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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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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들의 유람록 <청량산> 이의성李義聲, 1828년, 130×5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의성이 정원용鄭元容과 유철조柳喆祚의 부탁으로 안동 및 하회 부근을 그린 그림으로 그리고, 동래 정씨의 선산이 있는 순흥順興 부근 지보知保 구담龜潭도 함께 그렸다. 16세기에 유중영柳仲郢이 그렸던 그림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주세붕周世鵬, 「청량산 유람록遊淸凉山錄」 계미일, 걸어서 문수사에서부터 보현암을 거쳐, 절벽을 돌아서 몽상암夢想庵에 다다랐다. 벼랑길이 끊어져 있어 두 개의 나무를 꺾어다 걸쳐서 잔도棧道를 통하게 하였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어, 두 다리가 후들후들하고 모골이 쭈뼛하였다. 게다가 문원文圓(司馬相如) 처럼 소갈병을 앓아서, 목구멍에 연기가 나듯 하였다. 비폭飛瀑이 있는 것을 보고, 절..
선인들의 유람록 <소백산> 정선鄭敾, 17세기 말~18세기 초, 61.2×31.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본래 계절산수와 산수인물도로 이루어진 8폭 가운데 한 점이다. 본래 병풍이었으나 지금은 낱쪽 족자로 개장되었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속에 도롱이 입은 인물이 낚시하는 광경을 화폭에 담았다. 화폭 윗면의 비기운과 비바람에 나뭇가지가 쏠려 있는 모습이 무척 생동적이다. 이황李滉, 「소백산 유람록遊小白山錄」 그 다음 날 계해, 걸어서 중백운암에 올랐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승려가 이 암자를 짓고는 그 속에서 좌선을 해서 선리禪利에 자못 통하였는데, 하루아침에 떠나서 오대산으로 들어갔으므로, 지금은 승려가 없다. 창 앞에는 옛 우물이 완연히 남았고, 뜨락에 푸른 풀은 쓸쓸할 따름이다. 암자를 지나서부터는 길이 더욱..
선인들의 유람록 <금골산> 이주李胄, 「금골산록金骨山錄」 금골산은 진도珍島 읍내에서 서쪽으로 20리에 있는데 중봉이 가장 높고 사면이 모두 바위라서 바라보면 옥부용玉芙蓉 같다. 서북쪽은 바다에 닿아 있으며, 서남의 지맥이 구물거리며 남으로 달려 2리쯤 가서 간재가 되고, 또 동쪽으로 2리쯤 가서 용장산龍莊山이 되어 벽파도碧波渡에 이르러 그친다. 산의 주위는 모두 30여 리이다. 산 아래에 큰 절터가 있어 해원사海院寺라고 한다. 9층의 석탑이 있고 탑의 서쪽에 황폐한 우물이 있다. 그 위에 삼굴三窟이 있다. 맨 밑에 있는 것이 서굴西窟로, 산의 서쪽에 있는데, 창건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근자에 일행一行이란 스님이 와서 향나무로 십육나한의 소상을 만들어 그 굴에 안치하였다. 굴의 곁에 별도로 옛 사찰 예닐곱 칸이 있어 중들이 거처..
선인들의 유람록 <서석산> 필자미상, , 19세기,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무등산은 광주광역시와 화순군 이서면, 담양군 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제 때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하였다. 무등산을 그린 이 그림은 매우 희귀한데, 그린 이를 알 수 없다. 고경명高敬命, 「서석 유람록遊瑞石錄」 22일 병인丙寅, 날이 개었다. 아침에 판관判官과 찰방察訪이 입석立石(선돌) 으로 곧장 갔다. 어제 날이 어둡고 깜깜해서 제대로 찾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들은 곧장 선생을 좇아 상원등사上元燈寺 에 이르렀다. 작은 암자가 새로 엮어져 있었지만 작고 좁아서 쉴 수 없었기에 선생은 암자 서쪽 단상에 앉아 쉬었다. 약간 서쪽에 노송 두 그루가 마주해 있고 그 아래 발을 뻗고 쉴 만한 돌이 있었다. 조금 있다가 판관과 찰..
선인들의 유람록 <월출산> 도판 : 팔도총도八道總圖 1683년, 124×90.5,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구정봉 구정봉 상단. 김창협金昌協, 「월출산 구정봉 등반기月出山九井峰記」 월출산의 절정은 구정봉이다. 사방 모서리는 모두 험준한 벼랑이 가파르고 아슬아슬하다. 다만 서쪽 벼랑 아래에는 지름이 겨우 한 자 남짓한 굴혈이 위로 뚫려 절정에 이른다.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반드시 굴혈 속으로부터 길을 취한다. 그 굴혈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기고 뱀처럼 나아가서야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관모나 망건을 벗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마치 쥐가 또아리처럼 몸을 웅크리고 굴혈로 들어가는 것처럼 한다. 그러다가 굴혈에 들어가면 비로소 사람처럼 간다. 하지만 여전히 굴혈 속으로 가는 것이며, 굴혈은 길둥글고 좁으므로, 그 속을 가는 사..
선인들의 유람록 <가야산> 1872년, 74×52cm, 조선후기지방지도 충청도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영인. 이 지도에서는 덕산 관아 서쪽에 상왕산象王山과 가야산伽倻山을 별도로 표시하여 두었으나 오늘날에는 그 두 산을 하나로 보아 가야산으 이칭이 상왕산이라고 한다. 가야산은 소의 머리와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여 우두산牛斗山 이라고 불렀으며 상왕산象王山 · 중향산衆香山 · 지달산 · 설산이라고도 한다. 이철환李嚞煥 「상산삼매象山三昧」 회잠會岑과 여옥呂玉이라는 두 사미승이 있는데, 나이는 각각 17세이다. 용모가 단아하게 잘 생겼으므로 두 눈은 빛이 났다. 불경을 외는 소리가 각각 그 맑고 고움을 다하여, 그 사람됨과 같았다. 회잠이란 자는 또한 입술을 모아 바람을 불어 나각螺角과 비슷한 소리를 잘 내었는데, 천연스레 교묘하여 당..
선인들의 유람록 <천방산> 최북崔北, 최북은 '칠칠' 이라는 호를 사용한 화가로, 기이한 행동을 많이 해서 유명하다. 이규상李圭象은 그의 화법은 힘이 있어서 비록 가는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라도 갈고리처럼 기운찬 모양이 되지 않는 게 없다고 하였다. 이 그림도 바람에 쏠린 나무들을 억센 붓놀림으로 그려내었다. 이경전李慶全, 「큰 눈이 내릴 때 천방사를 방문한 기록大雪訪千方寺記」 양쪽의 협곡이 옥죄듯 하고, 소나무와 노송나무는 하늘에 빼곡하여, 푸른 수염에 비취 덮개, 붉은 갑옷에 하얀 비늘을 하고서, 몇 겹의 층을 이루고 빼곡하게 곧추서서, 옥먼지와 옥가루 같은 눈발 아래서 기둥을 떠받들고 있다. 간혹 긴 바람이 불어와 나무를 치면 흰 옥가루의 꽃 수술이 흩어져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하다. 그 질펀하고도 농익은 형상을..
선인들의 유람록 <도고산> 김두량金斗樑, 1744년, 82×49.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두량은 도화서 화원으로 별채를 지냈고, '남리南里' 라는 호를 영조로부터 하사받은 인물이다. 이 그림은 그의 나이 49세 되던 때 안개 낀 가을 달밤의 정취를 그린 것으로 라고도 부른다. 잎이 다 떨어지 나뭇가지를 거칠게 묘사하고, 빠른 붓놀림으로 계곡의 급류에 속도감을 주었다. 무리 진 달과 계곡 너머 짙은 안개가 이 전경과 대조된다. 산의 본상本相을 숨겨두어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뜻을 담았다. 이산해李山海, 「달밤에 운주사를 방문한 기록月夜訪雲住寺記」 어느 날 저녁, 온창 고을 정 사또가 찾아왔다. 내가 말하였다. "공이 이곳을 다스린 지 서너 해가 되었으니, 이 산의 경승을 이미 잘 파악해서 돌아보셨을 테지요. 나를 위해 안내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