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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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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초등학교 42회 동창모임 중식 후 순창 채계산 출렁다리 걷기 출렁다리에서 바라본 순창 적성면 들녘 편백림에서의 담소 담양호반에서... 호반에서 올려다 본 추월산 장성호반 보트장에 피어난 봉숭아 군락 쾌속 보트를 타고 장성호반 달리기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내놓는 말인 즉, "우리가 만나면 얼마나 더 만나겠는가? 기껏해야 오륙년 정도일텐데...." 칠순 줄이니만큼 몸뚱아리 건사 잘 해서 동창회에 빠지지 말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는 뜻! 살아온 날 보다는 남은 생이 더 짧다는 공감대. 이제 뭘 더 아웅다웅 바라고 자시고 할 게 있단말인가?. 그래....! 그저 자주 뭉쳐 생사 확인이라도 하면서 남은 생을 관조하고 욕심을 털어내는 게 현명한 처사요 사고일러니. 1박2일에 걸쳐 술 잔을 부딪쳐 본 금번 모임. 함께해주신 죽마고우들께..
초교 동창 고희연古稀宴 물경 7시간을 달려 당도한 강원도 철원 장수촌 식당. 1959년 초등학교 입학으로 초교 동창이 된 여자 친구의 '고희연'에 참석케 된 것. 건물 뒷편에 선 밤나무꽃을 한동안 바라보며 잠시 지나간 세월을 추억. 6인의 코흘리개 초교 동창이 한 자리에... 먼저 가족들과의 스냅 스무 살에 낳은 아들이 쉰한 살이 되었다는군요. 그가 어느덧 중년에 접어들어 어머니의 고희연에 촛불을... 왼쪽 마이크를 든 사위는 현역 육군 대대장이라고. 친정 여동생과 우측에 선 딸의 축하를 받으며 촛불을 끄는 친구의 모습. 장모님께 드리는 사위의 '감사장' 낭독. 잠시 이내 콧날이 시큰. 해피버스테이 투유♬ 홀로 된 장모님 고희연을 축하드리는 사위의 힘찬 포옹 '고희연'을 축하드리는 아들과 딸의 축하 포옹 딸과 손녀도 축하 대열..
夢遊桃源(몽유도원) 3 안평대군, 「몽유도원기」 때는 정묘년(1447) 음력 4월 20일 밤, 내가 잠자리에 들려는데 정신이 아른거려 잠에 푹 들었고 꿈[夢]을 꾸었다.... .... 또 어찌 이르러 도원[桃]까지 도달했는가.... .... 도원에 노닐며[遊] 따른 이가 하필 이 몇 사람인가 .... ....꿈을 꾼 지 3일에 그림[圖]가 완성되었다 .... 몽유도원도 축의 서두에 실린 안평대군의 詩 박팽년의 서문
夢遊桃源(몽유도원) 2 '몽유도원'의 주인공은 안평대군이지만, '몽유도원' 을 기억하도록 해준 공功은 에 있었다. 이어지는 21편의 시문은 어떠한가. 그것은 한 편 한 편, 세종시절 학계, 정치계 그리고 종교계 명사들이 공들여 짓고 친필로 남긴 보물들이다. 이들이 모두 이어져 거대한 시축을 이루었다. 여기서는 를 그린 안견, 그리고 21인의 명사들과 그들의 시문을 살펴보겠다. 1446년 안견이 그린 , 1448년에 그린 등은 모두 왕실을 위한 그림으로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안견이 세종으로부터 서반西班 4품의 호군護軍 벼슬을 이유를 헤아릴 수 있다. 안견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1464년 명나라 사신 김식金湜에게 줄 대나무 그림을 그렸다는 내용이다. 윤휴(尹鑴,1617-1680)의 기록이다. 2백여년 전의 일을 이 같은 탄식으로..
夢遊桃源(몽유도원) 1 안평대군은 약관의 나이로 집현전 학사들과 문학을 논하고 예술의 향유와 한글 연구에 기여하면서, 당송의 대문호 시선집을 여러 권 엮어냄과 동시에 고대 중국에서 원나라에 이르는 글과 그림을 수집한 컬렉터 이기도 하였으며 그의 유려한 송설체松雪體는 중국에까지 알려졌을 정도였다고. 그의 나이 29세 봄이 막 지나갈 즈음인 음력 4월 하순 20일 밤 특이한 꿈을 꾸었노라고 스스로 기록하였다. 심산유곡에서 신비로운 안내를 받아 도원桃源에 이르는 꿈이었던 것. 그 꿈에서 안평대군은 네 명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시종 동행한 벗, 그를 안내한 산山 사람, 그리고 문득 도원에서 마주친 두 명의 학사들이었다고. 화가 안견安堅(1440-60년대 활약)에게 꿈 속 풍경 를 그리게 하고, 꿈의 감회를 곡진하게 기록한 「몽유도원..
장성 황룡강변에 배치된 소방 헬기 장성 황룡강변에 배치된 소방 헬기 기종 : 시콜스키 장성을 비롯, 인근의 영광, 함평, 담양 등의 산불 진화를 담당하게 된다고. 김한종 장성군수에게 헬기의 제원 등을 설명하는 해당 헬기 기장
김구선생 은거지 보성 쇠실마을 기러기재(雁峙)를 넘는데 '백범 김구 선생 은거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 전부터 팻말을 봐 왔지만 오늘에야 작정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서게 된 것. 김구선생이 쇠실마을을 다시 찾은 건 1946년 9월, 선생의 나이 71살 때. 헤어짐의 아쉬움을 담은 한시를 남기고 떠난 지 48년 만이었다. 이름도 '김두호'가 아닌, 민족의 지도자 백범 김구 신분으로. 마을을 다시 찾은 백범은 '감격에 넘치었다'고 '백범일지'에 적었다. 기념관 백범 김구선생 은거 추모비 기념관 뒷편의 우물인데 괜찮은 물맛으로 소문이 난 모양. 사진상의 빨간 옷차림의 청년은 광주에서 여기까지 찾아와 페트병에 물을 담아가고 있었다.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선봉에 섰다. '아기..
보해양조 장성 보해양조에 자라는 은목서. 이처럼 커다랗게 자란 은목서를 보는 건 그리 흔한 게 아니다. 지금은 개화기를 넘겼지만 초가을 은목서가 내뿜는 향기는 형언키 어려울 만큼 매력적이라는 사실. 단풍나무 한 그루에 매달린 검붉은 별세계의 매력적인 자태. 호랑가시나무의 붉은 열매와 강인한 초록 잎새가 어우러진 강렬한 매력. 가히 남도를 대표하는 수종 중 하나. 이 나무에 하얀 솜뭉치를 얹으면 최고의 크리스머스 트리가 완성된다. 청죽과 소나무의 호위 아래 자리한 창립자 흉상. 최고의 용천수로 평가받는 보해양조 내 물확. 오래 전 해남 소재 보해양조 소유 매원梅園 촬영에 대한 협조를 얻고자 이곳을 방문한 바 있었다. 그때 매실이 저장된 어마어마한 탱크가 끝없이 들어선 모습을 잠시 보는것에 그쳤으나 이번엔 본부동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