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취월당 (740) 썸네일형 리스트형 선인들의 유람록 <서석산> 필자미상, , 19세기,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무등산은 광주광역시와 화순군 이서면, 담양군 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백제 때 무진악武珍岳. 고려 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하였다. 무등산을 그린 이 그림은 매우 희귀한데, 그린 이를 알 수 없다. 고경명高敬命, 「서석 유람록遊瑞石錄」 22일 병인丙寅, 날이 개었다. 아침에 판관判官과 찰방察訪이 입석立石(선돌) 으로 곧장 갔다. 어제 날이 어둡고 깜깜해서 제대로 찾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남은 사람들은 곧장 선생을 좇아 상원등사上元燈寺 에 이르렀다. 작은 암자가 새로 엮어져 있었지만 작고 좁아서 쉴 수 없었기에 선생은 암자 서쪽 단상에 앉아 쉬었다. 약간 서쪽에 노송 두 그루가 마주해 있고 그 아래 발을 뻗고 쉴 만한 돌이 있었다. 조금 있다가 판관과 찰.. 선인들의 유람록 <월출산> 도판 : 팔도총도八道總圖 1683년, 124×90.5,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구정봉 구정봉 상단. 김창협金昌協, 「월출산 구정봉 등반기月出山九井峰記」 월출산의 절정은 구정봉이다. 사방 모서리는 모두 험준한 벼랑이 가파르고 아슬아슬하다. 다만 서쪽 벼랑 아래에는 지름이 겨우 한 자 남짓한 굴혈이 위로 뚫려 절정에 이른다.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반드시 굴혈 속으로부터 길을 취한다. 그 굴혈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기고 뱀처럼 나아가서야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관모나 망건을 벗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마치 쥐가 또아리처럼 몸을 웅크리고 굴혈로 들어가는 것처럼 한다. 그러다가 굴혈에 들어가면 비로소 사람처럼 간다. 하지만 여전히 굴혈 속으로 가는 것이며, 굴혈은 길둥글고 좁으므로, 그 속을 가는 사.. 선인들의 유람록 <가야산> 1872년, 74×52cm, 조선후기지방지도 충청도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영인. 이 지도에서는 덕산 관아 서쪽에 상왕산象王山과 가야산伽倻山을 별도로 표시하여 두었으나 오늘날에는 그 두 산을 하나로 보아 가야산으 이칭이 상왕산이라고 한다. 가야산은 소의 머리와 모습이 비슷하다고 하여 우두산牛斗山 이라고 불렀으며 상왕산象王山 · 중향산衆香山 · 지달산 · 설산이라고도 한다. 이철환李嚞煥 「상산삼매象山三昧」 회잠會岑과 여옥呂玉이라는 두 사미승이 있는데, 나이는 각각 17세이다. 용모가 단아하게 잘 생겼으므로 두 눈은 빛이 났다. 불경을 외는 소리가 각각 그 맑고 고움을 다하여, 그 사람됨과 같았다. 회잠이란 자는 또한 입술을 모아 바람을 불어 나각螺角과 비슷한 소리를 잘 내었는데, 천연스레 교묘하여 당.. 선인들의 유람록 <천방산> 최북崔北, 최북은 '칠칠' 이라는 호를 사용한 화가로, 기이한 행동을 많이 해서 유명하다. 이규상李圭象은 그의 화법은 힘이 있어서 비록 가는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라도 갈고리처럼 기운찬 모양이 되지 않는 게 없다고 하였다. 이 그림도 바람에 쏠린 나무들을 억센 붓놀림으로 그려내었다. 이경전李慶全, 「큰 눈이 내릴 때 천방사를 방문한 기록大雪訪千方寺記」 양쪽의 협곡이 옥죄듯 하고, 소나무와 노송나무는 하늘에 빼곡하여, 푸른 수염에 비취 덮개, 붉은 갑옷에 하얀 비늘을 하고서, 몇 겹의 층을 이루고 빼곡하게 곧추서서, 옥먼지와 옥가루 같은 눈발 아래서 기둥을 떠받들고 있다. 간혹 긴 바람이 불어와 나무를 치면 흰 옥가루의 꽃 수술이 흩어져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안개 같기도 하다. 그 질펀하고도 농익은 형상을.. 선인들의 유람록 <도고산> 김두량金斗樑, 1744년, 82×49.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두량은 도화서 화원으로 별채를 지냈고, '남리南里' 라는 호를 영조로부터 하사받은 인물이다. 이 그림은 그의 나이 49세 되던 때 안개 낀 가을 달밤의 정취를 그린 것으로 라고도 부른다. 잎이 다 떨어지 나뭇가지를 거칠게 묘사하고, 빠른 붓놀림으로 계곡의 급류에 속도감을 주었다. 무리 진 달과 계곡 너머 짙은 안개가 이 전경과 대조된다. 산의 본상本相을 숨겨두어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뜻을 담았다. 이산해李山海, 「달밤에 운주사를 방문한 기록月夜訪雲住寺記」 어느 날 저녁, 온창 고을 정 사또가 찾아왔다. 내가 말하였다. "공이 이곳을 다스린 지 서너 해가 되었으니, 이 산의 경승을 이미 잘 파악해서 돌아보셨을 테지요. 나를 위해 안내해 주.. 선인들의 유람록 <계룡산> 전傳 조속趙涑, 《조창강화집趙滄江畵集》 중 17세기, 22.4×32.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본래 문인 화가 조속이 중국의 명문을 소재로 하여 그림과 제사題詞를 함께 엮은 《조창강화집趙滄江畵集》 가운데 들어 있다. 창강은 조속의 호이다. 제목으로 보아 구양수의 를 모티프로 삼은 듯하다. 다만 가을 산의 풍광을 감상하는 두 인물을 중심에 두었으므로 본래 주제와는 거리가 있다. 송상기宋相琦, 「계룡산 유람기遊鷄龍山記」 나는 전에 벌써 동학사의 이름을 들었지만 한 번도 구경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8월 20일 후에 아우 지경持卿(송상유宋相維)이 환煥 등을 데리고 가서 노닐고는 편지로 그 수석과 암자와 절간의 승경을 알려, 마음으로 더욱 쏠렸다. 중양일(음력 9월 9일)에 귀성을 하고는 그대로.. 선인들의 유람록 <속리산> 이인문李寅文, 18세기, 77.3×45.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옥정은 괴산 8경의 하나로, 충주 수안보 길에 있다. 이인문은 김홍도와 동갑이며서 화원으로서 쌍벽을 이룬 인물이다. 수옥은 수석침류漱石枕流의 뜻을 취한 것으로, 옥은 곧 옥수玉水를 말한다. 수석침류는 글자 그대로는 돌로 입을 씻고 흐르는 물을 배개 삼는다는 뜻이지만, 본래 수류석침이라고 하여 흐르는 물에 입을 씻고 돌을 배개 삼는다는 말을 잘 못 말한 것이 그대로 해학어로 된 것이다. 산수간에 노닐려는 뜻을 담은 말이다. 이동항李東沆, 「속리산 유람기遊俗離山記」 26일(무자), 휴암休庵 정처사鄭處士(정동첨)와 벗 노광복과 함께 길을 떠나 북쪽으로 가서밤재를 넘어 관음사에서 쉬었고, 저녁에 삼거리 마을에 투숙하였다. 칡고개에서 한 굽이.. 선인들의 유람록 <마니산> 《해동지도海東地圖》 중 , 18세기,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강화도 지도로서 매우 상세하다. 강화도 남쪽의 선두포가 아직 간척이 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도의 맨 왼쪽 중간에 참성단이 마리산 정상에 있음을 기록해 두었다. 홍석모洪錫謨, 「마리산기행摩尼山紀行」 기미년(1799) 4월 21일, 나귀에 올라 심도沁島, 江華 남문을 나서서 서남쪽 마리산으로 향하였다. 들판의 빛은 멀고 평평하며, 마을 집들은 드문드문 흩어져 있으며, 수풀의 나무 끝과 산의 모서리 맑게 빛나거나 운무에 가려 숨고는 한다. 한쪽의 강물 빛은 높았다. 낮았다 하면서 둥실 떠와서, 강화가 섬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정도였다. 40여 리를 들어가 마리산 아래에 있는 민가에서 밥을 지어 먹었는데, 강 고기와 산나물이 별나게 맛있..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9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