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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명화의 탄생 II

틴토레토 <은하수의 기원>, 1575, 런던재셔널갤러리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를 위해 틴토레토가 그린 작품이다.

루돌프 2세의 취향에 맞춰 티치아노를 연산시키는 부드럽고 조화로운 화풍으로 그렸다.

마무리도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했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삶의 단계>, 1835, 라이프치히조형예술박물관

프리드리히의 대표작 중 하나로 그림에 나오는 다섯 인물은 작가 자신과 조카 등

가족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총 다섯 척의 배 역시

각각 인물의 삶을 상징한다는 시각이 많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자화상>, 1910.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자화상>, 1872.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책 읽는 여인>, 1875~1876.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책 읽는 어린 소녀>, 1886.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잔 사마리의 초상>, 1877, 푸시킨미술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뿌리개를 든 소녀>, 1876, 워싱턴내셔널갤러리

아마도 르누아르는 자신의 딸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시골의 무도회>, 1883, 오르세미술관

작품 속 즐거운 듯 환한 미소를 짓는 여성은 미래의 르누아르 부인인 알린이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1892, 오르세미술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첫 외출>, 1876, 런던내셔널갤러리

아름다운 옷을 입고 꽃다발을 든 소녀는 파리 사교계의 첫 외출에 대한 흥분과 기대로

가득 차 있다. 르누아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처럼 아름다움과 기쁨으로 가득했다.

 

제임스 앙소르 <가면에 둘러싸인 앙소르>, 1899, 개인 소장

앙소르는 가면을 쓴 인물들에게 압도 당한 듯 보인다. 그는 군중을 두려워 했는데, 여러 비판에

시달리면서 부드러운 얼굴 뒤에; 인간의 잔인한 본성이 감춰져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제임스 앙소르 <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 1889, 폴게티미술관

작품 가로 길이가 4미터 30센티미터에 달하는 대작으로 색의 조화와 물감값 절감을 위해 흰색 래커(락카)를 주문해서

군데군데 칠했다. 그림 속 앙소르의 얼굴로 표현된 그리스도는 화면 깊숙히 작게 보인다. 반면 여러 얼굴과 가면, 사제

와 판사, 장교 등이 그리스도를 그림 뒤쪽으로 몰아내는 모양새다. 미술의 구원자가 되려 했던 아소르였지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조롱과 왜곡에 실망했던 경험을 그려냈다. 발표 당시에는 아무도 이 그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제작 후

41년이 지난 1929년에야 처음 전시됐다. 지금은 앙소르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제임스 앙소르 <가면에 둘러싸인 노부인>, 1889, 헨트미술관

 

제임스 앙소르 <훈재 청어를 두고 싸우는 해골들>, 1891, 벨기에왕립미술관

앙소르는 풍자를 자신의 무기로 삼았고, 아이러니와 경멸로 자신을 지탱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일거리는 다른 사람을 묘사할 때 그들을 비틀어 왜곡하고 윤색하는 것이다.

 

제임스 앙소르 <비통한 남자>, 1892, 안트베르펜왕립미술관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리스도의 얼굴은 화가가 이 무렵 겪었던 심각한 위기를 반영한다.

이 작품은 영화 <올드보이>에 나오기도 했다. 영화 속 주인공 오대수가

갇혀 있던 방에 걸려 있었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라는 라는 엘라 휠러 윌콕스의 시구와 함께 등장했다.

 

제임스 앙소르 <가면이 있는 자화상>, 1937, 필라델피아미술관

 

에드바르 뭉크 <어린 시절의 기억 - 문 밖에서>, 1892, 뭉크미술관

뭉크가 다섯 살 때 어머니는 뭉크를 데리고 자기 인생의 마지막 산책을 나섰다.

뭉크는 회고한다. "그날만큼은 어머니의 기침도 평소보다 덜 했다.

바깥 공기는 따뜻했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잔디는 푸르렀다.

20년도 지난 뒤 뭉크느 그 기억을 건져 올려 화폭에 담았다.

 

에드바르 뭉크 <병든 아이>, 1885~1896, 오슬로국립미술관

 

에드바르 뭉크 <사춘기>, 1894~1895, 오슬로국립미술관

뭉크는 사춘기의 공포라는 소재를 다룬 역사상 최초의 한 사람이다.

성적으로 그의 작품을 해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림자가 덧없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한다는 해석을 고려하면 단순하게 해석  수 만은 없다.

앞서간 만큼 그의 작품은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

종교적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그의 아버지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에드바르 뭉크 <재>, 1895, 오슬로국립미술관

 

에드바르 뭉크 <마돈나>, 1895, 뭉크미술관

다그니 유엘이 모델이다.

뭉크에게는 세 명의 여인이 있었다. 첫 번째는 학창시절 만난 밀리 테올로브.

그녀는 유부녀로 여러 남자를 유혹하고 다녔다. 뭉크도 그중 하나다. 

뭉크를 조금 가지고 놀라 다른 남자를 찾아갔는데, 성과 우울, 후회, 두려움을

연관시키는 뭉크 특유의 정서가 이때 확립되었다고.

두 번째 사랑은 어릴 적 알고 지내다 베를린에서 다시 만난 다그니 유엘.

유엘이 뭉크의 친구인 폴란드 출신 작가와 만나 결혼한 뒤에도

 종종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응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엘이 괴한에게

살해 당하는 사건으로 뭉크의 영혼에 또 하나의 상처가 새겨진다.

마지막 여성은 셋 중 최악으로 결혼하자며 자살 소동까지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뭉크의 왼손 중지가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뭉크는 남은 평생 손 때문에 고통에

시달렸고, 이를 잊기 위해 술을 마셔댔다. 왼손을 장갑 속에 숨겼던 뭉크.

그가 죽은 뒤 그의 집에서는 40켤레에 달하는 장갑이 발견되었다.

 

에드바르 뭉크 <창가의 자화상>, 1940년, 뭉크미술관

왼쪽 부분의 화가의 삶과 오른쪽 부분의 죽음을 암시하는 겨울 풍광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풀랭루주에서, 춤>, 1890, 필라델피아미술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거울 앞에 선 자화상>, 1880, 툴루즈로트레크미술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물랭루즈의 라 굴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로틀크의 포스터 대표작 중 하나로, 앞에 그림자처럼 표현되 남자는

당시 유연한 춤을 추기로 유명했던 댄서 발랑탱이다.

뒤쪽에서는 라 굴뤼가 특유의 캉캉춤을 추고 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두 여자와 물랭루주에 들어서는 라 구뤼>, 1892, 뉴욕현대미술관

마굴뤼는 '먹보'라는 뜻으로, 손님 잔에 든 술을 마시는 습관에서 유래했다,

훗날 라 굴뤼는 사자 조련사로 일하기도 했고, 늙고 가난해진 뒤에는

물랭루즈 밖에서 땅콩을 팔기도 했다.

 

앙리 드 쿨루즈 로트레크 <실페리크에 맞쳐 볼레로를 추는 마르셀 랑테>, 1895~1896, 워싱턴내셔널갤러리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모자 가게 여주인>, 1900, 툴루즈로트레크미술관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로트레크는 집 근처 모자 가게 주인과 순수한 우정을 나눴다.

그림에는 풍부한 색채와 함께 이별에 대한 조용한 술픔이 담겨 있다.

로트레크는 떠나기 전 말했다. "포옹합시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요"

 

좌)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1887,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

우) 빈센트 반 고흐 <테호의 초상>, 1887, 반고흐미술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 1657~1659, 베를린국립회화관

오랫동안 벽의 큐피트 그림이 없는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가, 2021년 복원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큐피트 그림은 소녀가 연애편지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과 유리창에 반사된 소녀의 얼굴 표현이 인상적이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음악 수업>, 1662~1665, 영국왕실컬렉션

남자의 입이 조금 벌어져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여성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여성의 뒷모습은 연주에 집중하는 것 같지만, 거울에 비친

앞모습을 보면 남성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그 뒤로 이젤이 보이는데, 거울 속에서만 볼 수 있다.

오류일까, 페르메이르의 장난일까?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편지를 읽는 여인>, 1663,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

페르메르는 당시 매우 비쌌던 청색 물감을 이렇게 마구 썼다. 이 그림에는 창문이 나와 있지 않지만

왼쪽에서 들어오는 빛을 통해 창문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 전번적인 색감과 명암을 보면 그림의

시간대는 이른 아침인 것으로 보인다. 여인 뒤에 걸린 지도는 편지를 보낸 주인공이 해외를 돌아

다니는 남편이나 연인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편지에 집중했는지 여성의 입은 조금 벌어져 있다.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륑 <시빌라로서의 해밀턴 보인의 삶 연구>, 1972, 개인 소장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현존하는 인물을 그렸다. 그림의 모델인 에마 해밀턴은

영국의 해군 영웅 허레이쇼 넬슨 제독과의 염문으로 당시 유럽의 유명 인사였다.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륑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1782, 런던내셔널갤러리

 

엘ㄹ자베트 비제 르 브륑 <궁정 드레스를 입은 마리 앙투아네트>, 1778, 빈미술사박물관

앙투아네트는 이전에 자신을 그린 작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화가들은 나를 절망에 빠뜨린다.

너무 형편없다"고 했다.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 왕비는 "얼굴이 그렇게 안 닮아도 괜찮다.

궁정 복장을 한 네 모습이 보고 싶다"고 달랬다. 마침내 르 브륑의 이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야

앙투아네트는 만족할 수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 특유의

외모 단점을 절묘하게  보정한 실력 덕분이었다.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륑 <자화상>, 1790, 우피치미술관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륑 <플로라로 그려진 줄리>, 1799, 세인트피터즈버그미술관

딸을 신화적으로 그린 초상화로, 당시 줄리늘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엘리자베트 비제 르 브륑 <자화상>, 1800, 예르미타시미술관

 

앙리 루소 <바위 위의 소년>, 1895~1897, 워싱턴내셔널갤러리

 

앙리 루소 <나, 초상, 풍경>, 1890, 프라하국립미술관

세계적인 화가로 인정받고 말겠다는 루소의 야망과 꿈이 드러나 있다.

 

앙리 루소 <생니콜라 부두에서 바라본 생루이섬 풍경>, 1888, 세타가야미술관

루소의 일터 근처 풍경이다. 루소는 원근법을 제대로 마스터하지 못했지만, 직관을 통해 

세상을 보이는 모습대로 그렸다. 카미유 피사로는 "학습에 의한 기법을

화가의 직관이 대체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그림 속 풍경은 매우 고요하다. 

루소의 일과 대부분은 그저 앉아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앙리 루소 <세관>, 1890, 코톨드미술관

루소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22년간의 공무원 생활의 흔적이 여기 녹아 있다.

1909년 비평가 아르센 알렉상드르는 이 작품에 대해 "루소가 냉정하게 형태와 색을

계산해서 이렇게 이론적으로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렸다면 그는 아주 위험한 사람

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는 아주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도 잣신의 직관과 노력만으로 자신만의 완성도 높은 화풍을 이룩했다는

로소의 매력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앙리 루소 <호랑이가 있는 열대의 폭풍(놀라움), 1891년, 런던내셔널갤러리

이 작품은 당시 미술계에서도 호평받았다.

정글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통해 루소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앙리 루소 <풋볼 선수들>, 1908, 구겐하임미술관

유쾌한 이 그림에서 줄무늬 옷차림의 운동선수들은 공중에서 발레를 하는 것처럼 떠 있다.

배경은 생클루 공원의 가로수길. 1908년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와 영국 간 첫 국제 풋볼 경기를

축하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이때만 해도 풋볼은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운동 경기였다.

가운데 선수는 루소 자신을 모델로 그린 것이다. 의기 양양한 모습이다.

 

앙리 루소 <뱀 부리는 사람>, 1907, 오르세미술관

루소는 파리의 자연사박물관, 식물원 온실, 동물원, 잡지, 신문 등

자료를 총동원해 실제보다 더 사실적인 정글 풍경을 그려냈다.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1897, 뉴욕현대미술관

루소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고요한 달밤, 사자의 갈기를

흔드는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 걸까.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누워 있는 나부>, 1917~1918, 롱미술관

누드화는 모딜리아니 작품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레오폴드 즈보로프스키의 초상>, 1918, 개인 소장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자크와 베르트 립시츠의 초상>, 1916, 시카고미술관

특이한 화풍이지만 노련한 장사꾼인 남자의 특징과 함께

착하고 순수한 아내의 성격이 잘 표현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잔 에뷔테른의 초상>, 1918, 개인 소장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자화상>, 1919, 상파울루현대미술관

 

장 프랑수아 밀레 <야간의 새 사냥>, 1874, 필라델피아미술관

 

장 프랑수아 밀레 <괭이를 든 남자., 1860~1862, 폴게티미술관

 

장 프랑수아 밀레 <접붙이는 농부>, 1855, 노이에피나코테크

 

알프레드 시슬레 <랭랜드 베이>, 1897, 발라프리하르츠미술관

 

 

참조: 성수영 著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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