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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조선 말엽 생활과 풍속 <1>

 

아이들의 지게

조혼이 성행하던 시절이라 아이들이라면 고작 열 서너살 때까지다.

무렵의 아이들은 여덟 살쯤이 되면 벌써 그 크에 맞는 지게를 만들어주고

어른의 심부름으로 짐 나르는 일부터 배웠다.

 

 

걸상이 있는 서당

제법 책상 같은 것이 있으나 실상은 맨 앞줄 아이들처럼 책을 바닥에 놓고 배운다.

처음에는 천자문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익힌다.

 

 

암송이 첫걸음

책은 모두 소리를 내어 낭독한다. 읽는 내용이 모두 다르므로 시끄러울 듯하나

제 책만 소리 높여 읽으므로 과히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

 

 

땅바닥에서의 글씨 연습 (1900년대)

글씨 연습도 서당 공부의 하나다. 훈장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땅바닥에다 열심히 글씨를 쓰고 있다.

옛날에는 종이가 귀해 요즘처럼 노트가 따로 없고 꼬책이나 숯으로 땅바당에서 글씨 연습을 했다.

 

 


여름 서당

여름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글을 읽는다. 주로 당음(당대의 시를 엄선하여 수록한 책)을

읽히곤 하는데, 아침나절에만 읽고 오후에는 쉬거나 집안일을 돕게 했다.




꾸중을 듣는 아이들

무릅을 꿇은 여자아이나 서 있는 사내아이가 신은 신발을 노파리라고 한다.

 

 

회초리로 길들이기

공부를 안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나뭇가지로 종아리를 맞는다.

자기 손으로 회초리를 만들어 어른에게 바치고 자기가 종아리를 걷어서 맞는다.

 

 

업저지

아이만 보아 주는 것이 일의 전부인 업저지의 모습이다.

(사진상의 비는 원각사비)

 

 

아이의 나들이 옷차림

남매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나들이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오른쪽 남자아이는 쾌잦(등솔이 길고 소매가 없는 웃옷)를 입고 머리에는 복건은을 쓰고 있다.

이 복건은 원래 도복에 갖추어 쓰는 검은 천으로 된 건巾인데, 근래는 흔히 어린아이가 명절이나 돌 때 쓴다.

여자아이의 저고리와 오른쪽 쾌자의 기장이 유난히 긴 것이 매우 이채롭다.

 

 

여자아이들의 옷차림

 

 

 

 

갓전

1894년의 「갑오경장」과 1895년의 삭발령 이후 갓은 서민들도 아무나 쓰게 되었다.

그래서 제주도 산 말총이 아닌 재료로 만든 것이 전국의 장터에 나돌았다.

(1909년 어느 장거리에서).

 

 

숯장수

숯섬을 메고 팔러 나선 노파(1900년).

 

 

나막신 장수

나무로 파서 만든 나막신을 가득 늘어놓고 장사가 괜찮은지 장사꾼이 함박 웃음을 짓는다.

 

 

돼지 장수

 

 

옹기 장수

 

 

유기전

주로 놋 제품을 많이 늘어놓아 유기전이라 하겠으나 그 밖의 쇠붙이 제품도 있다.

 

 

닭 장수와 오지그릇 장수

 

 

장작 장수

 

 

닭 시장

 

 

대구 시장 (1910년)

 

 

 

장작팔이 소년(1900년 서울 종로)

 

 

 

절구질하는 여인

 

 

 

길쌈

 

 

물레질

 

 

 

 

 

 

 

연자방아

 

 

 

 

 

떡메치기

 

 

물방아

1900년대 간도지방 한국인 촌에 설치되었던 물방아다.

 

 

당나귀와 부자

옛날에도 여유있는 부자의 당나귀는 몸치장부터 달라

여러가지 장신구를 붙여 신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역 참

역말을 타고 여행하다가 역말을 갈아 타는 역참에 이르면 지친 말을 기운나는 새 말로 바꾼다.

대게 역참과의 거리는 팔십 리 정도가 보통이었다고.

 

 

 

 

 

 

 

 

 

 

 

 

밤섬이 보이는 마포 나루터

 

 

전차 등장 직전

 

 

전차의 등장

위 「전차의 등장 직전」 과 이 「전차의 등장」의 시간차는 5년이다.

 

 

방갓쓰고 전차타고... 전차의 지붕에 광고까지...

 

 

 

 

 

 

 

 

 

 

 

 

 

 

 

 

 

나들이할 때의 장옷으로 몸을 가리고 아이에게는 모자를 씌웠다. 짐은 머리에 이었다.

(1900년 개성에서)

 

 

소년이 비 오는 날 서당에 가고 있다. 머리에 쓴 것은 우산이 아니라 전모.

그리고 나막신을 신었다.

 

 

 

비오는 날, 도롱이를 입고 머리에는 삿갓을 썼다.

 

 

 

 

 

 

한국의 서민 여성은 곧잘 젖통을 내놓고 거리를 다닌다.

집에 젖먹이 아이가 있다는 자랑의 뜻도 있다.

 

 

궁녀들의 외출(1890년)

머리에; 떠구지 머리를 얹고 옷은 여느 옷이지만 앞에 여러 가지 패물을 찼다.

그리고 머리에는 꽃가지를 꺾어 꽂았으며 손에는 태극선을 들었다.

 

 

 

영친왕의 나들이

일본에서의 귀국과 성혼을 고하기 위해 생모인 엄황귀비의 사당을 찾아가는 길이다.

 

 

양반네가 경복궁을 나오고 있다.

이들의 차림은 예사 벼슬아치의 차림이다.

 

 

 

 

 

토호의 집 사랑채

전형적인 한국의 기와집이다.

 

 

 

 

 

 

 

 

 

서울의 성벽

 

 

대성문

북한산성 안쪽에서 바라본 대성문, 행화촌으로도 유명하던 곳.

 

 

 

북한산성 대남문

 

 

 


성城 밖(1890년)

인왕산이 보이는 북한산성 밖.





한북문

북한산성 북쪽으로 나있는 한북문. 그 옆으로 다섯 개로 된 오간수문이 있고 아래로 세검천이

흐르고 있다. 이 문은 조선시대 때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1921년 1월에 한북문이 무너지고 오간수문도 그 해 8월 홍수로 매몰되었다.

 

 

궁궐의 모습

1895년은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시해된 해이다.

이 해에 촬영한 사진으로 서울 우대의 모습을 사직동 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고종과 그 아들 순종 (1890년경의 사진)

 

 

평복 차림의 고종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

(27대 왕, 재위 1907~1910)

 

 

 

 

 

 

 

 

 

인용: 서문당 著 <사진으로 본 조선시대> 「생활과 풍속」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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