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벽화와 신명의 정서
사신도가 그려진 강서대묘
사신도는 무덤 내부 사방 벽면에 수호신 성격의 신령한 동물을 그린 것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을 보면 웅혼한 기상을 담박에 느낄 수 있으며 자못 신명감마저 느껴진다.
신명은 음의 율려 작용이고, 율려의 연속적인 생명 작용이 곡선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고구려 고분 벽화.
춤과 음악 등은 보존이 어렵지만, 벽화에 그려진 회화는 고대 한국인의 생활상과 예술혼이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신 혹은 오신의 형상을 지상의 특정 동물로 정하지 않고 가상의 동물을 창조했다는 점이다.
지상의 여러 동물들의 장점만을 종합하여 이상적인 동물로 재창조한 것. 그러자면 그리는 사람의 창의성과 예술성이 요구된다.
고구려인들은 신명이 느껴지는 유려하고 역동적인 선을 동원한 예술적 감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강서대묘 동벽의 <청룡>, 7세기
동쪽을 수호하는 청룡은 봄이 신령을 상징한다.
기본적인 도상은 용의 형상에 사슴의 뿔, 낙타의 머리, 귀신의 눈, 뱀의 이마,대합의 배, 물고기의 비늘, 매의 발톱, 호랑이의 발,
소의 귀가 결합되어 있다. 가느다란 목과 굵은 몸통을 가진 커다란 청룡이 유연한 S자형 곡선을 이루며 날아가고 있다. 특히 어깻죽지의
날개를 타고 오르는 불꽃 모양의 유려한 곡선으로 처리하여 힘찬 운동감이 극대화 되고 있다. 비사실적으로 길게 내민 혀와
가늘게 뻗어올라간 두 뿔 역시 선적인 특성을 강조하여 전체적인 리듬감을 살리고 있다. 여러 동물의 합이
유려한 곡선에 의해 하나의 유기체로 거듭나고 율동감 넘치는 신명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진파리1호분>
북한에서는 장군 고흘의 무덤으로 추정한다고.
진파리1호분의 동쪽 벽면에 장식된 <청룡>의 율동적인 형상은 주변 문양과 어우러져 역동성을 배가시킨다.
패턴화되지 않고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곡선의 문양들은 연꽃이나 구름, 새 같은 형상이나 구체적 대상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모든생명의 근원인 신명의 율려 작용을 표현한 것으로 우주와 하나 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강서중묘 서벽의 <백호>, 7세기
서쪽을 수호하는 백호는 가을을 상징하는 신령이다.
기본적 도상은 호라이에서 출발하는데 한 가지 약점은 호랑이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키 위해 백호의
몸체를 용처럼 길게 만들고 날개를 달았다. 여기에 과장된 아가리와 부릅뜬 눈, 위 아래로 뻗은 히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갖췄다.
육중한 호랑이를 가늘게 그린 까닭은 율려의 율동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다. 사신의 상징성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율려의 리듬이고,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신명의 생명 작용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진파리1호분의 <백호>, 6세기
진파리1호분의 <백호>는 유난히 길고 유연한 몸을 가진 백호가 S자의 곡선을 이루며 바람에 흩날리는 문양들을 배경으로 한다.
이같은 곡선의 향연은 지성의 산물이 아니라 지성의 분별력으로포착하기 어려운 미세한 생명의 리듬인 것이다. 확장하는 양의
파동인 율과 정적인 음의 진동인 려가 조합된 율려 작용 속에서 부분과 전체, 동물과 식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직된 이분법은 힘을 잃는다. 상징성이 있는 구상적 형상이 있으나 그것은 단지 부차적인 수단일 뿐이고,
중요한 점은 몰입 상태에서 그려지는 신명의 리듬감 넘치는 파동에너지다. 이것은 어떤 기술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사람이 자신의 리듬과 우주의 리듬을 일치시켜 몰입 가운데 춤을 추듯이 그려야 되는 것이다.
이처럼 즉흥성과 행위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고구려 벽화는 표현주의적 특징을 지닌다.
강서중묘 남벽의 <주작>, 7세기
남쪽의 수호신 주작은 암수 한 쌍이 날개달린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 기본적 도상은 전설의 새인 봉황에서 출발하여
수탉 머리에 앞은 기린, 뒤는 사슴, 목은 뱀, 꼬리는 물고기, 무늬는 용, 등은 거북, 턱은 제비, 부리는 닭, 꼬리는 공작의 결합이다.
두 날개를 원형에 가깝게 활짝 편 자세로 암수 두 마리가 문 입구를 바라보고 있다
. 붉은색의 몸통에 길게 뻗어 올라간 꽁지깃으로곡선적인 운동감이 느껴진다.
만약 이처럼 곡선의 역할이 생략되었다면, 이집트 회화처럼 경직되고 딱딱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집트 「사자의 서」에 나오는 괴물 <암미트>
저승의 신 오시리스의 명령을 받아 죽은 사람의 심장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이 동물은 악어 머리에
사자의 갈기, 표범의 몸, 하마의 다리가 합성된 가상의 동물로 율동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집트인들이 추구한 영원성은 불변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그림은 영원성을 붙잡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반면에 고구려인들에게 영원성은 율려의 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진파리1호분의 <주작>
문 양쪽의 긴 벽면에 세로로 그려져 있는데, 이러한 공간적 제약을 활용키 위해 꼬리를 머리 위로 높게 추어올리고 있다.
호흡하는 입에서는 신령한 기운이 나오고, 꼬리를 올리면서 생긴 움직임이 율려의 파동을 만들며 공간에 울려 퍼지고 있다.
강서대묘 북벽의 <현무>, 7세기
뱀은 거북의 몸을 휘감으며 얼굴을 맞대고 있고, 크게 벌린 입에서는 불꽃이 뿜어 나온다. 이를 단순하게 만들면
태극 형상이 되는데 태극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접화의 존재 방식을 함축적으로 디자인한 것이다.
길림성 집안 통구사신총 북벽의 <현무>, 6세기
거북과 뱀의 뜨거운 사랑이 절정에 달한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거북의 몸을 휘감은 뱀의 몸체가 마구 꼬이고 뒤틀려 한 몸처럼
격렬하게 엉겨 붙어 있다. 단단함과 부드러움, 양과 음, 율과 려의 대립이 접화를 이루어 차가운 벽면에서 뜨겁고 폭발적인
신명의 열기로 불타오르고 있다. 배경의 문양들도 꿈틀대는 현무의 동작에 따른 리듬을 생성시켜 신명의 파장을 확산시키고 있다.
좌 - 중국 산시성 태원에 있는 당나라 벽화의 <현무>
우 - 일본 나라현 아스카 지역에 있는 기토라고분의 <현무>, 7세기 후반
당나라 벽화의 <현무>는 서양의 중세회화처럼 주제 내용에 따른 상징성과 삽화로서의 기능에 충실할 뿐이다.
고구려 벽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 나라현 아스카 고분의 <현무>는 단순하고 가지런하게 정제된 느낌이다.
진파리1호분 북벽의 <현무>, 6세기 전반
벽면 전체가 살랑거리는 선율의 모양으로 가득 차 있다. 정지해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이 모든 존재들이 음악적인 율동감으로
요동치고 있다. 화면 중앙에는 흐릿하게 남아 있지만 거북과 뱀이 얽힌 현무가 그려져 잇고, 그 양 옆으로 소나무 두 그루가
미풍에 흔들리고 있다. 화면 밑에는 많이 훼손되어 있지만 산악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고구려 벽화에서 신명의 열기를 조형적으로 극대화하는 요소는 배경의 문양들이다.
이 문양들은 인동초나 팔메트 문양과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오른쪽으로 부는 바람에 따라 흘러가며
구름이나 식물 혹은 동물 등을 연상시킨다. 이 잠재적 형상들은 생명의 파장과 파동이 우주 공간으로 무한 확장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런 역동적인 표현은 중국이나 일본 회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오회분4호묘 동벽의 <사신도>, 6세기
투구 모양의 고분 5기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어서 오회분이라 부르는데, 4호묘에서 벽화가 발견되었다.
이 벽화들은 회칠을 한 위에 그린 초기 벽화와 달리 화강암 위에 직접 그려져 있는데, 강렬한 오방색과 섬세한
필치가 1500년이 지났음에도 선명하게 나마 있는 것으로 보아 안료의 기법이 고도로 발달해 있을을 알 수 있다.
널방 받침돌 1단에는 4면에 서로 몸을 얽은 용의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그 밑에 네 벽면에는 연화문과 화염문으로 장식된 귀갑문이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고,
일부 연꽃 안에는 봉양하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이러럼 다소 복잡한 배경 위에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데,
동물과 식물과 인간이 역동적인 리듬 속에 뒤섞여 있어 마치 포스트모던 회화를 보는 듯하다.
오회분4호묘 천장의 <황룡>, 6세기
널방 천장 덮게돌에 그려진 <황룡>은 현실에 존재치 않는 상서로운 영물로 사신의 수장이면서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
북극성이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입을 크게 벌려 혀를 내밀고 몸을 꼬아 뒷다리를 힘차게 뻗은 황룡은 역동적인 몸짓으로
하늘에서 호령하고 있다. 차갑고 습기 찬 무덤 안은 찬란한 오방색의 향연과 역동적인 생명의 열기로 불타오르고 있다.
강서대묘 널방 천장의 <황룡>, 7세기
정사각형의 제한된 공간에 적합하게 몸을 둥글게 웅크리고 있지만 원을 그리며 속도감 있게 움직이는
황룡의 자태는 유연하고 역동적이다. 천장 네 모서리에는 팔메트 문양의 흔적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즉흥성이 가미되어 회화적인 활기가 느껴진다.
중국 둔황 막고굴 272굴의 천장
오회분4면의 <해신과 달신>, 6세기
고구려 벽화의 벽면에 사신도가 있다면, 천장 부근에는 신선들의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이들은 대개 반인반수의 형상을 하고 있거나 학이나 봉황 같은 조류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신화나 신선 사상에 토대를 둔 것이다.
오회분4호묘의 북쪽 모줄임천장 측면에 그려진 <해신과 달신>은 '복희와 여와 신화'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상반신이 사람이고 하반신은 용의 모습을 한 해신과 날개 달린 붉은 저고리를 입고 하반신은 용의 모습을 한 달신이 서로를 향해
날고 있는 장면이다. 해신은 머리에 삼조오가 그려진 둥근 해를 받쳐 들고 있고, 달신은 머리에 두꺼비가 있는 달을 이고 있다.
동양신화에서 복희는 동방의 천제로 음양 변화의 원리에 근거하여 팔괘를 창제하여 『주역』의 기초를 닦은신이고,
여신 여와는 황토로 인간을 창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신화에서 이들은 처음에 각각 따로 존재하는 신이었으나
후에 유가의 음양론의 영향으로 짝신으로 변한다.
좌 -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 아스타나에서 출토된 <복희여와도>, 7세기경
우 - 태양신 <리-호라크티의 축복을 받는 타페르트>, 이집트 22왕조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 투르판 아스타나에서 7세기경 출토된 <복희여와도>는 이러한 신화를 반영하듯 복희와 여와가
상반신은 의관을 정제하고 하반신은 뱀으로 된 꼬리를 고아 DNA 나선 구조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도상은 한나라 때
서왕모와 더불어 자주 등장한다. 고대에는 뱀을 천지개벽과 음양의 조화를 다스리고 영생과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겼는데,
하체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은 이들이 부부가 되었음을 상징한다. 하늘의 별자리를 배경으로 복희는 손에 구부러진 자를 들고 있고,
여와는 손에 컴퍼스를 들고 있어서 이들이 우주 창조에 관여했음을 암시한다.
이와 달리 고구려 벽화에서는 복희와 여와가 서로 분리되어 서로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장면으로 그려져 있다.
정적인 결합 상태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서 날아가는 순간을 포착함으로써절묘하게 X자로 교차된
신비한 나무는 이들의 만남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주제로 그려진 이집트 회화 <라-호라크티의 축복을 받는 타페르트>를 보면 매우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어서
고구려 벽화와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이집트인들의 관심은 사후의 영원한 세계에 있었기 때문에
우연적 움직임 대신 가장 확고하고 안정된 형태를 포착하고자 했다.
오회분4호묘의 <농사의 신과 불의 신>
오회분4호묘 널방 동쪽 모줄임천장의 측면이 서로 만난 모서리 부분에는 <농사의 신과 불의 신>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왼편에 소의 머리와 라람의 몸을 하고 두 팔릉 벌린 채 뛰어가는 신은 동양신화에서 농업과 의약의 신으로 알려진 염제炎帝 신오神農이다.
오회분5호묘에도 신농이 나오는데, 오른손에는 벼 이삭을, 왼손에는 약초를 쥐고 있다. 오른편에 불씨를 손에 쥔 신은 염제를 보좌하는
불의 신 축융祝融으로 보인다. 이들 위에는 꿈틀대는 용이 그려져 전체적으로 환상적인 색채와 율동적인 움직임이
보는 이를 몽환적인 신비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이처럼 고구려 벽화는 보는 사람을 사유하게 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빠져들게 하고 경직된 마음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신명의 힘이 있다.
오회분5호묘의 <소를 연주하는 비천상>, 6세기
오회분5호묘의 <거문고를 연주하는 비천상>, 6세기
오회분5호묘의 천장 부근에 그려진 <비천상>들은 사신의 등에 타고 악기를 연주하며 하늘을 나는 장면이다.
유려하고 우아한 율려의 음과 율동적인 움직임이 일치되어 마치 악기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신명이 넘쳐 저절로 가락이 터져 나오는 한국 특유의 춤과 음악의 선율이 회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것이다.
중국 둔황 막고굴 285굴의 <비천상>, 6세기 중엽
강서대묘 서쪽 천장의 <비천상>
이 <비천상>과 위 중국 둔황 막고굴의 <비천상>에도 그러한 차이가 분명하다,
고구려 벽화의 선은 파도나 바람처럼 부드럽고 연속적이며 혹일적이지 않은 자연의 선율이다.
이는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분출시키는 표현주의적 선과 다른 것으로, 우주의 기운과 율려와 감각적인 공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야 자유분방한 즉흥성과 파격이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된다. 고구려 벽화의 즉흥성과 우아한 선율은
그리는 사람의 풍류적 삶과 신명의 체험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고구려 벽화 <비천상>은 눈으로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환상에 의존한 표현인데, 이때 중요한 것은 신화나 종교적 내용이 아니라 그리는 사람의 신명 체험이다.
서양의 중세 종교화들은 성서 내용에 입각한 도상을 중시했는데, 이들에게 종교성이란 삽화적 내용과 도상의 상징성이다.
그것은 미술의 목정을 성서의 내용을 부차적으로 설명하는 삽화적 기능에 두었기 때문이다.
중국 둔황 막고굴 282굴의 서쪽 벽면 <비천상> 조토 디 본도네, <그리스도를 애도함>, 1306년경
이러한 중세미술에서 벗어나 르네상스로의 전환을 시도한 화가는 피렌체 출신의 조토 디 본도네다.
그의 작품 <그리스도를 애도함>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온 직후의 슬퍼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성인들의 머리에는 후광이 있고
예수의 후광에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데, 이런하 도상들은 중세적 잔재이다. 그는 여기에 현실감을 주기 위해 원근법과 투시법,
명암법 등을 적용하고 사실성을 위해 인물들의 측면과 후면을 묘사하는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현실적 공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혁신은 종교적 주제를 시각의 원리로 재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현실성이 강해질수록 종교적 신성은 약화될 수 밖에 없었다.
신성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각을 통해 종교성을 포착하고자 했던
르네상스의 종교화는 이율배반적에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오회분5호묘의 <신선도>, 6세기
마르크 샤갈, <아가서>, 1958년
샤갈의 작품에서 종종 나타나는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지는 장면은 그가 믿었던 하시디즘Hasidism의 영향이다.
하시디즘은 땅 속에 갇혀 있는 진실의 불꽃을 해방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은 자기구원을 완성할 수 있다는 신비주의 종파다.
유대 종파 중 하나인 하시디즘은 탈무드의 엄숙한 교리와 율법보다는 내면적 신비 체험을 중시하고,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이
상통한다는 성속일여成俗一如의 신앙을 갖고 있다. 이것은 한국의 무속신앙과 통하는 바가 많다. 6세기 무렵에 그려진 고구려 벽화의
<신선도>와 샤갈의 <아가서>가 양식적으로 유사한 것은 그림을 통해 추구하는 사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가 약 1400년 정도 앞서 그려졌지만, 시간적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서양미술에서 이처럼 생동감 있는 환상 표현은 20세기에 와서야 나타난다.
무용총 벽화의 <무용도>, 6세기 전후(모사도)
고구려는 국가의 제천행사로 매년 10월에 거행되던 동맹東盟을 비롯하여 국가의 크고 작은 행사에는 항상 음악과 춤이 빠지지 않았다.
당시 고구려 무악은 중국 당나라 궁정 연회에서 공연될 정도로 유명했다. 이백李白의 시 중에 당나라 궁정에서 공연하는
고구려 무용을 보고 지은 「고구려」라는 시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금빛 꽃으로 장식한 절풍모 쓰고
백마 타고 유유히 거닐고 있네.
넓은 소매 날아갈 듯 너울거리며 춤추니,
마치 해동에서 온 새와 같구나.
(『정유각집(하)』에서 재인용)
절풍折風은 위로 솟아 있고 밑으로 퍼진 고깔 형태의 모자로 고구려 관인들이 주로 썻으며, 해동은 당시 중국인들이
한국인을부르던 호칭이다. 이백 역시 새처럼 유려하게 너울거리는 고구려 춤의 율동미에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무용총 벽화의 <수렵도>, 6세기 전후(모사도)
길림성 집안 무용총 벽화의 <무용도>를 보면, 가무를 즐기는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특유의 땡땡이 의상을 입은 무희들이 묘주로 보이는 말 탄 사람 앞에서 아래의 합창단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다.
춤추는 사람들의 소맷자락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하여 움직임에 따른 유려한 곡선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곧 뒤로 뻗은 두 팔이 원을
그리며 치고 올라와 하늘로 향하면 긴 소맷자락에서 유려한 곡선이 파동을 일으킬 것이다. 한국의 전형적인 어깨춤의 춤사위가
느껴지는 자세다, 고구려인들은 가무와 함께 활쏘기를 즐겼다. 백성에서부터 왕과 고관에 이르기까지 사냥과 활쏘기를 즐겼다.
고관으로 보이는 기마무사들이 말을 타고 힘차게 달리면서 사냥을 하는데, 상단에 말을 타고 뒤를 돌아보며 도망가는 사슴에게
활을 겨누는 역동적인 동작은 이 <수렵도>의 백미다. 사냥에 쓰이는 화살촉이 뾰족하지 않고 둥근 석류 모양으로 되어 있어 사냥의
목적이 살생이 아니라 놀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냥의 역동성을 극대화가기 위해 모두가 분주하게 움지이고 있고,
작게 묘사된 산은 등고선처럼 간략하게 추상화되어 물결치는 듯한 운동감과 율동미를 더하고 있다.
중국 둔황 막고굴 249굴의 <수렵도>. 이집트 벽화, <새 사냥>, 네바문 무덤, 기원전 1450년
고구려 벽화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중국 둔황 막고굴 <수렵도>에도 이와 비슷한 사냥 장면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도 왼쪽 하단에 달리는 동물들과 포효하며 달려드는 호랑이를 향해 사냥꾼이 뒤를 돌아보며 화살을 나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고구려 <수렵도>에 비해 전체적으로 필선이 유약하고 활달함이 부족하다.
이집트 <수렵도>의 동물들은 매우 정교하게 묘사되었지만 움직임이 극히 정형적이고, 사냥하는 사람도 이집트 벽화 특유의
정면성의 법칙으로 딱딱하게 그려져 있다. 확실성과 영원성을 붙잡으려는 의도로 인해 사냥하는 장면마저 경직되어 있는 것이다.
테오도르 제리코, ,엡솜의 더비 경마>, 1821년
모험과 스릴을 즐기다가 결국 33세의 젊은 나이에 낙마하여 세상을 떠난 케오드르 제리코의 작품이다.
신나게 달리는 말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것이다. 그런데 1878년 영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질주하는 말의
연속동작을 찍은 사진을 공개하자 네 발굽이 모두 바닥에서 떨어져 허공으로 뛰어 오르는 순간 말의 다리가 안으로
오그라들지 밖으로 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천하의 제리코가 그린 말 그림이 엉터리라고 비난했지만,
제리코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린 것이 아니라 역동성을 표현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고구려 벽화의 달리는 동물들 역시 제리코와 똑같은 방식으로 발이 모두지면에서 떨어져 밖으로 퍼져 있다.
이렇게 그리는 것이 안으로 오므리게 그리는 것보다 훨씬 속도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리코의 그림은 평지를 달리고 있지만
무용총의 <수렵도>는 비슷한 속도로 산속을 달리며 사냥까지 하고 있어 더욱 역동적으로 보인다.
각저총의 <씨름도>, 5세기경
고구려에서 씨름이나 수박은 선배를 뽑는 주요 시험 과목이었고, 각종 제례행사 때도 행해졌다.
각저총에 그려진 <씨름도>는 네 마리의 새가 앉아 있는 나무 아래에서 두 장사가 씨름을 하며 힘을 겨루고 있고,
그 오른쪽으로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심판을 보고 있다. 샅바를 부여잡은 매부리코의 사람은 서역 사람인 듯하다.
오른쪽 사람이 무덤의 주인공이고, 아마도 생전에 국가 대항전에서 서역의 장사를 이긴 사실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무용총의 <수박도>, 5세기경
무용총 널방 천장에 그려진 <수박도>는 긴 머리를 올리고 팬티만 걸친 두 장사가 생동감 넘치는 수박 경기를 벌이고 있다.
수박手搏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상대방과 겨루는 무예로 살생의 무예가 아니라 놀이를 통해 신체를 단련하고
신명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이처럼 유희적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수박을 '수박희手搏戱'라고도 부른다.
수박희는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까지 무인으로 출세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후에 발차기 기술이 추가되어 택견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무술과 유희가 결합된 택견은 급소를 공격하는 것을 되도록 피하고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적은 부분을 공격
목표로 삼으며, 부드러운 곡선의 리듬감과 유희성이 강한 무예다. 손발의 움직임과 근육의 움직임을 일치하게 하여 부드럽게
공방을 펼칠 수 있으며, 단순한 몇 가지 동작들을 이용하여 무궁무진한 응용 기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한국 전통 무예의 정신은 상대방을 격퇴하기 위함보다는 방어를 전제로 하며, 사람을 해치는 살법殺法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활법活法이다. 이것은 무예의 근본 목적이 상대방과 유희적 놀이를 통해 심신을 수련하고
신명을 이끌어내는 데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인용서적 : 최광진 著 『미술로 보는 한국인의 미의식』
First Love - Carol 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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