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까치가 함께한다'고 하여 작호鵲虎 혹은 호작虎鵲이라 번역되는 '까치호랑이'는 한국에서 명명되어
사용이 확산된 용어이다. 한국 민화의 대명사로도 불리는 '까치호랑이'의 이미지는 196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
작한 것으로 보인다. 1962년 임인년 호랑이해를 기념하여 국립박물관(현재 덕수궁) 제5실에서 개최된 《호도虎圖》
전시(1962. 2. 1~3. 17.)는 까치호랑이 그림을 알린 최초의 전시였다. 당시 전시에는 총 13건의 작품이 출품되었
는데, 동아일보 2월 9일자 지면에 전시회 소식이 실렸다. 오른쪽의 <호도虎圖)라는 제목의 이홍근 소장품(현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은 현대인에게 알려진 최초의 까치호랑이, 특히 산을 내려오는 까치호랑이 그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까치호랑이'라는 용어는 민화연구가 조자용趙子庸(1926~2000)이 새롭게 창안한 현대 한국의 조어이다.
그는 이 새로운 조얼ㄹ 1971년 《미대학보》 제5호(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기고한 논문 《민화民畵》에서 최초
로 사용하였다. 그가 쓴 논문의 요지와 까치호랑이라는 용어는 곧 《경향신문》을 통하여 인반에 소개되며 반향
을 얻었다. 이 용어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조자용이 3년 뒤 민화, 판화, 무속화 및 조각, 목기 등
호랑이 관련 미술품 473점의 컬러 도판을 집대성한 《한호韓虎의 미술美術》을 간행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생각된다.
조자용은 여기서 '까치호랑이' 외에도 '담배 먹는 호랑이' 그림 도상 분류에서 선구적 업적을 남겼는데, 이 조어들
중 가장 널리 유행한 것이 '까치호랑이' 였다. 그는 '가치호랑이'라는 조어의 창안 뿐 아니라, 그동안 막연히 호랑이
그림으로 전하던 그림들을 까치호랑이, 토끼호랑이, 담배 먹는 호랑이 등 생동감 있는 이미지로 구분함으로써
독창적인 분류 체계를 수립했다.
···· '까치호랑이'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비로소 조명되고 관심을 받기 시작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 그렇다면 가치호랑이 그림의 원류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동아시아에서 호랑이 그림과 까치 그림의 발생과 맥락을 같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과 중국에서 호랑이 그림과 까치 그림은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남북조시대인 4세기에 이르면
잡수도雜獸圖가 출현하여 동진의 고개지 등이 호랑이를 그린 기록이 있고, 집안集安의 고구려 무용총
벽화 <수렵도>에 호랑이가 등장한다. 당대를 거치면서 둔황에 그려진 <여행하는 승려>에서도 호랑이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까치 그림의 경우 만당晩唐과 오대五代부터 유행하여 많은 화조화가가
까치를 그린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전(傳) 여귀진, <화호도(畵虎圖)>, 원대, 단선, 비단에 수묵담채. 25.6×26.6cm, 대만고궁박물원.
그러나 까치 호랑이 이미지의 원류와 관련해서는 오대五代에 들어와서야 나타난다. 믿기
어렵지만 대낮에 입고 있던 베옷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신선이 되었다고 전하는 여규진(907~923 활동)
이라는 화가이다. 여귀진에 대허요 북송의 권위 있는 화사서인 《선화화보宣和畵譜》에서는 "소와 호랑이를
잘 그렸는데 대나무와 참새, 맹금류도 잘 그렸다" 고 했는데 실제로 선화 여부御府에 수장되어 있던 28점의
그의 작품 중에는 <유호도乳虎圖> 1점, <작죽도鵲竹圖> 2점, <봉접작죽도蜂蝶鵲竹圖> 1점이 있어서
그가 호랑이 뿐만 아니라 까치도 잘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전(傳) 원인(元人), <화호畵虎>, 원말명초, 비단에 수묵채색, 206.5×122.0cm,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까치호랑이 그림은 중국에서 명대에 성행하고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조선으로 확산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까치호랑이 그림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여기에서는 산을 내려오는 모습의
출산호작도出山虎鵲圖에 집중하여 그 의미와 전개 양상을 살펴보자.
출산호작도는 산에서 내려오는 호랑이를 까치와 함께 그린 그림으로 흔히 큰 소나무나 솔숲을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출림호작도出林虎鵲圖로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산을 내려오는 까치호랑이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는 원나라 때 그림이다. 이 <화호도畵虎圖>는 출산호작도의
전형적인 도상을 보여준다. 굽이굽이 쏟아지는 계류를 배경으로 짙은 송음松陰 아래로 호랑이 한 마리가 전율할
자태를 드러내고 있고, 솔가지 위 한 쌍의 까치는 소란스럽게 지저귀며 백수의 제왕이 출현했음을 숲에 알리고 있다.
호랑이는 머리를 낮추고 엉덩이를 높이는 두저미고頭低尾高식 자세를 취하였다. 전경의 댓잎과 잡초, 중경의
소나무와 까치, 후경의 암석과 계류는 구륵채색법으로 표현되었고, 근육을 따라 꿈틀대는듯한 호피문은
마치 한 올의 터럭과 수염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정치하게 묘사되었다.
전체적으로 귀족적 아취가 농염하여 원체화院體畵의 높은 격을 보여 준다.
묵서가 남아 있지 않아 작가를 단정하기 어려우나, 전형적 출산호작 도상의 까치호랑이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간주된다. 앞서 검토했던 여귀진 전칭의 <화호도>가 고개지 이래의 <호지도虎鷙圖> 전통 속에서
호랑이와 매의 팽팽한 긴장과 균형 위에 성립하는 데 비하여, 원나라 화가의 것으로 전하는
이 <화호도>는 가공할 호랑이의 출현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소란스런 포효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어서 대비된다.
사명도승, <명호지도>, 명, 15세기 말, 비닩에 수묵채색, 161.0×101.5cm, 일본 교토 호온지 소장.
한편 계곡을 내려와 엎드려 물을 마시고 있는 호랑이(음수호飮水虎 혹은 복호伏虎)가 나오는 까치호랑이그림도 있다.
쿄토 호은지호 소장의 <명호지도鳴虎之圖>가 그것이다. 전경의 굽이치는 계류에서, 엉덩이를 들고 꼬리를 세운 채
앞발을 모아 엎드려 물을 마시는 호랑이를 거쳐, 후경을 가로지르는 와송과 한 쌍의 까치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화면 구성은 역동적인 '갈 지之' 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전경의 수초와 유연한 수류는 구륵채색법을 사용하였고
암석은 명암대비가ㅏ 강한 묵법과 부벽준 같은 필법을 사용하여 일견 명대 원체화풍이 두드러진다.
솔잎은 두 자루의 붓으로 그리는 양필법을, 소나무 껍질은 윤택한 필묵법을 사용했는데, 숙련된 기교가 돋보인다.
점문點文과 선문線文을 교차 사용한 호피라든지 놀라 지저귀는 까치들의 질감은 만져질 듯 생생하다.
이 그림은 화원화가의 그림이라 해도 될 정도로 손색이 없다.
작자 미상, <출산호작도>, 명대, 비단에 수묵담채, 164.7×98.9cm, 개인 소장
···· 최근 발표된 <출산호작도>는 원체화풍의 대비가 강한 바위의 묵법과 댓잎 등의 필법, 세필로 그린 호피의
질감과 양필법을 사용한 솔잎 등의 양식에서 명대의 까치호랑이로 판정된 바 있다. 이 그림 역시 두저미고식의
출산호 도상을 보여주며 대체로 살기등등한 맹수로서의 흉포함을 드러내는 표현이 매우 직접적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노기怒氣 혹은 살기殺氣로 가득찬 모습은 '백수지의'를 드러내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되는데,
조선에 비하여 명나라 그림이 이러한 경향이 조금 더 강해 보인다.
작자 미상, <까치호랑이>, 조선 1592년, 비단에 수묵, 160.5×95.8cm, 개인 소장.
한국 학계에서는 까치호랑이를 대인군자大人君子가 면목일신面目一新하여 세상에 아름답게 드러남을 상징하는
것을 해석한 바 있어서 주목되어왔다. 이를 뒷받침하는 귀한 자료가 바로 작자 미상의 <까치호랑이>로 여기에는
'만력임진'의 묵서가 남아 있어ㅓ 1592년에 그려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조선에서 연대가 가장
오래된 까치호랑이 그림으로 유명한데, 호랑이의 자세가 두저미고식의 출산호의 도상을 따르고 있음이
흥미롭다. 이 그림에는 서너 마리의 새끼 호랑이가 함께 그려져 있어 내용상 자모호작도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호랑이의 자세는 명대 출산호작도를 따르고 있다. 이 그림을 조사한 홍선표 교수에 따르면,
화폭의 우상단에 "병울지풍炳蔚之風" 이라는 화제가 쓰여 있는데, 이는 대인군자가 면목일신으로
세상에 아름답게 드러남을 상징한다고 한다. 《주역》은 '병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인은 호랑이같이 변하니 그 문채를 빛날 병炳이라 하고,
군자는 표범과 같이 변하니 그 문체를 아름다울 울蔚이라 한다.
즉, 숨어 있다 산림에 출현한 호표를 일컬어 '병울지풍' 이라 함은 오랜 수련을 거쳐 세간에 출현한 대인군자
같은 풍모가 있다는 맥락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 경우 소란스럽게 지저귀는 까치의 존재는 아름답게
변모한대인군자의 출현이 더욱 경하스러운 사건임을 강조해주는 역할로 해석될 수 있다.
작자 미상, <호작도>, 조선 19세기, 종이에 수묵채색, 134.0×80.6cm, 국립중앙박물관.
출산호작도 도상의 까치호랑이는 조선식으로 변용되어 민화의 소재로 성행하였는데, 한국적 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품이 국립중앙박물관 동원소장품의 <호작도虎鵲圖>이다. 화면 중앙을 비우고 비스듬하게
서 있는 소나무와 한 쌍의 까치를 배경으로 머리를 낮추고 꼬리를 치켜든 호랑이가 출현한 출산호작도 도상이다.
뒷발 중 오른쪽 발을 들어 살짝 소나무 등결을 건너는 미묘한 동작감과 함께 고개를 까치 쪽으로 돌림으로써
까치의 지저귐과 호랑이의 포효가 조응하도록 조심스럽게 구성되어 있다. 분위기가 공포스럽기보다는
명랑하고 해학적이며 묵법보다는 필법 위주로 표현되어 있는 점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호랑이
그림과 구별되는 조선 까치호랑이의 색채가 분명해지기 시작하고 있다.
작자 미상, <용호도>, 조선 후기, 종이에 수묵채색, 221.5×218.0cm, 국립중앙박물관.
·····
다른 민화 까치호랑이보다 시기가 이른 출산호작도 계열의 작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용호도> 쌍폭 중
한 폭이 그것이다. 원래 도가에서 청룡과 백호는 동쪽과 서쪽을 지키는 신령한 동물인데, 용이 다섯 가지 복을
불러오고 호랑이가 삼재三災를 물리친다는 '용수오복龍輸五福, 호축삼재虎逐三災' 신앙에 따라 세화로 많이
그려졌다. 여기서 백호에 해당하는 그림은 한 쌍의 까치가 앉은 소나무를 배경으로 두저미고식 자세의 맹호가
으르렁대며 출현하는 전형적 출산호작도 도상이다. 이 작품에서 용호도를 이루는 한 짝으로 구성된 출산호작도는
유가적 병울지풍의 뜻보다는 도가적 벽사기복의 믿음과 관련하여 그려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상변에는
끈을 맬 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용수오복, 호축삼재의 믿음과 관련하여 세화로 그려져 높은 관아에 문배門排로
걸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민화 가운데 출산호작도는 도가적 벽사신앙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작자 미상의 <호축삼재부적虎逐三災符籍>은 크게 포효하며 성큼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출산호를 그리고
있는데, 오른쪽 여백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숲에서 나온 맹호가 삼재를 물리친다 出林猛虎逐三災.
작자 미상, <호축삼재부적>, 19~20세기, 종이에 먹, 60.0×40.0cm, 조자용 과거 소장.
····
흔히 호랑이가 삼재를 물리친다는 '호축삼재'는 용이 다섯 가지 복을 불러온다는 '용수오복'과 대구를 이뤄
새해를 맞아 문배에 써붙이는 내용이다. 실제로 '용수오복, 호축삼재' 라는 문구가 쓰인 은고필殷皐筆의
<까치호랑이>는 조선에 수용된 출산호작도가 복을 빌고 액을 막는 일종의 부적처럼 이해되었으며
세화로서 널리 확산되었음을 재확인시켜준다.
(좌), 은고필, <까치호랑이>, 19~20세기, 종이에 먹, 70.0×120.0cm, 정해석 과거 소장.
(우), <나전칠기 까치호랑이문 배갯모>, 목판 위에 나전상감, 직경 15.0cm,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벽사기복적 믿음의 확산은 민화라는 매체를 넘어 자수나 나전칠기 등 일상생활에 좀 더 밀접한 공예를 통해
출산호작도가 반복적으로 재창조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소박성과 해학성, 왜곡과 과장 같은
민예성이 더욱 증폭된 출산호작도가 출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좌), 장욱진, <호랑이>, 1981년, 액자, 캔버스에 유채, 28.0×21.5cm, 삼성박물관 리움
(우), 김기창, <신비로운 동방의 샛별>, 1988년, 액자, 드로잉, 석판화, 89.0×67.0cm, 부산시립미술관.
산을 내려오는 까치호랑이 그림은 1960~1970년대 한국의 민화연구가들에 의해 재발견된 이후 현대미술가들
에게도 새로운 창작의 원천을 제공해주며 그 강인한 생명력을 증명해왔다. 동심의 일상과 자연을 작은 화면에
평면적으로 담아냈던 작욱진은 1970년대 후반부터 호랑이를 소재로 한 작품을 자주 선보였다. 1981년 작에서
포효하는 맹수로서의 호랑이는 사라지고 순진무구한 어린이를 지켜주는 자애로운 할아버지 같은 호랑이가
등장하는데, 이는 자애롭고 해학적인 조선 호랑이이 전통을 상기시킨다. 특히 장욱진은 민화와 궁중 장식화의
서로 다른 전통을 자신만의 현대적 창작문법으로 완전히 소화하여 재구성하였다. 이 작품은 민화로 유명한
<출산호작도>의 모티프와 궁중 장식화인 <일월오봉도>의 도상을 혼합, 차용하여 서정적 동심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녹여냄으로써 한국 전통의 현대적 집대성을 위한 모색과 그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산을 내려오는 까치호랑이 그림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 가운데 김기창의 <신비로운 동방의 샛별>은
새로운 이정표를 찍었다.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바보산수'라 명명하고 민화의 현대와 작업에 몰입하였던 김기창은
민화의 본질을 '순수하고 꾸밈없고 순진하다' 는 데서 찾고, 이 같은 전통을 현대미술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현대미술과 올림픽 전시에 출품했던 이 작품은 호랑이와 까치, 구름문양 등
전통적인 도상들이 가득한데, 두저고미식 출산호 도상의 백호는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를 떠올리게 하며
화면 상당에 날아가는 다섯 마리 까치의 몸통은 청 · 황 · 흑 · 녹 · 적색의 올림픽 오륜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산을 내려오는 까치호랑이 도상은 전통적 맥락에서 완전히 이탈하여 한국이 세계적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던 제24회 서울올림픽을 상징하고 있다. · · · · ·
김울림 논저 <까치호랑이의 기원과 출산호작도>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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