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취월당 (751) 썸네일형 리스트형 세상을 바꾼 사진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가 발명한 은판 사진 기술을 1839년에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인정하면서 사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사실 비공식적인 사진의 역사는 그로부터 최소 12년 전에, 조세프 니세포르 니에프스가 '빛으로 그린' 불안정한 이미지를 처음 손에 넣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위대한 발명품이 종종 그러하듯이 사진의 발명과 관련해서도 많은 논쟁과 '반反 역사'가 존재한다. 어찌됐건 이 새로운 기술이 19세기 전반에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래되었고, 그때부터 놀라운 속도로 국경과 대륙을 넘어 전파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래 사진들은 지난 1세기 반 동안 벌어진 중요한 순간들을 기록한 것들로 우리에게 대부분 익숙한 내용이다. 스티브 매커리Steve McCurry, 「아프간 소녀」,.. 일출, 일몰 그리고 야경 새 거처에서의 일출 일몰 새롭게 둥지를 튼 거처 12층에서의 조망. '아파트'라는 게 이내 생리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지만 세상사가 어디 뜻대로 만. 자연을 마당으로 끌어들인 공간에서 성장해 온 이력을 떨쳐 내기가 그리 간단치 않았던 지난 수 년. 오밤 중 벌떡 일어나 마음을 추스리던 .. 呑虛, 100년을 내다본 지혜 2 탄허 선사 평복 진영 ● 국운이 트이는 시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새벽이 밝기 전, 짧은 순간이지만 주변은 가장 어두컴컴할 수 있다. 고난에 대한 각오도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도덕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힘이 종교가 아닐까 한다. 그런 종교는 우주 종교라 할 수 있다. 유불선을 한 덩어리로 하여 위정자가 그 장점만 취한다고 하면 훨씬 나아질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유교가 제일이고, 치신지학治身之學으로는 도교가 제일이며, 치심지학治心之學으로는 불교가 제일이다.이런 장점을 잘 취해서 민중을 다스린다면 좋을 것이다. 종교라는 것은 끝까지 자각하는 것이고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자각하면 모든 고통이 빠져나간다.우주가 생기기 전의 자리.. 呑虛, 100년을 내다본 지혜 1 1913년 전북 김제 출생, 속명은 택성. 오대산의 방한암 스님에게 구도의 편지를 띄우기 수 년. "짧으면 3년, 길어야 10년"을 기약하고 오대산을 찾아들어 탈속의 길을 걷게 된다.1955년, 한국대학(지금은 폐쇄)의 요청으로 맡았던 노장철학 강의는 너무도 유명.1961년, 방한암의 유촉을 받들어 방대한 규모의 화엄합론 번역을 시작한다. '자구字句 하나하나에 피가 맻히는 난해한 연의演義 작업'에 매달려 발원한 지 10년만인 1971년 봄, 원문 10조 9만 5천48자에 달하는 《화엄경》80권 집필을 마쳤다. 우여곡절 끝에 이 원고는 1975년 《신화엄경합론》이란 타이틀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영원을 내다보는 사상과 예지김중배(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동양의 마음은 유 · 불 · 선儒佛仙을.. 다산의 두 하늘 천주와 정조 ※ 두 권으로 엮은 정민 교수의 『파란波瀾』중 1권 《다산의 또 다른 하늘, 천주교》 《다산은 신부였다》2권 《닫힌 문 앞에서》 중 일부를 이 자리에 옮겨보기로 한다. 초기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명례방 공동체.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를 우리는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의 문집은 사료로 치면 오염된 부분이 적지 않다. 다산은 자기 검열을 통해 불리하거나 불편한 내용은 삭제하고 일관성 확보를 위해 많은 글에 손을 댔다. 하지만 이것을 다른 기록과 겹쳐보자 다산이 썼다가 지웠던 부분들이 얼핏 드러났다. 이 책에서는 다산이 지웠음직한 자료를, 날것 그대로 맥락 없이 남겨진 다른 자료와 겹쳐 읽음으로써 지워진 부분을 복원해보려고 애를 썼다. - 중에서 - .. 컬러플한 세계사 5 "엄마가 총에 맞았어!" 1936년 3월 11일자 《샌프란시스코 뉴스》에서 엄마의 사진을 본 플로렌스 오언스의 자녀 가운데 하나가 외쳤다.32살의 플로렌스는 총에 맞지 않았다. 그 신문에 실린 사진에서 그녀의 이마 한가운데에 번진 잉크 얼룩이 마치 총상처럼 보였다.며칠 전 캘리포니아 101번 고속도로변에 설치된 완두콩 수확 노동자들을 위한 캠프에서 촬영된 그 사진은 그녀의 이미지를 시대의 상징으로 만들어 놓았다. 플로렌스 오언스가 랭의 그라플렉스 카메라 렌즈 너머를 응시했을 때 아마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당장 아이들을 먹이고 가슴에 품은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허드슨 세단의 라디에이터를 수리하는 일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랭이 셔터를 누른 순간부터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초췌한 얼굴에서 그들이 가진 의.. 컬러플한 세계사 4 에른스트 부룩스 소위는 빛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법을 배웠다. 청년 시절 첫 카메라를 구입한 후 그는 유럽 군주들의 결혼식을 촬영하고 영국 왕실의 수행원으로서 남아프리카와 인도를 여행하며 영국의 왕들이 호랑이를 사냥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는 버킹엄궁 가까이에 자신의 런던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왕실의 공식 사진가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제 그모두는 사라지고 없는 세계였다. 1916년 11월 프랑스 북부 솜강 근처, 보몽 하멜에서 브룩스는 포탄에 휩쓸려 진창이 된 참호에 서서 부패해 뼈가 드러난 독일 병사의 시신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근처에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끔찍한 전누에서 죽어간 100만 구 가까운 시신들이 같은 모습으로 널려있었다. 1916년 4개월 반 동안 솜 계곡은 곡사포와 지뢰의 포성.. 컬러플한 세계사 3 "죽음은 대수롭지 않다. 사실 삶도 그렇다.죽는 것, 잠드는 것, 무위로 돌아가는 것, 무엇이 대수로운가?모든 게 신기루다." - 마타 하리의 마지막 말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여성 가운데 몇몇이 발레리의 카메라 앞으로 걸어들어왔다.그러나 그 가운데 마타 하리만큼 렌즈―혹은 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없었다. 관능적인 무희이자 서커스 공연자이며코르티잔이던 그녀의 실제 이름은 마가레타 거트루이다 젤러였다. 그러나 그녀의 무대 이름은 세련된 신비로움과 성적 매력을발산하며 파리에서 그녀를 무대의 스타로 만들었고 뱅센에 있는 어느 성의 안마당으로 인도했다. 그녀는 결국 그곳에서 12명의프랑스 보병들의 총격을 받았고 그들의 지휘관은 권총으로 그녀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1876년 8월 7일에.. 이전 1 ··· 39 40 41 42 43 44 45 ··· 9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