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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보름날의 꽃강 산책 꽂강을 정원 삼아 정박중인 카러밴 행렬이 시선을 끄는 가운데 황룡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                     영하의 겨울을 이겨 낸 팬지 드레스.                        강변 옆 산에 새롭게 개설된 산책로를 따라 올라본다.(아직 100%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님)     풍경 감상의 최고봉은 역시 부감(俯瞰)                                                           황룡산장                                                                                                  황룡면 행복마을 한옥단지       황룡강변 산책에 나선 길, 꽤나 쌀쌀한 날씨임에..
경자탐매(庚子探梅) 1 도암매(道岩梅)   전북 고창군 공음면 소재 도암서원(道岩書院)                                                        금번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에 찾아간 도암서원.춥다고 해봤자 과거의 동장군에 비하면 가히 조족지혈 수준이라고 보면 틀림 없겠다.     이 도암고매(道岩古梅)의 개화는 아직 멀었지만, 지나는 길에 나무 상태나 한 번 살피고자 들러본 것. 얼핏 수피는 멀쩡한 듯 보이지만 나무를 두드려 보니 속이 텅빈 그야말로 허깨비 수준.   요 몇 년 사이 진행된 목질부의 썩음 상태가 너무도 심각해 보였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씀. 바로 옆에 서 있던 은행나무를 제거하는 과정에 제초제가 적용되었다던데 그 탓인지 아니면 다른 뭔가가? 그저 오래오래 ..
박주하 화백과의 다담(茶談) 서양화가 박주하 화백 방문(전남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 소재)     페르시아 계통의 우아한 혈통의 냥이가 객을 반기는 가운데...               박주하 화백의 드립 커피향이 화실에 가득 퍼지고...      짙은 紅梅 향까지도 덩달아 캔버스에 낭자하고 있었습니다.                                 서녘으로 지는 노을을 감상하며 레드 와인으로....
청화(靑華) 스님 수행처 백양사 운문암    백암산 학바위          무안 해운사                 두륜산 진불암     진불암 경내                남미륵암 전경                                  남원 실상사                                                      사성암 옛 토굴터                염불선원 은행나무    남해 금산 보리암                        월출산 무위사                        해소국사비      철당간                                                                        나한전           태안사 적인선사 조..
청화(靑華) 스님 행장 ● 1947년 세납 24세에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화상을 은사로 득도.● 출가 이후 무안 혜운사, 두륜산 진불암, 지리산 백장암, 벽송사, 사성암, 용문사 염불선원, 보리암 부소대, 부산 혜광사, 두륜산 상원암, 월출산 상견성암, 지리산 칠불사 등에서 수행 정진.● 1985년 전남 곡성군 동리산 태안사에서 삼년결사를 시작으로 회상을 이루고 대중교화의 인연을 지음.1995년까지 한국전쟁으로 화마를 입었던 태안사를 중창복원하여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문을 재창.● 미주포교를 위해 카멜 삼보사, 팜스프링 금강선원 등을 건립하고 삼년결사 수행.● 설령산 성륜사, 도봉산 광륜사 조실, 조계종 원로 의원 역임, 2003년 11월 12일 열반.  迷故三界城  미혹한 까닭에 삼계가 성이나悟故十方空 깨달으니 시방이 ..
선인들의 가훈과 유언 2 조관빈 초상  - 조관빈이 입양한 아들을 훈계한 글 -     唉我險釁, 遘此禍酷. 憂哀侵削, 不謀朝夕 아! 이 내 삶 험난하여 독한 재앙 만났구나. 걱정 슬픔 쳐들어와 조석조차 알 수 없네. 自視吾生, 生苦死樂. 而無一兒, 志業誰續내 인생 돌아보니, 삶이 외려 괴로워라. 자식 하나 없고 보니 뜻과 사업 뉘 이을까?  取養斯急, 知所可擇. 非乏近親, 莫如善族 양자 취함 급하여도 가릴 것은 가려야지. 가까운 친척 좋긴 해도 선한 친족 더 낫다네.惟爾所生, 派自東伯. 家傳美行, 棹楔煥若 다만 너의 소생은 동백공(東伯公)의 계파이니, 전해오는 좋은 행실 온 집안에 환하리라. 趨向之正, 雖窮不易. 嘗所親厚, 豈云疎逖바르게 향해 나감 궁하여도 바꾸잖아, 친한 이 후대하니 멀다 하여 박대할까.  夙計乃决, 後事斯託..
선인들의 가훈과 유언 1 면앙정(俛仰亭)    - 송순이 자식에게 준 훈계 - 송순은 우후(虞侯) 설남중(薛南仲)의 딸과 혼인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두 아들의 이름을 관(寬)과 용(容)으로 지어 자식들에게 바라는 바를 담았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명이자설(名二子說)」에 남아 전한다.관아! 네 이름을 '관'이라 지었다. 관(寬)이란 관대하고 인자함을 말한다.옛날 중궁(仲弓)은 현자를 높이고 무리를 포용해 곧장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너는 이를 경계토록 하라용아! 나는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염려하노라.적장자인 해관은 병오년(丙午年, 공의 나이 54세)에 생원이 되고 이후 참봉이 되었지만 자녀 없이 죽었다.둘째아들 해용 역시 자녀 없이 죽었다. 이에 현감 최세윤(崔世胤, 공의 사위)의 아들이자 종실인 순흥군 몽우(..
묘비명 김창흡 아내의 묘비명 김창흡(金昌翕,1653~1722) 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와는 도타운 정이 있었던 듯. "병술년(丙戌年1706) 10월 을유 삭 초여드레 경인일, 안동 김창흡은 삼가 술과 음식을 갖추어 죽은 아내 정주 이씨의 영전에 제사를 지내오. 아아, 당신의 고생은 뼈에 사무쳤다고 할 만 하오. 꿈을 꾸면서도 끙끙대며 신음소리를 내고 고뇌가 쌓여 울음으로 터져 나왔으니, 땅 속에 묻히기 전까지 당신의 삶은 모두 근심의 나날이었소.이제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 앞으로 푹 쉬라는 뜻이 아니겠소. 아아, 나의 반생은 바람에 나부끼는 쑥대 같았으니, 한 곳에 머무르기만 하면 모두 산산조각이 났소..."         정농장의 묘비명 "나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데 살아 있고, 너는 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