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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조선 말엽 생활과 풍속 <2>

양반과 장죽長竹

사랑채에서 빈객과 장기를 두는 윤웅렬 군부대신(좌).

담뱃대가 길수록 양반이었던 시절답게 장죽의 꼭지가 재떨이에 닿아 있다 (1890년).

 

 

좌), 창의氅衣 차림의 선비

창의는 벼슬아치들이 평상시에 입는 웃옷으로 소매가 넓고 뒷솔기가 갈라져 있다.

고종 21년 이후에는 폐지되었다.

우), 소년 시절의 김규식

임시정부의 외무총장 등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규식 선생의 6살 때 사진.

그는 고아로 언더우드 집에서 서양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바둑을 즐기는 부부

 

 

 

조선조의 관복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정복으로 소개된 사진으로 각기 다른 차림에

호피를 앞에 깔고 도열해 있다.

 

 

 

이 양반네 가족 역시 호피를 깔고 사진을 찍었다.

 

 

윤웅렬가尹雄烈家

윤웅렬 군부대신과 그 아들, 손자, 손녀들로 군부대신 집안답게 모두 군모를 쓰고 있다.

 

 

 

민영목가閔泳穆家

 아들들과 같이 찍은 사진으로 민영목(1826~1884)은 한말 병조판서로

갑신정변 때 개화당에 의해 피살되었다.

 

 

고관의 등청登廳

고관이 호피를 깐 사인교를 타고 등청을 하고 있다.

4인의 교군 외 단도를 찬 4명의 호위병에 몇 사람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있다.(1900년대)

 

 

홍영식洪英植과 외무아문

1883년 전권부대신으로 미국을 다녀오기 직전의 사진.

(당시 한옥에서 살던 독일인 뮐렌도르프 씨 저택에서 촬영)

 

 

 

이재선李載先과 외부대신

이재선은 고종의 이복 형이며 흥선대원군의 서자이다.

 

 

 

 

 

원옥圓獄의 공주감옥

재래의 감옥은 네모나지 않고 둥글었다. 공주 감옥은 일제 때까지 남아있었던 유일한 원옥으로

그 지름이 약 30m 정도이고 담의 높이는 한 길, 폭은 3자 정도였다. 담 안에 옥사가 있어 죄수들은

그 원옥 안에서는 자유로웠다. 출입구 쪽으로 붙은 작은 초가가 옥리가 사는 집이다.

 

 

 

 

 

 

 

 

 

 

 

무릎을 치는 태형

태형으로 쓰이는 매가 흩어져 있고 치는 형리도 더운 듯 웃옷을 벗고 있다.

보통 곤장친다고 하는 것은 태형보다 중죄인에게 가하는 형벌로 중곤重棍 · 대곤大棍 · 소곤小棍 · 치도곤治盜棍 등

다섯가지가 있다. 곤장은 버드나무로 만들며 치도곤이가 제일 큰 것으로 길이 5자 7치, 너비 5치 3푼, 두께 8푼이고

소곤은 길이 5자 1치, 너비 4치, 두께 4푼으로 되어 있다.

 

 

 

 

 

주리(주뢰 · 周牢)

주리는 고문할 때 쓰던 것으로 두 발목을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주릿대를 끼워서 엇비슷이 트는 형벌로,

「주리를 트는 고문에는 당하는 자가 없고 안한 짓도 했다 한다」는 말이 있다.

사진의 왼쪽 마루에는 심문관이 앉아 있다.

 

 

액 땜

북방 아시아와 페르시아 지방에 춤을 좋아하는 원시신이 있어서 특히 여자로 하여금 그 신을 제사케 했는데

이것이 드디어 무녀가 되고, 그 풍속이 북부 중국으로부터 점차 조선에까지 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것을

위하는 귀신은 소위 옥황상제 · 관성제군 · 태상노군 · 최영 장군 · 북두칠성 · 강남 호구 별성 등인데, 사람의

출생 · 혼인 · 부귀 등을 기원하고 또 질병과 재액을 예방한다 한다.

사진은 질병 · 재액을 제거 예방하는 뜻의 물건이다.

 

 

산 속의 서낭당

서낭신이 머물러 있는 곳으로, 제사하고 굿 할 때 차려놓는 상을 서낭상, 그 제사를 서낭제라 한다.

 

 

서울에서도 흔히 보던 풍경

고목에 달아놓은 섬 속에는 미신에 의한 어느 물건이 들어 있을 것이다.

 

 

 

 

 

 

 

 

 

좌), 바리공주

색동옷을 입고 신령이나 부처를 위하여 금품을 내놓도록 하는 일으 맡는 무당으로 바리데기라고도 한다.

우), 무녀의 복장

신복神服이라 불려지는 무복巫服은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고 신의 성격을 나타내며

춤과 분위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기두기

장기는 약 4천 년 전에 인도에서 발생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와 일본에 전해졌다고.

전쟁의 형식을 모의한 건전 오락물로 성능이 다른 무기를 써서 수를 가지고 상대의 장수(왕)

를 잡는 것인데, 서민의 놀이로 더욱이 여름철에는 애호를 받는 놀이다. 중국의 장기는

장기판 한 가운데에 강이 흐르고 말 쓰는 법이 약간 다르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기생

멀리 고려 태조 때 노비가 된 백제 유민들 중 일부가 예자藝者로 행세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기생은

그 연원에서 알 수 있듯 천한 신분계층이었으나, 가무에 능할 뿐 아니라 시서詩書 등의 교양을 갖추고 있었고

더우기 지조를 소홀히 하지 않아 특별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사진은 독서하는 평양 명기名妓(1900년).

 

 

기생학교

기생이 되려는 소녀들을 모아놓고 노래 · 춤 · 장구 등의 기예와 주석에서의 예법 및 서화를 가르쳤다.

사진은 원생들 앞에서 강의하고 있는 평양 기생학교 수업 광경이다.

 

 

 

평양기생학교 조회

 

 

기생 조합 총회

서울 다동 기생 조합의 총회 기념 사진으로 모두들 연무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관기

궁중에서 향악무를 추기 위해 대기중인 무희(기생)들 (1890년)

 

 

 

무복舞服을 입은 관기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궁중무의 하나인 춘앵전의 복장인 듯한데 모두들 어리게만 보인다.

 

 

 

어느 기생학교의 생도들

대개가 가난한 집 출신이지만 여기서는 화사한 옷으로 치장하였다.

 

 

 

중견 기생들의 소풍

맵시, 얼굴단장 등이 세련되어 있어 기생으로서의 경륜을 느끼게 한다.

 

 

 

 

 

가야금과 병창은 그들에게 필수적이었다.

 

 

궁내부 소속의 관기들

춤을 추기 전에 도열하고 있다. 복장으로 보아 궁중무를 출 듯하다.

 

 

동기들 앞에서 널뛰기 하는 기생

사진은 평양 기생학교의 뜰인데 근대까지도 서울과 평양에 기생학교가 있어서

16~20세의 처녀들을 입학시켰다. (1906년)

 

 

 

개다리 소반과 양주병

이 무렵에 이미 양주와 양주병이 인기였던 듯, 여러 사진에서 양주병이 등장한다(1900년).

 

 

1900년대의 결혼식

혼례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가 가족들과 함께 기념 촬영한 것인데 앞줄의 소녀들은 들러리인 듯.

 

 

혼인을 갓 하고난 신랑 신부

조혼이 성행하던 시절이라 여나믄 살 밖에 안 돼 어른스러운 티는 도무지 없다.

 

 

신랑 신부의 상견례

가운데 큰 상을 놓고 신랑은 서쪽에서 동향으로 서고, 신부는 동쪽에서 서향으로 선다.

주례자의 안내로 신부와 신랑이 각각 큰절을 한다. 합환주는 청실 홍실을 드리운 술잔을 신랑 신부에게 돌려서

조금씩 마시게 한다. 신부를 부축하는 이는 수모이다. 신랑이 신부를 보는 시선이 유난스럽다.

 

 

계집아이의 돌상

돌은 의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이므로 집안의 큰 경사의 하나로 온 집안이

돌 잡는 것을 지켜 본다. (융희 4년(1910년)에 촬영한 사진이다.

 

 

 

사내아이의 돌 잡이

갖은 음식 외에 책 · · · 활 따위가 꽂혀 있다. 책거리 병풍에 대단한 상차림이다.

 

 

 

 

 

귀인의 장례식

 

 

상두꾼

상여가 좁은 다리를 건널 때는 상두꾼이 일부러 승강이를 한다.(1900년)

 

 

나귀를 탄 신부

우리나라에 예수교가 처음 들어왔을 무렵 충청도 진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켈리 신부(1890년).

 

 

가마 탄 수녀

성공회 수녀가 가마를 타고 외출을 하고 있다.

 

 

 

전교傳敎

경기도 수원에서 민가의 포교를 담당한 가톨릭 수녀들.

 

 

 

 

 

가장 오래 된 사진

1853년 1월 부산을 항해한 한국해협에 들어온 최초의 미국 포경선.

 

 

 

 

 

 

 

 

 

 

 

 

 

영친왕과 이토오

1907년 12월 열한 살의 영친왕을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도일시킨

이토오와 끌려가는 영친왕과의 기념 사진.

 

 

 

 

 

 

백여 년 전의 명찰

 

전등사

 

 

봉은사

 

 

 

 

 

 

 

 

 

 

 

 

 

 

 

 

 

 

 

 

법주사

 

 

 

 

승주 선암사

 

 

 

 

 

 

 

 

 

 

 

 

 

 

 

 

 

 

 

 

 

묘향산 보현사

 

 

 

 

 

 

 

 

 

 

 

해인사

 

 

통도사

 

 

 

 

 

 

 

 

 

 

 

인용: 서문당 著 <사진으로 본 조선시대> 「생활과 풍속」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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