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취월당

불꽃 문양과 신명의 흥취





강서중묘의 생동감 있는 문양





고대 그리스의 정적인 팔메트 문양


대개 공예의 문양은 이집트의 로터스lotus 문양이나 그리스의 아칸서스Aconthus나 팔메트Palmette 문양처럼 주로 식물의

형태에서 착안한 것이다. 서양의 로코코시대의 공예품이나 아르누보의 문양도 덩굴풀이나 담쟁이 같은 식물의 우아한 곡선을

참조하여 이를 단순하게 패턴화한 것이다. 팔메트 문양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 때 인도와 중국에 유입되어

한국과 일본에까지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양에서는 팔메트 문양을 인동문忍冬紋 혹은 당초문唐草紋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의 문양은 이를 기본으로 하면서 즉흥성이 가미되어 회화적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식물의 시각적 특성보다는 신명의

 비가시적인 율려 작용을 드러내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울려문'이라고 부를 것이다. 율려는 밀물과 썰물, 들숨과

날숨, 한기와 열기, 정과 동 등의 상반된 기운을 리듬 있게 조화시키는 자연의 영원한 생명력이다.






진파리1호분 천장의 문양




진파리1호분 동벽의 문양



이러한 율려 문양은 식물에 국한되지 않고 구름과 바람과 파도와 불꽃과 동식물까지를 아우르는 프랙털적 생명 작용을 상징한다.

실제로 진파리1호분의 천장의 문양을 보면 율려의 리듬이 파도와 바람과 구름과 산과 식물의 형태를 암시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유려한 선들이 새 같은 동물의 형상으로 자유롭게 변형되기도 한다.






각저총 천장의 문양, 5세기 전후





구스타프 클림트, <생명의 나무>, 1909년


아르누보의 영향을 받은 글림트이 <생명의 나무>는 생명의 영속성을 상징하는 소용돌이치는 나뭇가지들이

빙빙 돌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이것은 생명의 나무가 하늘과 땅을 잇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문양들은 팔메트 문양의 나선형처럼 단순하게 패턴화되어 회화임에도 디자인처럼 보인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4세기 무렵의 고구려 벽화 각저총 천장의 문양과 흡사한데,

이것은 사물의 외양보다 신명나는 생명작용을 양식화하려는 의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평양 진파리7호분에서 출토된 <해뚫음무늬 금동장식>, 4-5세기, 높이 13.3cm, 너비 22.8cm


고구려의 무덤에서 출토된 공예품들은 대부분 도굴되어 남아 잇는 것이 많지 않다. 몇 점의 부장품들만 전해지고 있는데,

평양의 동명왕릉 주변에 위치한 진파리7호분에서 출토된 <해뚫음무늬 금동장식>은 고구려 특유의 율려문과 특징이 잘 드러난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장식판은 복숭아를 반으로 잘라 오른ㅉ고으로 비스듬히 눕힌 형태로, 베개의 양쪽 마구리를 장식하는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외곽 테에는 뒷면에서 두드려 볼록하게 만든 원형 장식이 일정하게 배치되어 있고, 내부는

유려한 곡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덩굴 같기도 하고 타오르는 불꽃 같기도 한 이 곡선들은 오른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바람의

방향과 불꽃으 온기가 촉각을 자극하고, 시각적으로 비대칭의 율동미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중앙의 원 안에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가 세 발로 앉아 있고, 그 위에 비슷하게 생긴 봉황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양쪽 하단에는 용 두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마음이 착한 사람만 볼 수 있다. 이 조그만 장식판에 놀랍게도 식물과 동물,

불과 구름, 구상과 추상 등이 대립하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구상의 지루함과 추상의 공허함을 완벽하게 극복한 이 작품에서

대립성을 조화시키는 것은 고구려 벽화에서처럼 유려하고 율동적인 율려의 선이다. 음악적 리듬과 율동이 느껴지는 이 선들은

하나의존재로 갇히지 않고 어떤 대상으로든지 변할 수 있을 것 같은 잠재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풍류를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는 "뭇 생명들이 어우러져 하나로 조화된다:는 의미다. 풍류는 단지 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헛된 집착과 경직된 관습을

바람처럼 흐르게 하여 모든 존재들이 평등의 관계 속에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힘이다.

불꽃처럼 타오르며 유연히 흐르는 이러한 문양에는 바로 한국 특유의 접화군생의 철학이 담겨 있다.






평양 대성구역에서 출토된 <불꽃뚫음무늬 금동관>, 4-5세기, 높이 27.8cm


이 금동관은 머리에 띠처럼 돌리는 방식인데 기본적으로 팔메트 문양에서 출발하지만, 

어느덧 화염문으로 변해 불꽃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어떤 규칙이 반복되면서도 하루도 동일한 날씨를 허용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를 닮아 있다.

 이러한 문양은 생명력이 응축된 디자인이 아니라 무한히 확장해가는 생명의 에너지를 상징화한 것이며,

인간의 기교에 만족하지 않고 천인묘합을 이상으로 삼는 한국인의 멋이 구현된 것이다.

 어느 민족의 공예품에서도 이러한 생명력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헤세의 티아라>


서양의 왕관인 티아라는 좌우대칭의 엄격한 균제미가 특징이다.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이 1862년 결혼하는 딸에게 선물한 <헤세의 티아라> 역시

 다른 티아라와 마찬가지로 식물 문양이 단순하게 패턴화되어 화려하고 장식적이지만 엄격한 대칭 구조로 인해서

생동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에 비해 고구려의 금동관은 비대칭적인 구도와 즉흥성으로 인해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바람을 느끼게 하는 촉각성과 불꽃을 연상시키는 형상에서 뜨거운 온기가 느껴지는데,

이처럼 시각과 촉각을 넘나들며 공감각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것은 율려 문양의 중요한 특징이다.






백제의 <무령왕 금제장식>, 525년, 높이 30.7cm


이러한 특징은 백제의 <무령왕 금제관식>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 금제관식은 무령왕이 썼던 것으로 금판 중앙 상단의

연화문을 중심으로 인동문의 줄기가 화염문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관식은 기원전 300년 경 그리스의 한 묘지 입구

에서 발견된 <팔메트 왕관>과 비슷하지만, 팔메트 왕관은 나뭇잎을 부채꼴로 펴 엄격한 좌우대칭을 이룬다.


이와 달리 <금제관식>은 꽃과 불꽃이 결합되어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에너지가 하늘로 상승하고 있다. 바람에 의한

순간적인 흔들림으로 비대칭적 율동미가 생겨나고, 여기에 127개의 작고 둥근 영락이 달려 있어서 움직임에 따라 빛의

 반사가 일어나며 신비감이 극대화된다. 동양철학에서 모든 생명은 근원적으로 음의 기운인 물과 양의 기운인 불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물이 응고하고 수렴하는 작용을 한다면, 불은 하늘로 상승하고 분출하는 작용을 한다.

신명은 불의 속성이기에 한국 공예의 문양들은 기본적으로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율려문으로 조형화된다.

 여기에는 땅의 속성인 개체들의 경직된 물질성을 불태워 하늘로 향하게 하려는

 한국인의 하늘 신앙이 반영되어 있다.





그리스의 <팔메트 왕관>






<백제 금동대향로>, 6-7세기, 높이 61.8cm


1993년 부여 능산리 고분 근처에서 발굴된 <백제 금동대향로>는 박산향로博山香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뚜껑을 산 모양으로 만든 것을 박산향로라고 하는데 박산博山은 바다 한 가운데

불로장생의 신선이 산다는 전설적인 산으로 봉래, 영주, 방장 세 삼신산을 가르킨다.

향로의 뚜껑에는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봉황이 여의주를 턱 밑에 끼고 아름다운 곡선의 꼬리를 추어올린채 앉아 있고,

그 밑으로 연꽃봉오리 모양의 동체는 신선들이 사는 박산으로 된 뚜껑과 연꽃잎 모양으로 된 몸체가 있다.

그리고 받침대를 꿈틀거리는 용이 연꽃봉오리를 물고 있는 형상으로 만들었다.







<백제 금동대향로> 몸체 부분


봉황 아래 5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고 있고 향로 뚜껑에 해당하는 74개의 잎은 각각 산봉우리로 되어 있다.

폭포와 시냇물이 흐르는 이 평화로운 박산에는 39마리의 각종 동물과 11명의 신선들이 접화군생의 이상세계를 이루며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연꽃잎 모양으로 된 몸체에도 24마리의 동물과 2명의 신선이 조각되어 있고, 봉황의 가슴에도 2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향을 피우면 연기가 여기저기서 피어오른다. 그러면 시각과 후각을 넘나드는 공감각으로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 몽환적 신비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 신비한 세계는 신선사상을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동이족의 혈통을 계승한 한국은

유불선이 나오기 전부터 내려오는 신선사상의 발원지다.






<백제 금동대향로> 받침대 부분


가장 역동적인 부분은 한 마리 용이 꿈틀대는 받침대인데, 마치 오회분4호묘 천장에 그려진 <황룡>이 내려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듯하다. 고구려 벽화에서처럼 꿈틀대며 용솟음치는 용의 자태는 비대칭의 균형을 이루며

연꽃봉오리를 물고 있다. 용을 평면에 그리는 것보다 입체로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점에서

백제인들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오회분4호묘 천장의 <황룡>





      


좌 - 중국 허베이성 유승묘에서 출토된 <박산향로>, 높이 26cm

중 - 중국 허베이성 유승 부인묘에서 출토된 <박산향로>, 높이 33cm

우 - 프랑스 <세브르 도자기>, 18세기


중국의 박산향로에도 높이 솟은 박산이 있고 몸체를 파도치는 바다로 형상화했다. 받침대 역시 용으로 하였으나

너무 단순화되어 용의 꿈틀거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 반해 백제 향로는 전체가 하나의 리듬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브르 공예품은 루이 15세의 연인이자 프랑스 사교계의 실세였던 퐁파두르 부인의 주도하에 제작되었으며,

유럽 도자의 역사에서 최고 수준의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율동적 곡선미는 최대한 살리고 있지만, 일정한 패턴에 갇혀 있어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적 조형에 내재된 정신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춤과 음악 등, 신명의 미의식을 이해해야 한다.






<성덕대왕신종>, 771년, 높이 3.78m


범梵이라는 글자는 산스크리트어의 '브라흐마Brahmā의 음역인데, "맑고 청정하다" 혹은 "신성하다"는 의미가 있다.

음의 파장은 모든 존재의 근본이기 때문에 울림이 큰 범종의 소리는 세속적 번뇌와 마음의 집착을 씻어줄 수 있다.


12만 근의 구리를 녹여 만든 <성덕대왕신종>은 제작 기간만 무려 34년이 걸렸으며,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운 깊은 울림을 낸다.






한 마리의 용을 비대칭으로 만든 한국 종의 용뉴, <성덕대왕신종>


한 마리의 용이 대나무를 짊어지고 있는 형상으로 비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용의 얼굴은 세치한 비늘로 덮인 채 우람한 근육이 꿈틀거린다.

오른발을 뒤로하고 힘차게 구부려 발톱으로 차는 듯한 용의 동세는 차가운 청동에 온기와 생동감을 주고 있다.





두 마리의 용을 대칭되게 만든 중국 중의 용뉴, <원대철제범종>


이에 비해 중국 종의 용뉴는 <원대철제범종>에서처럼 용이 서로 등지고 웅크린 형상인데

완전히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어서 생동적인 용의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종들은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지만

한국 종만 비대칭으로 되어 있다. 종의 두께도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적인데, 이로 인해 종을 치면 맥놀이가 일어난다.

음의 주파수가 다른 주파수와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서로 놀이를 하는 것이다.

용뉴에 붙어 있는 음통 역시 한국 종에만 있는 특징으로, 이는 신라의 피리인 만파식적萬波息笛을 형상화한 것이다.







<성덕대왕신종> 공양비천상





<성덕대왕신종> 공양비천상


연화좌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연꽃을 손에 들고 우아하게 하늘을 나는 이 선인은 꽃과 구름과 불꽃의 형상을 머금은

율려의 문양으로 둘러싸여 신비한 기운을 대뿜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청동에서 따스한 온기와 촉각이 느껴진다. 이 형상은 고구려 벽화 오회분4호묘의 <신선도>와 유사하다.






오회분4호묘의 <신선도>





오대산 <상원사동종>, 725년, 높이 167cm


현존하는 범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맨 위에는 굳센 발톱을 가진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연꽃과 덩굴무늬로 장식된 음통이 있다.






<상원사동종>에 새겨진 주악비천상


종의 몸체에는 주악비천상이 새겨져 있는데, 두 천인이 무릎을 꿇고 천의 자락을 흩날리며

생황과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이 경쾌하기 이를 데 없다.



위와 같은 신명의 정서는 삼국시대 이후 불교와 유교의 영향으로 점차 약화되었다.

불교가 국교가 된 고려시대에는 고려불화나 불상처럼 평온한 종교미술이 성행했고, 유교가 국교이념으로 채택된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적 교양을 갖춘 문인 사대부들이 품격 있는 문인화를 선호함으로써 무교에 기반한 신명의 정서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17세기에 중국의 정통성을 자랑하던 명나라가 오랑케라고 멸시하던 청나라에게 멸망하면서 급변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청에 대한반감으로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자생적인 전통문화를 모색하는데, 이 과정에서

억압되어 있던 신명의 문화가 서민들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 판소리와 탈춤, 한글문학 등의 민중예술이 성행하고,

미술에서는 조선인의 생활상을 담은 풍속화와 조선의 산수를 소재로 한 진경산수화가 유행하게 된다.






정선, <삼승조망도>, 1740년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이춘제李春躋의 저택 후원에 있는 삼승정에서 바라본 한양 전경이다.

그림 중앙 부근에 지금의 청와대 자리인 경복궁터가 있고, 그 주변에 관악산과 남산 등의 주요 경물을 지명을 써가며

그려 넣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풍수지리에 입각한 장소의 구조적 관계를 파악하여 다양한 시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시각적 왜곡을 통해구조적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진경산수화가들의 공통돈 목표였다.


진경眞景의 의미는 상상 속에서 이상화된 선경仙境이 아니라 실재하는 풍경을 대상으로 삼아 그린 것이지만,

그렇다고 실경實景과 같은 개념은 아니다. 실경과 진경은 선경과 대비되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엄밀히 구분하면 차이가 있다.

실경이 실제 풍경과 사실적인 닮음을 포착한 것이라면, 진경을 장소가 지닌 본질적인 속성을 포착한 것이다.


실경은 사실주의의 유물론적 개념에 가깝다. 사실주의자들에게 실재는 전적으로 물질적인 차원이지만,

진경산수화가들이 포착하고자 한 것은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닮음이다.


서양미술에서는 시각적 재현과 본질적 추상이 서로 주도권을 다투지만, 진경산수화에는 시각적 재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추상의 공허함으로 빠지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영면성을 지니고 있다. 구상과 추상 정신, 감각과 지성이 조합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림에서 현실성을 중시함으로써 관념적 상상에서 벗어나 신체의 감각을 중시하게 된 점은 중요한 변화들을 가져왔다.


이처럼 직접 자연과 대면하여 그리는 방식은 서양에서는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미술 형식에큰 변화를 가져 왔고, 현대 미술을 낳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정선 <벽하담(보덕굴)>, 1711년


동양화에서는 한 그림에이렇게 여러 시점이 들어간것을 '산점투시'라고 하는데, 산점散點은 시점이 흩어져 있다는 의미다.

엄격히 말하면 흩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점을 하나의 평면에 종합한 것이다. 이것은 자연과 감각적 교류를 통해 경험한 장면들을

직관적으로 종합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전지전능한 시점을 '신시점神視點'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신시점은 지적인 차원의 입체주의적 다시점과 달리 새처럼 날면서 전체를 보고, 자연과 직접 감각적으로 교류하며 온전히 느낀

 연후에 체화된 기억에 의존하여 그리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과 직관이 종합된 고도의 정신 작용이고,

자연과의 교류를 통한 신명난 흥취가 있어야 가능한 경지다. 그러면 시각적으로 닮지 않은 듯하지만,

본질적인 닮음을 창조하기 때문에 진경이 되는 것이다.


진경은 추상을 피하면서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진경산수화에서 자연의 본질이란 다름 아닌 음양오행의 성분 비율과 조화를 의미한다.

원래 동양에서 산수는 산과 물이라는 양과 음을 상징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서양의 풍경화가 시각적인 재현이라면,

산수화는 음양의 관계를 다룬 철학적 그림이다. 그림의 목적이 단순히 시각적 재현에 있다면 그림은 원본보다 열등한 부차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서양의 고전미술이 현대에 와서 공격 당한 결정적인 이유다. 카메라의 등장으로 재현의 역할을

사진에게 넘겨주게 되자 현대미술은 재현을 피해 추상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자연을 점차 소거해 수평선과 수직선의 비례만 남긴 피에트 몬드리안의 <나무> 연작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은 피에트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나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가 기하추상으로 귀결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몬드리안은 "미술이라 자연계와 인간계를 체계적으로 소서하는 것이다" 라며,

 나무를 점차 단순화 시키더니 결국 수평선과 수직선, 그리고 삼원색만을 남겼다.

 이처럼 차가운 비례와 균형을 미술의 본질로 규정한 그는 이것을 절대미라고 주장했다.






정선, <정양사>, 1751년경


이와 달리 진경산수는 보편성과 본질을 추구하면서도 장소성을 잃지 않아추상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었다.

정선의 <정양사>는 숲에 둘러싸인 절을 클로즈업해서 그린 것이다. 금강산 전체를 그린 <금강전도>와 달리 특정 장소를

그리면서 정선은 사찰 주변의 토산을 붓을 뉘어 부드러운 점을 찍어 표현하였고, 오른쪽 상단으 원경에는 죽죽 내리긋는

수직선으로 금강산 특유의 골산을 대비시켰다.






정선, <장안사>, 1711년


무지개 다리를 위에서 본 시점으로 포착하면서 뒤에 있는 산은 밑에서 올려다본 시점으로 웅장함을 드러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위에서 본 시점으로 띄엄띄엄 그려서 건물의칸 수와 지붕의 종류까지

훤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것은 현장에서 세밀하게 관찰한 모습을 드러내면서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전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김윤겸, <장안사(봉래도권)>, 1768년


부드러운 필치로 옆에서 본 듯한 장안사의 풍경을 포착했다.





김홍도, <장안사(금강사군첩)>, 1788년


위에서 멀리 본 시점으로 그려서 아늑한 느낌을 강조했다.






정선, <박연폭포>, 1751년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의 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세로로 긴 화면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시원한 물줄기를

극대화 시키고, 음양의 대비를 위해 물줄기 주변 돌들을 실재보다 강하게 돌출시켰다.

그리고 사람들은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매우 작게 그리고, 폭포는 사람들이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시점으로 웅장하게 표현 했다.

여기서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주체와 타자의 경계가 와해되고 전체가 하나의 구조 속에 엮이게 된다.

이처럼 공감각적 흥취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천인묘합의 상태에이르는 것이 진경산수화의 이상이다.





    


정선, <청풍계>, 1730년                                   정선, <청풍계>, 1739년


이러한 장면은 일시점으로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것이다.

위쪽에 그려진 산들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본 시점이고, 아래에 그려진 집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시점인데,

여러 시점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종합되어 새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한국인들은 자연과 어우러지기 좋은 명당을 찾아 최소한의 개발을 통해 자연을 집의 일부로 삼는 것을 좋아한다.







정선, <인곡유거>, 1740년대


북송의 화가 곽희郭熙는 산수화를 '흉중구학胸中丘壑', 즉 마음 속에 있는 언덕과 골짜기의 심상心象을 그리는 것'리라고

정의했다. 인간이 은거하고 싶고 동경할 만한 산수는 꿈속에서나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관념으로 인해 중국 산수화는 현실에 없는 이상향을 그린 관념산수화가 대부분이다.


정선의 <인곡유거>는 노년에 살던 자신의 거처를 그린 것이다.

정선은 감각적으로 체화된 자연의 심상을 표현하면서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자신의 집을 아늑한 명당으로 만들고 있다.






정선, <노백도>, 1740년대


힘찬 생명력을 보여 준다. 멋대로 휜 나무줄기의 굽은 모양을 초서체로 쓴 '목숨 수壽'자와 비슷하게 그려

장수를 염원하고, 푸르름을 안고 힘차게 휘어져 올라가는 줄기의 남성적 역동성은 마치 고구려 벽화의 황룡의 용트림을 연상시킨다.






정선, <사직노송도>, 1730년


종로구 사직단의 늙은 소나무 그림으로 휘어지고 뒤틀린 몸통에서 온갖 시련을 꿋꿋하게 견뎌낸 소나무의 연륜이 느껴진다.

한 마리의 용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듯한 형상의 노송은 12개의 받침대에 의해 겨우 지탱되면서도 여전히

늠름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노송의 숙연한 모습을 통해 정선은 왕조의 유구한 역사와

은근하고 강인한 민족정신을 담아내고자 했다.






정선, <만폭동도>, 18세기 중반


경쾌한 선의 굵기와 농도, 속도에  따라 산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위와 물이 되기도 한다.

상단에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뾰족하고 단단한 바위산은 현장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림에서는 토산과 음양의 조화를

이루게 했다. 개울물은 돌과 바위를 악기 삼아 연주하고, 춤추는 무희 같은 빠른 필치의 나무들은 바람의 흥취를 전한다.

무대같은 너럭바위 위에는 자연의 연주에 취한 세 사람이 서 있고, 병풍처럼 둘러싸인 주변은 오행의 요소들이 잘 조화되어

실제보다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 율동적 선묘 속에 시각적 풍경 뿐만 아니라,

자연의 소리와 바람의 촉각까지 느끼게 하는 걸작이다.






정선, <창의문>, 1750년경


도성의 4소문 중 서북족에 위히찬 성문을 그린 것이다.

이곳은 골이 깊고 물과 돌이 많은 것이 개성의 자하동과 비슷하여 자하문이라고도 부른다.

백련봉의 부침바위까지 묘사하는 섬세함으로 장소성을 포착하고, 특유의 리듬감 있는 선으로 이곳 풍광을 연주하듯이 그렸다.






변관식, <외금강 삼선암 추색>


근대기에 겸재 정선의 진경사누화를 가장 잘 계승한 작가는 소정小亭  변관식卞寬植(1899~1976)이다.

금강산을 너무 좋아하여 8년 동안이나 유람하며 풍광을 그렸다. 남북 분단 이후에도 생생한 기억을 되살려 평생 금강산을

지속적으로 그렸다. 그의 작품 세계는 금강산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그가 금강산을 좋아한 것은 자신의 남성석 기질과 골산의 대표격인 금강산이 잘 맞았기 때문인데

주로 쓸쓸한 가을의 정취를 즐겨 그리고 표현했다. 이 작품을 현장과 비교해보면 다양한 시점이 종합되어 있다.

변관식의 진경산수화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장소성과 그곳에서 자연과 물아일체의  

기억이 낭만적 상상 속에 종합된 것이다.






이상범, <유경幽境>, 1960년


변관ㅅ힉이 남성적인 아취가 느껴지는 골산에 주목했다면,

 이상범은 야트막한 야산과 흙이 많은 토산에서 한국산수의 전형을 찾아냈다.

토산은 언덕처럼 평퍼짐하기 때문에 대개 명산이 되기 어렵다. 이런 산들은 너무 평범해서 그동안 산수화의 대상으로

선택되지 못했지만, 이상범은 이처럼 한국의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야산이나 언덕길에서 그림의 소재를 찾았다.


그의 작품은 <유경>처럼 대부분 가로로 긴 화면에 옆으로 길게 늘어진 수평 구도를 이루고 있다.

일찍이 산수화의 역사 속에서 이렇게 밋밋한 구도를 고집한 작가는 없었다. 청전의 산수화는 이러한 장소를 양식화함으로써

한국인의 마음에 고향 처럼 자리 잡은 향토적 서정을 자극한다. 한낮 평범한 대지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향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여기서 얻은 흥취로 자신의 신명을 일깨워 춤을 추듯이 그림을 그렸다.






이상범, ,유경<유경幽境>의 부분도, 1960년


먹의 농담과 강약을 조절하여 미세한 자연의 떨림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흰 종이는 대지의 풀 내음과 흐르는 물소리를

머금기 시작한다. 고른 호흡으로 짧게 끊어치는 투명한 먹선들은 때로는 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물이나 나무로 자유롭게

변형되기도 한다. 특히 바람에 흔들리는 잡풀등를 표현하는 갈고리 모양의 준법은 그의 독창적인 표현법으로 자리 잡았다.


청전의 작품 가운데 중요한 특징은 무엇보다도 촉촉함이 느껴지는 대기감이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녘을 그린 것이 대부분인데, 항상 적막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러한 분위기는 촉각성을 자극하여 보는 사람을 그림에 몰입하게 만든다.

시각에 의존하여 세계를 보면 각자는 분리되어 있지만 촉각에 의존하게 되면 나와 대상의 일체감이 느껴진다.

서양미술이 근본적으로 시각 중심이라면, 자연 친화적인 한국작가들은 근본적으로 촉각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 인용도서 ; 최광진 著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Reflection - Dean Evenson & Tom Barabas














'자연 > 취월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화와 미술  (0) 2018.12.16
현대미술에 표출된 신명  (0) 2018.12.15
고구려 벽화와 신명의 정서  (0) 2018.12.12
낯설고 새로운 그림 이야기 2  (0) 2018.12.10
낯설고 새로운 그림 이야기 1  (0) 201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