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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미셸 오바마

에이미 셰럴드

 

나는 시카고 남쪽에서 온 미셸 오바마를 그렸고 ···

그러고 나서 퍼스트 레이디를 그렸다.

 

- 이이미 셰럴드(2021년 6월) -

 

 

 

 

 

 

 

 

 

버락 오바마 대통령 행정부(2009~2016)의 마지막 몇 주 동안 에이미 세럴드는

자신의 경력에 큰 영향을 줄 중요한 인터뷰를 위해 백악관에 갔다.

 

그녀는 10년 이상 동안 대담한 색상, 평평한 형태, 정확한 사실주의를 결합한 독특한

회화 스타일로 자신이 '미국인'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들은 대부분 익명의 젊은 흑인이었다.

 

그녀는 초상화 작가는 아니었지만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초상화박물관 컬렉션에

들어갈 공식 초상화를 그릴 작가 후보로 선정되었다. 최종 후보자 명단에 있던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그릴 그림의 모델이 44대 대통령이 될지

그의 부인 미셸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셰럴드가 대통령 및 영부인과 대화하기 위해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즉각적이며

실제적으로 미셀과 결속되는 느낌을 받았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세럴드는 영부인에게

"나는 정말로 당신과 내가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후에 오바마 여사가 "처음 몇 마디만으로도 그녀가 나를 위한 사람임을 알았다"고

회상했듯, 분명히 그 감정은 서로가 동일하게 느낀 것이었다.

 

셰럴드는 재현의 개념을 작업의 중심에 둔다.

사회가 간과하고 역사적 기록이 한시한 사람들을 묘사함으로써 미국 회화의 서사에

더 큰 표용력과 공감력을 구축해나간다. 주로 낮선 사람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는 순간에

작업이 시작되곤 하는데, 셰럴드는 그들에게 다가가 작업실에서 참고할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는다.

 

오바마 부부의 초상화 작업은 매우 다른 종류의 도전이었다.

유명하고 존경받는 공인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이 낮설었으며 제한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업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식 초상화는 보수적인 역사를 가진 반면 세럴드의 평소 작업 방식은 현저하게 현대적

이었다. 그러나 이 초상 작업에는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부인을 또 다른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예술적 시각을 통해 묘사했다는 표현 행위 자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물과의 유사성, 존재감, 자부심이 인상적으로 융합되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세럴드는

이 초상 작업이 전통적 한계를 뛰어넘을 기회를 포착하고 명작을 구상했다.

 

 

 

 

 

미셸 라본 로빈슨 오바마

에이미 셰럴드(1973년생)

2018년, 리넨에 유채, 183×153CM

스미스소니언 국립초상화박물관, 워싱턴 D.C

 

 

 

 

엄밀히 말하면 영부인은 공인도, 행정관도 아니다.

헌법은 그녀의 역할을 정의하지 않는다. 그녀는 선출되지도 않았고 보수를 받지도 않는다.

그녀의 과거와 현재에는 변함이 없고 그저 기금 대통령의 배우자일 뿐이다.

 

초대 대통령의 부인 마사 워싱턴은 '레이디 워싱턴'으로 불렸으며, 수 십 년 동안 그녀의

후임자들도 계속해서 남편의 성으로 불렸다. 미국의 12대 대통령인 재커리 테일러가 1849년

돌리 매디슨을 위한 추도문에서  "그녀는 반세기 동안 우리의 진정한 퍼스트 레이디였다"고

언급하면서부터 '퍼스트 레이디'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기 지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1809~1819년 재임)의 부인인 돌리 메디슨은 대통령 부인 중

최초로 공적인 역할을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제임스 매디슨은 취임 전에 아내를 잃은 토머스

제퍼슨(1801~1809년 재임)의 국무장관으로 일했는데, 필요할 때마다 매디슨 부인은 행사를

조직하고 주재하면서 제퍼슨을 도왔다. 남편이 퇴임한 후에도 워싱턴에가 가장 영향력 있는

안주인으로 남았고, 몇몇 전기 작가들은 그녀를 '여대통령'이라 부르며 비웃기도 했다.

 

현재의 퍼스트 레이디가 칭호로 사용되기 시작한 때믄 1860년부터였다.

수 년에 걸쳐 이 칭호는 적어도 대중의 인식 속에서만큼은 하나의 지위를 가친 채 진화해왔다.

활동가였던 엘리너 루스벨트의 사레 이후, 대부분의 영부인은 사회적으로(그러나 정치적

는 중립적인) 대의의 편에 서기 위해 그들의 명성을 사용했다. 

 

재클린 켄디는 역사 보존 사업을 지원했고, 전직 사서였던 로라 부시는 읽고 쓰는 능력을

키우는 일들을 장려했으며, 미셸 오바마는 어린이들의 건강과 영양을 지키는 일들을 지원

하는데 힘썼다. 루스벨트 여사는 자신의 외모와 라디오 방송, 신문 컬럼 등을 자신의 선행을

공개하는 데 활용하면서 전에 없던 선례를 남겼고, 결과적으로 미국인의 일상에 존재하는

영부인으로서 대중적으로 큰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었다.

 

 

 

 

 

버락 오바마

케한데 와일리(1977년생0

2018년, 캔버스에 유채, 214×147cm

스미스소니언 국립초상화박물관, 워싱턴 D.C

 

 

 

 

 

남편이 1995년 공직에 처음 출마했을 때부터 미셸 오바마는 정치적으로 주목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족, 교육, 미덕을 중시하는 시카고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으며 프린스턴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을 다닌 후 변호사로 일했고,

이후 시 정부 및 병원의 행정 기관 등 공공 부문에서 일했다.

 

그녀는 직장에서 버락 오바마를 만났다.

그에게 지적재산권법과 관련해 멘토 역할을 했으며 1992년에 그와 결혼했다.

그녀는 달들이 태어났을 때 남편과 함께 선거 유세에 참여하는 것을 꺼렸고, 항상 가족과

일이 우선 순위였다. 하지만 오바마가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도 지명되었을 때

그녀는 대중적인 역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세련되면서도 설득력 있는, 진실되면서도 자연스러운 말하기 능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면서 스스로 매력적인 운동가임을 입증했으며, 많은 직장 여성은 현대적인

모성을 추구하는 녀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했다.

 

오바마의 승리는 미국 대통령 역사에서 유색 인종의 한계를 깨뜨렸고, 오마바 여사는

자신이 전례 없는 위치에 서 있음을 인식했다. 201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남편의 재임 기간을 언급할 때 강한 어조로 말한 것처럼, 자신과 남편이

국가의 역사를 대표한다는 점을 결코 잊지 않았다.

 

"나는 매일 아침 노예들이 지은 작은 집에서 일어나 아름답고 지적인 흑인 여성인

나의 두 딸이 백악관 잔디밭에서 강아지들과 노는 모습을 봅니다."

 

퍼스트 레이디, 즉 영부인의 지위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공식' 초상화의 개념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되었다. 국립초상화박물관에 있는 대통령 초상화 켤렉션의 역사는

이제 겨우 반세기 정도가 넘었으며, 14대 대통령인 조지 부시의 초상화는 

1994년이 되어서야 제작 의뢰에 들어갔다.

 

 

 

 

 

 

미스 에브리띵(억누를 수 없는 해방)

2013년, 캔버스에 유채, 138×109.5cm

프렌시스와 버턴 라이플러 켤랙션

 

셰럴드는 불티모어에서 자건거를 타다가 크리스틸 맥을 만났을 때 맥의 희망찬 자세와

자신감 넘치는 테도에 영감을 받았다. 의상과 생동감 넘치는 색채, 장난기 가득한

소품을 통해 셰럴드는 자연스러운 침착함을 지닌 맥을 가상의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2016년 국릷초상화박물관은 아웃원 부슈버 초상화 공모전에서

이 작품을 최우수상으로 선정했고, 셰럴드는 여성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수상자가 되었다.

 

 

 

 

 

영부인들도 각종 인쇄물과 사진을 포함한 다양한 이미지들로 재현되었는데,

초상화로는 2006년에 지니 스탠퍼드가 그린 힐러리 로댐 클린턴의 것이 처음이었다.

오마마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 국립초상화박물관 위원회는 대통령 부부의

초상화를 그릴 2명의 예술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심도있는 검토 후,

최종 후보자를 선정하기 위해 15점의 포트폴리오를 심사위원단에 제출했다.

 

심사위원단은 백악과 큘이터인 윌리엄 앨먼, 할렘

스튜디오 미술관의 디렉터인 델마 골든과 몇몇 갤러리 큐레이터로 구성되었다.

 

진행 비용을 위해 민간 부분에서 기금도 확보했다.

최종 후보자들은 자신들이 초상화 작가로 고려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으며,

인터뷰도 진행되었다. 이제 오바마 부부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차례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교체와 수정이라는 방식을 통해 초상화 장르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지속된 흑인의 부재를 반박하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 케힌데 와일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오바마 여사는 '미국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취지로 '미국인'을

직설적이면서도 독특한 미학적 방식으로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해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에이미 셰릴드를 택했다.

 

셰럴드는 초상화가로 불리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셰럴드의 작업은 한 사람의 모습이 그녀의 상상 속에서 무언가를

강하게 촉발하는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종종 메릴랜드주 볼티모어를 돌아다니면서 그림의 대상을

발견하곤 한다. 그들에게 그녀는 아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 지역에서 본 사람일

수도 있으며, 완전히 낮선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그녀가 매일 주변에서 보는 유형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유사한데,

대부분 젊은 흑인이다. 셰릴드는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고 작업실로

촬영한 사람의 모습을 '사진 속 모델'에서 '그림의 주제'로 바꾼다.

 

그들의 평범한 포즈를 힘 있는 형태와 평평한 색면들로 그려내고, 단색의 배경과

대비를 이루도록 구성함으로써 사진 속 그들을 기념비적인 이미지로 재탄생시킨다.

작품 <미스 에브리띵(억누를 수 없는 해방)>에서 볼 수 있듯이

옷은 인물의 외형과 의미를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셰럴드는 종종 관람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작품에 위트를 넣는다.

완벽한 포즈와 우아한 모습의, 멋진 옷을 입은 이 젊은 여성은 자신의 모순적인 면모를

강조하듯 거대한 찻잔을 들었다. 하지만 표정은 진지하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면서 약간 경계하는 태도로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녀는 단지 보여질 준비가 되어 있기보다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와

동등한 힘과 권리를 가지고 당당하게 시선을 맞춘다. 셰럴드는 인물의 외모를

원형에 가깝게 표현하려는 자신의 개념적 의도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그중 하나는 '그리자유(단조로운 회색조)'를 사용해인종적으로 구별되는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과는거리가 있는 피부 톤은 만든 것이다.

 

 

 

 

 

영부인 미셀 오바마의 사진(초상화를 위해 취한 포즈)

2017년 10월 2일, 매릴랜드주

에이미 셰럴드 제공

 

셰럴드의 초상화 작업은 포즈를 포착하고 모델의 모습을 기록하는 사진 촬영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얼굴과 모습을 자연주의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특정 정체성을

넘어 개인의 삶보다 더 크고 보편적인 본질, 즉 원형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셰럴드는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유지하면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미셸 오바마의 초상화

작업을 시작했다. 오바마 여사는 셰럴드가 어깨를 물리적으로 움직이고, 머리를 정도하고,

손가락의 위치를 바꾸며 직접 자세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해 '친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세를 취했다고 말했다.

 

오른손에 턱을 괸 채 다리를 꼬고 앉은 오바마 여사는 카메라를 엄숙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약간 치켜든 눈과 벌어진 입술은 말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배경이 되는 정원의 초록빛은 광택이 나는 듯한 갈색 피부를 선명해 보이게 하며,

이는 그녀의 옷에 있는 대담한 흑백 무늬에 의해 더욱 강조된다.

 

남편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오바마 여사는 편안한 패션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녀는 항상 편한 옷을 입었고, 쿠튀르 디자인 숍에서 구매하는 횟수만큼

제이 쿠르나 화이트 하우스 블랙 마켓 같은 중저가 소매점에서도

옷을 자주 구매해 입었다.

 

초상화를 위한 드레스를 선택하는 데 셰럴드는 2009년부터 오바마 여사와 함께 일한

스타일리스트인 메러디스 쿱의 도움을 받았다. 쿱은 다양한 드레스를 제안했고, 셰럴드는

미셸 스미스가 브랜드 밀리를 위해 입는 우아한 스타일 라인(옷에 독특한 모양을 부여하는

이음새 - 역자 주)을 특징으로 하는데, 운동복에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캐주얼 원단인

스트레치 코튼 포플린으로 제작되었다.

 

 

 

 

 

미셸 라본 로빈슨 오바마(부분)

 

셰럴드는 19세기 인물 사진을 회색조의 검은 피부 톤을 창의적으로 표현한 자료 중 하나로

인용한다. 그녀는 인종 문제를 제거하기보다는 인종을 표현하는 색채에서 더욱 중립적인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흑인을 재현하는 방식에서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해리엇 커브먼의 인물 사진

벤저민 F. 파월슨(1823~18850

1868년 혹은 1859년, 알부민 실버 프린트, 9.5×6cm

스미스소니언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문화 박물관과 의회 도서관 공동 소유

 

최근에 발견된 노예제 폐지론자 해리엇 터브먼의 사진은 오바마 여사의 초상화와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다. 셰럴드가 초상화를 구상할 때 이 사진을 알았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녀 작품에 등장하는 자신감 넘치는 포즈와 진지한 표정은 마치 터브먼의 위엄 있는

자기표현을 반영한 듯하다. 19세기에 이런 종류의 사진이 여러 장 제작되었는데

이는 모델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배포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블록 줄무늬, 선, 반쪽 사각형

메리 리 벤돌프(1935년생)

2005년, 면 평직물 조각, 능직물, 코듀로이, 나일론 능직물, 샐룰로오스 아세테이트 니트,

213.5×206cm, 필라델피아 미술관, 펜실베이니아주

 

 

 

 

 

 

미셸 라본 로빈슨 오바마(부분)

 

셰럴드는 대담한 그래픽 프린트 때문에 밀리 드레스를 선택했다.

격자무늬 직사각형 블록은 네덜란드 모더니스트인 피에드 몬드리안의 선과 색면들로 이루어진

그림을 그녀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이 기하학적 패턴들이 앨라베마주에 있는

지스 밴드의 독특한 퀼트 제작 전통과 시각적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립초상화박물관에서 오바마 여사의 초상화를 보는 파커 커리의 사진

벤 하인스

2018년

 

두 살배기 소녀 파커 커리는 오바마 부인의 초상화에 너무 매료된 나머지 돌아서서 사진을

찍으라는 어머니의 요청을 듣지 않았다. 또 다른 관람객인 벤 하인스는 아이가 가만히 서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자신이 여왕이라고 생각하는, 영감을 주는 여성을 올려다보는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았다.

 

 

 

 

 

1921년 6월 인터뷰에서 셰럴드는 자신의 작업 과정을 간략히 설명했다.

 

"나는 시카고 남쪽에서 온 미셸 오바마를 그렸고 ··· 그러고 나서 퍼스트 레이디를 그렸다."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오바마 여사는 신뢰와 관심, 협업을 바탕으로 개인과 개인,

두 여성 사이의 관계를 구축했다. 셰럴드는 홀로 작업실에서 미셸 오바마라는 사람을 '그린' 경함을

44대 미국 대통령 영부인 초상화 작업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녀는 기념비적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특정 구도 안에 인물을 배치했다.

 

오바마 여사가 워낙 키 큰 여성이기도 하지만, 셰럴드는 영부인을 우뚝 솟은 인물로 그렸다.

화면 속 영부인은 앉아 있지만 보는 사람은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기 위해 위를 올려다봐야 한다.

기 구도는 그녀의 전체적인 모습을 간신히 담을 수 있으며, 볼륨감 있는 치마는

프레임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표현되었다.

 

상반신은 마치 산에서 모습을 드러낸 형상처럼 드레스 위로 솟았고, 창백하고 푸른 배경은

사진 속의 무성한 정원을 시원하고 무한한 하늘로 대체했다. 얼굴빛은 은색 톤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인물이 가진 기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 퍼스트 레이디는 이제 따뜻함을 발산하던

여성에서 벗어나 주목받고 인정받고 존경받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얼굴, 우아한 팔, 손의 선은 틀림없이 그녀가 오바마 여사임을 말해준다. 

그녀는 성취감으로 가득 찬 총명한 여성이면서 동시에 다가가기 쉽고 인자한 사람이었기에

셰럴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미국 역사에 찾아온 특별한 순간을 담은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미셸 오바마의 초상화에서도 역시 셰럴드는 본인의 작품 세계에서 본질적 요소인 개인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의 균형을 추구했다. "그녀는 내가 그리는 사람, 즉 미국인을 나타낸다.

그들은 일을 하는 흑인이다. 그리고 흑인은 영부인이 된다."

 

 

 

 

 

 

 

미셸 오바마와 에이미 세럴드가 초상화를 공개하는 사진

 

초상화를 공개하는 제막식 축사에서 셰럴드와 오바마 여사는 아이들, 특히 흑인

소녀들이 이 초상화에서 자기 자신과 잠재력을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 역사에 대한 더욱 진실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문화적 서사를 확장하는 것이 셰럴드가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다.

 

 

 

 

2018년 2월 12일, 국립초상화박물관에서 오바마 부부의 초상화를 공개하기에 앞서

셰럴드는 오바마 여사의 마음과 정신, 성격의 특성을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과 연결 지어 그렸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바마 여사가 영부인으로서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을 회상하면서

"진정성 있는 모습은 우리 모두를 사로잡는 진솔한 언어가 되었다"고 말했다.

 

초상화는 비록 이상적인 모습을 재현해놓은 것이지만, 실제 대중과 만나는 사람은

바로 그림 속 여성이다. 셰럴드는 '당신은 우리 마음속에 있으며, 당신의 방식대로 존재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신 안에서 우리 자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초상화가 전시된 첫 해의 박물관 관람객 수는 이전 연간 관람객 수의 2배 이상인

230만 명이 되었고, 이는 앞선 셰럴드의 말을 증명했다.

특히 한 방문객은 전 국민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오바마 부인의 초상화를 경이롭게

올려다보는 두 살배기 어린이, 파커 커리의 사진이 화제가 된 것이다.

 

셰럴드가 오바마 부인의 이미지에 이상을 구현하려 한 것처럼,

어린 파커는 그 재현된 이상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보게 되었다.

 

시카고 기반의 사진가 아우드 베이가 관찰했듯

두 오바마의 초상화는 오래된 전통 안에서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첫 흑인 대통령의 역사적 무게는 어떤 다른 흑인 예술가도 아닌,

회화와 초상화에 대한 전향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두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제작된 초상화로 그 절정에 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셰럴드의 미셸 오바마 초상화가 명화로 간주될지는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재현이라는 영역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예시를 보여준 작품임이 확실하다.

 

 

 

인용: 데보라 N. 맨커프 著 / 조아라 易 <화가들의 마스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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