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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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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황제상 중국의 황제상  중국에서 '황제皇帝'라는 칭호가 처음 사용된 것은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기원전 259- 210)로 부터 시작된다.시황제가 황제를 칭하기 이전 은殷 · 주대周代에는 제후 위에 있으면서 중국 전토를 통치하는 통치자의 왕王 도는 천자天子라고 했다.중국의 제왕상이 어느 시기에 처음 그려졌는가는 현재로서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공자(551-479)가 명당에 가서 선한 왕의 표상인걸桀 · 주紂, 그리고 주나라 주공周公과 조카인 성왕成王의 초상화가 그려진 벽화를 배관했다는 기록이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보인다. 따라서 이미 주대에는 황제 초상이 그려졌음을 알 수 있겠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황제상으로 추정할 수 있는  군주를 그린 초상은 대부분 정적인 반면 이 그림에서는 오른손 손가락으로 무언..
한국의 어진 한국의 어진御眞      왕의 초상화를 일러 통상 어진御眞이라 부른다. 그 외에도,진용眞容, 진眞, 영상影像, 진영眞影, 수용睟容, 성용聖容, 왕영王影, 영자影子, 영정影幀, 어용御用, 어진 등.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1714년(숙종 39) 숙종의 초상화를 그릴 때, 당시 이 일릉 맡은 임시관청의 총책임자였던 어용도사도감御容圖寫都監 도제조都提調이이명李頤命(1658-1722)의 건의에 따라 어진이라 일컫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평안남도 용강군 남포시 와우도에 있는 감신총 인물 벽화이 벽화는 고구려 왕의 초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에 등장하는 인물은 왕의 옷인 홍포를 입고 역시 왕이 쓰는 흑나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쪽 벽화 배경에는 '왕'자가 쓰여 있기 때문이다.   ..
창작의 샘 피카소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 피카소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유화로 그린 <어린 투우사> 1889년, 유화, 24×19cm, 파리, 개인 소장 가난한 소녀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맨발의 소녀> 1895년, 유화, 74.5×49.5cn, 파리,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가 열네 살 때 그린 <화가의 어머니 초상>(왼쪽) 18..
책 읽는 사람들의 이미지 (2) 고대부터 현대까지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책,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 - 2편 - <꾀보> 기타가와 우타마로 c, 1802-3, 종이에 목판 인쇄, 37×25cm, 빌바오 미술관, 스페인 <책에 기댄 젊은 여인> 안 발레예-코스테르 1784, 캔버스에 유채, 크기 미상, 개인 소장 <학생> 그원 ..
책 읽는 사람들의 이미지 (1) 고대부터 현대까지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책,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 - 1편 - <귀중한 책> 그웬 존 c, 1910-26, 패널 위 캔버스에 유채, 26.4×21cm, 개인 소장 <밀랍판과 철필을 등 폼페이 여인>, 작가 미상 c, 55-79 AD, 석회 위 프레스코, 37×38cm, 나폴리 국립고고학 박물관 이 ..
컬렉터와 컬렉션 - 한 컬렉터의 수집 철학과 민화 컬렉션 - 수집이란 중독성이 강해서 남들이 느낄 수 없는 미의 세계에서 얻은 행복감도 크지만,때로는 감내해야 할 고통도 적지 않다.      우연히 일본의 민예 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가의 길』과 『수집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해서 한동안 야나기 무네요시의 이론에 심취하여 그의 전집을 구하여 읽고 또 읽고 했던 것이 예술을 사랑하고 미를 즐기는정신적 바탕이 되었다. 더불어 그것이 내가 민화라는 장르를 수집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까 가난한 한 상인이 17년 동안 나름의 수집 철학을 바탕으로 민화 수집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야나기 무네요시의 수집 이야기에 대한 이해와 깨우침 덕분이다.  나는 부족한 미적 관점으로 오랫동안..
고증학과 미술 실증으로 고전古典의 원형을 찾다  청대를 대표하는 사상인 고증학考證學은 문헌에 보이는 문자, 음운, 훈고訓告를 연구하여 도출된 실증적인 사실을 토대로 고전을 정비하고 해명하는 새로운 학문이다. 특정 사실이나 사건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자료 수집과 엄격한 검증을 근간으로 하였기 때문에 박학博學 또는 고거학考據學이라고도 한다. 그 연원은 청 초에 명 말의 국가적 위기를 지켜본 학자들이 경세치용經世致用을 내세우며 경학經學과 사학史學에서 문헌 연구를 통해 정치제도의 개혁을 모색했던 경세실학經世實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대 문인들은 성리학과 양명학, 서학을 두루 경험하였기에 송명이학宋明理學의 관념적 연구에 대한 반발로 한나라 훈고학訓告學을 계승하여 자료를 실증적으로 고증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이처럼 고..
서학과 미술 서구 문물과 학문의 유입  지리상의 발견 이후 중국에 전래된 서구의 천문, 지리, 의학, 종교 등을 다루는 학문을 서학西學이라고 한다.일반적으로 '서헉'과 천주교 신앙만을 다루늕 '서교西敎'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넓은 범주에서 함께 다루려고 한다.이 용어는 명말청초에 가톨릭을 전도하기 위해 중국에 도착한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의 다양한 과학 서적들을 가져와 한문으로 번역 출판한 것을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또는 '西學書'라고 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조 연간(1567-1608) 전래된 이후 실학자들이 개별적으로 수용하였으며, 조선 왕실의 천주교 탄압은 서구의 과학 지식이나 문물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이어지며 근대적 사회체제로의 능동적 전환을 늦추는 부정적 기능을 하기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