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1849) 썸네일형 리스트형 수목감상 16 장성군 삼계면 발산리 느티나무 (수령 190년) 정자와 선돌이 어우러진 느티나무 동네 어귀 언덕에 자리한 허름한 정자와 선돌 몇 기가 느티나무와 어우러진 모습. 수목감상 15 장성 진원면 선적리 팽나무 장성 진원면 산정리 팽나무 장성 황룡면 '옥정 약수' 옥정약수 주변 편백림 편백숲 윗편 작은 암자 암자 마당에 선 수령 약 200여년 추정 소나무 산자락에서 만난 청매 꿀벌이 부지런히 화분을 헤짚는 중. 동네 뒷산자락을 거닐며... 수목감상 14 장성과 담양의 경계를 이루는 임도 마운데미 좌측으로 병풍산과 우측으론 삼인산 장성쪽 임도 월성계곡에 자리한 월성제 제방 아랫쪽 장성 북하면 월성리 연동 느티나무 / 수령 약 200여 년 추정. 장성 북하면 월성리 연동 느티나무 / 수령 약 300여 년 추정. 장성 북하면 월성리 319 느티나무 / 수령 약 300여 년 추정. 장성군 북하면 대방리 느티나무 / 수령? 아스팔트가 나무 뿌리 부분에 두텁게 깔려있는 안타까운 모습 장성군 북하면 대악리 장사마을 느티나무 / 수령 423년 ? 장사마을 천변 느티나무 / 수령 175년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느티나무 이내 블로그를 통해 여러 번 다루었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 장성읍 장안리 소나무 / 수령 약 150여 년 장성읍 안평리 느티나무 / 수령 약 330여 년 수목감상 13 장성 남면 들녘에 선 소나무 한 그루 장성 삼서면 산자락에선 반송 장성 서삼면 한실마을 뒷편 산자락의 수령 700년 이상의 팽나무 엄청난 크기에다 참으로 아름다운 줄기와 수세를 지닌 한실마을 축령산 자락의 팽나무. 얼마 전 멀리서 이 나무를 보고 오늘에야 드디어 가까이서 친견케 된 것. 모름지기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자라온 나무에 그저 고마울 뿐. 수목의 아름다움에 심취하고 싶다면 한 번쯤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 다만, 명색 보호수일진데 나무 아래 방치된 경운기는 치워야 하는 게 타당할 듯. 계묘탐매癸卯探梅 (4) 순천 매산고등학교 깔끔한 운동장을 내려다 보는 자리에 선 홍백매의 기세. 학교 이름이 왜 '매산'인지가 자연스레 읽혀진다 해야겠다. 사숙(私塾)시대(1910.4~1913.8) ◉ 1910. 미국 남장로계 변요한과 배유지 (Eugene Bell) 선교사의 제안으로 순천선교부 개설된 이후 변요한 (John F. Preston) 고라복 (Robert Coit) 선교사들이 1910 년 4 월 금곡동 향교 근처에 한옥 한 채를 구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면서 한편으로는 학생을 모아 성경과 신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 이것이 비록 이름 없는 학교였지만 순천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학교인지라 청소년들의 흠모와 호기심을 끌었던 것이다 . 어른 총각으로부터 나이 어린 아이들이 한데 어울러 약 30 여명이 우렁차게 글 읽는.. 계묘탐매癸卯探梅 (3) 순천 복음교회 梅園 복음梅 빨리 피어나는 홍매에 비해 수 백년 수령의 故梅이자 백매인지라 느긋하게 겨우 몇 송이 피워 올리는 중이다. 교회를 신축하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매원을 조성한 이를 오늘도 만나보지 못한 아쉬움. 얼마나 많은 기도와 공력을 쏟았을지 미루어 짐작한 뿐이다. 대저, 얼마나 매화 사랑이 지극했을지.... 계묘탐매癸卯探梅 (2) 금둔사 새로 마련된 주차장을 비롯, 절 앞에 들어선 찻집하며 그 뒤론 제법 웅장한 누각에 이르기까지. 절에 이르는 새로운 길 옆으로 납월홍매가 반기는 가운데 계단 끝에 장대한 석축위로 금전산의 호위 아래 신축된 누각이 올려다 보인다. 늘 그러하듯, 맨 먼저 화들짝 피어난 청매 두 그루가 시선을 끌고. 매향에 뒤덮힌 이 건물의 정체는 아마도 선암사의 해우소를 테마로 신축한 것인 듯. 계묘년에도 어김없이 납월매는 피어나고 매향은 금전산을 휘감아 돌건만, 금둔사를 지켜야 할 산주山主께서 병환중이신지라 어쩐지 휑한 느낌. 탐매의 고수 몇 분과의 조우로 그나마 납월매향에 심취할 수 있었다. 부디 지허스님께서 하루 빨리 병환을 털고 일어나 매화詩를 들려 주시길 염원하면서 저무는 금전산 자락 금둔사 산문을 나선다. 김구선생 은거지 보성 쇠실마을 기러기재(雁峙)를 넘는데 '백범 김구 선생 은거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 전부터 팻말을 봐 왔지만 오늘에야 작정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게 된 것. 김구선생이 쇠실마을을 다시 찾은 건 1946년 9월, 선생의 나이 71살 때. 헤어짐의 아쉬움을 담은 한시를 남기고 떠난 지 48년 만이었다. 이름도 '김두호'가 아닌,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신분으로. 마을을 다시 찾은 백범은 '감격에 넘치었다'고 '백범일지'에 적었다. 기념관 백범 김구선생 은거 추모비 기념관 뒷편의 우물인데 괜찮은 물맛으로 소문이 난 모양. 사진상의 빨간 옷차림의 청년은 광주에서 여기까지 찾아와 페트병에 물을 담아가고 있었다.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선봉에 섰다. '아기..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23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