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더릭 레이턴 <플레이밍 준>, 1895. 폰세미술관
탁월한 작품성과 특이한 소장처(푸에르토리코의 폰세미술관) 때문에 '남반구의 모나리라'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름다운 여성이 누워있고, 뒤쪽 테라스 너머로 해 질 녘 지중해의 아람다운 풍광이 보인다, 얼핏 보면여성은 잠들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얼굴의 홍조와 빨간 귀로 미뤄보면 여성이 화가의 시선을 의식하며자는 척 하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프레드릭 레이턴 <피렌체의 거리를 행진하는 치마부에의 마돈나>, 1853~1855. 런던내셔널갤러리
레이턴이 스물셋에서 스물다섯 살 때 그린 작품으로 높이는 2미터, 너비는 5미터를 넘는다.
13세기 이탈리아 회화의 거장 치마부에(1240~1302)가 그린 그림이 교회로 옮겨지는 장면을 표현했다.
프레더릭 레이턴 <타래 감기>, 1878, 뉴사우스웨일스미술관.
레이턴이왕립예술원 회장이 되던 해 왕립예술원에 걸었던 작픔으로, 자연스러운
자세와 우아한 분위기, 아름다운 배경이 일품이다.
프레더릭 레이턴 <클리티에>, 1895~1896. 레이턴하우스박물관
레이턴이 죽기 직전까지 그렸던 미완성의 명작으로 클리티에는 그리스 · 로마 신화에 나오는 존재로,
태양의 신 아폴론을 짝사랑해 태양만 애달프게 바라보다 해바라기가 되어버린 님프(요정)이다.
프레더릭 레이턴 <화가의 신혼>, 1864, 보스턴미술관
레이턴이 딘을 만나기 한참 전의 그림이다.
어쩌면 레이턴은 비혼주의자를 가장했을 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랑을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르크 샤갈 <아버지>. 1911, 유대교예술역사박물관
샤갈은 본디 1887년 러시아제국의 작은 도시 비텝스크(현 벨라루스)에 있는
유대인 마을에서 출생. 생선 가게 일꾼으로 아홉 남매를 부양하는
아버지의 눈에는 늘 근심이 가득한 채 무뚝뚝함과
가끔씩 슬픈 미소를 짓곤 했다고.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 1911, 뉴욕현대미술관
당시 러시아에서 유대인은 통행 허가증 없이는 이동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악조건에다
지독한 가난 가운데서도 샤갈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화풍으로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영감의 원천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을 캔버스에 옮겨 놓았다.
마르크 샤갈 <생일>, 1915, 뉴욕현대미술관
결혼 몇 주 전 완성한 그림이다.
젊은 연인들 사이 행복한 사랑의 감정이 강력하게 전달된다.
마르크 샤갈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1975, 국립현대미술관
왼쪽 아래 등장하는 연인은 샤갈 자신과 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아내 벨라다.
제임스 타소 <HMS 켈커타 호에서>, 1876, 테이트
젊은 하급 해군 장교는 흰옷의 여성을 바라보고 있고, 여성은 부채로 얼굴으 숨기며 장교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파란 리본이 달린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장교의 아내일지도 모른다.
제임스 티소 <일본 유물을 바라보는 두 여성>, 1869, 신시내티미술관
당시 유럽에서는 이국적인 동양의 문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티소는 이런 수요에 부응해
동양적인 요소를 넣은 그림들을 그렸고, 덕분에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제임스 티소 <선상 무도회>, 1874, 테이트
선상 행사를 묘사한 이 그림은 예상 외로 존 러스킨을 비롯한 일부 미술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의 대표적인 걸작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제임스 티소 <숨바꼭질>, 1877, 워싱턴내셔널갤러리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고 캐슬린은 뒤쪽 의자에 기대 신문을 읽고 있다.
제임스 티소 <파리의 여인들: 서커스 애호가>, 1883~1885, 보스턴미술관
그는 파리로 복귀한 뒤 <파리의 여인들>이라는 연작을 그렸다.
다양한 계층 여성의 일상을 묘사해 파리 사회의 생활상을 재현했다.
제임스 티소 <정원 벤치>, 1882, 개인 소장
제임스 티소 ,해먹>, 1879, 개인 소장
200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만 3,750달러(약 17억 2,500만 원)에
낙찰됐다. 지금의 가격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 <마리아나>, 1851, 테이트
아름다운 여성이 수를 놓다가 잠시 일어서서 허리를 젖히고 몸을 풀고 있다.
밀레이는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이 쓴 <마리아나>라는 시에서 영감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다.
동명의 시는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시 속 여인은 떠나가버린
연인을 허망하게 기다린다. 그림의 섬세한 색채와 세부 표현이 일품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 <낙엽>, 1856, 맨체스터미술관
스산한 가을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네 명의 소녀가 마당에서 긁어모은
낙엽을 태우고 있다. 낙엽 더미를 둘러싼 소녀들이 각기 짓는 표정은 삶과 죽음을 대하는 저마
다의 태도를 상징한다. 왼쪽 끝의 소녀는 낙엽 태우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고, 그 오른쪽에 있는 소녀는 움켜쥔 낙엽을ㄹ 더미 위에 올려놓고 있으면서도 이를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그 옆의 소녀는 명상하듯 눈을 감고 있고, 손에 과일을 든
소녀는 낙엽 더미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러스킨은 "황혼을 그림으로 완벽하게 표현한 첫 사례"라고 소개했다.
존 에버렛 밀레이 <글렌 버남>, 1890, 맨체스터미술관
말년에 들어 밀레이는 '돈이 덜 되는' 풍경화에 천착했다. 이 작품은 그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힌다.
생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해석이 많다.
크로드 모네 <생드니 거리>, 1878, 루앙미술관
일부 연구에 따르면 모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는 장면의 특징을 한 번에 잡아내는,
극도로 민감한 시각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 있는 깃발은 흐릿하고
불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이 위치와 상황에서 군중을 내려다보는 사람에게는
깃발이 이런 식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점은 화면보다
그림을 실제로 봤을 때 더 잘 느껴진다.
클로드 모네 <카미유의 임종>, 1879, 오르세미술관
모네는 절망했다. "새벽녘에 나는 내가 가장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한 죽은 여인의
옆에 앉아 있었네. 그녀의 비극적인 잠을 응시하고 있었지. 그리고 문득, 내 눈이 죽은 사람의
안색의 변화를 좇고 있음을 깨달았네. 파랑, 노랑, 회색의 색조,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내 곁에서 사라져가는 그녀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기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더군.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그리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 색채가 유기적인 감동을 불러일으켜
나는 반사적으로, 내 인생을 지배해온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거야.
나를 동정해주게 친구."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스카켄 해변의 여름 저녁, 화가와 그의 아내>, 1899, 히르슈슈프롱컬렉션
남자가 태어난 곳은 노르웨이 바닷가 시골 마을의 한 정신병원, 어머니는 이 병원에 입원 중인 중증
정신질환자 였고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친척 집에 맡겨진 그는 아홉살까지 갇혀 있는
것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학교에 가기는 커녕 집 밖으로 놀러 나갈 수도 없었다.
어린 시절 그에게 바깥세상은 작은 창밖으로 보이는 한적한 공터가 전부였다.
그랬던 남자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덴마크의 '국민 화가'로 우뚝 섰다.
페데르 세베린 그뢰위에르 <힙 힙 후레이!>, 1888, 예테보리미술관
스카겐에 모인 화가들이 즐거운 파티를 벌이는 장면을 그렸다.
스카겐 화가들이 보낸 행복한 시간과 그들의 우정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덴마크 왕립학술원 회의>, 1897, 칼스버그재단
가로 5미터, 세로 2미터가 넘는 초대형 그림이다. 크뢰위에르에게는 이같은 초대형 단체 초상화 주문이 몰렸다.
그림을 매우 빨리, 잘 그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림을 그리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고
그뢰위에르는 결국 건강을 잃고 말았다.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스카겐의 여름 저녁, 화가의 아내와 개>
1892, 스카겐미술관
앤드루 와이어스 <백일몽, 1980, 해머뮤지엄
앤드루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 1948, 뉴욕현대미술관
앤드루는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다가 친한 이웃인 그리스티나가 두 팔로 열심히 기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크리스티나는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었지만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항상 당당한 태도로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여성이었다. 앤드루는 그녀가 겪고 있는 잔인한 상황을 의연하게 견디고 이겨내려는 태도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 그 인간 승리의 현장을 그렸다. 이 작품은 이후 수많은 예술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앤드루 와이어스 <결혼>, 1993년, 개인 소장
사람들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화풍을 미술적 사실주의(미술적 리얼리즘)라고도 부른다.
서로 다른 두 인간이 이토록 깊고 넓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야말로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장 미술적인 순간일지도 모른다.
에드가르 드가 <무대 위의 무희>, 1876~1877, 오르세미술관
에드가르 드가 <개의 노래>, 1875~1877, 개인 소장
에드가르 드가 <페르낭도 서커스의 라라 양>, 1879, 런던내셔널갤러리
사람들은 덧없고 일시작인 것을 그림이라는 움직이지 않는 매체 속에 고정하는 드가의
능력에 언제나 감탄했다. 그는 자유자재로 구도를 짰고, 치밀한 계산으로 이를 뒤받침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스냅 사진만큼이나 정확하면서 사진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다.
에드가르 드가 <무용 수업>, 1873~1876, 오르세미술관
1870년대 드가의 동생이 파산했지만 다행히도 드가는 이미 인기 화가가 돼 있었다.
드가의 그림 중 가장 잘 팔렸던 건 발레 그림이었다.
드가가 발레 그림을 특히 많이 그린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예르강에 내리는 비>, 1875, 인디애나대학미술관
윌리엄 터너 <바다의 어부들>, 1796, 테이트
조지 프레더릭 와츠 <엘런 테리(선택>, 1864,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
화려하지만 향기가 없는 동백꽃은 세속적인 허영심을, 소박해 보이지만
향기로운 제비꽃을 고귀한 가치를 상징한다.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테리의 모습을 그렸다.
1864년 2월 20일 토요일, 영국 런던에 있는 성 바나바스 교회에서 마흔일곱 살 유명 화가와
열일골 살 여배우의 결혼식이 열렸다. 지금이라면 아마도 난리가 났을 게 분명할 터.
하지만 당시는 이런 풍조가 만연했다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줄리엣의 나이가 만 열세 살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말이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 <사랑과 삶>, 1884~1885, 테이트
작가가 자신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은 그림이다. 그는 이 그림에 긴 설명을 붙였다.
"나는 오랫동안 위대한 도덕적 개념인 인생, 그 어려움, 의무, 고통, 형벌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정의가우리 행동의 주요 원천이 되어야 하고 부드러움, 연민, 사랑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나의 최고의 구성이 이 주제에 있다고 생각한다.
연약하고 미약한 존재인 인간이 동정심, 자비, 부드러움, 인간애라는 사랑으로 인해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 <만몬>, 1885, 테이트
신약성서에 나오는 악마로 7대 죄악 중 인색을 상징한다.
황금만능주의와 탐욕을 비판한 그림이다.
조지 프레더릭 와츠 <희망>, 1886, 테이트
손녀를 잃은 슬픔을 담은 그림이다. 와츠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지구본 위에 앉아 있는 희망, 두 준엔 붕대를 감은 채 줄이 하나만 남은 리라를
연주하는 것, 어떻게든 온 힘을 다해 작은 소리를 내서 음악을 들으려는 것"
에두아르 마네 <화실에서의 점심 식사>, 1868, 노이에피나코테크
뒤쪽의 여인은 아내, 앞쪽의 청년은 아들이 모델이지만
어딘가 분위기가 어색하고 사람들의 눈빛이 공허하다.
에두아르 마네 <피리 부는 소년>, 1886, 오르세 미술관
마네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에두아르 마네 <칼을 든 소년>, 1861,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아들 레옹이 모델이다.
에두아르 마네 <콜리베르체르의 바>, 1882, 코톨드미술관
마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그린 것이다.
페데르 뫼르크 뮌스테드 <화창한 겨울 날 썰매 타기>, 1919, 개인 소장
페데르 뫼르크 뮌스테드 <봄의 반사>, 1893, 개인 소장
페데르 뫼르크 뮌스테드 <숲이 우거진 개울>, 1913, 개인 소장
페데르 뫼르크 묀스테드 <계곡을 흐르는 시냇물>, 1905, 개인 소장
틴토레토 <기독교도 노예를 풀어주고 있는 성 마르코>, 1548, 아카데미아미술관
서른 살이 되던 해 이 대규모 벽화 작업을 수주한 틴토레토는 심혈을 기울여 그림을 그렸고
이 작품의 성공을 계기로 본격적인 성공 가도를 걷기 시작한다.
극적인 명암 대비와 완성도 높은 구도가 인상적이다.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1594, 산조르조마조레성당
틴토레토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으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복잡하면서도 역동적인 구도, 극적인 빛의 효과가 눈길을 끈다.
틴토레토 <성 마르코의 사신 발견>, 1562~1566, 브레라미술관
성인의 유해를 찾기 위해 무덤을 뒤지는 베네치아 상인들 앞에 성 마르코나 나타나
"여기 있으니 다른 시신을 그만 꺼내라"고 하는 장면을 묘사 했다.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킨토레토는 동굴 모양의 깊은 공간을 만들고
명암 대비를 더해 불가사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틴토레토 <낙원>, 1588, 두칼레궁전
틴토레토가 두칼레궁전(베네치아 총독의 궁전)에 그린 초대형 유화로, 19세기 미술 평론가 존 러시킨은
이 그림을 두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예술 작품 중 단연코 가장 귀중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가로 길이가 22미터로, 그림이 너무 커서 실제로 봐도 제대로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참고도서: 성수영 著 《명화의 탄생 그때 그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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