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문자를 초월하여
마음에서 마음으로
불교의 한 종파인 선종에서는 경전이나 예배 공간에 구애됨 없이 참선이나 수행만으로도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직관의 체험을 가장 중요시하였다. 이는 선종이 경전이나 특정한 격식에 치중함으로써 드러난 기존 불교계의 문제점과 한계를
해결하려는 입장에서 성립된 새로운 신앙체계였기 때문이다. 특히직관의 개념은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할 때 말없이
한 손으로 꽃을 들자 제자들 가운데 가섭迦葉만이 오직 그 뜻을 이해하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하였다.
이를 염화미소拈
- 흩어져 존재하는 성현을 그린 산성도 -
산성도散聖圖는 '흩어져 존재하는 성현'을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이다.
선종의 공식적인 조사 계보에는 속하지 않지만 기이한 언행으로 민간에 이름을 알린 풍간, 한산, 습득, 포대 등을 그린 것이
이에 해당된다. 표현 기법은 순간적 깨달음을 중시하며 직관의 체험을 시각적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인지 대상의 특징만을
빠르게 그려내는 감필법과 발묵법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는 선종이 체계화되지 않았던 당말오대唐末五代 시기에
직관에 의한 깨달음을 강조하는 기본 교리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정황은 현전하는 전칭傳稱 작품을 통해 확인 가능하며,
오대의 선승화가 관휴貫休(832-912)의 작품으로 전하는 <풍간도>, <한산도>,<습득도>는 산성도의 초기 모습을 알려준다.
풍간, 한산, 습득은 정관貞觀 연간(627-649) 절강성 천태산天台山에 위치한 국청사國淸寺에머물던 유명한 선승으로,
국청삼은國淸三隱 또는 삼성三聖이라 불렸다.
풍간은 국청사 주지로 한산과 습득의 스승이며, 항상 호랑이와 함께 다녔다. 습득은 풍간선사가 데려다 키운 고아로
매일 아침 마당을 쓰는 하나의 과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그의 곁에는 대개 빗자루가 놓여 있다.
한산은 국청사에서 떨어진 한암寒巖이라는 동굴에서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누더기를 걸친 채 찬밥을 얻어먹기 위해
국청사 부엌을 드나들다가 습득과 친구가 되었다. 또한 풍간은 미륵보살, 한산은 문수보살,
습득은 보현보살의 화신으로 일반에 알려지기도 하였다.
관휴의 전칭작에서 서역인에 가까운 선승의 얼굴은 세필로 정교하게 묘사된 반면, 농묵濃墨의 거친 필선으로
빠르게 그려낸 의복 표현은 내면에 숨겨진 호방한 기운이나 정신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선승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듯 바위나 땅바닥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형식이나 격식을 거부했던 선종의 종교적 색채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전傳 관휴貫休, <습득도>, <한산도>, <풍간도>
남송 12-13세기, 지본수묵, 각 109.2×50.3cm, 오사카 후지타미술관
전傳 석각石恪, <이조조심도> 중 한 폭
오대 10세기, 지본수묵, 36.5×64.4cm, 도쿄국립박물관
이 작품은 원대의 모사본으로 추정되며, 한 선승은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사색에 잠겨 있고, 다른 선승은 호랑이에 기대어 자고 있다.
선승의 평온한 얼굴과 거친 필묵의 복식이 대조적이며, 농묵의 필선을 초서草書처럼 휘둘러 빠르게 특징만을 나타내는
감필범의 뛰어난 경지를 보여준다. 이는 선종의 '돈오'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당대 화단에서 채색 공필의 사실주의적 인물화가 주류를 이루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직옹直翁, <六祖挾担圖>
남송, 지본수묵, 93×36cm, 도쿄 다이토큐기념문고
무배경의 화면에 대상을 심도있게 관찰하여 포착한 요점만을 매우 옅은 담묵으로 나타내고,
세부는 농묵을 점으로 찍듯이 그려내었다. 이러한 표현 기법은 망량화罔兩畵라고 하며, 남송 화승 지융智瀜에 의해 완성되었다.
'망량'은 대상의 존재가 명확하지 않다는 의미이며, 윤곽을 애매하게 처리하여 기운, 빛, 인물이 하나처럼 보이지만,
주관적인 왜곡이나 단순화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재현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 그림은 청년 시절 나무를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던 혜능이 어느 날
『금강경金剛經』독송을 듣고 홀연히 출가를 결심하게 된 일화를 그린 것이다.
혜능의 얼굴, 손발, 의복은 엷은 담묵으로 간략하게 그려진 반면,
눈동자, 토 입 등은 농묵의 점으로 나타낸 것에서 수묵화의 일종인 망량화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목계, <관음원학도觀音猿鶴圖>
13세기, 지본수묵담채, 관음 172.2×97.6cm, 교토 다이토쿠지
불화 1점과 동물화 2점, 모두 3폭이 한 번로 구성된 이례적인 경우이다. 관음보살도를 중심으로 보는 이의 오른쪽에는강풍에 흔들리는
고목에 앉아 정면을 향하고 있는 원숭이 모자母字 그림이, 왼쪽에는 대나무 숲에서 학이 튀어나오며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르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 배치되어 있다. 무표정한 얼굴의 관음보살은 고요하게 바위에 앉아 깨달음에 이른 마음의 상태, 즉 돈오를
이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반면 양 옆의 원숭이와 학 그림은 깨달음에 이르기이 전의 현실적인 속세俗世의 모습으로, 불성佛性이
모든 중생에게 있다고 한 선종의 관점에서 보면 원숭이나 학도 관음보살과 동등하게 될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모든 존재에 대한 돈오의 경지를 다양한 소재와 형태를 빌려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 미상, <사수도四睡圖>
원 14세기, 지본수묵, 77.8×34.3cm, 도쿄국립박물관
풍간, 산산, 습득, 호랑이가 소나무 아래에서 하나로 뒤엉켜 잠을 자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도상은 남송 선사들의 어록 중 제찬에서 종종 발견되며 동일한 도상의 채색화도 전한다.
화면의 모든 경물은 굵기가 일정한 선묘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이공린李公麟이 사용했던 백묘법白描法이
원대 문인화가 조맹부에 의해 부활된 것으로대상의 특징만을 간결하게 그렸던 남송의 표현 기법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다시 말해 원대에 그려진 산성도가 인물의자세와 표현 기법 등에서 다양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신앙 대상으로서의 이미지가 희석되어가는 양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左, 傳 안휘顔輝 <한산습득도>
13세기, 견본채색, 27.6×41.8cm, 도쿄국립박물관
右, 나빙羅聘, <한산습득도>
청 18세기 후반, 지본수묵, 78.7×51.7cm, 미국 넬슨 엣킨스 미술관
한산과 습득은 선종에서 각각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화신으로 신앙되었지만, 원대에는 가정의 화목이나 화합을 상징하는
화합선인和合仙人으로 의미가 바뀌면서 종교적 색채를 지닌 산성도가 아니라 길상적 의미를 지닌 도석인물화의 범주로
옮겨가기 시작하였다. 원대 도석화가인 안휘가 그린 작품으로 전칭되는 <한산습득도>는 그러한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화면에서 두 선아의 얼굴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과 복식의 호방한 필선에서 오대의 일격逸格 화풍이 일부 보이지만,
치아를 드러낸 채 짝 웃는 모습은 원대 승려화가 인타라의 얼굴 표현법을 연상시킨다.
선종이 쇠퇴하는 명 · 청대에 이르면 산성도의 주인공이 도교나 민간신앙과 결합하면서 감상용 도석인물화로 완전히 옮겨가게 된다.
이로써 한산과 습득은 선인처럼 평범하게 표현되었으며 양주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