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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령산 맨발걷기 백련동을 들머리로 '삼림치유센터' 오름길 폭염과 정면으로 맞선 4인조의 행보. 맨발의 청춘 ㅎ~ 휘튼치트 세례를 받으며 잠시 쉬어가기로... 다시 행선길로... 울울창창 편백림 속을 맨발로... 어마무시한 폭염은 딴나라 야그~ ㅎ 잠시 탁족 타임... 맨발 인증 샷. 발바닥이 시원찮은 이 사람은 운동화를 신고... 한양에서 내려오신 맨발걷기 전도사 항민 선생님과 함께... 찍고 박히고~~~ ㅎ 입추, 축령산 편백림에 초대된 상큼 맨발의 행진. 힐링 타임 리듬 조코, 좌우 율동은 더욱 조코~~~ㅎ 에어콘 아래 꿈쩍 않다가 숲에 드니 그 청량함에 나도 모르게 절로 반성케 되더라는 사실 오늘날의 축령산 편백림을 일군 독림가 춘원 임종국 선생 수목장지에 이르는 입구. 무더위가 절정임에도 계곡물에 담근 발은 그저..
이세종 / 이현필 화순 '도암제'와 그 너머로 우뚝한 '개천산' 풍경. 한국 최초의 '기독교 영성가'로 일컬어지는 이세종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길이다. ‘도암의 성자’라고 불리는 이세종은 조선조 말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1920년경 성경을 처음 읽은 후 진리임을 깨닫고 성경대로 실천하면서 금욕, 금육, 절제된 삶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며 살다가 신사참배를 피해 1939년 화학산에 은거, 산막에서 살다 1942년에 죽었다. 이세종(李世鐘)[1879~1942]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어깨너머 동냥글로 한글을 깨우쳐 읽고 쓰는 것을 배웠다. 그는 새경[머슴살이로 받는 몫]으로 겨우 식구들을 먹여 살리며, 논마지기를 장만해서 형을 장가들게 해주었다. 머슴살이를 하면서..
보령 일원 충남 대천항의 아침 보령 무궁화 수목원 성주사지 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인데 양쪽의 사자상은 1986년 도난당해 현재의 것은 사진을 기초로 복원한 것이라고. 무량사 무량사 당간 지주 (고려 초) 절 마당 나무그루터기에 자라난 영지버섯 맨 앞 건물에 김시습의 초상이 모셔져 있다. 북으로는 만주, 동쪽으로는 금강산과 오대산, 남으로는 다도해와 경주, 심지어는 이내 거처 불태산 등. 평생을 정처 없이 사방팔방 떠돌던 김시습. 효령대군의 권유로 잠시 불경을 번역하는 일을 맡기도 했지만 현실정치에는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김시습은 성종 12년(1481)에 승적을 버리고 환속해 두 번째 결혼을 했지만, 특유의 방랑벽이 도져 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서울을 등졌다. 그가 만년에 찾아간 곳은 충남 부여 무량사. 김..
내포 동학 충남 예산 [내포동학 관작리 전적지] '관지포(觀知包)' 운용과 활성화를 위한 고언과 제안의 자리. 내포동학혁명 위령 풍물 '예산 동학혁명 학술회의' 행사를 위한 미팅 동학 4대 교주 춘암 박인호 상사 유허비 박인호(朴寅浩)의 자는 도일(道一), 호는 춘암(春菴)이며, 초명(初名)은 박용호(朴龍浩), 이명(異名)은 박남수(朴南壽)이다. 밀양 박씨로, 신라 54대 경명왕의 장자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의 37대손이다. 1855년 충청남도 덕산군 양촌면 막동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집안은 빈농(貧農)으로 매우 가난하였다. 11세 되던 해에 한학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15세 무렵에는 지가서(地家書)와 의서(醫書) 등을 공부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하였다. 동학 및 천도교 교주가 되어 교단의 발전과 민족의 독..
동학천도 여름 수련회 (2) 수운 대신사 묘소(태묘) 구역 동학 창도주 수운 최제우 스승님 묘 아 ! 거룩하고 위대하시도다 겨례의 자랑이자 인류의 영광인 만고의 대성인이 여기 고요히 누워 계시니 이 어른이 동학의 시조 수운 최제우 스승님이다 일찌기 갑신 포덕 갑신 포덕 삼십육년 전(단기 四一五七) 시월이십팔일 경주의 이곳 건너 마을 가정리에서 서운 이집을 두르고 향기가 가득하며 구미산이 삼일간 진동할 때부친 근암 최옥 선생과 한씨의 육신을 빌려 탄생하시었으니본관은 경주요 이름은 제우요 자는 성묵이요 호는 수운이다 얼굴은 관옥이요 총명이 사광보다 더 해서 팔세에 입학하여 만권시서를 무불통지하신 후에 이십세에 나라와 창생의 장래를 크게 걱정하신 나머지 제세안민의 대도를 이룩하시고 지방 곡곡을 찾아들어 인심 풍속 살피시고 만고풍상 겪은 ..
동학천도 여름 수련회 (1) 경주 《용담수도원》 수련 일정에 따른 「접」과 「접주'」 선출과 배정 '천덕송' 합송 지도: 일포 이우원 선도사 《용담성지》 순례 순례길에 살피는 '수운梅'의 안위 용담정 수운 대신사의 존영이 봉안된 용담정 수도원장님의 집례에 따른 천도교 의례 윤중 황선진(백일학교장)님의 강의 맹수련(猛修煉) 일포 이우원(천도교 선도사)님의 강의 동학東學 천도天道의 도맥道脈 '마음의 이슬하나' 의 저자 순우당 전택원 박사님 2편으로 ....
잠시 비가 뜸한 가운데... 부안변산해수욕장 고군산군도 흐리고 해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저 앞 장자도 바위에 위에 소개한 '할매바위'가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엔 무슨 '사당' 같은 건물도 있었는데... 장마 가운데 흐드러진 참나리
도피안사到彼岸寺 '도피안사' 화개산 도피안사 일주문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 865년(경문왕 5)에 도선(道詵)이 향도(香徒) 1,000명과 함께 이 절을 창건하고 삼층석탑과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다. 『유점사본말사지(楡岾寺本末寺誌)』에 수록되어 있는 사적기에 의하면, 도선이 철조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여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려고 하였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았더니 도피안사 자리에 안좌하고 있었으므로 절을 창건하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도선은 이 절을 800의 비보국찰(裨補國刹) 중의 하나로 삼았으며, 화개산이 마치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석탑과 철불로 산세의 약점을 보완하여 국가의 내실을 굳게 다지고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