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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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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시(挽詩) 2 이가염, , 1984, 지본담채   이 불 오 사 곡   오 하 이 서 곡爾不吾死哭  吾何爾逝哭너는 내가 죽어도 곡하지 못할 텐데 내가 어찌 네가 간다고 통곡해야 하느냐  차 곡 시 하 곡   부 자 결 골 육此哭是何哭  父子訣骨肉이 통곡은 또 무슨 통곡이란 말이냐 부자가 골육이 떨어져나가는 이 마당에  슬 하 일 무 농   총 혜 수 양 독膝下日撫弄  聰慧秀兩獨내 무릎에서 날마다 너를 어르며 놀았는데 똑똑하고 준수함은 둘도 없을 것이라동 치 수 다 재   이 능 임 한 오童稚雖多在  爾能任寒○아이들이 비록 여럿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너는 추위와 더위도 잘 견뎠지  이 모 미 독 질   수 월 우 사 곡爾母彌毒疾  數月寓社谷너의 어미 심한 병이 갈수록 더해져 수개월을 사곡에서 살았을 때치 심 방 초 읍  ..
만시(挽詩) 1 만시(挽詩)란 죽음에 이른 자를 애도하는 내용으로, 아내를 기리는 도망시悼亡詩, 친구를 기리는 도붕시悼朋詩, 먼저 간 자식을 기리는 곡자시哭子詩 등이 있고, 그 외로 스승이나 제자, 친인척을 비롯, 자신이 거두던 종이나 시대의 영웅과 왕을 추앙하는 만시도 있고, 심지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슬퍼하는 자만시自晩時까지도 존재한다.슬픔과 격정이 담긴 오언절구五言絶句나 칠언율시七言律詩가 대종을 이루지만 애달픔을 배제한 단형구로 쓰기도 했다.죽음에 이른 조선조 권세가들의 문전에는 만시晩時와 만장挽章이 수북 할 정도였으니 조선조 사대부들의 문집 마다빠짐없이 등장하는 게 바로 만시다. 구구절절 산문 형태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긴 호흡의 산문 형태 보다는 아무래도 농축된 형식의 만시가 훨씬 더 가슴에 와 닿는 것을 ..
막고굴 (4) 막고굴 (4)     막고굴 제156굴 남쪽 벽 중 '무악' 장의조가 하서 지역을 수복한 것은 돈황 역사의 큰 사건이다.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막고굴 제156굴에 거대한 역사화(약칭)를 그렸다. 156굴은 사주자사 장회심이 숙부인 장의조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석굴이다.주실 남쪽 벽과 동쪽 벽의 입구 남측 하단에 걸쳐 그려져 있다. 그림의 전체 길이는 8.2미터, 폭 1.03미터이다. 의장을 갖추고 출행하는 주제 부분의 길이가 약 6미터다. 그림 속에 나오는 인물이 모두 114명이고, 말 80마리, 노새 2마리, 낙타 2마리 등이 보이며, 그 외에도 사냥개와 양 등도 있어 출행의 진용이 아주 웅장하고 화려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질서 있게운행하는 구도는 엄숙하면서도 열렬한 기세를 느끼게 한다. 그림 솜..
막고굴 (3) 막고굴 (3)   막고굴 제12굴 동벽 입구 상단 색의변 공양인상  돈황 호족은 막고굴 창건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당나나 때는 이들 호족의 '가굴家窟' 창건이 가장 활발했던 때다.막고굴에서 규모가 크고 예술적으로 뛰어난 석굴은 대부분 호족의 가굴이었다. 156굴, 94굴, 12굴, 331굴, 332굴, 96굴, 231굴, 220굴, 85굴, 256굴,은 모두 장씨, 색씨, 적씨, 모용씨 등 호족이 창건한 것이다. 색의변은 금광명사金光明寺의 승려로, 주요 활동기는 토번국 통치기와 귀의군 초기에 도법률로 재임했다.     막고굴 제12굴 서벽 감실 하단 공양인 행렬       막고굴 제332굴 내부 332굴 남쪽 벽에 그려진 ,열반경변도>는 전부 9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가..
막고굴 (2) 막고굴(2)  막고굴 제276굴 북쪽 벽 보살상 수 양제의 서순(西巡)중국의 전설 가운데 주나라 목왕이 천하를 주유하는 이야기가 있다.여덟 마리의 준마가 끄는 신비한 마차를 타고 구름과 안개를 몰고 다니면서 세상을 여행했다.그는 곤륜산에서 꿈에 그리던 서왕모를 만난다. 사서에는 진시황이 즉위 후 27년(서기전 220년), 중국을 통일한 다음 해에 농서 지역을 순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역사에서 최초로 중국 서부를 순시한 황제는 수나라의 양제(煬帝,재위 604~618) 다. 그의 족적은 하서주랑의 장예까지 이르렀다. 중국 역사서에 기록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체계적인 실크로드 여정에 대한 기록은 배구의 《서역도기》이다.배구는 이 책을 수 양제에게 바쳤고 양제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매일같이 배구를 ..
동짓날의 수록사 장성 수록사 내려다 보이는 평림댐 산을 돌아 내려와 동지 팥죽 공양 차 수록사 종무실에 들러 오랜만에 해후한 해현 스님. 경내 일대 차밭이 과거 보다 많이 푸르러 졌고 더욱 더 청정하게 다가오는 느낌.
막고굴 (1) 막고굴 (1) 장안長安에서 지중해 동쪽 연안까지 이어진 실크로드.그 중 간쑤성 하서주랑河西州廊 서쪽 끝 돈황敦煌은 중원과 서역의 교통 요충지로써 동 서양의 문명 교차점이자 여러 민족의 문화가 교류와 융합을 거듭한 역사적 현장으로, 그 중에서도 4~14세기까지 불교의 영향이 지대했던 곳이다. 막고굴, 천불동, 유림굴 등 여러 불교 관련 석굴 사원을 통칭해서 돈황 석굴이라 한다는데단 한 번도 발걸음을 해본적이 없지만 늘 꿈에 그리던 곳이기에 오늘도 자료를 챙겨가며 눈팅을 시작하려 한다.      막고굴조상비莫高窟造像碑, 육자진언갈六字眞言碣     실크로드 안내도 비단길의 개통에는 장건(張騫,?~서기전 114)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데...       돈황 漢 왕조 장성 유적      돈황 진..
海東 十八賢 海東十八 賢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역사 기록에 등재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피노라면 대개 두 부류로 나누어 진다.첫째는 양식이 행동으로 옮겨지면서 자신에게 불운이 된다는 사실을 감내하면서라도 국가나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이다.둘째는 자신의 실익만은 좇다가 공익을 해친 부류들의 참담한 결과를 들 수 있겠다.두 말할 것도 없이 후대의 사람들은 첫 번째 경우의 선인들의 행적을 귀감으로 삼는다.후세까지 아름다운 이름과 두터운 신망을 남긴 고매한 선비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책 속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었다.                                              인용 : 신봉승 著 『조선 선비의 거울 문묘18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