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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의 유람록 <소백산> 정선鄭敾, 17세기 말~18세기 초, 61.2×31.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본래 계절산수와 산수인물도로 이루어진 8폭 가운데 한 점이다. 본래 병풍이었으나 지금은 낱쪽 족자로 개장되었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속에 도롱이 입은 인물이 낚시하는 광경을 화폭에 담았다. 화폭 윗면의 비기운과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쏠려 있는 모습이 무척 생동적이다. 이황李滉, 「소백산 유람록遊小白山錄」 그 다음 날 계해, 걸어서 중백운암에 올랐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승려가 이 암자를 짓고는 그 속에서 좌선을 해서 선리禪利에 자못 통하였는데, 하루아침에 떠나서 오대산으로 들어갔으므로, 지금은 승려가 없다. 창 앞에는 옛 우물이 완연히 남았고, 뜨락에 푸른 풀은 쓸쓸할 따름이다. 암자를 지나서부터는 길이 더욱..
선인들의 유람록 <금골산> 이주李胄, 「금골산록金骨山錄」 금골산은 진도珍島 읍내에서 서쪽으로 20리에 있는데 중봉이 가장 높고 사면이 모두 바위라서 바라보면 옥부용玉芙蓉 같다. 서북쪽은 바다에 닿아 있으며, 서남의 지맥이 구물거리며 남으로 달려 2리쯤 가서 간재가 되고, 또 동쪽으로 2리쯤 가서 용장산龍莊山이 되어 벽파도碧波渡에 이르러 그친다. 산의 주위는 모두 30여 리이다. 산 아래에 큰 절터가 있어 해원사海院寺라고 한다. 9층의 석탑이 있고 탑의 서쪽에 황폐한 우물이 있다. 그 위에 삼굴三窟이 있다. 맨 밑에 있는 것이 서굴西窟로, 산의 서쪽에 있는데, 창건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근자에 일행一行이란 스님이 와서 향나무로 십육나한의 소상을 만들어 그 굴에 안치하였다. 굴의 곁에 별도로 옛 사찰 예닐곱 칸이 있어 중들이 거처..
선인들의 유람록 <서석산> 필자미상, , 19세기,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무등산은 광주광역시와 화순군 이서면, 담양군 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제 때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하였다. 무등산을 그린 이 그림은 매우 희귀한데, 그린 이를 알 수 없다. 고경명高敬命, 「서석 유람록遊瑞石錄」 22일 병인丙寅, 날이 개었다. 아침에 판관判官과 찰방察訪이 입석立石(선돌) 으로 곧장 갔다. 어제 날이 어둡고 깜깜해서 제대로 찾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들은 곧장 선생을 좇아 상원등사上元燈寺 에 이르렀다. 작은 암자가 새로 엮어져 있었지만 작고 좁아서 쉴 수 없었기에 선생은 암자 서쪽 단상에 앉아 쉬었다. 약간 서쪽에 노송 두 그루가 마주해 있고 그 아래 발을 뻗고 쉴 만한 돌이 있었다. 조금 있다가 판관과 찰..
선인들의 유람록 <월출산> 도판 : 팔도총도八道總圖 1683년, 124×90.5,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구정봉 구정봉 상단. 김창협金昌協, 「월출산 구정봉 등반기月出山九井峰記」 월출산의 절정은 구정봉이다. 사방 모서리는 모두 험준한 벼랑이 가파르고 아슬아슬하다. 다만 서쪽 벼랑 아래에는 지름이 겨우 한 자 남짓한 굴혈이 위로 뚫려 절정에 이른다.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반드시 굴혈 속으로부터 길을 취한다. 그 굴혈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기고 뱀처럼 나아가서야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관모나 망건을 벗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마치 쥐가 또아리처럼 몸을 웅크리고 굴혈로 들어가는 것처럼 한다. 그러다가 굴혈에 들어가면 비로소 사람처럼 간다. 하지만 여전히 굴혈 속으로 가는 것이며, 굴혈은 길둥글고 좁으므로, 그 속을 가는 사..
선인들의 유람록 <가야산> 1872년, 74×52cm, 조선후기지방지도 충청도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영인. 이 지도에서는 덕산 관아 서쪽에 상왕산象王山과 가야산伽倻山을 별도로 표시하여 두었으나 오늘날에는 그 두 산을 하나로 보아 가야산으 이칭이 상왕산이라고 한다. 가야산은 소의 머리와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여 우두산牛斗山 이라고 불렀으며 상왕산象王山 · 중향산衆香山 · 지달산 · 설산이라고도 한다. 이철환李嚞煥 「상산삼매象山三昧」 회잠會岑과 여옥呂玉이라는 두 사미승이 있는데, 나이는 각각 17세이다. 용모가 단아하게 잘 생겼으므로 두 눈은 빛이 났다. 불경을 외는 소리가 각각 그 맑고 고움을 다하여, 그 사람됨과 같았다. 회잠이란 자는 또한 입술을 모아 바람을 불어 나각螺角과 비슷한 소리를 잘 내었는데, 천연스레 교묘하여 당..
선인들의 유람록 <천방산> 최북崔北, 최북은 '칠칠' 이라는 호를 사용한 화가로, 기이한 행동을 많이 해서 유명하다. 이규상李圭象은 그의 화법은 힘이 있어서 비록 가는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라도 갈고리처럼 기운찬 모양이 되지 않는 게 없다고 하였다. 이 그림도 바람에 쏠린 나무들을 억센 붓놀림으로 그려내었다. 이경전李慶全, 「큰 눈이 내릴 때 천방사를 방문한 기록大雪訪千方寺記」 양쪽의 협곡이 옥죄듯 하고, 소나무와 노송나무는 하늘에 빼곡하여, 푸른 수염에 비취 덮개, 붉은 갑옷에 하얀 비늘을 하고서, 몇 겹의 층을 이루고 빼곡하게 곧추서서, 옥먼지와 옥가루 같은 눈발 아래서 기둥을 떠받들고 있다. 간혹 긴 바람이 불어와 나무를 치면 흰 옥가루의 꽃 수술이 흩어져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하다. 그 질펀하고도 농익은 형상을..
선인들의 유람록 <도고산> 김두량金斗樑, 1744년, 82×49.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두량은 도화서 화원으로 별채를 지냈고, '남리南里' 라는 호를 영조로부터 하사받은 인물이다. 이 그림은 그의 나이 49세 되던 때 안개 낀 가을 달밤의 정취를 그린 것으로 라고도 부른다. 잎이 다 떨어지 나뭇가지를 거칠게 묘사하고, 빠른 붓놀림으로 계곡의 급류에 속도감을 주었다. 무리 진 달과 계곡 너머 짙은 안개가 이 전경과 대조된다. 산의 본상本相을 숨겨두어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뜻을 담았다. 이산해李山海, 「달밤에 운주사를 방문한 기록月夜訪雲住寺記」 어느 날 저녁, 온창 고을 정 사또가 찾아왔다. 내가 말하였다. "공이 이곳을 다스린 지 서너 해가 되었으니, 이 산의 경승을 이미 잘 파악해서 돌아보셨을 테지요. 나를 위해 안내해 주..
선인들의 유람록 <계룡산> 전傳 조속趙涑, 《조창강화집趙滄江畵集》 중 17세기, 22.4×32.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본래 문인 화가 조속이 중국의 명문을 소재로 하여 그림과 제사題詞를 함께 엮은 《조창강화집趙滄江畵集》 가운데 들어 있다. 창강은 조속의 호이다. 제목으로 보아 구양수의 를 모티프로 삼은 듯하다. 다만 가을 산의 풍광을 감상하는 두 인물을 중심에 두었으므로 본래 주제와는 거리가 있다. 송상기宋相琦, 「계룡산 유람기遊鷄龍山記」 나는 전에 벌써 동학사의 이름을 들었지만 한 번도 구경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8월 20일 후에 아우 지경持卿(송상유宋相維)이 환煥 등을 데리고 가서 노닐고는 편지로 그 수석과 암자와 절간의 승경을 알려, 마음으로 더욱 쏠렸다. 중양일(음력 9월 9일)에 귀성을 하고는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