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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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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과 미술 일상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참된 학문의 추구  중국에서 실학이 주목된 것은 명말청초이며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이라는 의미이다. 명 말의 정치 사회적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지 못하였던 성리학과 양명학을 '공리공론空理空論'에 기초한 헛된 학문' 즉 허학虛學이라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상반된 개념으로 등장하여 청 중엽까지 지속되었다. 동시에 실학자들은 유럽의 선교사를 통해 유입된 서양의 학문과 문물을 연구하는 서학을 배경으로 농경과 직접 관련된 역법이나 천문, 산술 등의 관련 서적들을 발간하여 생산력 향상에도 기여하였다. 따라서 실학은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넉넉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자본주의적 맹아라는 토대위에 성립된 특수한 산물로 규정되기도 한다. 더불어 경제적 성장에 따른 피지배층의 각성은 ..
양명학과 미술 앎과 행동을 하나로 하며 마음에서 이치를 찾다 명 말기에는 황제의 잇따른 실정으로 인한 당쟁과 관료의 부패, 환관의 전횡, 빈번한 재해 발생 등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하지만 통치이념인 성리학은 실천을 결여한 추상적 지식만을 추구하는 학문적 풍토를 조장하면서 사회의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학자 왕수인王守仁(호 양명陽明, 1472-1529)은 성즉리性卽理의 주자 성리학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심즉리心卽理의 양명학陽明學을 새롭게 제창하였다. 다시 말해 왕양명은 성리학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하자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이치(理)가 아닌 마음(心)에서 참다운 이치를 찾아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이성을 중시하여 이학理學이라고도 불린 성리학과 달리 양명학..
성리학과 미술 이理와 기氣로 설명한우주의 원리와 인간 본성  성리학性理學은 우주 원리나 인간 본성의 구조 등을 이理외 기氣의 개념으로 설명한 철학체계이다.이는 당나라 후기의 유학자 한유韓愈(758-824)가 현실만을 다룬 유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불교나 도교처럼 사후세계나 우주 원리 등을다룬 형이상학적 논리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송대의 주돈이周敦頤(1017-1073)와 정호程顥(1032-1085) ·  정이程頤(1033-1107) 형제를 거쳐 주희朱熹(1130-1200)에 의해 집대성 되었기 때문에 주자학朱子學이라고 하며, 훈고학이라 통칭된 당대까지의 유학과는 다른 새로운 철학적 사유체계라는 의미에서 신유학新儒學이라고도 한다. 이 밖에 성리학을 지칭하는 다른 명칭으로는 송학宋學, 도학道學, 이학理學, 정주..
선종과 미술 언어와 문자를 초월하여 마음에서 마음으로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에서는 경전이나 예배 공간에 구애됨 없이 참선이나 수행만으로도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직관의 체험을 가장 중요시하였다. 이는 선종이 경전이나 특정한 격식에 치중함으로써 드러난 기존 불교계의 문제점과 한계를 해결하려는 입장에서 성립된 새로운 신앙체계였기 때문이다. 특히직관의 개념은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할 때 말없이 한 손으로 꽃을 들자 제자들 가운데 가섭迦葉만이 오직 그 뜻을 이해하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하였다. 이를 염화미소拈華微笑 내지 염화시중拈華示衆이라고 하며, 부처의 말이나 글에 의거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가르침을 전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선종의 종지宗旨인 이심전심以心傳心은 일찍부터 ..
불교와 미술 마음속 우주를 깨닫기 위한 끝없는 여정 인도에서 석가모니(기원전 563-기원전 483)에 의해 시작된 불교는 중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로 전파되면서 한 국가의 종교가 아닌 동아시아의 신앙체계로 성장 발전하였다. 원래 석가모니는 석가족釋家族에서 나온 성자聖子라는 의미이며, 그의 성은 고타마Gautama, 이름은 싯다르타Sidhartha이다. 그는 인도의 카필라 성 룸비니 동산에서 정반왕과 마야 부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19세에 결혼하여 아들 라후라를 얻었다. 하지만 생로병사와 인생의 덧없음을 고뇌하다 29세에 출가하여 6년간의 고행을 마친 35세 때에 마가다국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사람이 되었다. 이후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쌍림수 아래에서 열반하기까지 45년 동안 제자들과 ..
도교와 미술 무위자연을 추구하며 불사不死를 꿈꾸다     유교가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상으로 지배체제나 일상의 사회구조를 지속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도교는 불사不死를 소망하는 인간의 무의식이나 사후세계를 지배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도교는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토착 종교로, 현실에 회의를 느껴 도피하려 했던 중국 문인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따라서 엄격하고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시서화를 즐기며 자유를 구가한 문인들에게 정신적 안식처 내지는 귀의처로 기능하며 문학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도가道家는 도교의 전신처럼 이야기되지만, 원래 노자老子와 장자莊子(기원전 369-기워전 289)의 사상은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하나이며 일종의 통치 철학이었다. 노자는 주나라의 몰락을 예견하고 황실 도서관장을 그만..
유교와 미술 - 공자와 제자들의 고사 -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 사상인 유교는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유체계 중 하나이다. 이는 중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도교,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와 함께 오랜 시간 상호본완적 관계를 지속하며 중국인의 일상은 물론 의식의 깊은 곳을 지배했던 일종의 윤리의시기기도 하다. 유교는 춘추시대에 노魯나라 출신 공자孔子(기원전 551-기원전 479)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전국시대에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활동으로 다양한 학파가 존립하던 시기를 거쳐, 맹자孟子(기원전 372-기원전 289)에 이르러 단일 학파로 발전하였다. 이때 각국의 군주들이 영토를 확장하여 천하를 통일하려 했던 정치적 논리가 크게 작용했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던 한나라는 인仁..
신화와 미술 - 창세신화 - 중국에서는 반고가 천지를 만든 창세신화의 주인공이며, 그가 혼돈 상태의 알에서 깨어나 점차 성장함에 따라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으로나뉘며 하늘과 땅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이른 기록은 삼국시대의 서정徐整(220-265)이 쓴『삼오력기三五曆記』이며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지 혼돈은 달걀과 같으며 반고가 그 가운데 살고 있었다.일만 팔천 년이 지나 천지가 개벽하니, 양청陽淸한 것은 하늘이 되고 음탁陰濁한 것은 땅이 되었다.반고는 그 가운데 있으면서 하루에 아홉 번 변하여 하늘보다 신령스럽고 땅보다 성스러웠다. 하늘은 날마다 일 장씩 높아지고,땅은 날마다 일 장씩 두터워졌으며, 반고는 날마다 일 장씩 자랐다. 이렇게 하여 다시 일만 팔천 년이 지나 하늘은 끝없이 높아지고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