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말, 정치적 격동기를 지나면서 선비들에 의해 이어지던 차 문화는 급격히 쇠퇴한다.
19세기 들어 청나라 신문물을 접한 소수의 지식인들에 의해 다시 차 문화가 일구어 지는 바.
초의와 다산 그리고 추사를 잇는 일련의 선구적 지성들에 의해 조선 차 문화의 절멸 위기가 극복 되는 것.
허나 20세기 들어 제국주의 침탈과 해방과 전쟁을 겪는 동안 우리네 차 문화는 사실상 소멸되고 말았다.
차와 관련된 도자 문화 또한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해방 후 20년이 되던 1965년,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회복되었고 그 해를 전후하여 다시 찻그릇이 만들어진다.
일인들의 요청과 필요에 의해 우리의 도자 문화가 다시 명맥을 잇게 된 것이다.
일제 때 일본 도자기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했던 토우土偶 김종희 선생이 해인사 아랫마을에 '강파도원'을 세우고
도예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그릇을 찾는 스님네들의 요청으로 다관을 만들기 시작한 게 그 효시.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다관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김대희, 신현철, 김종훈 이 세 사람의 도예작가들을 살피면서
오늘날 우리네 다관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점검해 보는 건 어떨런지.
한국의 다관을 되살리는 장인 1 / 김대희
청자와 백자의 세계는 일종의 불랙홀이다.
그 유장한 세계에 한 번 발을 디디는 순간 다시는 빠져 나오기 어렵다.
우송 김대희는 서두르지도, 쉬지도 않고 청자의 길을 걸었다. 도예 입문 15년여가 지나 청자다관을 짓기 시작한 것.
청자는 철분이 약간 함유되어 있는 태토에 2~3퍼센트의 철분이 들어 있는 유약을 발라 환원불 상태에서 소성한다.
김대희는 문명의 다양성과 상상력을 확인하는 데 40여 년을 보냈다.
좌상), <비색청자다관>, 높이 8.5cm, 입지름 4.8cm.
좌하), <청자모란무늬주자>, 높이 13.5cm, 입지름 4.8cm.
우상), <청자모란무늬다관>, 높이 9.5cm, 입지름 4.5cm.
우하), <청자갈대꽃무늬다관>, 높이 7cm, 입지름 4cm.
고려청자 중에서도 상감청자는 단연 돋보이는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기법이다.
이는 고려인의 창의적 상상력이 거침없이 날아오른 희열의 흔적이다.
창의성 또한 상상력의 소산인 또 다른 표현 기법은 청자에 무늬를 그려넣는 기법이다.
무늬는 기하학적 무늬와 정서적 무늬로 나눌 수 있는데, 연꽃무늬, 모란무늬,
국화무늬, 당초무늬, 보상화 무늬, 풀무늬 등이 있다.
좌상), <백자참외형다관>, 높이 8cm, 입지름 5.5cm.
좌하), <백자참외형주자>, 높이 18cm, 입지름 6cm.
우상), <백자주자>, 높이 15cm, 입지름 6.8cm.
우하), <백자연꽃다관>, 높이 9.5cm, 입지름 6.5cm.
<백자참외형다관>은 순백자에 속한다. 표면에 그림을 그려넣지 않고, 아무런 무늬 없이 순도 높은
순백의 태토에 잡티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석회유(石灰釉)를 입혀 높은 온도에서 구운 것이다.
이 다관은 참외의 절반을 잘라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 참외의 골을 자연스럽게 투영한 모양은
순백자의 고요을 살짝 흔들어서 안정감과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백자참외형주자>는 참외밭에서 금방 따온 온전한 참외에 부리와 손잡이를 붙여둔 형상이다.
참외 꼭지가 아직 싱싱하다. <백자주자>는 차실에 준비해두는 물 담는 도구이다.
화로 위에 얹은 탕솥에 물을 보충할 때 사용하기 위하여 주자는 항상 제자리에 놓여 있어야 한다.
손잡이가 위로 달린 이런 형식은 술을 담아 쓰는 술주전자와도 닮았는데, 주로 사대부 집안의 솥에 따를 때
물줄기가 곧고 한결같으며, 그칠 때는 정결하고 단호하게 멈추도록 하기 위해 부리 끝을 뾰족하게 만들었다.
이런 기능은 조선 선비의 지조나 품격과도 닮아서 사대부들의 사랑을 받았다.
백자의 표면색은 우유빛의 유백색, 겨울눈의 설백색, 약간 푸른기가 도는 청백색 등 여러 가지다.
대체로 15세기는 유백색 계통이며, 16세기는 설백색, 17세기에는 회백색, 18~19세기는 청백색이 대표적이다.
백자는 그릇 표면에 어떤 안료를 써서 그림을 그렸느냐에 따라 다시 분류한다.
순백자 · 상감백자 · 청화백자 · 철화백자 · 진사백자 · 조선청자 등의 종류가 그것이다.
<백자연꽃다관>의 모습은 그대로가 불교적 색채를 지닌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
김대희는 이 연꽃 다관에서 순백자의 전통에 연꽃잎과 타래로 꼰 손잡이를 접목시켜 현대사회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이와 유사한 작품이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좌상), <백자운학무늬다관>, 높이 9cm, 입지름 5.7cm.
좌하), <백자다관>, 높이 9cm, 입지름 6cm.
우상), <백자표주박형다관>, 높이 7cm, 입지름 4.5cm.
우하), <백자다관>, 높이 8cm, 입지름 5cm.
<백자운학무늬다관>에는 아주 얕은 음각으로 구름과 학이 새겨져 있는데,
그 모양이 하도 은은하여 얼핏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기법 역시 순백자의 고결미를 전혀 흔들지 않으면서 학과 구름이라는 도교적 신비감을 은은하게 녹여넣고 있다.
무엇보다 이 다관의 특징은 너그러운 둥근 선에 있다. 순백의 아름다움과 기교를 부리지 않은 단아한 선의 흐름에서
포용력 있는 넉넉함이 묻어난다.
<백자표주박형다관>, <백자다관>, 아래의 <석간주다관> 등도 순백자의 묘미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해주고 있다.
<석간주다관>, 높이 7.5cm, 입지름 4.8cm.
좌), <흰분청매화무늬다관> 높이 8.5cm, 입지름 5cm.
우), <분청갈대무늬다관>, 높이 9cm, 입지름 5cm.
<흰분청매화무늬다관>은 12세기 중엽에 발생하여 15세기 중엽까지 애용되었던
한국의 독자적 도자 무늬기법을 보여 주고 있다. 분청사기의 특징은 분장기법과 무늬다.
분장 후에 어떻게 무늬를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감기법, 인화기법, 박지기법, 음각기법, 철화기법, 귀얄기법, 덤벙기법 등 여러 종류로 나뉜다.
<분청갈대무늬다관>, <분청모란무늬다관> 의 경우도 무늬기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데,
주로 많이 등장한 것으로는 연당초무늬, 연꽃무늬, 버드나무무늬, 모란당초무늬, 초화무늬, 물고기무늬,
어룡무늬, 파도무늬, 돌림무늬 외에 모란무늬와 갈대무늬가 있다.
좌상), <분청모란무늬다관>, 높이 7.5cm, 입지름 5.3cm.
좌하), <분청귀얄당초무늬다관>, 높이 8cm, 입지름 6cm.
우상), <분청덤벙이고리손잡이다관>, 높이 7cm, 입지름 4.7cm.
우하), <분청덤벙이옆손잡이다관>, 높이 8cm, 입지름 5.8cm.
귀얄기법은 귀얄이라는 도구를 써서 백토를 바르는 것으로, 귀얄 자국이 역동감 있게 남아서
색다른 효과를 보여준다. 담금분장 또는 덤벙이기법은 백토물에 그릇을 덤벙 담가 백토를 씌우는 기법이다.
얼핏 쉬워보이는 것 같아도 이 기법에 들어갈 때는 웃고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피눈물과 통곡도 모자라
얼주검 상태로 기어나오는 분야라고 한다.
이런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전제된 것이
청자와 백자 수련을 충분히 거친 뒤에 분청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에라야만 분청사기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눈뜰 수 있고, 그런 작품이라야 아름다움과 겸양으로
상대를 배려해주는 품격 높은 예술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다관을 되살리는 장인 2 / 신현철
우리나라 찻그릇 작가군 가운데서 독창성과 종교성을 강하게 내재시킨 작품을 주로 내놓고 있는
신현철의 꽃을 주제로 한 일련의 다관은 한국의 다관 중에서 가장 특색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백련다관 1>, 높이 10.5cm, 폭 13cm, 입지름 3cm.
좌상), <가시연잎다관 1>, 높이 5.4cm, 폭 5.4cm, 입지름 2.4cm
좌하), <가시연잎다관 2>,높이 7.2cm, 폭 7.2cm, 입지름 3.3cm.
우상), <백련다관 2>, 높이 10cm, 폭 10cm, 입지름 3.4cm.
우하), <수련다관>, 높이 10cm, 폭 10cm, 입지름 3.4cm.
<가시연잎다관 1. 2>는 연잎의 생태적 속성을 다관의 주제로 삼고 있다.
안으로 이룩한 수행의 공력으로 실제 삶의 과정에서 탐욕에 물들어 고통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그렇게 되기를 간절하게 발원하는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백련다관 2>의 꽃잎에서 느껴지는 반만 핀 백련의 긴장감과 고결성은
연화화생의 깊은 소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수련다관>에서 뾰족한 꽃잎을 살짝 뒤로 젖혀서 다관으로서의 실용성을 높이력 한 점은
다관에 대한 작가의 이해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차꽃다관>, 높이 5cm, 폭 7.5cm, 입지름 2.8cm.
차꽃은 10~11월에 3~5센티미터 크기로 피며 향기가 짙다.
열매는 꽃이 진 11~12월에 아주 작게 맺혀서 겨울을 보내고
다음해 가을이 되어서야 커지면서 익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다.
좌), <무궁화꽃다관>, 높이 7.2cm, 폭 9cm, 입지름 3.2cm.
우), <해바라기꽃다관>, 높이 8.4cm, 폭 6.5cm, 입지름 4.3cm.
훌륭한 찻그릇 작가가 되기는 어렵다. 물레질에 능란하고, 숨씨가 빼어나며, 불을 휘어잡는 힘이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정도면 좋은 작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대의 시대빈 같은 '예인'
19세기 초 일본의 모쿠베이 같은 '식자도인'(識字陶人)이 되는 데는 한층 더 엄격하고 준열한 지성이 요구된다.
찻그릇에는 배를 불리는 음식을 담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정신세계를 빛으로 채우기 위한
예술혼을 담아야 하고, 신성한 향기를 빚어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좌), <천목유다관 1>, 높이 8.1cm, 폭 7.9cm, 입지름 5cm.
우), <천목유다관 2>, 높이 8cm, 폭 6.5cm, 입지름 2.8cm.
<천목유다관 1>은 다관의 몸을 만들 때부터 잘 익은 골참외의 몸처럼 골을 깊게 파고, 골과 골 사이의
솟아오른 부분을 선명하게 처리한다. 손잡이도 가장자리는 높게, 가운데는 약간 깊게 만들고, 뚜껑은
구절초의 꽃잎 모양으로 굴곡지게 다듬는다. 그런 다음 초벌구이를 하여 유약 흡수율을 높이고 유약을
듬뿍 입혀 말린다. 마른 뒤 한 번 더 유약을 덧씌울 수도 있다.
가마 속에서는 최대한 높은 열로 유약을 잘 녹여야 한다.
유약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면 굴곡진 선과 면이 다른 색으로 드러난다. 깊은 곳은 높은 데서 흘러내려온 유약이
모여서 두꺼워지는데, 그 두꺼운 유약의 다양한 변화가 재미있다. 높은 부분의 유약은 대부분 녹아내리고 철분만 남아서
몸흙에 스며들어 적갈색 띠가 된다. 부리 끝, 뚜껑 손잡이 위부분, 손잡이 가장자리 등도 적갈색 테를 두른 것처럼 된다.
결국 신현철 다관의 화려함이란 엄밀히 말한다면 지극히 단순한 데서 시작된 역발상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은 우리나라 전통도에 기법 중에서 19세기에 큰 흐름을 이루었던 진사유약의 변용과 닮아 있다.
천목이란 말의 어원은 중국 남부 항주 근처 천목산(天目山)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남천목(河南天目)이란 말이 생겨났다. 이 호칭이 남중국과 관련된 까닭은 당나라 때 중구 남부에서
처음으로 차 마시는 풍습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이때 차를 담아 마시는 찻잔이 어떤 색이어야 좋을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차의 색깔이 연둣빛이니, 연둣빛을 돋보이게 하려면 흑색 유약을 씌워서 구우면 가장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때 주로 쓰인 것이 철분이 섞인 검은색 기름같이 진하나 천목유약이다. 이 유약은 불 속에서 잘 녹으면 유약이 굽에까지
흘러내려 커다란 방울처럼 맺히기도 하는데, 응결된 유약은 유적(油適)이라고 부른다. 구워낸 후에는 진한 암갈색, 때로는
푸른색, 푸른빛이 도는 잿빛 줄무늬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지방에서 만들어진 많은 그릇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일본에서는 무가문화의 말차도에서 핵심을 이루는 천목다완으로 자리 잡아 긴 세월 동안 크게 유행했다.
<천목유다관 2>에는 신현철 특유의 감각적 재능이 한껏 드러나 있다. 울와 친근한 참새를 소재로 삼았다.
참새의 몸과 날개의 색을 천목유약으로 표현하는 것은 보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천목유약의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는 불가능한 발상이다. 손잡이로 쓰일 참새의 꼬리를 세로 선으로
불규칙하게 처리한 것이나, 꼬리가 한쪽으로 기울 듯이 뒤틀린 모습은 이 다관에 결정적인 생명력을 부여한다.
상), <천목유다관 3>, 높이 8.8cm, 폭 9.2cm, 입지름 6.1cm.
하), <천목유다관 4>, 높이 9cm, 폭, 9.6cm, 입지름 6.2cm.
한국의 다관은 그 형식 면에서 중국 차호의 고리형 손잡이와
일본 규스의 자루형 옆손잡이를 동시에 모방하면서 시작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1960~70년대 일본 상인들의 주문을 받아 생산하던 때는 거의 규스를 모방했고,
1980년대 이후부터 중국 차호와 일본 규스 형식이 뒤섞였다.
신현철 다관이 지닌 특성 중 하나가 창조적 상상력에 의한 디자인이라는 점은,
한국의 다관이 세계미술의 경지로 진화하기 위한 고뇌의 산물임을 증명한다.
<만다라다관>, 높이 8.8cm, 폭 8.5cm, 입지름 5.2cm.
신현철의 백자다관 중에는 손으로 빚어 만들었던 신석기시대 토기에서 맛볼 수 있는
천진난만하고 온유한 질감을 지닌 것이 있다. <만다라다관>이 그 좋은 예다.
이 다관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문양과 형상이 장식되어 있다.
장식 기법은 투각((透刻)과 부조(浮彫)를 병합하고 백자 유약을 얇게 입혀 균열을 유도하고 있다.
몸통 한가운데는 만다라를 투각기법으로 새겼다.
다관의 뚜껑은 탑의 상륜부 중에서 한가운데 부분인 보륜(寶輪)의 형상을 응용하고 있다.
뚜껑 손잡이는 차꽃 모양을 돋을새김 기법으로 붙였는데,
마치 꽃으로 만든 또 하나의 찻잔을 얹어둔 것 같은 모습이다.
상), <백자다관 1>, 높이 8.7cm, 폭 10.7cm, 입지름 4.6cm.
하), <백자다관 2>, 높이 6.9cm, 폭 10cm, 입지름 3.9cm.
<만다라다관>의 하화중생적(下和衆生的) 이미지와 연결되는 것이 <백자다관 1.2>이다.
두 작품 모두 백자 유약을 사용하고 있으며, 표면의 균열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릇이 그 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는 논리를 빌린다면 이 백자 다관들은 우리시대의
평등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좌), <백목련다관>, 높이 11cm, 폭 11cm, 입지름 7.8cm.
우), <흰참새다관>, 높이 7.5cm, 폭 7.2cm, 입지름 3.5cm.
<백목련다관>은 반만 핀 한 송이 흰 목련꽃 형상이다.
밖에서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는 외래종 목련이 아니라 옛적부터 우리곁에 있어 온 산목련이다.
산목련은 외래종에 비해 수줍음을 많이 타고 청초하다. 그래서 조금은 슬프고 연약해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연유로 한국인의 심성 깊은 곳에 자리한다. 슬픔을 잘 이해하고 드러내는 사람은 영혼이 맑게 깨어 있는 사람이다.
또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면 그만큼 종교적 열정이 강렬하고 영적으로 밝아서 유달리 많은 슬픔을 지니게 될 것이다.
<흰참새다관>은 한국인의 정서에 익숙한 참새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다관으로서의 기능이 어떨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기능성 문제에 매달려 고심하던 끝에 얻어낸 영감의 산물이 바로 이 다관이었노라는 작가의 변이
이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 싶다.
한국의 다관을 되살리는 장인 3 / 김종훈
<무유다관 1>, 높이 8cm, 폭 7.5cm, 입지름 4.3cm.
심산尋山 김종훈의 <무유다관 1>은 질그릇의 질감이 느껴지고,
선의 부드러움과 면의 투박함도 질그릇을 닮았다. 유약을 입히지 않은 사질토 한 가지로만 몸을 만들어
여러 번 가마 속에서 구워 반발효차의 진맛을 가장 잘 살려낸다.
17세기 명나라 때의 최고 예인으로 칭송받았던
시대빈의 자사호가 지녔다는 장점을 짐작케 해주는 다관이다.
반발효차는 따뜻하게, 적어도 섭씨 7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라야 제대로 차 맛이 난다.
이것은 따뜻함과 깊은 역사를 맺으며 살아온 한국인의 모습을 닮았다.
상), <무유다관 2>, 높이 8.5cm, 폭 6.5cm, 입지름 5cm.
하), <무유다관 3>, 높이 7.5cm, 폭 7.5cm, 입지름 4cm.
<무유다관 2>는 곡선의 중첩이 갖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손잡이와 부리에서 몸통으로 흘러내리는 곡선, 뚜껑의 겹친 곡선과 뚜껑 손잡이의 포개진 곡선들,
삼단으로 나뉜 몸통의 크고 작은 곡선의 층계, 그리고 밑굽의 부끄러운 듯 살작 내민 곡선 등
모두가 연결되어, 어느 하나가 또렷이 드러나 거만을 떨지 않는다.
<무유다관 3>의 곡선은 좀 더 동적이다.
곡선의 구비에는 또 하나의 삶의 풍경이 박혀 있다. 비록 쓸쓸해 보이고, 허전하며, 외딴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삶에서 쓸쓸하고 혼자이지 않은 것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보면 곡선의 굽이굽이에 박혀 있는 외로움은 삶의 풍경을 전체적으로 완성시켜주는 밑그림이다.
좌), <무유다관 4>, 높이 8.5cm, 폭 7cm, 입지름 4cm.
우), <무유다관 5>, 높이 8cm, 폭 7.5cm, 입지름 4.2cm
심산이 제작하는 무유다관의 몸 흙은 모래 성분이 많은 흙인 사질토다.
모래는 눈보라와 비바람, 추위와 더위에 삭고 깎이고, 부서져서 남은 돌 부스러기다.
김종훈이 집요하게 연구해온 이 흙은 장석, 흑운모, 휘석을 함유한 규산염이 알맞게 섞여 있다.
흙이 있는 곳을 단면으로 잘라보면 몇 가지 고운 색깔의 흙이 층층이 퇴적되어 있음을 본다.
<무유다관 4>는 흑색 운모가 많이 드러나 있는 것이 감상의 포인트가 된다.
흙 속의 철분이 불의 상태에 따라 황금색으로 드러나 표면이 경쾌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물론 이 경쾌함은 몸통의 납작하고 둥근 형태와도 관련이 있다.
<무유다관 5>는 불속에 집어넣어 세 번을 구워낸 것이다.
처음에는 손잡이를 왼쪽으로 가게 해서 굽고, 두 번째는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가게 하고,
세 번째는 엎어서 구웠다. 변화는 분명히 생겼다. 전혀 습기가 스며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차의 진맛은 한 번 구운 다관에 미치지 못했다.
또 고민이 생긴 것이다.
한 가지 흙만으로 다관의 몸을 만들고 유약을 입히지 않은 채 고온으로 구워내려 하는 까닭은
반발효차의 색 · 향 · 맛을 제대로 살려내기 위해서다.
<무유다관 6>, 높이 8.5cm, 폭 7.5cm, 입지름 4.5cm.
<무유다관 6>은 이 흙이 지니고 있는 장점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색채감을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흙 속에 들어 있던 철분과 여러 가지 미세광물질이 뜨거운 불길을 만나 화려한 색채로 꽃핀다.
흙 속에 함유된 장석이 지닌 흰빛 · 잿빛 · 연분홍 · 갈색 등 다양한 색깔이 나타난 것이기도 하며,
여러 광물질의 작용과도 연관이 있다. 이런 광물질은 차의 진맛을 되살려내는 데 매우 중요하 역할을 한다.
<무유다관 7>, 높이 7cm, 폭 5cm, 입지름 3.2cm.
나트륨의 적용으로 인한 색깔 변화를 보여준다.
위 쪽 사진에서 손잡이가 오른쪽으로 보이는 면은 불길을 덜 받은 뒷면이고,
손잡이가 왼쪽으로 보이는 면은 장작불을 정면으로 받은 부분이다.
아래 사진에서는 몸통 가운데 아래쪽에 새까맣게 펴져 있는 부분이 나트륨이 몰려 있는 부분이다.
이때 불길의 온도를 더 높일 수 있다면 나트륨이 훨씬 잘 녹아서 광택이 안정되고 습기가
배어나오는 것도 확실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좌), <무유다관 8>, 높이 8.5cm, 폭 7.5cm, 입지름 5cm.
우), <무유다관 9>, 높이 8cm, 폭 6.5cm, 입지름 4.3cm.
<무유다관 9>로 여러 달 실험해본 결과, 다관의 색깔이 살아나면서 차의 맛도 따라서 더욱 깊어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겨드랑이에서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마주 앉은 사람의 눈에 비친 상대의 모습은
분명 차를 마시기 전과 다르다. 얼굴이 밝아지고 기운 넘치는 모습이다. 등줄기가 땀으로 촉촉히 젖고,
입술은 선홍빛으로 물든다. 다관의 색갈이 변하는 것과 차의 맛, 성질 사이의 미묘한 관계 증명인 셈이다.
<무유다관 10), 높이 7.5cm, 폭 7.5cm, 입지름 4.2cm.
김종훈은 깊은 산중에서 수행승처럼 흙의 삼매에 빠져 사는 젊은 작가다.
인용: 정동주 著 <한중일의 茶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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