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507) 썸네일형 리스트형 한국 다관의 현재 조선조 말, 정치적 격동기를 지나면서 선비들에 의해 이어지던 차 문화는 급격히 쇠퇴한다. 19세기 들어 청나라 신문물을 접한 소수의 지식인들에 의해 다시 차 문화가 일구어 지는 바. 초의와 다산 그리고 추사를 잇는 일련의 선구적 지성들에 의해 조선 차 문화의 절멸 위기가 극복 되는 것. 허나 20세기 들어 제국주의 침탈과 해방과 전쟁을 겪는 동안 우리네 차 문화는 사실상 소멸되고 말았다. 차와 관련된 도자 문화 또한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해방 후 20년이 되던 1965년,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회복되었고 그 해를 전후하여 다시 찻그릇이 만들어진다. 일인들의 요청과 필요에 의해 우리의 도자 문화가 다시 명맥을 잇게 된 것이다. 일제 때 일본 도자기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했던 토우土偶 김종희 선생.. 한국의 다관(茶罐) , 1~2세기, 가야시대, 높이 26cm, 길이 29.5cm, 입지름 5.6cm, 창원 다호리 출토. 한국 차 문화에서 가장 신비롭고 경이로운 가야시대의 역사가 처음 기록된 것은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一然 1206~89)에 의해서다. 그의 저술 에서 가락국의 성립과 문화 전반에 걸친 논라운 역사가 알려진 뒤로도 어떤 이유 때문인지 가야사는 외면당해 왔다. 특히 중국사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중화 사대주의 관학파 역사가들이 가야사를 멸시하고 고구려 · 백제 · 신라만의 삼국시대라는 개념을 고착화시켰다. 가야는 42년에 건국되어 562년에 멸망할 때까지 10代 491년 동안이나 한반도 남쪽에 명백하게 존재했던 국가다. 그런데도 한사코 가야를 제외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 문화가 가야 문화에 미친 영향은 고구려.. 일본의 규스(急須) 앞선 중국 편에서, 우리네가 다관(茶罐)이라 부르는 것을, 중국에서는 차호(茶壺) 일본에서는 규스(急須)라 호칭한다는 사실을 말한 바 있다. 무가문화가 발달하면서 일본에서는 쇼인즈쿠리 차실에서 차회를 열고 차를 마시는 유행이 무사들 사이에 퍼져나간다. 과거, 교토의 천황정권이 공가문화(公家文化)를 지향했다면, 쇼군으로 대표되는 바쿠후 체제는 당연히 무가문화(武家文化)를 형성하게 된다. 한 국가에 사실 상 두 개의 정권이 공존한 셈인데 이들 무사정권은 천황과 귀족들에게 족쇄를 채워 필요한 예산과 대우를 편성하고 집행을 넘어 심지어는 천황 계승권까 쥐고 흔들었다.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교와 무역. 이 모두가 전문 소양을 필요로 했고, 이일을 처음부터 승려들이 담당했다. 당시 일본 승려는.. 중국의 차호(茶壺) 차 생활에 필요한 그릇을 통칭하여 다기(茶器)라 한다. 그중에서 찻잎을 우려내는 데 쓰이는 그릇을 우리는 다관(茶罐)이라 일컫는데, 이는 아마도 한약을 달이는 약탕관(藥湯罐)에서 그 명칭이 유래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동양 3국 중 가장 먼저 차문화가 성행하기 시작한 중국은 차호(茶壺)라 칭하는 모양이고, 바다 건너 일인들은 규스(急須)라 호칭한다고 들었다. 암튼 다관은 그릇의 역사를 놓고 볼 때, 가장 늦게 등장한 축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잎차를 우려내기 위해 등장한 손 안의 그릇인지라 민족과 종교, 그리고 개인 취향에 근거하여 다양한 미학적 요소가 적용되어왔음을 볼 수 있다. 한 · 중 · 일 다관 문화사를 다룬 책의 편린을 일부나마 더듬어 보기로 한다. 먼저 중국 편. 높이 8.7.. 오채현 조각展 '무각사' 경내 (광주광역시) 사면불 거친 질감 속에 피어나는 자비의 미소. 작가의 손에 쥐어진 정 끝의 진동을 따라가며 그의 심성을 유추하는 즐거움. 수년 전 '통도사 전시회' 에서 감상한 바 있었던 오채현 작가의 작품 들. 탐매 차 찾아간 광주시 무각사에서 작가의 석조 전이 열리고 있어 여간 반가운 마음. 여러 미술 분야에서도 석조각은 많은 시간과 공력, 그리고 인내와 끈기가 동반되어야 하는 그야말로 난이도가 높은 분야. 거의 모두 불교를 테마로 하는 작품이기에 지난한 공부 또한 필수 요소일 터. 작가의 건투를 빌며, 부디 크나큰 발전과 원대한 예술적 가피(加被)를 기원드린다. 신축탐매 (辛丑探梅) VI 대명매 전남대학교 농대매 1 전남대학교 농대매 2 광주광역시 무각사 청매 홍매 백매 석축 틈새로 피어난 동강할미꽃 무각사를 대표하는 백매 광주제일고등학교 홍매. 백매 대낮인데도 어둑한 하늘에다 간간히 흩날리는 봄비에 이르기까지. 매화를 사진에 담기에는 그야말로 난감한 날씨다. 먼저 찾아간 전남대학교 대명매. 약40 퍼센트 정도의 개화 상태로 보인다. 농생명대 쪽으로 발길을 옮기고 보니, 딱 한 가지만 꽃을 피우고 나머지는 모조리 고사해버린 홍매가 그저 안쓰럽기만. 이어, 옛 상무대 동산에 자리한 무각사 홍,백,청매 알현에 나섰는데, 그마말로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불사로 인해 매화를 감상할 맛이 그다지.... 일전에 이어 다시 찾아간 광주제일고등학교 홍 백매. 홍매가 개화를 시작하고 있었지만 이 역시 날씨.. 동서양의 차 문화 II 유럽은 차와 그 문화에 관한 가장 후발 지역이었다. 유럽엔 차나무가 자생하지 않은데다, 차의 원산지랄 수 있는 중국이 '극서'(極西)에 위치한 관계로 물리적으로 머나먼 중국과의 교류가 당연히 늦을 수 밖에 없었을 터. 15세기 말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발견하기까지 동서간의 교류는 실크로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가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전해졌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동양의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인들이 광동에 도래한 것이 16세기 초였으니 아마도 그들에 의해 처음 차가 유럽에 알려졌으리라. 중국차에 관한 유럽 최초의 기록은 1545년경 이탈리아의 항해기에 수록된 것이라 한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차를 수입한 나라는 네덜란드였다고 한다. 1610년 일본 녹차를 .. 동서양의 차 문화 I 운남성 남수산 계곡에 자라는 800년 수령의 '차수왕(茶樹王)' 해발 약 1,800미터에 자라는 개체로 높이 5.48미터, 둘레 약 1.38미터에 달하는 차나무이다. 1994년 번개를 맞아 지금은 말라 시들어 찻잎조차 구경키 어렵다고 한다. 세계 최고령 차나무(추정). 최근 운남성 진원현(鎭元縣) 표고 2,600미터 지점에서 기존에 알려진 바 없는 지름 1.2미터에 이르는 위 사진상의 거목 야생 차나무가 한 약초꾼 노인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수령이나 나무 크기에서 단연 세계 최고령 차나무라는데 아직 공인된 것은 아닌 모양. 의 저자 육우의 상(象) 758~761년 사이의 저작으로 추정되는 . 육우는 761년경에 동궁부(東宮府)의 태자문학(太子文學 : 정6품 아래)이라는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 이전 1 ··· 62 63 64 65 66 67 68 ··· 3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