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507) 썸네일형 리스트형 남문창의비와 오산창의사 남문창의비각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좌랑을 지낸 김경수(金景壽)가 김제민(金齊閔) · 기효간(奇孝諫) · 윤진(尹軫) 등과 함께 전라도 일대에서 의병을 모아 장성 남문(현재의 북일면 오산리 소재)에 의병청을 설치하고 의병활동을 전개 했는데 이를 가리켜 ‘장성 남문 창의’라고 한다. 당시 장성현감 이귀(李貴)가 의병 창의 및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의병들은 김경수를 맹주로 삼고, 김제민을 의병장으로 하여 북쪽으로 진군하면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대부분 전사했다. 그들의 충절을 기리고자 호남지역 유림에서 1802년(순조 2)에 남문 오산창의비를 건립했다. 비각 안에 놓여 있는 비석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 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이 비석은 두 개의 제목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앞면 중앙에.. 관수세심(觀水洗心) 황룡강을 따라 위 아래로 오간 산책길. 잉어, 붕어가 산란철을 맞아 강변 여기저기서 철퍼덕대는 가운데 대물 손맛을 노리는 조사님들의 행렬 또한 장관. 중앙 멀리로 완만한 능선 형태를 그리는 수련산. 멀리 왼편으로 아스라히 보이는 뾰족산은 광주광역시 임곡동 소재 용진산 석봉과 토봉이고 그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 능선은 어등산이다. 경비행장 이륙준비 전남 장성군 황룡면 와룡리 504-2 ● 체험 · 관광비행 A코스: 경비행장 ~ 장성호 ~ 남창계곡 ~ 경비행장 (10분, 6만원) B코스: 경비행장 ~ 방장산 자연휴양림 ~ 축령산 편백림 ~경비행장 (30분, 10만원) C코스 : 경비행장 ~ 홍길동테마파크 ~ 평림댐 ~ 경비행장 (1시간, 20만원) 가볍게 비상하는 경비행기 ● 일반면허 취득과정 교육시간 : ..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성관대종사 행장 慧菴性觀大宗師 行狀 혜암대종사慧菴大宗師는 1920년(庚甲) 음력 3월 22일 전남 장성군 장성읍 덕진리 720번지에서 탄생하였다. 부친은 김원태金元泰이고 모친은 금성 정丁씨이며 속명은 남영南榮이라 하였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으며, 타고난 성품은 강직하면서도 자비로웠다. 14세에 장성읍 성산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리의 향숙鄕塾에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수학修學한 후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열람하였으며, 위인전을 즐겨 읽었다. 17세에 일본日本으로 건너가 동 · 서양의 종교와 철학을 공부하던 중 어록을 보다가, 아유일권경我有一券經하니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이라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호되 상방대광명常放大光明이로다 나에게 한 권의 경전이 있으니,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지지 아니하였네. 펼치면 한 글자도 .. 6종의 독립선언서 ● 3 · 1 독 립 선 언 서 ● 2 · 8 독 립 선 언 서 ● 대 한 독 립 선 언 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 조 선 혁 명 선 언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태극기1923년, 189×142cm, 등록문화재 395호, 이군옥 소장, 독립기념관 임정 국무위원을 지낸 김붕준(金朋濬: 1888~1950년 납북)이 보관하였던 유품으로지금은 유족에 의하여 독립기념관에 기탁되어 있다. 3 · 1 독립선언서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 하노라.차(此)로써 세계만방(世界萬邦)에 고하야 인류평등(人類平等)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此)로써 자손만대(子孫萬代)에 .. 시냇물을 따라...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묘역 일대 신도비神道碑 추기 신도비(追記 神道碑) 기존의 신도비에 1796년(정조 20) 정조가 하교한 문묘(文廟)에 종향(從享), 문정(文正)으로 개시(改諡), 증직(贈職), 명부조(命不祧) 등 추가 사적이 등재되지 않아, 1979년 정월 유림(儒林)의 총의(總意)를 거쳐 추기 신도비를 건립키로 결의하였다. 1980년 봄 본손(本孫) 담운(湛雲) 김상일(金相一)이 화산(花山) 권용현(權龍鉉) 에게 비문을 청문하여 늦여름에 완성을 보고, 진원(珍原) 박하주(朴廈柱)가 글씨를 써서 1982년 8월 기존의 신도비 좌측에 추기 신도비(追記 神道碑)를 건립(建立)하였다. 추기 신도비문의 주요 내용은 기존의 신도비문에 성균관 유생들의 문묘 종향 상소 · 정조 대왕의 하교 · 6세 때 지은 상.. 봉암산 석불을 찾았더니... 저 멀리 장안마을 봉암산 자락의 석불좌상을 찾아 가는 길 강변 수상데크에 설치된 연꽃형상의 전망대. 봄날 대지의 환희 매년 봄, 이 버드나무 이파리 색상의 변해가는 모습도 괜찮은 볼거리 중의 하나. 보호수로 지정된 장안마을 소나무 중에서 두 그루. 봉암서원의 자목련 감상. 오늘은 다행히도 서원 옆 담장 쪽문이 열려있네요. 봉암산을 올랐더니 과거 석불 모습은 어디로 가고 개금에다 예전엔 없던 광배까치 설치해 놓았다. 석불에 개금을 한다는 건 들어 보지 못했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금분이 아닌 화학 염료 같다는 느낌. 집에 돌아와서까지도 이 석불이 과거 내가 보았던 석불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자료를 찾아보고서야 과거의 소박했던 석불이 이렇게 화려방창한 형태로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내 블로그 .. 삼갑(三甲)의 완성을 위한 봉갑사(鳳甲寺) 불사 이른 바 호남삼갑(湖南三甲)의 완성을 위한 엄청난 불사를 진행중인 전남 보성군 천봉산 봉갑사. 바람결에 들려 오길, 조선조 어느 시기(정유재란?)에 폐사지로 전락해 버린 흔적만 남은 절터에 도륜 노장께서 원대한 원력을 세우고 불사를 진행하다 수년 전 입적하셨다는... 불가에서 말 하는 '시절 인연' 의 의미가 바로 오늘의 경우를 이름인가? 송광사 포교국장 소임에다 봉갑사 주지를 맡아 오늘의 대불사를 지휘하고 계신 각안(覺眼)스님의 각별한 응대와 안내로 '호국불교'에 대한 이해와 그 실천방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바,모처럼 올곧은 수행자를 친견하고, 이내 흐린 눈의 백태(白苔)를 걷어낼 수 있었던 소중하고도 귀한 시간이었다. 보성강의 물길이 북으로 흘러 주암호에 담기는 곳.한 폐사지가 .. 천봉산의 봄 보성 천봉산 대원사 대원사 김지장전 벽화로 보는 신라청년 김교각은 어떻게 지장왕보살이 되었나? (좌), 석가세존 열반 1500년 되는 서기 696년 신라 왕가에 한 아이가 태어났으니 그의 부친은 성덕대왕이고, 그의 모친은 성정황후이다. 아니의 이름은 교각(僑覺)이며 학명은 수충(守忠)이라 하였다. (중), 당나라에 유학하여 학문과 무예를 익히고 고승대덕을 찾아 불법의 깊은 뜻을 깨달았다. 고국에 돌아온 교각은 신라 왕실의 다툼을 보고 24세 되던 해 불법으로 중생을 구제코자 출가하였다. (우), 당나라로 가면서 선청이란 삽살개와 황립도라는 볍씨, 금지차 종자, 신라송이라는 잣 열매와 조 씨앗 등 다섯가지 생물자원을 중국 구화산에 전하였다. (좌), 중국 절강성 항주에 도착하여 만불사에서 본 꿈 속 수려한.. 이전 1 ··· 60 61 62 63 64 65 66 ··· 3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