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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만시(挽詩) 1

 

 

 

 만시(挽詩)란 죽음에 이른 자를 애도하는 내용으로, 아내를 기리는 도망시悼亡詩, 친구를 기리는 도붕시悼朋詩,

먼저 간 자식을 기리는 곡자시哭子詩 등이 있고, 그 외로 스승이나 제자, 친인척을 비롯, 자신이 거두던 종이나

시대의 영웅과 왕을 추앙하는 만시도 있고, 심지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슬퍼하는 자만시自晩時까지도 존재한다.
슬픔과 격정이 담긴 오언절구五言絶句나 칠언율시七言律詩가 대종을 이루지만 애달픔을 배제한 단형구로 쓰기도 했다.

죽음에 이른 조선조 권세가들의 문전에는 만시晩時와 만장挽章이 수북 할 정도였으니 조선조 사대부들의 문집 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게 바로 만시다. 구구절절 산문 형태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긴 호흡의 산문 형태 보다는

 아무래도 농축된 형식의 만시가 훨씬 더 가슴에 와 닿는 것을 볼 수 있다. 저물 '晩' 은  끌 '輓' 으로 쓰기도 한다.

 




 

 

운수평, <방오병절지도>, 17세기, 지본채색, 27.5×43cm, 오사카시립미술관 소장.

 

 

 

    매  송  하  서  부   환  종  칠  석  귀    

梅松河西賦  還從七夕歸

늘 하서공의 「칠석부를 외우더니」 칠월칠석날에 돌아가고 말았구나

명  심  장  소  질    하  처  경  의 의

明心將素質  何處更依依

맑은 마음에 재주 있는 너를   어디 간들 다시 생각나지 않으랴

 

 

- 「여종 소합의 죽음을 슬퍼하며 棹婢蘇合 」 『송천선생유집松川先生遺集』권1

 

선조 때 공조참판을 지냈으며, 시문에 뛰어나 당시 팔대 문장가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협던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1519~1581)이 소합蘇合이라는 여종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시이다.

양응정은 이 시에 다음과 같은 짤막한 주註를 달아놓았다.

 

註 : 그녀는 가사歌詞로 서울에서도 이름이 났으며, 「칠석부七夕賦」를 잘 외었다.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이 그녀를 극진히 아껴주었는데, 나이 열일곱에 칠월칠석날 죽었다.

 

 

「칠석부」는 당시 시문에 뛰어났던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가 견우와 직녀를 소재로 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로  55구에 이르는 장편이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이수광(1563~1628)은, 김인후가 「칠석부」를

젊은시절 임금이 문신들을 대상으로 매달 시험을 보이는 월과月課에서 지었는데, 최고의 작품으로 뽑혔었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경종 때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의 시부詩賦 를 보기를 요구하자 김인후의 「칠석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이 뛰어난 문학성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한편 고죽 최경창은 양응정의 문인으로 당시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 ·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1537~1582)과

 함께 소위 '삼당파三唐派 시인' 으로 불릴 만큼 시에 뛰어났었다고 한다. 그런 고죽이 소합이라는 한 여종을 그만큼 

 아껴주었다는 것은 그녀가 시 짓는 재주도 있었으리라 짐작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하서 김인후의 「칠석부」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가을바람 소슬하게 일어나는 이 저녁 궁궐은 우뚝이 둘러서 있는데 은하수 환한 빛을 바라보니 이 좋은 계절이

이름이 났음을 느끼게 되네. 멋진 낭군과 만나볼 좋은 기회임을 생각하고 저무는 해에 만날 날을 약속했다오.

구름치마의 현란함을 헤치고 푸른 용의 꿈틀거림을 타고 가네요.하늘 나루터 바라보며 몰아가는데 날더러

영교를 건너오라 하시니 앞길이 점점 가까워옴을 기뻐하고 님이 나를 맞이함을 기뻐합니다.이슬은 엉기어

계수나무 궁전에 빛나고 밤은 맑고 차가워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신선 같은 옷자락 부여잡고

오락가락 노니니 한두 마디 말에 온갖 시름이 사라지네요.


아름다운 꽃들이 쉬이 짐이 시름겹고 이별이 잦아짐이 한스러워요 마주보고 한숨 쉬며 슬퍼하고 달을 모는 자가

서쪽으로 내달림이 원망스럽네요. 하늘 닭은 날개를 치며 새벽을 재촉하고 날이 밝으니 더 오래 머물 수가 없어요

어쩔줄을 몰라하며 한없는 그리움에 슬퍼하고 아리따운 님을 생각하니 넋은 갈 곳을 잃었지요.

맑은 바람 맞으며 차마 이별하지 못한 채 눈물만 마구 흘러니리며 흩어지네요.
구름은 아득히 바다 빛을 타오르고 멀리멀리 바라보니 길은 아득한데 님을 생각하니 머무를 수가 없어요.

날이 갈수록 내 슬픔은 더해가고 베틀 북 돌리기도 지쳐 어찌하지를 못하겠어요.

 

견우님이 하수가에서 물 마시려면 다시 삼백 일을 기다려야겠지요.

다시 만날 기약은 정해져 있으니 상제님은 그 은혜에 감사해야겠지요.

여전히 세월은 흘러가겠지만 하물며 하늘과 땅이 무궁할 것이니 또 다시 만날 날이 많을 거예요.

저 멀리 수자리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 그리고 저 땅 끝으로 내어쫒긴 신하는

님이 돌아오지 않음을 슬퍼하고 임금과 영영히 끊어졌음에 눈물흘리며

죽어도 한이 되어 울음을 삼킬 것이니 어찌 이다지도 하나같은지요.

 

바라건대, 직녀와 견우는 오랫동안 헤어진다 하여 슬퍼하지 마오.

저 하늘 멀리 바라다보며 이 속세에서도 기다리는 사람 있으니

길은 아득하고 아득하여 갈 수도 없는데 그 누가 견우 직녀 만남을 엿볼 수 있으랴.

괴이하구나, 배 타고 하늘로 간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홀로 물결 거슬러 올라가며 이리저리 바라봐도 끝내 망망하여 알 수가 없으니

내 장차 이 이야기를 참과 거짓 사이에 두리라.

 

 

 

 

 

 

 

 

김홍도, <추성부도秋聲賦圖>, 1805, 지본담채, 56×214cm, 리움미술관 소장.

 

 

 

우 담 화 은 계 초 향    삼 십 년 광 탄 지 망

優曇花隱桂?香  三十年光彈指忙

우담꽃도 숨고 계수나무 향기도 사라져 삼십년 세월이 순식간처럼 바빴구나

독 유 노 옹 신 세 고     춘 소 무 매 와 허 당

獨有老翁身世苦  春宵無寐卧虗堂

이 늙은이만 홀로 남아 신세가 고단한데 봄밤에 잠들지도 못하고 텅 빈 집에 누웠네


- 「스스로 슬퍼하며 (자도自悼)」 『서당사재西堂私載』 권2

 

 

영조 때 대제학과 판서를 지낸 서당西堂 이덕수李德壽(1673~1744)가 아들 이산배李山培(1703~1732)를 앞세우고서

지은 3수 중 두 번째 詩다. 이산배는 매우 명민明敏 했던 듯, 열일곱에 司馬試에 합격했고, 스물여덟에 문과 庭試에

합격 했는데 특히 문학에 뛰어나 붓을 들었다 하면 수천 자의 글을 쏟아냈던지라 영조 임금도 그의 죽음을 오래도록

안타까워 했는데 불과 서른 두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시에서는 30년을 '탄지彈指', 즉 손가락을 튕길 만큼의

짧은 시간으로 표현했다. 아비 이덕수는 아들이 죽은 후 무덤을 찾아 또다시 절절함을 토해 낸다.

 

 

오 년 육 십 여 삼 십    부 자 심 연 지 차 궁

吾年六十汝三十  父子深緣至此窮

내 나이 육십이요, 네 나이 삼십인데 부자간의 깊은 인연이 여기서 끝이라니

유 의 산 사 휴 서 거     배 토 호 연 재 안 중

猶疑山寺携書去  杯土胡然在眼中

아직도 산사에 책 읽으러 간 것 같은데 한 줌 흙이 어째서 네 눈 속에 있단 말이냐

 

- 「죽은 아이의 묘를 돌아보면서 省亡兒墓」 『西堂私載』 권10

 

 

 

팔대산인, <팔팔조도叭叭鳥圖>, 지본수묵, 31.8×27.9cm, 개인 소장

입 문 환 출 문    거 두 망 전 촉

入門還出門  擧頭忙轉矚

문을 들어서려다 다시 나와서 고개 들어 바쁘게 두리번대네.

남 안 산 행 화    서 주 로 오 륙

南岸山杏花  西洲鷺五六

남쪽 언덕엔 산 살구꽃이 피었고 서쪽 물가엔 해오라비 대여섯

 

- 「슬픔을 피하려고 躱悲」 『임연당집臨淵堂集』

 

 

산운山雲 이양연李亮淵(1771~1856)의 시다. 얼핏 어떤 내용을 나타내는지 알기 어렵다.

다만 제목을 이해한다는 조건 하에서 시인의 행동을 유추해 볼 뿐이다. 이양연은 그리 널리 알려진 바 없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83세의 장수를 누린 사람으로 한때 벼슬길에 나서기도 했지만 대부분을

 방황과 유랑으로 보낸 인물로, 집안의 줄초상을 겪은 참담한 심경을 시로 형상화 한 것.

아래의 시 역시 아내와 아들을 잃고 난 뒤에 쓴 것이다.

 

 

거 년 금 일 석    아 행 귀 자 해

去年今日夕  我行歸自海

작년 이맘때인 오늘 저녁에 저 바다에서 돌아왔을 때

만 당 영 소 인    이 인 금 부 재

滿堂迎笑人  二人今不在

집 안 가득 웃으며 맞아주던 이 그 두 사람 지금은 있지를 않네

 

 

 

일제 강점기 천재적 인물이었으며 『조선문학사』를 썼던 김태준金台俊(1905~1950)은 이양연의 시를

직접 필사하여 외우곤 했을 정도로 그의 시를 애송했다고 한다. 이양연의 시는 매우 민중적이며

한국적인 서정을 노래한 것이 뚜렷한 특징이라고 봐야겠다.

 

 

 

 

 

푸바오스, <만천비설>, 1957, 45.8×48.3cm.

 

 

 

팔 년 칠 세 병    귀 와 이 응 안

八年七歲病  歸臥爾應安

팔 년간을 일곱해로 앓았으니 돌아가 누운 넌 응당 편하리라

지 련 금 야 설    리 모 부 지 한

只憐今夜雪  離母不知寒

다만 가여운 건, 오늘처럼 눈 내리는 밤인데도 어미와 헤어져서 추운 줄도 모른다는 것

 

- 「죽은 손녀를 슬퍼하며 」 『대동시선大東詩選』

 

 

남씨 부인이 손녀의 죽음을 애타하며 지은 시인데,  남씨 부인에 대해서는 『대동시선』에

단지 지사知事 남취명南就明의 딸이요, 동지부사 이필운李必運의 부인이라고만 소개되어 있다.

순조 때 홍문관 굘를 지냈으며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궁오窮悟 任天商(1754~?) 같은 이는 『시필詩筆』에서

"시는 정에서 생겨나고 정은 시에서 일어나는데, 시가 그 정경과 함께 이르렀으니 글자 글자마다 눈물을 흘릴 만하다.

참으로 이 시는 죽은 이를 슬퍼하는 작품 중에서도 빼어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1>

중 추 상 여 매    아 심 유 잠 통

中秋喪汝妹  我心猶○痛

중추절에 너의 누이 잃어버려 내 마음이 아직도 비통스러운데

수 지 금 일 사    우 여 전 소 몽

誰知今日事  又如前宵夢

누가 오늘 같은 일 알았겠냐만 또 여전히 꿈을 꾸는 것만 같구나

 

 

 

<2>불 가 척 아 친    이 사 오 불 곡

不可戚我親  爾死吾不哭

내 부모를 슬퍼할 수도 없었으니 네가 죽어도 곡하지 못하다가

출 문 시 일 통    비 풍 취 애

出門始一慟  悲風吹崖谷

문을 나서서야 한바탕 통곡하니 슬픈 바람만 저 골짝에서 불어오네

 

 

 

<3>

일 만 도 금 곡   산 심 설 압 송

日晩到金谷  山深雪壓松

해 저물녁에야 금곡에 이르니 산은 깊고 눈은 소나무를 누르네

매 지 이 매 측   지 하 상 상 봉

埋之爾妹側 地下徜相逢

너의 누이 곁에 너를 묻으니 지하에서라도 서로 만나 놀거라

 

 

 

<4>

첨 지 불 견 면    고 지 불 문 성

瞻之不見面  叩之不聞聲

바라보아도 너의 얼굴 볼 수 없고 두드려보아도 너의 목소리 듣지 못해

사 자 장 이 의    생 자 약 위 정

死者張已矣  生者若爲情

죽은 자는 길이길이 끝나버린 것이지만 산 자는 이 정을 어찌하란 말이냐!

 

 

 

<5>

빙 상 잡 지 응    극 목 교 원

氷霜匝地凝  極目郊原逈

얼음과 이슬은 땅에 어키어 덮였는데 눈이 빠지도록 들판 저 멀리 바라보네

오 신 상 각 한    이 체 능 무 냉

吾身尙覺寒  爾體能無冷

내 몸은 여전히 추위를 느끼건만 너의 몸은 추운 줄도 모르겠구나

 

 

 

<6>

고 지 비 무 익    유 불 능 금 비

固知悲無益  猶不能禁悲

참으로 슬퍼한들 소용없음 알지만 그리도 이 슬픔 그치질 못하겠네

불 어 암 타 루    시 오 념 여 시

不語暗○淚  是吾念汝詩

말없이 남몰래 떨어지는 눈물 속에 너의 살았을 적 모습을 생각해보네

 

 

 

<7>

이 백 기 강 지    아 루 도 철 천

爾魄旣降地  我淚徒徹泉

너의 혼백은 이미 저 땅으로 내려갔건만 나의 눈물은 오직 황천까지 사무칠 것이라

고 지 서 하 과    난 학 동 문 현

固地西河過  難學東門賢

참으로 서하가 지나치게 슬퍼한 줄은 알았지만 동문오東門吳의 현명함은 배우기가 어려워라

 

 

 

<8>

래 시 여 이 해     거 시 난 여 공

來時與爾偕  去時難輿共

올 때엔 너와 같이했건만 갈 때는 너와 같이할 수 없구나

미 산 할 장 구     엄 몌 료 일 송

  眉山割腸句掩袂聊一誦

미산의애간장을 끊어내는 시구로 소매로 얼굴 가린 채 읊어보노라




<9>

처 처 산 일 모    거 거 천 口
凄凄山日暮  去去泉口幽

쓸쓸히 서산의 해도 저물고 가도 가도 황천길은 아득해

오 비 부 하 위    이 상 안 차 구

吾悲復何爲  爾尙安此句

내 이 슬픔은 또 어찌 견디랴만 너는 이 시구로 편해지거라

 

 

 

<10>

곡 진 부 수 루    루 수 환 오 열

哭盡復垂淚  淚收還嗚咽

통곡이 끝나도 또 눈물이 흐르고 그 눈물 거두니 또 울음이 터지네

오 열부  하 언    원 장 촌 촌 절

嗚咽何言  猿腸寸寸絶

울음이 터짐에 또 무슨 말을 하랴 그저 애간장만 마디마디 끊어질 뿐

 

 

- 「아들의 죽음을 통곡하며 哭子」 『겸재집謙齋集』 권 2

 

 

영조 때 좌의정을 지냈던 겸재謙齋 조태억趙泰億(1675~1728)이 자신의 둘째 아들이었던 의빈儀彬이 저세상으로

떠나자 남긴 오언절구 10수의 연작시다. 만시는 대체로 단편인데 반해 이처럼 연작시 형태는 많지 않아 보인다.

슬픔과 애닯음이 큰 만큼 더 많은 말을 쏟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던 듯. 일곱째 수에서는 자신이 슬픔을 참으려 해도

도저히 참을 수 없음을 서하와 동문오에다 비견했다. 서하는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를 말한다.

자하가 西河에 있을 때 아들을 잃은 슬픔에 통곡하다가 실명失明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

 

 

인용: 전송열 著 『옛사람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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