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중묘의 생동감 있는 문양
고대 그리스의 정적인 팔메트 문양
대개 공예의 문양은 이집트의 로터스lotus 문양이나 그리스의 아칸서스Aconthus나 팔메트Palmette 문양처럼 주로 식물의
형태에서 착안한 것이다. 서양의 로코코시대의 공예품이나 아르누보의 문양도 덩굴풀이나 담쟁이 같은 식물의 우아한 곡선을
참조하여 이를 단순하게 패턴화한 것이다. 팔메트 문양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 때 인도와 중국에 유입되어
한국과 일본에까지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양에서는 팔메트 문양을 인동문忍冬紋 혹은 당초문唐草紋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의 문양은 이를 기본으로 하면서 즉흥성이 가미되어 회화적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식물의 시각적 특성보다는 신명의
비가시적인 율려 작용을 드러내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울려문'이라고 부를 것이다. 율려는 밀물과 썰물, 들숨과
날숨, 한기와 열기, 정과 동 등의 상반된 기운을 리듬 있게 조화시키는 자연의 영원한 생명력이다.
진파리1호분 천장의 문양
진파리1호분 동벽의 문양
이러한 율려 문양은 식물에 국한되지 않고 구름과 바람과 파도와 불꽃과 동식물까지를 아우르는 프랙털적 생명 작용을 상징한다.
실제로 진파리1호분의 천장의 문양을 보면 율려의 리듬이 파도와 바람과 구름과 산과 식물의 형태를 암시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유려한 선들이 새 같은 동물의 형상으로 자유롭게 변형되기도 한다.
각저총 천장의 문양, 5세기 전후
구스타프 클림트, <생명의 나무>, 1909년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글림트이 <생명의 나무>는 생명의 영속성을 상징하는 소용돌이치는 나뭇가지들이
빙빙 돌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이것은 생명의 나무가 하늘과 땅을 잇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문양들은 팔메트 문양의 나선형처럼 단순하게 패턴화되어 회화임에도 디자인처럼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4세기 무렵의 고구려 벽화 각저총 천장의 문양과 흡사한데,
이것은 사물의 외양보다 신명나는 생명작용을 양식화하려는 의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평양 진파리7호분에서 출토된 <해뚫음무늬 금동장식>, 4-5세기, 높이 13.3cm, 너비 22.8cm
고구려의 무덤에서 출토된 공예품들은 대부분 도굴되어 남아 잇는 것이 많지 않다. 몇 점의 부장품들만 전해지고 있는데,
평양의 동명왕릉 주변에 위치한 진파리7호분에서 출토된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고구려 특유의 율려문과 특징이 잘 드러난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장식판은 복숭아를 반으로 잘라 오른ㅉ고으로 비스듬히 눕힌 형태로, 베개의 양쪽 마구리를 장식하는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외곽 테에는 뒷면에서 두드려 볼록하게 만든 원형 장식이 일정하게 배치되어 있고, 내부는
유려한 곡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덩굴 같기도 하고 타오르는 불꽃 같기도 한 이 곡선들은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바람의
방향과 불꽃으 온기가 촉각을 자극하고, 시각적으로 비대칭의 율동미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중앙의 원 안에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가 세 발로 앉아 있고, 그 위에 비슷하게 생긴 봉황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양쪽 하단에는 용 두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마음이 착한 사람만 볼 수 있다. 이 조그만 장식판에 놀랍게도 식물과 동물,
불과 구름, 구상과 추상 등이 대립하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구상의 지루함과 추상의 공허함을 완벽하게 극복한 이 작품에서
대립성을 조화시키는 것은 고구려 벽화에서처럼 유려하고 율동적인 율려의 선이다. 음악적 리듬과 율동이 느껴지는 이 선들은
하나의존재로 갇히지 않고 어떤 대상으로든지 변할 수 있을 것 같은 잠재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풍류를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는 "뭇 생명들이 어우러져 하나로 조화된다:는 의미다. 풍류는 단지 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헛된 집착과 경직된 관습을
바람처럼 흐르게 하여 모든 존재들이 평등의 관계 속에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힘이다.
불꽃처럼 타오르며 유연히 흐르는 이러한 문양에는 바로 한국 특유의 접화군생의 철학이 담겨 있다.
평양 대성구역에서 출토된 <불꽃뚫음무늬 금동관>, 4-5세기, 높이 27.8cm
이 금동관은 머리에 띠처럼 돌리는 방식인데 기본적으로 팔메트 문양에서 출발하지만,
어느덧 화염문으로 변해 불꽃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어떤 규칙이 반복되면서도 하루도 동일한 날씨를 허용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를 닮아 있다.
이러한 문양은 생명력이 응축된 디자인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