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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차 문화 II 유럽은 차와 그 문화에 관한 가장 후발 지역이었다. 유럽엔 차나무가 자생하지 않은데다, 차의 원산지랄 수 있는 중국이 '극서'(極西)에 위치한 관계로 물리적으로 머나먼 중국과의 교류가 당연히 늦을 수 밖에 없었을 터. 15세기 말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발견하기까지 동서간의 교류는 실크로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가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전해졌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동양의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인들이 광동에 도래한 것이 16세기 초였으니 아마도 그들에 의해 처음 차가 유럽에 알려졌으리라. 중국차에 관한 유럽 최초의 기록은 1545년경 이탈리아의 항해기에 수록된 것이라 한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차를 수입한 나라는 네덜란드였다고 한다. 1610년 일본 녹차를 ..
동서양의 차 문화 I 운남성 남수산 계곡에 자라는 800년 수령의 '차수왕(茶樹王)' 해발 약 1,800미터에 자라는 개체로 높이 5.48미터, 둘레 약 1.38미터에 달하는 차나무이다. 1994년 번개를 맞아 지금은 말라 시들어 찻잎조차 구경키 어렵다고 한다. 세계 최고령 차나무(추정). 최근 운남성 진원현(鎭元縣) 표고 2,600미터 지점에서 기존에 알려진 바 없는 지름 1.2미터에 이르는 위 사진상의 거목 야생 차나무가 한 약초꾼 노인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수령이나 나무 크기에서 단연 세계 최고령 차나무라는데 아직 공인된 것은 아닌 모양. 의 저자 육우의 상(象) 758~761년 사이의 저작으로 추정되는 . 육우는 761년경에 동궁부(東宮府)의 태자문학(太子文學 : 정6품 아래)이라는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
역사속의 장군들 III 나폴레옹 유럽 대륙을 제패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말을 타고 알프르 산맥을 넘는 모습을 묘사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유명한 그림이다. 1800년, 나폴레옹은 1년 전에 러시아와 오스트리아게게 빼앗긴 이탈리아를 되찾기 위해 예비군을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하지만 실제로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 그는 당나귀를 탓다고 한다. "권력은 나의 애인이다. 내가 그토록 애써 얻은 애인은 그 누구도 뺏어가지 못한다." 나폴레옹은 적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다. 심지어 웰링턴은 나폴레옹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나폴레옹은 자신의 업적을 전쟁터가 아니라 프랑스 혁명의 정치적 이념을 전파한 데서 찾았다. "나의 진정한 영광은 40여차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이 아니다. 워털루 전투의 패..
역사속의 장군들 II 스웨덴왕국군과 신성로마제국군이 맞붙은 뤼첸 전투(1632년,부분)는 지휘관이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였다. 오스트리아 기병대장 파펜하임 장군은 포탄을 맞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뒤 아군 대열 오른쪽에서 벌어진 기병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스웨덴 국왕 구스타부스 아돌푸스가 이끈 보병대는 가운데에서 오스트리아 주력군과 맞붙지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돌푸스는 팔에 총을 맞은 체 병사들을 독려했으나 혼전중에 세 차례 총상을 입고 전사했다. 전투는 오스트리아군이 퇴각하면서 막을 내렸다. 제국과 혁명의 시대 나폴레옹이 휘하 장군들을 이끌고 행군하는 모습(19세기 프랑스 화가 에르네스트 메소니에 작품). 나폴레옹은 자발적인 군대에 의한 신속하고 단호한 작전행동을 고안함으로써 군사작전 발전에 기여했다..
역사속의 장군들 I 1066년에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유능한 작전 지휘관이었다. 그의 주 무기는 타고난 적극성과 저항을 신속하고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성을 쌓고 군복무에 대한 대가로 토지를 지급했다. 또한 그는 스코틀랜드도 효과적으로 견제했다. 사격후 이동 전술의 명수로서 질서정연한 대열을 형성하는 동시에 경장보병을 폭넓게 활용했다. 그것은 기동성 중심의 일렬 사격대형을 강조한 보수주의적 경향때문이었다. 아울러 그는 지형을 재빨리 파악했고, 시시각각 변하는 전투상황을 능숙하게 장악했다.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가 노르망디 상륙적전 개시일인 1944년 6월 6일에 독일군을 공격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미 82공수사단 병사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아이젠하워는 유능한 정치군인이었다..
배동신 / 양수아 展 광주시립미술관 제5 · 6 전시실 무등산 1960년. 종이에 수채, 54×79cm,광주시립미술관 소장 “수채화의 생명은 ‘물’에 있을 것입니다. 물이 가지는 속성, 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무수히 변화하는 농담(濃淡)은 동양적인 체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식주(衣食住)의 모든 면에서 서양이 기름끼가 도는 것이라면 동양은 물과 같은 담백하고 부드러운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의 의식이나 사고방식, 체질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적인 표현방법론이나 의식을 수용하면서도 동양적인 것의 체질에 맞는 재료를 선택하여 이 둘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수채화라고나 할까요” _ 배동신 화백 자화상, 1983년, 28.5x17.5cm, 수채 “무등산은 특히 덩어리가 큽디다. 무등산이 남도를 상징하는 것도 있겠지만, 제..
신축탐매 (辛丑探梅) V 장성 고산서원(長城高山書院) 노사매(蘆沙梅) 광주제일고등학교의 두 그루 매화. 정문 옆 담장 안쪽에 나란히 자리한 홍백매의 자태 단 한 송이도 터지지 않고 잔뜩 부풀어 오른 상태. 일고매(一高梅) 나선형으로 올라간 두 줄기의 자태가 가히 경이롭기만 하다. 라는 고유 명사가 당연히 적용되어 마땅한 백매의 자태. 상당한 세월의 이력이 읽혀지는데 고졸하기만 한 몇 송이 백매를 소담스레 피워올렸다. 정말이지 감상할 맛이 나는 그야말로 백매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중한 개체라는 생각이다 수세에 있어 홍매가 훨씬 크고 건강하지만, 바로 옆의 백매가 훨씬 오랜 수령에다 보호 가치 또한 월등한 개체라는 사실. 수령에 관해선 좀 더 지켜보고나서.... 밑둥의 줄기 하나가 잘려나간 모습에다 여기 저기 톱질 흔적까지. 암튼 또..
신축탐매 (辛丑探梅) IV 국립광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