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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8) 안견, 「몽유도원도」, 비단에 수묵담채, 38.7×106.5cm, 일본 덴리대학교 중앙도서관 「몽유도원도」는 오늘날 전하는 조선전기 산수화의 걸작이며 기년작記年作이라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일본으로 팔려가 우리나라에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은 우리를 몹시 안타깝게 한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 운 일은, 막상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 자체에서 특별한 감흥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세월 속에 누렇고 붉 어진 비단바닥에 산봉우리며 나무숲을 그린 붓질이 희미하여 인상적인 선명함이 없고,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꿈꾸고 돌아왔다는 젊은 왕자의 꿈 이야기에서도 신선한 감동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일까. 이 그림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도 혹 그 쓸쓸함을 강조하고 혹 그 고요함을 감상하는데, 그것은 「몽유도..
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7) 김이혁 · 김홍도 · 김득신 · 이인문 · 윤제홍 외, 《고산구곡시화병》 종이에 수묵담채, 각 화면 60.3×35.2cm, 19세기 전반, 개인 소장 퇴계선생 이황의 '도산십이곡'은 경상도에 만들어졌고, 율곡선생 이이의 '고산구곡'은 황해도에 만들어졌다. 두 학자의 제자들은 이들이 주자선생의 '무이구곡'에 못지않다고 칭송하였다. 이황과 이이뿐 아니라, 조선의 많은 학자들이 우리 땅 곳곳에 '○○구곡'을 만들었다. 한반도의 구곡경영은 성리학적 생활터전을 이 땅에 만들고자 한 학자들의 의지였고, 학파 내부의 결속에 명분과 운치를 더하는 상징적, 지리적 터전의 생산이었다. 이 가운데 율곡 이이의 고산구곡은 우리 회화사에서 특별한 위상을 가진다. 이이가 그의 구곡을 노래한 「고산구곡가」는 후대에 산수화, 판화,..
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6) 이성길, 「무이구곡도」, 비단에 수묵담채, 33.5×398.5cm, 1592, 국립중앙박물관 철학이나 종교는 가끔 한 시대 젊은이들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조선중기의 젊은 학자들이 영혼을 바쳤던 철학은 '성리학' 이었다. 성리학은 '나의 본성性이 곧 우주의 이치理' 라는 '성리性理' 의 입지에서 출발한다. 개인 우주 속 의 우주적 본성을 찾아내어 견지할 것을 요구하는 성리학은, 조선중기 학자들에게 철저한 심성수양을 요구하였고, 이른바 올곧은 선비정신을 문인문화 내면 깊숙이 자리 잡도록 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성리학을 정립시킨 중국 남송의 학자 주희는 조선의 학자들에게 '우리 주자 선생' 으로 흠모되었다. 그리하여 주자가 머물렀던 무이산武夷山 계곡을 그렸다는 「무이구곡도」는 조선중기의 학자들에..
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5) 겸재의 부채 그림 두 폭, 「동리채국東籬採菊(동쪽 울타리 국화를 따노라)」 「유연견남산悠然見南山圖(그윽이 남산을 보노라)」 ◈ 도연명의 「음주飮酒」 20수 중 제5수 도연명의 「음주」는 전원으로 귀거래한 도연명 선생이 술에 취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한 시로서, 술에 취하여 지내는 것이 깨어서 사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음주철학이자 음주예찬이다. 「음주」는 모두 20 수로 이루어진 긴 연작시인데, 그중 제5수가 가장 유명하다. 제5수 중에서도 두 구절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을 따다가 그윽이 남산을 바라보노라東籬採菊 悠然見南山圖" 는 무심의 경지를 표현한 명구로 극찬 되었고, 도연명을 대표하는 표상의 이미지가 되었다. 여기서 감상하고자 하는 정선의 두 폭 선화扇畵(부채그림)는 이 두 구절을 그림으로..
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4) 도연명은 정절선생靖節先生, 오류선생五柳先生 등으로 불리며 흠모된 인물이다. 그의 「귀거래사」는 벼슬을 모두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간 그해(405년) 혹은 그 다음 해쯤 지어진 글이다. 이 작품에는 전원으로 돌아가는 기쁨과 전원생활의 즐거움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고, 전원에서 누릴 자유와 행복의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행복을 위해 현실의 부귀와 권력에의 욕망은 물론이요, 생명이라는 삶 자체에 대한 집착에서마저 자유로워질 것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있다. 전기, 「귀거래도」, 종이에 수묵담채, 109.0×34.0cm, 삼성미술관 리움 「귀거래사」를 그린 그림 「귀거래도」는 중국과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제작되면서, 유배를 떠난 이들에게나 현실에 머무는 이들 모두에게 현실 너머의 기상을 누리..
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3) 전 안견, 「적벽부도」, 비단에 담채, 161.5×102.3cm, 15세기 중엽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송나라의 문인 소식은 호가 동파東坡여서 흔히 소동파, 동파선생, 동파공 등으로 불렸고, '동파공의 문장' 이라 하면 명실공히 가장 뛰어난 문장으로 통했다. 특히 소식이 유배지의 뱃놀이를 읊은 「(전)적벽부」와 「후적벽부」는 송나라 문학을 대표한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중국 문학사의 백미로 꼽힌다. 중국과 한국의 문인들은 이를 매우 애호하여, 적벽이 언급된 시문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적벽부 전문을 옮겨 적은 서예작품과 이를 옮겨 그린 회화작품도 무수하다. 조선초의 안견이 그렸다고 전하는 「적벽부도」는 중국과 한국에 유전하는 수많은 「적벽부도」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이 안견의 필적이라는 데 ..
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2) ※ 인용: 고연희 저 《그림, 문학에 취하다》 허필, 「두보시의도」, 종이에 수묵담채, 37.6×24.3cm 당의 두보는 시성이라 불리며 한국과 중국에서 가장 존숭된 시인이었다. 허필이 택한 두보의 시는 「등왕정자騰王亭子」이다. 당나라의 등왕이 노닌 정자를 훗날 두보가 다시 돌아보고 지은 시로, 사색이 그야말로 곡진한 작품이다. 「두보시의도」의 세부도 허필의 이 그림에 그려진 풍경은 작은 정자 하나와 무성한 나무숲이다. 허필은 그림 위에 그가 아낀 두보의 시 한 구절을 적고 이를 택한 사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두보의 "봄날 꾀꼬리 대나무 숲에서 울고, 신선집의 개가 구름 사이에서 짖는다" 라는 시구를 읽고 음미하다가, 초선(허필)이 장난삼아 화첩에 그리노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떨려오더라. 讀杜..
그림이 된 문학, 문학이 된 그림 (1) ※ 아래 내용은 고연희 著 《그림, 문학에 취하다》 를 간추린 것이다. 옛 그림 속에 깃든 문학성은 그림을 독해하는 기본 문법이었고, 문자 향유의 특권을 누렸던 문사들의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건드린 장치이자, 그림 이해의 핵심 코드였다. 이것은 화면 위로 드러나기도 하고 숨기도 하면서 감상자를 끌어당겼던 '매력' 임에 틀림없다. 이것을 건져 내면 그림에 무엇이 남을까 싶은 문학성이, 그러나 오히려, 역사의 격변 속에서 오늘날 우리에게는 우리 옛 그림을 즐기지 못하도록 밀어 내는 힘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문학성, 즉 문학적 매력이라면, 이것은 모순된 상황이다. 현대인들은 훌륭한 문학작품이라 하면 긴 스토리에 문제의식을 담아낸 장편소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달랐다. 그들에게 문학의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