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2507) 썸네일형 리스트형 선인들의 유람록 <지리산 2편> 이징李澄, , 1643년, 89.3×5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동방 오현東方五賢 중 한 사람인 정여창鄭汝昌의 옛 별장인 악양정岳陽亭을 그렸다. 그림 윗부분에는 전서체로 '화개현구장도花開縣舊莊圖' 라 적혀 있고, 아랫부분에는 정여창의 「악양정」 칠언절구와 유호인兪好仁의 시서詩敍와 시 · 신익성申翊聖의 후지後識 · 조식曺植의 「유두류록游頭流錄」 일부 · 정구鄭逑의 「유가야산록遊迦倻山錄」 일부가 신익성의 글씨로 적혀 있다. 선현을 추모하는 뜻과 누워서 산수에 노니는 운치를 함께 담은 화폭이다. 조식曺植, 「두류산 유람록游頭流錄」 5월 23일. 아침에 산을 오르려 하니 옥륜이 밥을 차려주며 우리를 전송하였다. 두류산에 크고 작은 절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유독 신응사의 물과 돌이 최고라고 .. 개토 고천제 개토開土 고천제告天祭 광주광역시 월봉서원 빙월당氷月堂 월봉서원 앞쪽 동네에 모 인사께서 집짓기를 위한 개토開土 고천제告天祭를 올리신다기에... 진행: 강기욱 선생님 쥔 내외의 '청수봉전淸水奉奠' 맑은 물 한 사발. 마음의 정화와 더불어 만물의 존재와 생성의 근원이라는 존재론적 의미와 함께, 우리민족에게 전승되어 온 가장 친숙한 생활의 일부분이기도 한 일상 의례라고 보면 되겠다. 발원문 낭독 有情無情 모든 衆生과 天地神明님께 告합니다.. 저희들이 여기 "광곡길 111번지" 집을 지어 노후에 편안하게 지냄이 목적이오니 부디 보살핌과 가호가 있으시길 바라옵니다. 당호는 臥牛山房으로 하며 모든이가 여기에서 편안케 함을 비옵니다. 辛丑年 사월 초사흘 현탁 올림 소지燒紙 헌배獻杯와 배례拜禮 일포 이우원 선생님의 축.. 꽃강 흐드러지다 기이하고 예스러운 것을 취하여 스승으로 삼고, 맑고 깨끗한 것을 취하여 벗으로 삼는다. 번다하고 화려한 것을 취하여 손님으로 삼는다. 남에게 사양하려 해도 남들은 내다버리는 까닭에 다행히 홀로 즐겨도 막는 사람이 없다.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희로애락을 모두 이 꽃들에게 부쳐서, 나 자신을 잊고[忘形] 늙음이 장차 오는 것도 알지 못할 뿐이다. - 화암수록花菴隨錄 중에서 - 고하 송진우 고택 네 살때부터 한문공부를 시작하였으며, 뒤에는 의병장이었던 기삼연(奇參衍)에게서 수학하였다. 1904년 15세 때 정읍의 유씨(柳氏)와 혼인하였고, 2년 뒤에 담양 창평의 영학숙(英學塾)에 들어가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김성수(金性洙)를 알게 되었다. 1907년 전라도 장성 백양사(白羊寺)의 말사인 청류암(淸流庵)에서 공부를 하던 중 일본 유학을 결심하고 절에서 나와 군산금호학교(金湖學校)에서 수학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김성수와 함께 새 학문을 연마하여 기울어지는 나라의 운명을 바로잡아야겠다는 결심으로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세이소쿠 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와 긴조중학교[錦城中學校]를 거쳐 1910년에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입학하였으나 일제강점에 충격을 받고 귀국하였다. 이듬해 다시 동.. 선인들의 유람록 <지리산 I편> 김윤겸 , 18세기, 29.6×34.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윤겸은 서얼 출신의 문인으로 산수화에도 뛰어났다. 선인들은 지리산을 종주하지는 않았으나 그 선경을 사랑하여 많은 시문을 남겼다. 이 그림은 지리산의 전경을 구도에 넣으면서 자잘한 수식을 떨어버리고 산의 본상에 육박하였다. 김종직金宗直, 「두류산 유람록遊頭流錄」 신시(申時, 오후 4시) 에야 천왕봉을 오르자, 구름과 안개가 성하게 일어나 산천이 모두 어두워져서 중봉中峯 또한 보이지 않았다. 해공과 법종이 먼저 성모묘聖母廟에 들어가서 소불小佛을 손에 들고 날이 개게 해달라고 외치며 희롱하였다. 나는 처음에 이를 장난으로 여겼는데, 물어보니 말하기를 "세속에서 이렇게 하면 날이 갠다고 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손발을 씻고 관대冠帶.. (사)동학민족통일회 창립 제30주년 기념식 정읍 고부 땅에 피어난 오월의 자색 아카시. 언뜻, '갑오동학혁명'의 피빛 진혼이 떠올려 지는데...! 우리 일행에 앞서 갑오혁명기념탑을 찾아 행사를 마친 '진보당' 여러분. (사)동학민족통일회 이우원 상임대표님과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님. '미얀마의 평화와 민주화'를 염원하고 응원합니다. 청수봉전 국민의레 애국가 제창과 선열께 드리는 心告 동학혁명의 진혼께 바치는 일포 선생님의 '天命' "이것이 나의 천명....!"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사단법인 동학민족통일회 낭독. 우리 민족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서는 안될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민족의 사상적 일대자각으로 창도된 동학은 근세 백년의 국난기에 암울했던 역사와 민중에게 새로운 희망의 새로운 희망의 빛으로 제폭구민 보국안민의 깃발을 높.. 선인들의 유람록 <한라산 > 윤제홍尹濟弘, 윤제홍은 63세 때인 1825년에 경차관으로 제주에 갔다가 한라산을 올랐다.그리고 81세 때인 1844년에 이 화첩을 만들었다. 한라산에 올랐던 감회가 여전히 생생하여화면의 위 아래에 빼곡하게 감상을 적어놓았다. 그림 왼편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을 수 있다."무릇 산들은 모두 상봉이 있지만 이 산은 다만 사면에 봉우리들이 둘러서 있을 따름이다.가운데는 큰 못으로 사방이 40리라고 한다. 임제林悌, 「남명소승南溟小乘」 2월 15일.향불의 연기가 꼿꼿이 오른다. 맑은 해가 창문을 비추고 바람은 따스하고 새가 지저귀었다.잔설이 다 녹아 봄물이 흘렀다. 동행들이 모두 즐거워하며 "오늘의 유람은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식사를 재촉해 끝내고 행장을 단속하여 영곡.. 선인들의 유람록 <백두산> 조선팔도여지지도朝鮮八道與地地圖 16세기 후기, 106×68, 개인 소장. 홍세태洪世泰, 「백두산기」 『백두산기(白頭山記)』는 홍세태(洪世泰 : 1653~1725)의 문집인 『유하집(柳下集)』권9에 수록되어 있다. 1712년(숙종 38) 청의 목극등이 양국의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 파견된다는 통지를 받고 우리 조정에서는 박권(朴權)을 접반사로 삼아 청의 관원들과 함께 경계를 정하도록 하였다. 일행은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분수령을 찾아 사람 인(人)자 처럼 생긴 지형 가운데 정계비를 세우고 돌아왔다. 이 때 청의 목극등은 직접 백두산에 올라갔으나, 접반사 박권과 함경감사 이선부는 늙고 허약하다는 이유로 백두산에 올라가지 않고 역관 김경문이 목극등과 함께 올라갔다. 이 글은 김경문의 이야기를 직접 전해들은.. 이전 1 ··· 58 59 60 61 62 63 64 ··· 3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