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취월당 (751) 썸네일형 리스트형 축령산에 온 맑은 영혼 구랍 2010. 8. 29 ~ 30 . 이 시대의 맑은 영혼이라 칭송 되는 이해인 수녀 시인님께서축령산 "휴림"에 다녀가셨다. 수녀님의 고매한 인품과 건강을 염려한 우리의 청담선생.맘 편하게 쉬시라는 뜻에서 일체의 손객을 사절, '휴림'을 오롯히 수녀님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드렸다고. 아래에 소개하는 수녀님의 친필 詩는,혹여라도 이 밤이 지나면 생각이 바뀔까봐,숙소에 드시자마자 밤늦도록 쓰셨다는 詩.다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잡인들에게이해인 수녀님께서 들려주는 복음이자 다독임의 말씀일러니...!. 수녀님께서 남기셨다는 '휴림 소회' . "진즉 이 곳을 알았더라면 생전의 '법정' 스님을 꼭 한 번 모시고 왔을텐데...." 이해인 수녀님의 약력 1945녀 6월 7일에 강원도 양.. 백자가 안겨주는 이 도도한 포만감 2010 . 8. 30 / 희뫼요 작품 감상 / 가마를 열기 시작하는 희뫼 김형규 선생 첫째 칸의 작품 둘째 칸을 열고 작품 상태를... 달항아리와 중호에 크랙이 보인다 셋째 칸의 작품들 완(碗) 완 안쪽 유약의 녹아내림이 빚어낸 형상을 보시던 고운 선생님 왈. " 마치 설송(雪松)같아요..." 다시(茶詩) / 함허당 一椀茶出一片心一片心在一椀茶當用一椀茶一嘗一嘗應生無量樂 한 잔의 차는 한 조각 마음에서 나왔으니한 조각 마음은 한 잔의 차에 담겼어라마땅히 이 차 한 잔 한 번 맛보시게한 번 맛보시면 한없는 즐거움이 솟아 난다네. 일천삼백도의 불 속에서 탄생한 달항아리 감상 작가의 시선 삼우정 마루에 좌정한 작품 감상 백자가 안겨주는.. 장성의 문화유산 돌아보기 <2> 장성 향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5호) /장성읍 성산리 청룡마을/ 1394년(태조 3) 북일면 오산리 교촌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0년(선조 33)장성읍 장안리 장자동으로 위치를 옮겨 복설하였다. 이 때 장성현과 진원현이 합쳐지면서 진원리에 있던 향교는 폐지되고 장성향교로 합쳐졌다. 1658년(효종 9) 현재의 성산리로 이전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건물의 구성을 보면, 명륜당ㆍ동재ㆍ서재ㆍ대성전ㆍ내삼문 등과 부속건물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명륜당 우측에 수령 약 300년된 은행나무가 서 있었으나 여러해 전에 고사해 버렸다. 대성전, 동ㆍ서무,내삼문,명륜당,동ㆍ서재,외삼문,홍살문,교직사 등이 있으며 외삼문 밖 약 300여m거리 고속도로 하부 통로 우.. 원림(園林)과 고가(古家) 순례 <4> 명옥헌 원림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후산마을 시냇물이 흘러 한 연못을 채우고 다시 그 물이 아래의 연못으로 흘러갈 때의 물 소리가 마치 옥이 부딪히는 것만 같다고 하여 명옥헌(鳴玉軒)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오희도(吳希道 1584-1624)가 지었다, 자(字)는 득원(得原) 호(號)는 명곡(明谷) 1602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623년(인조1) 알성문과(謁聖文科)에 합격하였다. 예문관(藝文館)의 관원으로 천거되었고 기주관(記注官)을 대신하여 어전에서 사실을 기록하는 검열(檢閱)에 제수되었으나 얼마 후 사망하였다. 그후 100여년이 지나 정자가 퇴락함에 따라 후손 오대경(吳大經)이 다시 중수하였다. 명옥헌(鳴玉軒)은 정자 앞에 연못이 파져있고 둘레에 적송(赤松) 및 자미.. 원림(園林)과 고가(古家) 순례 <3> 담양 고재선 가옥(潭陽 高在宣 家屋)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5호)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삼천리 맞담으로 형성된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이 주택의 뒷편 쪽문에 이른다. 사랑채 서쪽에 중문이 있으며 중문과 축을 맞춰 안채를 배치하였다.중문에서 안채로 출입할 때 안채가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시선차단용 담을 ㄱ자형태로 계획 하였다. 안마당 서쪽에는 안채와 직각으로 광채를 배치하고 안채 동북쪽에는 3칸의 식료창고를 두었다. 동북쪽에서 수로를 끌어들여 사랑마당의 동쪽에 연못을 만들었다. 안마당과 사랑마당은 내담을 쌓아 구획하였다. 건립연대는 1933년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일자형(一字形) 6칸 전후좌퇴(前後左退) 집으로서 서쪽의 2칸부터 5칸째까지 후퇴(後退)에 다시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평면의 칸살이는.. 원림(園林)과 고가(古家) 순례 <2> 김선기 가옥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80호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 정말 오랫만에 찾아간 김선기 가옥. 지난 칠팔십년대, 행여 쓸만한 고매(古梅)가 있을까 하여 찾아들었던 기억이다.골목을 따라 마을 맨 윗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대문을 들어서자 마자온 몸을 비틀어대며 사랑채를 가리고 선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 그러고 보면, 담양 일대 상당 수 고가엔 멋드러진 수세를 자랑하는커다란 소나무가 예외없이 한 그루 씩 서 있는 걸 보게된다. 사랑채 선조36년(1603)경에 만덕 김대기(晩德 金大器, 김선기의 14대조)에 의해 처음으로 건립되었다고 하며, 순조25년(1825) 김현대씨에 의해 중수되었다. “망인당(望仁堂)”과 “대산제(大山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가옥의 형태는 안채(정면 .. 탄생 500 주년, 다시 하서를 생각하다. 3편 도학의 발자취 백화정 (百花亭) - 오석에 적힌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다 - 백화정은 1552년에 건립된 하서선생의 외헌(外軒)이다. 민씨할머니께서 낙남(落南)하여 손수 잡은 이 집터에서 태어나신 선생은 선고의 유명을 받들어 복상중에 서둘러 사당과 외헌을 짓고 안채를 개축하였다. 난산을 바라보며 죽림에 둘러싸인 백화정은 선생의 지극한 효성과 충절이 서려있는 곳이다. 선생은 1549년에 순창에서 대학강의발(大學講義跋)과 천명도(天命圖)를 짓고 1550년에 맥동본가로 돌아온 후 10년 동안 오로지 학문에 전심하셨다. 노소제(盧蘇齊), 이일제(李一齊), 기고봉(奇高奉)과의 강론과 질정(質正) 선생의 심오한 도학(道學)을 집약한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과 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의 저술이 모두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뜰.. 탄생 500 주년, 다시 하서를 생각하다. 2편 필암서원 - 필암서원- 장성군 황룡면 377 원필암마을 (사적 제 242호) 하서 김인후를 배향한 서원으로 1590년(선조 23) 문인들의 발의로 장성읍 기산리에 세워졌으나 1597년 정유래란으로 소실되었으며 1624년(인조 2) 황룡면 증산동으로 위치를 옮겨 복설하였다. 1622년(현종 3) 유생들의 상소로 '筆岩'이라는 賜額(사액)을 받았으며, 1672년 수해의 우려로 지금의 필암리로 옮겨 다시 세웠다. 1786년(정조 10) 하서의 제자 고암 양자징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날아오를 듯 경쾌한 처마선이 눈 맛을 시원하게 한다, 약간 고개를 숙여고 드나들도록 만든 출입문은 이 곳이 강학의 공간이요 성현의 주향처니 마음을 낮추고 예를 갖추라는 뜻. 문루(門樓)에 내걸린 편액 廓然樓(확연루)는 우.. 이전 1 ··· 83 84 85 86 87 88 89 ··· 9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