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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탐매

계묘탐매癸卯探梅 (4)

순천 매산고등학교

 

 

깔끔한 운동장을 내려다 보는 자리에 선 홍백매의 기세.

학교 이름이 왜 '매산'인지가 자연스레 읽혀진다 해야겠다.

 

 

 

 

 

 

 

 

 

 

 

 

 

 

 

 

 

 

 

사숙(私塾)시대(1910.4~1913.8)



◉ 1910. 미국 남장로계 변요한과 배유지 (Eugene Bell) 선교사의 제안으로 순천선교부 개설된 이후 변요한 (John F. Preston) 고라복 (Robert Coit) 선교사들이 1910 년 4 월 금곡동 향교 근처에 한옥 한 채를 구입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면서 한편으로는 학생을 모아 성경과 신학문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 이것이 비록 이름 없는 학교였지만 순천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학교인지라 청소년들의 흠모와 호기심을 끌었던 것이다 . 어른 총각으로부터 나이 어린 아이들이 한데 어울러 약 30 여명이 우렁차게 글 읽는 소리는 이 터전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 1911. 변요한과 고라복 선교사는 매곡동 ( 현재 매산중학교 ) 에 천막교사를 마련하여 영동 한옥 사숙에서 시작한 선교교육을 더욱 본격화 하였다 . 영동의 한옥 사숙과 매곡동의 천막학교에서의 교육은 ‘ 보조학교 (subsidiary academy)’ 또는 ‘ 문법학교 (grammar school)’ 정도의 수준이었으며 성경을 중심으로 한 기초적인 영어교육이 주로 이루어졌다 . 매곡동 천막교사 때에는 가난한 집 자녀들에게 성경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영어교육과 간단한 과학교육이 이루어졌다 .

이 무렵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양반집 자제들도 신학문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이기는 마찬가지였으므로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신식교육에 관심이 많았지만 상민들과 같이 남녀가 한 천막에서 앉아 공부한다는 것이 당시의 풍습으로 이해하기 어려워 , 전통적인 사회의 시각으로는 그리 고울 리가 없어 난처한 경우가 많았고 ,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학교를 다니던 양가집 자녀들이 후에 부모에게 발각되어 끌려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교실 가운데를 천으로 막아서 남녀를 따로 앉히고 앞에서는 선교사들이 양쪽을 오가며 교육을 하기도 했다한다 .

이와 같이 시작된 사숙과 천막교실에서의 교육은 장차 기독교 교육기관으로서 순천지역 교육의 중핵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순천매산학원으로 발전하는 초석이 되었다 .

※ 위 두 장의 사진과 내용은 매산고 홈피에서 발췌한 것.

 

 

 

 

순천 탐매마을

 

 

紅梅家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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