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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

 

 

 

아르놀뒤스 데스 톰버는 1881년 헤이그에서 열린 경매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신원 미상의 

작가가 그린 작고 낡은 그림에 입찰했다. 집가인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카탈로그에서 그 작품을 본 데스 톰버의 친구이자 미술사학자인 빅토르 더 스튀르스는

그립 구입을 강력하게 권유했다. 데스 톰버는 약간의 경합 뒤에 단돈 2길더에 그림을 구매했으며

수수료로 몇 센트(약 28파운드)를 지불했다. 더 스튀르스는 복원 작업을 하는 안트베르펜의

지인에게 그림을 보내 손상되기 쉬운 부분을 새로운 안감으로 덧대어 보완했다.

 

이후 그가 그림의 먼지와 이물질 등을 제거하자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이미지가 눈앞에 드러났다.

눈이 크고 입술이 벌어진 젊은 여성이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채색된 머리 장식과

큰 진주 귀걸이를 한 모습이었다.

 

그림에 제작 연도는 기입되어 있지 않았지만 'IVMeer'라는 서명이 있었다.

더 스튀르스가 가진 지식 때문인지 아니면 순수한 본능에 따른 이끌림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한 예술가의 희귀하고 중요한 작품이었다.

 

오늘날에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이 재발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힘들지만,

몇 점 되지 않는 작품(현재 36점의 작품만 확인되었다)을 남기고 사망한 그의 이름은

떠난 지 불과 몇십 년 만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반면 그의 명성을 되살리기까지는 100년 이상이 걸렸는데, 데스 톰버가 그림을 구입할 당시는

베르메르 작품의 의미와 범주가 아직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을 때였다. 데스  톰버와

더 스튀르스는 네덜란드 황금시대(17세기 - 역자 주)의 미술 전문가인 아브라함 브레디위스를 찾아갔다.

 

물감을 다루는 섬세한 방식과 광이 흐르는 듯한 색채를 확인한 브레디위스는

작품이 진품임을 확신했고 "베르메르는 기가 막히게 뛰어나다"고 말했다.

1902년 사망ㄷ한 데스 톰버는 작품을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기증했다.

 

대중과 평론가들 모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새 제목이 붙여진 이 그림을

네덜란드의 보물로 여기고 환호했으며, 언론은 보잘것 없는 가격에 구매된 작품의 가치가

이제는 4만 길더로 상승했다고 칭송했다.

 

그러나 새롭게 얻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림을 그린 사람만큼이나 알려진 바가 없었다.

모든 게 신비에 싸여 있었고 흥미로운 질문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그림에 대해 알려진 면보다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

1665년경, 켄버스에 유채, 44.5×39cm, 마우리트하위스 미술관, 헤이그

 

 

 

 

요하네스 베르베르는 번영하던 무역도시인 델프트에서 평생을 살았다.

성루가 길드(회화 길드)의 연간 명단에 그의 아버지 이름이 한 번 등장하기는 하지만

예술가로 일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베르메르가 받은 미술 교육에 관해서도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카타리나 볼네스와 결혼한 해인 1653년까지 그는 아카데미 회원이었으며 대표를 두 번 역임했다.

베르메르 부부는 카타리나의 어머니인 마리아 틴스와 함께 살았는데 그녀는 그림을 거래하던 부유한 과부였다.

 

베르메르는 작품 판매에 열을 올리거나 특정 주제에 명성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시대

다른 작가들의 활동 경력과 다르다. 이는 아마도 장모의 재정적 지원으로 벌이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천천히, 간헐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환경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는 명성을 떨쳤고 텔프트 밖에서도 주목받았다.

프랑스 외교관 발타자르 드 몽코닛스와 헤이그의 섭정인 피터르 테딩 판 베르트하우트같은 감정가들이

그의 작업을 보러 수 년에 걸쳐 찾아가기도 했으나 두 사람 모두 살 수 있는 그림이 없어 실망하곤 했다.

 

베르메르에게는 오로지 피터르 판 라위번만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는 훗날 베르메르의 재산을 상속받아 투자로 부를 늘린 오직 한 명의 후원자였다.

 

베르메르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남은 아내와 11명의 자녀는 빚은 짊어지게 되었다.

그의 그림 중 얼마나 많은 작품이 작업실에 남아 있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카타리나가 베르메르의 작품

<회화의 알레고리>(1666~1667)에 대한 어머니의 소유권을 채권자의 압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1967년 7월 22일 법정에 출두했다는 기록이 있다.

 

169*6년에는 판 라위번의 사위 야코프 디시위스가 상속받은 판 라위번의 소장품이 경매에 부쳐졌다.

이를 위한 판매용 카탈로그 목록에는 베르메르의 작품 21점이 나열되었다.

다음 세기 동안 이 그림들의 향방이 추적되지 않고 분산되면서 베르메르의 명성은 희미해졌다.

 

그의 이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작품은 개인 소장품이 되어 대중의 시야에서 벗어났거나

다른 화가의 이름으로 오인되어 등장했다. 1883년에 「네덜란드, 플아드르, 프랑스 대표 작가 레조네」를

편집한 존 스미스는 헤이그의 마우리트하위스 미술관에서 본 몇 가지 작품을 언급하며 베르메르를 찬양했다.

 

이것은 학자와 전문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베르메르는 훌륭한 스승 혹은 유명한 후원자나

학교 등과의 연결 고리가 전혀 없는 독특하고 뛰어난 화가로 인식되었다.

 

그로부터 30년 후, 프랑스 비평가 테오필 토레가 네덜란드식 필명인 빌렘 뷔르거라는 이름으로

글을 발표하면서 알려진 「가제트 데 보자르(1866)에 베르메르에 관한 기사를 썼는데, 이때부터

베르메르를 향한 학술적 관심이 대중적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토레는 개인과 기관이 소장한 베르메르의 작품을 살피면서 베일에 싸인 작가를 추적해가듯

생생하게 이야기를 서술했다. 또한 없는 정보를 신화적인 이야기들로 조작하면서

'델프트의 스핑크스'는 당대에도 주목받지 못했다는 거짓된 주장을 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부분)

 

한 쌍의 귀걸이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크고 빛나는 진주는 당시 매우 드물었지만, 백랍이나

물고기 비늘과 같이 반짝이는 물질로 제작된 고품질 유리구슬은 널리 사용되었다.

진주의 광택 나는 표면을 묘사하기 위해 베르메르는 눈물 모양의 장식을

회색으로 칠하고 흰색은 단 두 획만 사용했다.

 

 

 

 

 

베르메르는 짧은 기간에 종교적 서사, 당대 일상에 관한 이야기, 우화, 그리고 각기 다른 두 시점으로

세심하게 관찰한 델프트의 풍경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는 편지를 읽고 덧창을

열고 우유를 따르고 목걸이를 잠그는 등 일상적인 행동을 하는 여성을 묘사하는, 가정에서의 장면을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 피터르 더 호흐, 니콜라스 마스를 포함한 당대의

많은 작가도 집에서 일을 하거나 쉬는 여성상을 주제로 매혹적이고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지만,

베르메르의 접근 방식은 가정에서의 장면들이 화면에 묘사된 동작 이상의 이야기로

해석되기를  거부 한다는 점에서 다른 면모를 가진다.

 

베르메르의 인물들은 관객과 주고받는 시선도 없는 데다, 그림 저변에 힌트가 있다고 생각할 경우

오히려 이야기 자체가 풀리지 않은 채로 남는다. 이러한 특징은 홀로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작업에 깊이 집중하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일상적인 활동에 무게감과 우아함을

부여한다. 보는 이는 무례하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들을 보게 되며, 관찰하는 행동이 친밀

하면서도 때론 은밀하게 느껴진다. 능숙하게 그려진 사물들은 마치 정물화의 그것처럼 계획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의자나 주전자의 배치를 하나라도 바꾸면 평온한 균형을 깨뜨릴 것만 같다.

 

이 사물들은 네덜란드의 회화 속에 등장하는 상징인 진주 목걸이, 접시저울, 문자, 지도 등의 의미와

연결될 수도 있겠지만, 항상 전통적인 도상학적 해석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너무나 많은 화가가

사실적인 표현 기술을 익힌 시대에 베르메르의 자연주의는 추상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색은 자연광이 흐르듯 빛나며 하나의 색조로 채워진 넓은 면의 채색부터 세밀한 묘사까지,

그의 물감을 다루는 방식은 다채롭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캔버스나 관련 문서에 제작 연도가 기입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미술사학자들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작가의 물감 처리 방식을 연구하는 데에 집중했다.

1660년대 중반까지 베르메르는 중간 색조의 거친 밑칠 위에 색 유약을 바르는 전통적인

유화 작업 방식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시도했다.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

1664년 캔버스에 유채, 55×45cm, 베를린 국립회화관, 베를린

 

가정에서의 장면을 다룬 베르메르의 작품에는 일상에 몰두하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노란 상의는 이 여성이 부유한 안주인임을 나타낸다. 그녀가 한 진주 목걸이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신부에게 하는 선물로 인기 있던 것이었으며, 질서 있는 가정을 상징했다.

여성의 상의와 목걸이는 진주 귀걸이와 마찬가지로 베르메르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나타나 그것이 가족의 소유임을 암시 한다.

 

 

 

 

 

밑그림을 그리고 화면에 깊이를 만들어내고자 베르메르는 기본 색상을 다양화하고 불투명 물감과

반투명 유약을 얇게 번갈아가며 사용해 작업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인물 얼굴에서 매우 잘 드러난다. 밝은 빛이 떨어지는 인물의 눈썹, 뺨, 턱의 밝은 윤곽선은

크림색 위에 그려졌으며, 광대뼈의 구조를 드러내는 그림자 영역과 눈의 움푹 들어간

부분, 턱선은 적갈색으로 밑칠되었다.

 

그 결과, 마치 그녀가 가진 젊음의 광채가 빛을 내는 것처럼 내적인 빛이 발산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베르메르는 화면의 상의는 검은색 밑칠 위에 넓게 채색되었다.

그는 파란색과 옅은 노란색 터빈의 접힌 부분에 실크 같은 광택을 내기 위해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에 다시 물감을 덧칠하는 웨트 인 웨트기법을 사용 했다.

2016~2018년에 미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서 진행된 새로운 보존 연구에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배경 부분에서 검은색 위에 옅게 칠해진 암녹색 커튼이 발견되기도 했다.

 

 

 

 

 

회화의 알레고리

1966~1668년, 캔버스에 유채, 120×100cm, 빈 미술사 박물관, 빈

 

그림 속 여성은 명성과 역사를 상징하는 물건(월계관, 책, 트럼펫)을 드러내 보인다.

의인화된 존재인 그녀는, 회화 속 알레고리의 일부로 읽히기 위해 등장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터번과 진주가 있는 트로니(<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예술적 환상 속을 비행하는 듯하다.

 

 

 

 

 

따스하고 생생한 빛으로 가득 찬 눈을 가진 이 소녀는,

그림이 재발견된 시점부터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인물만이 주목받는 구도로 그려져 작품의 형식은 초상화로 볼 수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젊음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독특한 개성이 있다.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그녀는 자신을 보는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두 눈이 커진 것처럼 보이고 입술은 무엇을 말하려는 듯 벌어진 모습이다.

 

애초에 베르메르는 초상화가로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기에 학자들은 수 년 동안

이 그림의 모델을 이름과 역사를 가진 누군가와 연결해보려고 노력했다.

1921년 미술 평론가 장 루이 보두아예는 베르메르의 <회화의 알레고리>에 나오는 모델을

화가의 딸이라고 언급했다. 눈 크기와 모양, 눈썹 위치, 이마와 광대뼈 넓이 등

두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의 유사성은 아마도 화가의 장녀인 마리아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모델이었다는 주장이 계속되도록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1660년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제작 연도가 맞다면 마리아는 열한 살이 되지 않았을 테고

성숙기에 접어든 청소년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들은 훨씬 더 어렸을 것이다.

그림 속 의상은 종종 인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옷으로는 다른 정보를 읽어내기가 어렵다.

그녀가 입은 옷은 네덜란드 여성들과 소녀들이 나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입는 흔한 평상복이다.

 

그러나 터번처럼 서로 다른 두 길이의 직물로 만들어진 머리 장식은

그 시대의 여성들이 선호하던 그 어떤 것과도 비슷하지 않다.

또한 흰색과 회색을 사용해 숙련된 솜씨로 그려낸 거대한 눈물 모양의 진주는

부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소녀의 특징적인 얼굴 모양과 윤곽을 시각적으로 강조하는 요소에 가깝다.

 

이 독특한 의상은 더 그럴듯한 주장을 이끌어낸다.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는

초상화가 아니라 트로니(두상을 부각해 그리는 그림)라는 주장이다.

베르메르의 시대에 '트로니'는 프랑스 속의 '트로뉴' 또는 '머그'에서 유래한 '얼굴'의

총칭으로, 대체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반신상 인물화를 의미했다.

 

화가들은 의상, 장신구 및 표정 묘사에 관한 자신의 기량을 드러내고자 트로니를 제작했는데,

이때 모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헴브란트 판 레인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전문 모델 등을 트로니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트로니는 예술가의 기량을 발휘하려는 목적으로 쓰인 전시용 작품으로,

실내장식에 이국적이거나 쾌활한 느낌을 더하기 위한 장식품으로 수집되곤 했다.

베르메르는 짧은 활동 기간에 많은 트로니를 그렸다.

 

그의 사망 직후 만들어진 재산 목록에는2점의 트로니가 있었고,

다시위스의 판매용 카탈로그(피터르 판 라위번 컬렉션이 포함된)에는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보기 드물게 예술적인' 것으로 묘사된 작품과 함께 3점의 트로니가포함되었다.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인정된 트로니는 <빨간 모자를 쓴 소녀>와 <플루트를 든 소녀>

(두 작품 모두 1665~1670년경,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소장), <젊은 여인의 얼굴>(1665~167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과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까지 총 4점이다.

그 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한 작품이다.

 

 

 

 

 

젊은 여인의 얼굴

1665~1667년경, 캔버스에 유채, 44.5×40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주

 

베르메르의 재산 목록에는 '터키 양식'의 두 트로니가 등장한다.

다시위스의 판매용 카달로그에 써 있는 '고풍스러운 드레스'라는 언급을 보면, 이 인물의 의상이

당대 사람들이 입던 일상적인 옷은 아니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옅은 금색 천으로 머리를 묶은

젊은 여성의 이미지는 '터키' 트로니 중 하나로 여겨진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머리 장식은

그와는 다른 것일 수 있으며, 이 작품은 판 라위번이 화가의 죽음 이후에 소유했다고 추정된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부분)

 

베르메르는 소녀의 큰 눈에 도는 광채와 장밋빛 입술의 탄력을 묘사하기 위해 흰색 터치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부드럽게 표현된 앳된 얼굴은 화면에서 풍성한 움직임을 불러일으키며

젊음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을 가슴 아프게 일깨워준다.

 

 

 

 

'대단히 예술적인' 트로니가 현재 우리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고 부르는 그림을 뜻한다면,

카탈로그 저자는 분명 베르메르의 회화적 기술과 모델의 아름다움을 말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오래도록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 요인은 화면 속 인물의 자세이기도 하다.

가정에서의 장면에 등장하는 자신에 몰두한 여성들과는 대조적으로 4점의 트로니 속 여성들은

보는 이를 직접적인 시선으로 마주한다.

 

4점 가운데 3점의 인물들이 어깨 너머로 관람자를 바라보고 있지만, 오직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만이 그림의 재발견 이후 비평가와 학자들이 기록을 남길 만큼

표현의 수준이 뛰어나다.

 

처음 이 글을 마주한 전문가 중 한 명인 아브라함 브레디위스는 작품에서

놀라운 생명력을 보았고 자신이 그림을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쯤 지났을 때 작가 존 업다이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후 를 본 후 「메트로폴리탄에서 본 소녀의 머리」라는

시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서술했다.

 

그는 작품과의 만남을 재회로 표현했는데, 이는 몇 년 전 헤이그 마우리트하위스 미술관에서

'터번과 진주'를 한 소녀를 만난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업다이크는 자신의 늙어가는 몸, 근심 걱정에

지쳐가는 마음과 달리 변치 않은 그녀의 젊음에 감탄했다.그는 그녀의 영원함을 축하하면서

"예술적인 소녀여, 당신은 나보다 오래 살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고개를 돌린' 소녀가 미래의 새로운 관객들에게도 '순간의 시선'이라는

선물을 안겨주리라 상상했다.

 

 

 

 

 

대나무 귀걸이를 한 소녀

아울 에리즈쿠(1988년생)

2009년, 크로모제닉 프린트

 

전통적인 초상 작품에서 보기 힘들었던 흑인 인물들을 아름다운 아울 에리즈트의 컬러 사진을 통해

마주할 수 있다. 작품을 향한 찬양과 비평이라는 두 측면에서 그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유색 인종 여성으로 재해석했다. 그녀는 본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머리 장식을

착용했지만  진주를 대나무 하트로 대체했다.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난 이 작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작업한다.

 

 

 

 

 

덧없지만 매혹적인 그녀의 시선이 가진 힘은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슈발리에는 시선이 임의의 관람자가 아니라 베르메르에게 향해 있다고 상상해

"그녀는 그를 알고 있으며, 그와 가깝다"고 추측했다.

슈발리에는 자신의 소설 「진주 귀걸이 소녀」에서 그림의 모델에게 이름과 독자성을 부여했다.

그림 속 주인공은 베르메르 가문의 젊은 시녀인 그리트이며, 독자는 1인칭 시점으로 쓰인

그리트의 생각과 관찰을 통해서 그녀를 알게 된다.

 

여기서 화가와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포르를 취하는 것 이상의 관계를 가진 사이다.

영화감독 피터 웨버는 슈발리에의 소설을 영화로 연출해 스칼렛 요한슨이 그리트 역을 맡은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완성했다. 소설과 영화 모두에서 '실재하는' 그리트는

캔버스에 등장한 가볍고 여린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녀는 가혹한 대우와 힘든

일을 견뎌내고, 지성과 독립적인 목적의식을 가진 여성으로 성장한다.

 

소설 속 그리트는 완성된 그림을 한 번도 보지 못하지만, 영화에서는 파란색과 노란색의 머리

장식을 두르고 묵직한 진주 귀걸이를 한 그리트가 정확한 포즈를 취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전달한다. 카메라는 먼저 진주에 비치는 빛을 담아낸 다음, 뒤로 물러나면서 시녀(그녀를 연기

하는 배우)가 어두운 화면에서 빛을 뿜어내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피어싱을 한 소녀

뱅크시(1974년경 출생)

2014년, 하노버 플레이스 브리스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독특한 포즈와 옷차림으로 인해 종종 다른 형태로 그려지고

복제되고 페러디되었다. 유명인들은 머리를 스카프로 감싼 채 진주 귀걸이를 하고 사진을 

찍었으며 몇몇 웹사이트에서는 스카프를 두르거나 메이크업하는 방법을 제공했다.

그림 속 여성의 트레이드마크인 진주 귀걸이를 보안 경보기로 대체한 거리 예술가

뱅크시는 브리스틀 항구 근처의 한 벽에 그녀를 그렸다.

2020년 4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누군가가 마스크를 추가하기도 했다.

 

 

 

 

 

우리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 끌리는 이유는 아마도

실체보다는 초월적 면모 때문일 것이다.

 

한발 물러선 자세와 애타는 눈빛으로

우리의 시선에 화답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옷, 존재, 심지어 귀에 걸린 진주조차도 모두 환영이며 색채와

빛으로 만든 능숙한 조작이다.

 

명확한 이름, 역사, 목적을 가진 실체로 드러내려 집착할수록

이미지는 더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이 그림은 우리가 그녀에게 무엇을 투영하든

어떤 것이든 수용할 준비가 된 묘한 수수께끼라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우리는 그 모델이 실제로 누구인지, 왜 베르메르가

그림의 모델로 선택했는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다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까?

 

 

 

 

인용: 데보라 N. 맨커프 著 / 조아라 易 <화가들의 마스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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