운데 남일 대장, 이상조 소장, 장평산 소장. (개성, 1951. 7. 16)
북한측 대표가 정전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1951. 11. 18)
북으로의 귀환을 거부하는 포로와 설전을 벌이고 있는 북한측 대표.
(판문점, 195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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