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의 화단은 여항문인閭巷文人을 비롯한 중인들이 서화 수요층으로 급부상하며 커다란 변화를 보인다.
중인들은 사대부 문화를 지향하면서 사군자화나 괴석도를 선호하였다. 동시에 일부 사대부화가들은 서화를
완물상지玩物喪志가 아닌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태도로 접근하면서 화훼나 영모를 관찰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아속공상雅俗共嘗의 새로운 화풍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조선 중기까지 사대부
화가들이 완물상지로 인해 수묵의 관념산수화에 갇혀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시기에 들어
확연하게 다른 시대적 미감과 취향을 보여준다.
반면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신명연申命衍(1809~1886), 남계우南啓宇(1811~1890), 홍세섭洪世燮(1832~1884)
은 대표적 사대부화가로,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화풍을 제시하였다. 특히 남계우와 홍세섭은 관찰을 기반
으로 각각 채색화와 수묵화 방면에서 사실주의적 표현을 선도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경향은 18세기
후반 실학과 고증학을 비경으로 특정 사물을 관찰하고 관련 지식을 전문적으로 서술하는 벽癖 문화의 성행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홍세섭은 대담하면서도 간결한 구도를 배경으로 암수 한 쌍의 새가 노니는 독특한
영모화풍을 완성하였으며, 그의 참신한 감각은 전례 없는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의 영모화는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한국 명화 오백년》 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되며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태호 교수에 의해 1980년 홍세섭의 가계가 확인되었으며, 19세기 후반 참신한 감각으로
독보적인 영모화를 그린 사대부화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홍세섭, <영모도> 14점, 19세기 후반, 비단에 수묵, 각 131.0×31.0cm(6점)/ 각 56.5×31.0cm(2점).
· · · 홍세섭의 <영모도> 10폭 병풍을 배경으로 한 남성이 두 손을 모은 채 어색한 포즈로 앉아 있다.
이 남성은 영의정을 지낸 홍순목洪淳穆(1816~1884)으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적극 추진했던 인물이다.
사진은 1884년 조선을 방문했던 미국인 퍼시벌 로웰(1855~1916)이 촬영한 것이다. 퍼시빌은 1883년 미국에 최초로
파견된 보빙사의 통역을 맡았으며, 이때 보빙사의 일원이었던 홍순목의 아들 홍영식洪英植(1856~1884)이 고종에게
그의 공로를 전하였다. 덕분에 퍼시벌은 고종의 초빙으로 1883년 12월 20일 조선을 방문해 두 달 정도 머물렀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홍순목은 홍세섭과 같은 남양南陽 홍씨로 먼 친척이었으며, 연장자인 홍순목에게 <영모도> 병풍을 선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사진을 통해 홍세섭이 살아 있을 때부터 그의 영모화가 양반가에서 장식병풍으로 소비 유통되었다
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속의 <영모도> 10폭 병풍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쪽부터 매화가 핀 절벽을 배경으로
까치 한 쌍이 화답하는 1폭 <매작도梅鵲圖>를 시작으로 2폭은 절벽의 대나무 사이로 덤불해오라기 한 쌍을 그린 <죽조
도竹鳥圖>, 3폭은 청둥오리 수컷은 물살을 가르며 헤엄을 치고 있고 암컷은 물가에서 머뭇거리는 <유압도遊鴨圖>, 4폭
은 파초를 배경으로 쇠백로 한 쌍의 새가 서로 호응하는 <파조도芭鳥圖>, 5폭은 시냇가의 부들을 배경으로 쇠백로 한
쌍이 노니는 <백로도白鹭圖>, 6폭은 바위섬을 배경으로 가마우지 한 쌍을 그린 <해로도海鸕圖, 혹은 야압도夜鴨圖>, 7
폭은 기러기 한 쌍이 해안가로 날아드는 <낙안도落雁圖, 혹은 비안도飛雁圖>, 8폭은 한 쌍의 기러기가 달빛 아래 해안가
를 노니는 ,<노안도蘆雁圖>, 9폭은 단풍을 배경으로 암수 꿩이 마주한 <풍치도楓鴙圖>, 10폭은 한 쌍의 새가 웅크린 채
눈 내린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숙조도宿鳥圖>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사진 속 병풍의 순서는 홍세섭이 <영모도>를
완성한 직후에 장황된 원래의 온전한 형태이므로 그동안 개별 화폭으로 나뉘어 현전하고 있는 작품들의
원래 순서를 유추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준이다.
또한 전체적인 구도는 각 화면이 오른쪽에 경물이 치우친 홀수 폭과 왼쪽에 경물이 치우친 짝수 폭이 서로 마주하면서
넓은 공간감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조선 초기에 유행한 안견파安堅派 산수화에 보이는 전통적인 구도법을 차용한 것
이다. 일례로 9폭의 <풍치도>는 단풍으로 물든 야산이 화면의 오른쪽으로 치우친 편파구도이며, 10폭의 <숙조도>는
눈이 내린 앙상한 나뭇가지가 있는 암벽이 왼쪽으로 치우쳐 있어 두 화폭의 중간 부분에 넓은 공간이 형성되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전통적인 구도를 기반으로 배경의 야산이나 암벽에 보이는 강한 흑백 대비는 조선 중기에 유행한 절파浙派
화풍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며, 새의 특징을 몰골법으로 포착한 것에서 전통적인 표현 기법들이 확인된다. 반면, 3폭의
<유압도>, 5폭의 <백로도>, 6폭의 <해로도>, 7폭의 <낙안도>에서는 근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새로운 표현들이 발견된다.
때문에 사대부화가 홍세섭은 김수철金秀哲과 함께 이색화파異色畵派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지만 홍세섭 영모화의
개성적인 화풍은 전통적인 요소와 참신한 표현 기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영모화는 전통적으로 특정 계절을 배경으로 하며, 조선 중기의 이징李澄(1581~1674 이후), 조속趙涑(1595~16680과
조지운趙之耘(1637~1691) 부자, 이건李健(1614~16620 등은 계절과 영모를 결합하여 시의성詩意性이 강한 수묵사의적
水墨寫意的 영모화를 화첩 형식으로 다수 제작하였다. 하지만 홍세섭의 영모화는 사계절을 배경으로 암수 한 쌍의 새가
노닐고 있는 장면을 다양하게 그린 장식병풍으로 이전의 전통에서 벗어나 시대적 미감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1폭의 <매작도>에서 매화는 이른 봄을 상징하며, 4폭 <파초도>의 무성한 파초 잎사귀는 여름을 연상시킨다. 6폭의
<해로도>는 화폭순서로 보아 여름에 해당되는데, 선행 연구에서는 화폭의 명확한 순서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독특한 바위 표현을 설산雪山이라고 해석하여 계절적 배경을 겨울이라고 추정하였다. 하지만 홍순목을 찍은
사진에서 <해로도>는 여섯 번째화폭으로 병풍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계절적 배경이 여름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다. 7폭의 <낙안도>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의 '평사낙안平沙落雁'을 근간으로
초가을을 상징하며, 9폭의 <풍치도>에서 단풍 역시 가을을 나타내고 있다. 10폭 <숙조도>는 눈이 내린
나뭇가지 위에 한 쌍의 새가 머리를 날개 사이에 묻은 채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으로 겨울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사진 속 <영모도>에서 1~3폭은 봄, 4~6폭은 여름, 7~9폭은 가을, 10폭은 겨울을 계절적
배경으로 하며, 겨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새들의 활동이 위축되었던 생태적
특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영모도> 10폭 병풍을 배경으로 찍은 홍순목의 사진은 홍세섭 영모화의 온전한 순서를 확인해주는 결정적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홍세섭은 전반적인 구도와 표현 기법에서 전통적인 요소들을 적극 차용함과 동시에 감각
적이면서도 근대적인 표현 기법으로 전례 없는 새로운 조형언어를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빼어난 기량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 사계절을 배경으로 그려진 까치 · 청둥오리 · 쇠백로 · 가마우지 · 기러기 · 꿩의 번식기가 계절적 배경
이나 주변의 경물과 일치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면모는 홍세섭이 오랫 동안 조류의 생태를 관찰하고, 실제 조류
의 동작이나 경물의 특징을 포착하여 그리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창작 태도를 취하였을 가능성을 상정케 한다.
홍세섭, ,<영모도> 10점, 19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각 109.0×31.0cm, 삼성미술관 리움.
· · · 일주학술문화재단 소장봉(이하 '일주본') 을 제외하고, 현전하는 홍세섭의 영모화로는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수묵담채화 10점(이하 '리움 담채본')과 수묵화 4점, 구 이두원 소장의 4점(발문 제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8점, 간송
미술관 소장 1점으로 총 27점을 확인하였다. · · · 일주본을 기준으로 화폭의 순서를 바로 잡고 비교 분석을 통해 제작
시기를 유추한 결과 리움담채본이 가장 이른 시기에 그려진 것이라 판단된다. 이 작품의 경우는 각각의 화폭에 암수 한
쌍이 그려진 것이 아니라 한 마리만 그려져 있고, 화면의 여백에 제시題詩를 쓰는 등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면서 그의 독
자적인 영모화와 비교했을 때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일주본과 각 화면에 쓰인 제시를 기준으로 추정한 화폭의 순서
는 1폭 <매작도>, 2폭 <주로도朱鷺圖., 3폭 <유압도>, 4폭 <꿩과 모란도>, 5폭 <백로도>, 6폭 <해로도>, 7폭 <낙안도>,
8폭 <노안도>, 9폭 <국조도菊鳥圖>, 10폭 <숙조도>이다. 특히 <매작도>에는 '초봄의 추위', <주로도>에는 '2월의 봄바
람, <유압도>에;는 '햇살'이라는 단어가 제시에 포함되어 있어 봄이라는 계절적 배경을 유추할 수 있으며, 다른 화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도 1~3폭은 봄, 4~6폭은 여름, 7~9폭은 가을, 10폭은 겨울에 해당되며, 화면의 구도나
새의 동작 등이 매우 단조롭게 묘사되어 그의 독특한 화풍과는 상당한 거리를 보인다. 이로 미루어 리움담채본이 가장
이른 시기에 그려진 것이라 판단되며, 홍세섭이 영모화를 그리기 시작한 초기부터 이미 영모화 병풍 전반에 대한
독자적인 구상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리움담채본과 일주본의 화폭을 비교하면, 꿩 그림이 리움담채본에서는 여름에 해당되는 4폭에 있는 반면,
일주본에서는 가을ㄹ인 9폭으로 그 위치가 바뀌어 있다. 꿩 그림의 위치 변화는 홍세섭이 화폭의 순서를 결정하면서
계절과 조류의 번식기를 맞추기 위해 고심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꿩은 까치와 함께 대표적인 텃새로
5월과 6월 사이에 산란을 하고 무리생활을 하다가 오히려 겨울에는 암수가 짝을 이루어 둘이서만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생태적 특성에 따라 홍세섭은 리움담채본을 그릴 때에는 꿩의 번식기에 초점을 맞추어 4폭에
배치했으나, 나중에 그려진 일주본에서는 겨울이 가가워지면 꿩이 짝을 이루어 지낸다는 생태적 특성에 중점을
두어 9폭에 <풍치도>를 그린 것이라 유추된다. 따라서 홍세섭은 영모화의 화폭 순서를 결정할 때 계절과
조류의 생태적 특성을 창작 과정에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리우담채본의 2폭 <주로도>는 여름새인 따오기를 관찰하였지만 생태적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 이해된다. 또한 일주본의 2폭 <죽조도竹鳥圖>와도 조형적으로 관련성을 찾기 어려워
동일한 조류를 그린 것이라곤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태호 교수가 <주로도>의 주인공이 '따오기'가 아니라
'덤불해오라기'라는 사실을 밝힌 덕분에 리움담채본의 2폭 <주로도>와 일주본의 2폭 <죽조도.가 동일한 조류라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덤불해오라기는 5월부터 8월 초순 사이에 번식하는 여름새이며, 야행성으로
낮에는 갈대밭이나 주변의 숲에 숨어 있다가 해질녘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조류이다.
따라서 홍세섭은 낮 동안에 야행성인 덤불해오라기의 생태를 관찰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이로 인해 여름새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그는 영모화를 그릴 때마다 덤불해오라기를 봄에 해당되는
2폭에 배치하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본의 2폭 <죽조도>를 보면 암수 한 쌍이 대나무 숲의
바위에 숨어 있는데, 이는 홍세섭이 낮 동안에 야행성 덤불해오라기를 관찰하면서 가장 많이 보았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리움담채본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주로도>에는 해 질 무렵 습지나 물가로 나와 행동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대목은 홍세섭이 조류의 생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오랫동안 관찰
하였으리라는 추정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더불어 현전하는 작품 가운데 가장 늦게 그려진 것으로 판단되는
국립중앙박물관소장의 <영모도>(이하 '국박본')에서도 <주로도>가 2폭에 배치되어 있어
홍세섭은 사망할 때까지 덤불해오라기를 봄새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구 이두원 소장의 <영모도> 4점(이하 '이두원본')과 발문 1점이 있는데, 구도는 물론 새들의 동작까지 일주본과 거의 유사
하여 동일한 화풍의 영모화를 반복적으로 그렸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발문의 내용은 홍세섭과 고종사촌인 간산幹山
조병필趙秉弼(1835~1908)이 서화로 맺게 된 인연을 북송의 소식蘇軾과 문동文同에 비견한 것이며, 끝에는 "홍세섭이
그림을 그리고 고모 아들인 조병필이 지은 문장을 동생 경산景山이 옮겨 적는다" 라고 되어 있다. 이로 인해 홍세섭은
자신의 그림을 친척 겸 후원자인 풍양 조씨들에게 선물하며 친분을 쌓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새를 배경보다 크게 부각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깃털을 농묵의 과감한 속필로 생동감 넘치게
그려 내고 있어 일주본보다 약간 뒤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수묵 <영모도> 4점(이하 '리움수묵본)이 있다.
화폭의 순서는 <주로도>, <유압도>, <낙안도>, <노안도>로 바로잡아야 하며, 역시 봄과 여름 일부, 겨울에 해당되는
화폭이 결실되어 있는 상태이다. <주로도>에는 야행성 덤불해오라기가 해질 녘 물가로 나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직전에 주위를 경계하며 머뭇거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렇산 장면은 앞서 살펴본 작품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조형
적 이미지로 주목된다. <유압도>는 암수 한 쌍의 청둥오리가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것을 부감법으로 포착하였으며,
이는 일주본의 <유압도>에서 암컷이 물속으로 뛰어들지 못한 채 해안가에서 주춤거렸던 장면과 비교했을 때 훨씬 진전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리움수목본의 <주로도>와 <유압도>는 홍세섭의 독창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화폭으로 그의
영모화풍이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알려준다. 두 화폭의 조형성은 국박본과 거의 유사하지만 덤불해오라기와
청둥오리의 동작 표현이 어색하고 필력도 다소 약하여 국박본보다 선행하여 그려진 것이라 판단된다.
이와 관련해 간송미술관에 있는 <진금상축도(珍禽相逐圖>는 홍세섭이 '유압도'의 독특한 장면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그린 습작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그러한 이유는 종이를 이어붙인 작은 화면에 그려진 암수의 헤엄치는 모습이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고, 왼쪽의 발문에서 "심부름꾼에게 팔아 오라 하면 한 번 웃고 돌아갈 것이네"라는
재미있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그림은 누구도 사지 않을 정도로 미완성이라는 것을
홍세섭은 스스로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척으로 추정되는 조동석趙東石 선생에게
감평을 부탁한 것은 유압도의 새로운 조형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자문을 구했던 것이라 유추된다.
또한 홍세섭이 그림 판매를 직접 언급하고 있어 19세기 후반 서화시장에서 그의 영모화가
실제로 유통되었음을 시사해준다.
홍세섭, <영모도> 8첩, 19세기 후반, 비단에 수묵, 각 119.0×47.8cm, 국립중앙박물관.
위 8점은 홍세섭의 영모화 가운데 이상적인 조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이다.
현전 작품들을 보면 홍세섭의 장식병풍은 가로 전체의 길이가 300cm 정도로, 한 폭이 30cm를 전후한 세폭細幅일
경우 10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움담채본과 일주본이 그러한 예에 속하며, 리움담채본의 9폭과 일주본의 4폭에는
계절에 맞는 조류를 결정하지 못한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새들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국박본은 가로 47cm의 넓은 화폭으로 8점을 구성하면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 · · <매작도>는 까치 한 쌍이 오른쪽 상단에서 뻗어 내려온 굵은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서로 화답하고 있으며,
일주본에서 농후했던 절파화풍은 그의 개성적인 화풍으로 흡수되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주로도>는 배경의 솔잎
모양 풀과 농묵의 속필로 그려진 덤불해오라기가 조화를 이루며 홍세섭만의 독특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유압도>
는 청둥오리 한 쌍이 헤엄치며 일으키는 수면 위의 파문波紋을 담묵의 포물선으로 처리하여 근대적인 감각이 돋보
이는 최고의 장면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조동석에게 조형적 자문을 구한 <진금상축도>나 리움수묵본의 <유압도>
처럼 동일한 도상을 반복 제작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백로도>는 비교적 초기에 조형성이 완성되어 변화가 거의 없으며, 자신감 넘치는 필법으로 그려낸 배경의 기다란
물풀과 쇠백로의 동작이 조화를 이루며 고결한 품격을 더해준다. <해로도>는 <유압도>와 더불어 홍세섭의 근대적인
조형감각이 잘 구현된 화폭으로, 가마우지의 사실적인 조형성과 배경의 파격적으로 왜곡 과장된 바위섬이 미묘한 조
화를 이루며 적막한 고도孤島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이러한 장면은 가마우지 한 마리가 겨우 서 있는
작은 바위섬과 독특한 동작을 사실적으로 그린 일주본의 <해로도>를 반복 제작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것이다.
<낙안도>와 <노안도>는 다른 작품과 도상적으로 유사하지만 농묵의 속필로 그려낸 쇠기러기와 담묵으로 간략하게
그려진 배경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성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숙조도>는 겨울에 추위로 위축된 조
류를 상징하는 것으로 앙상한 나뭇가지 대신에 군자君子의 표상인 대나무로 바꾸어 문인적인 품격과 아취를 물씬
풍기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는 영모화가 비록 통속적인 주제이지만, 사대부화가 홍세섭이 조류의 생태를 관찰하며
접한 동작이나 서식지의 환경을 독특한 조형감각과 능숙한 표현 기법으로 그려내면서 문인의 격조格調를
지니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국박본은 홍세섭이 계절과 조류의 생태를 고려한 영모화를
반복적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완성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 · ·
<꽂과 동물로 본 세상> 중 최경현 논저 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