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취월당

사진 속 근대 한국 <1>

黃海道

 

해주 부용당

해주목사 김망金望이 중수했다는 부용당.

일제는 이곳을 곡물검사소로 사용하여, 부용당 본래의 멋을 찾을길 없게 되었다.

 

 

 

 

 

 

 

 

 

 

 

 

 

 

 

 

재령

교통 및 상업의 중심지였고, 부근의 재령철산은 유명하다.

사진은 1900년대 초의 재령시가 모습이다.

 

 

 

 

 

 

 

 

 

 

平安南道

 

모란봉에서의 조감

노송 가지 사이로 도도히 흐르는 대동강이 보인다.

 

 

 

 

 

 

 

 

 

평양남문통의 번화한 모습.

 

 

 

평양 주작문 거리

 

 

 

 

 

 

 

 

 

 

 

 

 

평양의 구시가 모습으로 뒤쪽에 우뚝 솟아 있는 대동문이 보인다.

 

 

 

평양 대동문 거리

 

 

 

대동강을 굽어보는 연광정과 종각

 

 

 

1406년에 창건된 대동문의 위용

 

 

 

평양 개선교

 

 

 

대동교

 

 

 

공중에서 본 당시 평양의 새로운 얼굴

 

 

 

평양 연광정 밑 대동강에서 빨래하는 여인네들과 고깃배가 보인다.

 

 

 

대동강변에 쌓아놓은 항아리

 

 

 

대동강변의 청류벽으로

단애에 음각된 명필들의 서체가 압권이다.현감과 중군中軍, 군수郡守 등의 이름이 선명하다.

 

 

 

 

청류벽과 대동강 사이의 가로수 길.

 

 

 

평양의 을밀대

 

 

 

단애절벽 위에 우뚝서있어 조망이 일품이다.

 

 

 

을밀대에서 내려다본 영명사永明寺.

금수산에 있으며 동명성왕의 이궁이던 구제궁의 옛터라는 설과 광개토대왕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양명사는 청일전쟁 때 불탔으며 사진은 일제가 신축한 절이다.

 

 

 

현무문玄武門

모란봉과 을밀대의 중간에 있는 육백 년 전에 세운 작은 문이다.

 

 

 

왼쪽 모란봉 정상의 최승대最勝臺, 그 아래로 영명사, 부벽루, 전금문 등이 보인다.

밑으로는 대동강이 유장한 모습이다.

 

 

 

모란봉에서 대동강을 바라본 모습이다.

 

 

 

 

 

 

 

 

 

 

보통강普通江을 건너는 혼례행렬로 나룻배 중앙에 신부가 탄 가마가 보인다.

 

 

 

3천 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기자능箕子陵

 

 

 

 

 

 

1920년대의 진남포 전경으로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였다.

대동강 하류에 위치한 진남포를 일제가 대무역항으로 개발했다.

 

 

 

 

 

 

 

기와지붕이 물결치는 성천 시가지

 

 

 

안주 전경으로 부근에 양질의 석탄으로 유명한 안주탄광이 있다.

 

 

안주 백상루白祥樓로 청천강을 굽어보는 높은 지대에 누각, 문인, 묵객이 이곳에 수 많은 글을 남겼다.

 

 

 

안주의 동문

 

 

 

 

 

 

군무리 전경

 

 

 

 

 

 

 

平安南道

 

우리나라 유일의 국제철교이자 회전 개폐식 다리로 교형이 열리는 중이며, 통과하려는

선박들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1900년 초의 신의주 시가로 홍수 때면 탁류가 넘치는 강둑의 갈대밭이었는데 제방을 이중으로 쌓아 도시를

만들었다. 만주 안동시와 접한 목재의 집산지였으나 만포선이 개통되면서 공업도시로 변했다.

1914년 8월에 개항, 일제의 대륙침략 창구 역할을 했다.

 

 

 

상점이 즐비한 도청 거리로 도청은 1924년 의주로부터 옮겨왔다.

기미 만세운동이 벌어진 곳이다.

 

 

 

곡물시장으로 조, 콩, 옥수수 등 주로 전작물田作物의 거래로 유명했다.

 

 

 

 

 

 

 

 

 

막 열리고 있는 압록강 최전 개폐식 철교의 교형

 

 

 

압록강에 놓인 전장 944미터의 국경철교로 강의 발원지는 백두산이며 몇 개의 지류와 합쳐져 서쪽의 황해로 흐른다.

전장 790킬로미터로 이 철교는 신의주와 중국 안동을 연결하는 개폐식 다리인데, 개폐식은 교량의 수명을 단축시킨

다는이유로 1934년 11월에 폐지되었다. 중앙을 철로로 하고 좌우 양측을 2.6미터의 보도로 하여 철도와 보행을

겸하게

하였다. 1908년 8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11년 10월에 준공했다.

 

 

 

의주 성내城內의 전경으로 멀리 높은 건물이 통군정統軍亭이다.

 

 

 

의주 남문으로 海東第一門이라는 편액이 걸린 모습이다.

의주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임란 때 선조의 의주파천이다. 북쪽과 서쪽은 압록강으로 둘러싸였고,

남쪽과 동쪽은 구릉으로 에워싸인 천연의 요새지이아. 만주ㅗ의 구연성 사하진에 대한 예로부터 북변 수비의

요충지였으며 성곽도시였다. 관서 명승의 하나인 통군정에 오르면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일제는 이 역사의 고도를 팽개치고 신의주를 대륙침략의 현관으로 삼았으나 부근에서 금이 산출되면서

다시 번성했다. 구룡포는 의주의 외항이고, 명승고적으로는 통군정과 취승정, 의순관, 의주금강 등이 있다.

 

 

 

의주의 명찰로 꼽히는 금강사金剛寺

 

 

 

 

 

 

 

 

용암포龍岩浦 어항에 널린 조기 더미.

 

 

 

선천 전경으로 옛부터 선천장은 유명했다.

수산물, 농산물, 광산물이 모두 이곳으로 집결했다 전국으로 흩어졌다.

 

 

 

 

 

 

 

상), 영변 성내의 전경으로 영변은 구룡강 하류에 위치해 군사상의 요지로 발달한 성곽도시였다.

소월의 「진달래꽃」에 나오는 '영변 약산 진달래꽃'의 무대인 약산동대가 부근에 있다.

약산동대는 관서팔경 중의 하나다.

 

 

 

영변성의 남문

 

 

 

 

 

 

 

 

 

 

 

 

 

 

 

 

 

 

 

상), 일제 때의 태천경찰서.

 

 

 

 

 

 

 

강계 전경으로 이곳이 바로 고구려의 발상지라고. 1413년 태종은 이곳에 도호부를 두었고, 1442년 세종은

도절제사영을 두었다. 명승고적으로는 북천루, 망미정, 인풍루 등이 있다.

 

 

 

 

 

 

 

 

 

 

풍광명미한 인풍루仁風樓

'자연 > 취월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인년 필암서원 추향제  (0) 2022.09.19
사진 속 근대 한국 <2>  (0) 2022.09.13
조선 말엽 생활과 풍속 <2>  (0) 2022.09.06
조선 말엽 생활과 풍속 <1>  (0) 2022.09.05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 <4>  (2) 2022.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