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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신화와 미술


- 창세신화 -


중국에서는 반고가 천지를 만든 창세신화의 주인공이며, 그가 혼돈 상태의 알에서 깨어나 점차 성장함에 따라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으로나뉘며 하늘과 땅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가장 이른 기록은

삼국시대의 서정徐整(220-265)이 쓴『삼오력기三五曆記』이며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지 혼돈은 달걀과 같으며 반고가 그 가운데 살고 있었다.

일만 팔천 년이 지나 천지가 개벽하니, 양청陽淸한 것은 하늘이 되고 음탁陰濁한 것은 땅이 되었다.

반고는 그 가운데 있으면서 하루에 아홉 번 변하여 하늘보다 신령스럽고 땅보다 성스러웠다. 하늘은 날마다 일 장씩 높아지고,

땅은 날마다 일 장씩 두터워졌으며, 반고는 날마다 일 장씩 자랐다. 이렇게 하여 다시 일만 팔천 년이 지나 하늘은 끝없이 높아지고

땅은 끝없이 깊어졌으며 반고는 끝없이 성장하니 이후에 비로소 삼황三皇이 있게 되었다.



                         


, 고매신高媒神과 복희伏羲, 여와女媧

후한, 하남성 남양 한화관

우, 복희와 여와

무반사, 왼쪽 석실 뒷벽 소감小龕 부분, 후한 145, 산동성 가상현 무씨사보관소


결국 반고가 혼돈이라는 상태에서 태어나 성장함에 따라 천지가 완성되고 그의 죽은 몸이 하나하나 천지만물을 만들어내었으므로,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하남성 남양南陽 한화관 소장의 한대 화상석畵像石 가운데 양쪽 어깨에

사람 몸에 뱀 꼬리를 한 복희와 여와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 있다. 이는 3세기경, 서정에 의해 반고에 관한 이야기가 문자로 기록되기

훨씬 이전부터 창세신화에 관한 인식이 널리 펴져 있었음을 알려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형상을 반고가 아니라 중매와 생식의

신으로 알려진 고매신高媒神으로 보기도 한다. 화면 중앙에 중매와 생식의 신으로 알려진 고매신이

상반신은 사람이고 몸은 뱀의 꼬리로 된 복희와 여와를 좌우 어깨로 받치고 있다.


복희와 여와는 몸을 꼬고 있는 교합의 형상으로 다수 표현되었는데,

이는 태아의 배태와 출산을 의미한 것이다. 무반사에 전하는 화상석 오른쪽의 복희는 기역자 모양의 곡척曲尺을 가지고 있고

왼편의 여와는 컴퍼스 같은 규規를 들고 있는데, 이는 인간세계의 기준과 척도를 제시했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복희

전한, 복천추묘 주실 천장 부분. 낙양 고묘박물관


여기서 인면사신의 복희는 까마귀로 보이는 새가 들어 있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고 여와는 두꺼비가 있는 달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창세신화와 음양사상이 결합된 것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신화의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복희와 여와

고구려 6세기 전반, 오회분 4호묘 천장 부분, 길림성 집안시


집안의 오회분4호묘와 통구 사신총에서는 복희와 여와가 태양과 다을 머리 위로 들고 있다.

이로써 복희와 여와 신화는 중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공유되었던 인식체계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 영웅신화 -



신농神農

고구려 6세기 전반, 오회분 4호묘 천장 층급받침, 길림성 집안시


중국의 고대문명 발전과 관련한 대표적 신화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이다.

삼황은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비롯해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복희伏羲, 신농神農, 燧人을 말한다.

복희는 그물을 만들어 수렵하거나 사냥 방법을 알려주었으며, 『역경易經』의 팔괘八卦를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여와와 짝을 이루어 혼인제도를 확립시키기도 했다고.

신농은 염제炎帝라고도 하며 인류에게 농업과 양잠을 알려주었다. 동시에 각종 약초의 효능을 알려주었으며 맹독이 있는

단장초斷腸草를 잘못 먹고 사망하였다고 한다. 신농은 소나 용의 머리에 사람의 몸으로 표현되었으며,

이러한 도상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제도 삼황과 마찬가지로 일정하지 않으며,

사마천의 『사기』「오제본기」에는 皇황제帝, 전욱顚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이라 되어있다.

황제는 천상을 지배하는 최고의 중앙신으로 이름은 헌원軒轅이며, 치우蚩尤의 난을 평정하였음은 물론 문자, 음률, 도량형 등을

정비하여 중국 문명의 개조라고 일컬어진다. 후한 이후에는 도교 및 신선사상과 결합되어 노자보다 앞선 도교의 개조로 숭상 되면서

황로黃老학문이 성립되기도 했다. 전욱은 황제의 손자로 고양高陽이라는 지역에 나라를 세웠으므로 고양씨라 하였고,

인간의 높고 낮음과 같은 도리를 확립하여 위계질서를 바로잡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치수신화는 일종의 자연 정복이며, 서양에는 없는 중국의 독특한 이야기로 영웅신화에 포함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순의 신하로 물길을 관리했던 곤鲧과 그의 아들 우가 주로 언급된다. 상고시대에 홍수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나 의지가 치수신화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 한 국가의 존폐 또는 왕위 계승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했으며,

우 임금은 후대에 유가에서 순천자順天者를 상징하는 성군으로 추승되었다.






삼황오제

무량사 서벽 부분, 후한 151년, 산동성 가상현 무씨보관소






전쟁장면

무영사武榮祠 전실 서벽 하단 부분, 후한 167년, 산동성 가상현 무씨보관소






치우蚩尤

무개명사武開明祠, 후한 148년, 산동성 가상현 무씨보관소






야장신冶匠神과 제륜신製輪神

고구려 6세기 전반, 오회분4호묘 천장 부분, 길림성 집안시






예羿와 부상수扶桑樹

무영사 전실 후벽 부분, 후한 167년. 산동성 가상현 무씨보관소





- 자연신화 -


해와 달

백화帛畵 상단, 기원전 2세기, 견본채색, 호남성 장사시 마왕퇴 1호묘 출토, 호남성박물관


태양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가장 이른 예이다.

상단 오른쪽에는 붉은색의 둥근 원 안에 삼족오로 보이는 검은 새가 그려져 있고, 왼쪽에는 두꺼비가 초승달 위에 표현되어

달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도상은 한대 화상석은 물론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자주 보이므로

역시 동아시아 전역에서 숭배 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항아분월姮娥奔月

후한, 하남성 남양서관 출토, 하남성 양양 한화관


달을 모는 신인 '망서望舒', 달에 토끼가 살고 있다는 '월중유토月中有兎',

예의 부인인 항아가 불사약을 먹고 달로 도망쳤다는'항아분월姮娥奔月' 등이 있다.





북두칠성

무개명사 좌실 서쪽 일부, 후한 148년, 산동성 가상현 무씨보관소




풍신과 뇌신

무개명사 좌실 서쪽 일부 후한 148년 산동성 가상현 무씨보관소





풍신風神

고구려 5세기 후반 무용총 부눈, 길림성 집안시





풍신과 뇌신

6세기 전반, 돈황 막고굴 제249호, 감숙성 돈황사






하백출행河伯出行

후한 하남성 남양 환화관






문징명文徵明, <상군상부인도湘君湘夫人圖>

1517년, 지본채색, 100×35.6cm, 대북고궁박물원




서왕모

하상전, 후한, 사천성 심도현 청백향 1호묘




서왕모

후한 초기, 산동성 가상현 홍산촌 출토, 중국역사박물관


지역간의 표현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왕모가 널리 제작되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곤륜산의 한 봉우리인 옥산을 지키는

산신에서 점차 대중적인 사랑을 받으며 동왕공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 신격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처음에는 형벌과 돌림병을 주관하는 살벌한 여신에 불과했으나 나중에는 도교의 신선사상과 결합되면서

불사약을 나누어주는 자비로운 여신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이로 인해 명 · 청대에 이르면 서왕모는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에서 대개 미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축수용 선물로 널리 감상되었다.




서왕모

후한 말기, 67×56.5cm, 산동성 미산현 양성진 출토, 미산현문화관






동왕공과 서왕모

무량사 동벽가 서벽 부분 후한 151년, 산동성 가상현 무시사보관소




남방에 위치한 무산巫山의 신녀는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 회왕(기원전 374-기원전 296)과 나눈 찰나의 사랑 이야기로

널리 알져져 있다. 원래 그녀는 염제의 셋째 딸 요희였으나 시집도 못간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죽어 무산에 묻히면서

무산 신녀가 되었다. 회왕이 우연히 무산을 찾았을 때 고당관에서 낮잠을 자다 꿈속에서 그녀를 만나 짧은 사랑을 나누고

헤어졌다. 이때 무산 신녀가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되어 양대陽臺 아래에 있겠다고 한 것에서 '조운모우朝雲暮雨'

또는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는 사랑의 조어가 유래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회왕의 아들인 양왕襄王양이 호북성 강한江漢에 위치한

호수인 운몽택雲夢澤에서 노닐 때 '운우雲雨'가 발단이 되어 굴원의 제자인 송옥宋玉이 지은 「고당부古唐賦」에 실려 있다.







동왕공과 서왕모

4세기 말-5세기 초, 정가갑5호묘 전실 서벽, 감숙성 주천시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해와 달, 별과 관련된 신화는 고분에서 천장부에 그려지며 매장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전개된 반면,

바람과 뇌신은 농경사회에서 비를 기원하는 기우제를 배경으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강이나 산의 신들은 인간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문학의 주제로 다루어졌다.



● 인용서적 : 한정희 · 최경현 著 『사상으로 읽는 동아시아의 미술』







Inside Outside - Tony O'Con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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