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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막고굴 (3)

막고굴

(3)

 

 

 

막고굴 제12굴 동벽 입구 상단 색의변 공양인상

 

돈황 호족은 막고굴 창건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당나나 때는 이들 호족의 '가굴家窟' 창건이 가장 활발했던 때다.

막고굴에서 규모가 크고 예술적으로 뛰어난 석굴은 대부분 호족의 가굴이었다. 156굴, 94굴, 12굴, 331굴,

 332굴, 96굴, 231굴, 220굴, 85굴, 256굴,은 모두 장씨, 색씨, 적씨, 모용씨 등 호족이 창건한 것이다.

 

색의변은 금광명사金光明寺의 승려로, 주요 활동기는 토번국 통치기와 귀의군 초기에 도법률로 재임했다.

 

 

 

 

 

막고굴 제12굴 서벽 감실 하단 공양인 행렬

 

 

 

 

 

 

 

막고굴 제332굴 내부

 

332굴 남쪽 벽에 그려진 ,열반경변도>는 전부 9개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장면부터 사라쌍수 아래에 누운 석가모니의 모습, 열반, 입관, 어머니 마야 부인을 위해 설법하는 모습, 발인, 화장, 석가모니의 사리를 두고 주변 국가의 여덟 왕이 다투는 장면,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여공양하는 장면까지 순서대로 이어지는 그림으로 전개된다. 이런 형식의 <열반경변도>는 수나라 때의 한 장면의 열반경변도에 새로운 창의성이 들어간 것이다. 이는 무측천이 적극적으로 미륵신앙을 추앙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석가모니의 열반은 미륵의 화신인 무측천의 황제 즉위에 유리한 소재였던 것이다.

 

 

 

 

 

 

 

막고굴 제148굴 내부

 

대당농서이부군수공덕비는 약칭 '대력비'라고 한다. 이씨 집안에서 제148굴을 창건한 기리는 공덕비다. 이 비석은 온전하게 보존되어 지금도 제148굴 전실 남측에 서 있다. 장경동에서 출토된 뒤 약탈된 S.6203호, P.3608호, P.4640호  필사본은 이 비석의 명문을 베낀 것이다. 그중 P.3608호 필사본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P.4640호와 S.6203호는 비문의 일부만 잔존한다.
148굴은 막고굴 남쪽 구역의 남단 2층에 위치한다. 석굴의 형태는 평면이 가로로 긴 장방형이며 아치형 천장이다.서벽 앞에 벽돌을 쌓아 만든 부처의 침상이 있고, 그 위에 석가모니 열반상이 누워 있다. 불상의 전체 몸길이는 15미터이며두 눈을 가늘게 뜨고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 팔을 베개처럼 머리 아래에 괴고 있다. 두 발은 가지런히 모았고다리를 붙이고 누운 자세다. 석가모니의 뒤로 제자, 천인, 보살 등 애도하는 인물들 72명이 늘어서 있다.
서쪽 벽의 <열반경변도>는 길이가 23미터, 높이가 2.5미터에 달한다.그림의 총 면적은 약 58평방미터로 막고굴에서 가장 큰 경변도다.



 

 

 

 

막고굴 제148굴 통로 천장의 남측 <보은경변도> '효양품(孝養品)'


148굴은 대력 11년 776년에 완공되었다. 이 석굴은 매우 특수한 시점에 착공했다.천보天寶 14년 755년은 안로산이 하북성에서 반란을 일으킨 해다. 당나라 조정은 돈황을 포함한 하서 지역, 농우 지역 등의 지방군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 바람에 서쪽 변경의 방비가 허술해졌다. 토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하서와 농우 지역의 광대한 영토를 점령했다. 당나라는 대종이 재위 하던 대력 연간에 돈황 한 곳만 외롭게 남은 상태로 돈황성은 함락 직전의 위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이씨 집안은 제148굴을 착공한다. 석굴에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에 보답할 것을 가르치는 《보은경報恩經》내용을 벽화로 그렸다. 이는 돈황 사람들에게 함께 적을 맞아 싸우고 나라를 지키자고 고무하는 것이었다.

 



 

 

막고굴 제231굴 동벽 문 상단의 음백륜 부부 공양인 초상

 

음백륜의 네 아들 중 큰아들 음가정만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음가의가 형 음가정이 고민하는 것을 보고 연유를 물었다.

음가정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지금의 황제와 7대까지를 기리는 석굴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 일은 음가의를 비롯해

다른 형제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다. 형제들은 힙을 합쳐 막고굴에 가굴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것이 제231굴이다.

 

 

 

 

 

막고굴 제220굴 통로 북쪽 벽 <신양문수변> 및 공양인 초상

 

220굴 서벽의 감실 아래에는 '적가굴翟家窟'이라는 세 글자가 씌어 있다.

이 석굴이 '가굴'의 성격을 띤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막고굴 제220굴 동벽 북측 <유마힐경변도> 중 '제왕도'

 

220굴의 착공 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정관 16년에 이 굴이 이미 공사 중이었고, 용삭龍朔 2년 662년 완공되었다.

이것만 보아도 적씨 집안은 220굴을 짓는 데 몇 십 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유마힐'이 학창의를 입고 흰 두건을 둘렀으며 손에는 불자(佛子 먼지털이)를 쥔 모습이다. 옴을 앞으로 살짝 기울인 자세가

문수보살과 대승불교 교리에 관하여 격렬한 변론을 펼치는 듯하다. 다른 한 쪽에는 문수보살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천인의 옷을 걸치고 구슬 목걸이를 걸고 있다. 그의 주변을 여러 보살과 제자들, 천인들이 둘러싸고 있다. 가장 멋진

부분은 제왕이 유마힐에게 질문하는 장면이다. 머리에 면류관이 얹혀있고 어깨를 펴고 고개를 치켜든 채 성큼성큼 걷는 모습이

기세등등한 천자의 모습이다. 제왕의 뒤로 빽빽하게 둘러선 신하들은 공손하면서도 부드럽고, 솔직하고 대범하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으로 <역대제왕도>보다 30년 정도 앞선 작품이다.

 





막고굴 제85굴 <법화경변도>
85굴은 도승통 적법영의 공덕굴이다. 주실에는 14폭의 경변도가 그려져 있는데, 막고굴의 경변도 중에서 가장 많은 장면을 담았다.특히 미륵경변, 아미타경변, 약사경변 등 불교의 정토신앙이 주된 내용이다. 당나라 때 정토신앙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적법영은 선사였기 때문에 선종과 관련이 있는 《능가경》, 《금강경》, 《밀엄경》, 《사익경》의 내용을 담았다.또한 석굴 중심의 불단에는 손에 《금강경》을 들고 있는 가섭존자의 소조상을 안치했다. 이 역시 선종신앙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85굴의 천장 남쪽 경사면에 ,법화경변도>가 그려져 있는데, 그림의 규모도 크고 다양한 장면을 묘사해 내용이 풍부한 작품이다.<법화경변도>에 나오는 장면은 모두 102개나 되며, 《법화경》제28품 중에서 24품의 내용을 담았다.막고굴 <법화경변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유림굴 제12굴 남쪽 벽면 모용귀영의 <출행도>

 

 

 



막고굴 제359굴 북쪽 벽 토번 복식을 입은 공양인 초상화(중당 시대)
토번은 돈황을 통치하면서 강제적으로 토번화 정책을 폈다. 돈황 백성들에게 토번 옷을 입고 토번 말을 쓰도록 강요했다.토번은 차차 돈황 통치 정책을 바꾼다. 돈황 현지의 명문 호족을 이용하고 불교를 적극 장려하면서 승려를 우대하는정책을 펴게 된 것이다. 토번 점령 말기가 되면 심지어 돈황 지역의 부분적인 행정권, 병권 및 조세관리권을 돈황의 호족몇 가문에게 넘겨준다. 통치 정책의 변화로 토번 점령하의 돈황사회가 다시 반세기 가량 안정과 발전 국면을 맞는다.토번에 협력한 돈황의 호족 가문은 음씨 집안이 대표적이다. 토번이 돈황을 점령한 뒤 음씨 집안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상태가 되었다.

"곰의 아들은 강보를 벗어나 문신을 하고, 원앙 부부는 쪽찐 머리를 풀고 변발을 하네."

이 짧은 시구는 사주 사람들이 강압 속에서 한족 풍습을 버리고 토번식으로 문신과 변발을 해야하는 심정을 잘 드러낸다.

 

 

 

 

 

 

막고굴 제231굴 동쪽 벽 입구 상단의 음백륜 부부 초상화(중당 시대)

 

음백륜은 눈물을 머금고 토번 조정의 신하가 되었다. 토번은 사주에서 통치혁을 강화하려고 음씨 집안이라는 돈황 명가를

적절히 활용했다. 음백륜은 곧 토번이 임명하는 사주돔누친표부락대사가 되었다. 음백륜의 큰아들 음가정은 관직에 종사

하지 않고 처사로 지냈다. 그가 막고굴 제231굴의 공덕주다. 막고굴 231굴을 착공할 때 음백륜과 색씨 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래서 토번 복식이 아니라 한족 복식을 입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토번어 《대반야경》, 돈황 장경동 출토(중당 시대)

 

토번어 사경승 중에 절반은 한족이었다. 당시 돈황 한족이 토번어를 상당히 능숙했음을 알 수 있다.

 

 

 

 

 

 

막고굴 제112굴 남쪽 벽 <관무량수경변도>의 '반탄비파'

 

비파를 등 뒤로 들고 연주하는 모습(반탄비파反彈琵琶)이 담긴 대표적인 작품이다.

극락세계의 아름다운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아미타불이 설법하는 장면에 부수적으로 악단의 연주 모습을 담았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위치에 등 뒤로 비파를 연주하며 독무를 추는 사람이 배치되었다.

그 인물은 왼발로 땅을 딛고 엄지발가락은 위를 향하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를 치켜들고 있다.

두 다리를 번갈아 차올리는 동작인 듯하다. 왼손은 비파의 목 부분을 쥐고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려 현을 뜯는다.

몸에 걸친 장식 끈이 팔랑거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다. 이 동작은 난이도가 아주 높을 뿐 아니라

인물의 조형미가  특히나 우아하고 매혹적이다.

 




 

 

         유림굴 제25굴 북쪽 벽 <미륵경변도> 중 '토번혼례도                     막고굴 제159굴 감실 내 남쪽 벽의 보살상

 

25굴 그림은 티베트 지역의 인문, 복식, 일상용품 등을 알 수 있는 진귀한 도상 자료다.

159굴의 보살상은 얼굴이 옥처럼 깨끗하고 입술이 붉으며 손가락은 난초처럼 우아하다.

옷자락은 승천하는 용과 같고, 신체의 부드러운 선이 속세를 잊게 만든다.

 

 

 

 

 

 

막고굴 제159굴 동쪽 벽 입구 남측 <토번왕예불도>

 

 

 

 

 

 

 

막고굴 제159굴 동쪽 벽 입구 북측 <중원제왕예불도>

 

 

 

 

 

 

 

 

 

막고굴 제158굴 열반불

 

석굴은 건축, 조각, 벽화가 한데 모인 종합예술이다. 막고굴 제158굴은 이런점을 잘 드러내는 석굴이다.

토번 시기에 지어진 대형 열반굴로, 수불동(부처가 잠든 동굴)이라 불린다. 열반이란 불교도가 수행으로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다. 열반에 들면 육체는 죽어 적멸하지만 수행자는 영원히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육도윤회를 초월한다. 이는 탄생도 죽음도 없는 지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석굴 내부는 거대한 관 속 공간처럼 보인다. 석가모니상은 몸 길이가 15.8미터에 달하고, 불단 위에

오른팔을 베고 누워 있다. 석가모니의 베개에는 대안함주련주화문大雁銜株聯株花紋(구슬을 입에 문

기러기와 구슬이 연결된 모양이 결합된 무늬)이 새겨져 있다.

 

 

 

 

 

 

 

막고굴 제158굴 남쪽 벽 <십대제자거애도>

 

십대제자의 애도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 속의 가섭은 코가 우뚝하고 눈이 우묵하며 슬픔을 이기지 못해

앙상한 손을 관을 향해 뻗고 있다. 그 옆에는 제자 두 명이 가섭을 부축하고 있다. 아난은 땅바닥에 무릅을 꿇고

한 손은 땅에 대고 또 한 손은 귓가에 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마지막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하기도 하고, 석가의 입적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듯하기도 하다.

 

 

 

 

 

 

 

막고굴 제158굴 북쪽 벽 <제왕거애도>

 

여러 제왕들이 슬퍼하는 모습이 담겼다. 석가의 열반 소식이 전해진 후, 주변 여러 나라에서 왕이 신하들을 이끌고

찾아왔다. 모두들 슬픔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다. 이 그림은 토번 점령기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당시 벽화의 보편적

특징으로, 그림에 나오는 여덟 나라의 국왕 중에 토번왕이 가장 앞에 있고, 그 뒤를 중원의 황제가 따르고 있다.

중원의 황제는 면류관을 쓰고 두 명의 궁녀가 부축하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은 모두가 코가 우뚝하고 눈이 움푹

꺼진 얼굴형이라 당시 서역의 여러 나라 수장일 것으로 생각된다. 각국의 제왕은 슬픔이 지나쳐 삶의 의지를 잃은 듯하며

각자 가장 격렬한 방식으로 석가모니의 열반을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귀나 코를 자르고, 가슴을 가르는 등의

자해 행위를 하고 있다. 역사서에서 당 태종이 사망했을 때 사이四夷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인용: 둔황연구원 · 판진스 편저 / 강초아 옮김 『실크로드 둔황에서 막고굴의 숨을 역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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