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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세계를 움직인 그림들 II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야경>)

렘브란트 하름네스 반 레인, 1642년, 캔버스에 유채, 370×445cm, 레익스 미술관, 암스테르담

 

북과 피리가 어떻게 노래하는지, 오보에, 트럼펫, 팀파니가 어떻게 울려 퍼지는지, 아아, 보아라.

얼마나 생기 차게 깃발이 펄럭이는지, 하여 가슴이 기쁨에 겨워 뛰노라

- 요하네스 그롭, ≪병사의 노래≫. 17세기. -

 

 

 

 

위작 판명 - 진품 확인 - 위작 판명 ...... <금 투구를 쓴 남자), 1650/56년경

렘브란트의 작품이 아닐까?

 

 

 

 

<승선하는 시바 여왕이 있는 항구 풍경>

클로드 로랭, 1648년, 캔버스에 유채, 148.5×194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로랭의 그림에서는 신비로운 마력이 뿜어나온다.

순수한 영혼의 울림을 소유했던 로랭은 자연의 음성에 귀기울여 인간의 내면을 위로하는 예언을 들었다.

로랭이 한 것은 자연의 소리를 따라 적은 것뿐이다.  그의 그림에 심취하는 감상자에게 어떤 군더더기 언어도

필요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지극히 평온하면서 완벽하고, 즐거움과 고마움을 주는 그림이다.

- 야콥 부르트하르트, ≪치체로네≫, 1855년.

 

 

 

 

<회화 예술>

얀 베르메르 반 델프트, 1666/ 67년경, 캔버스에 유채, 120×100cm, 미술사 박물관, 빈

 

회화 예술을 설명하려면 책 한 권도 모자랄 것이다. 회화는 우리에게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회화의 머리는 검고 곱슬곱슬하며 입은 굳게 다물었고, 목에 사람 얼굴 형상이 새겨진

금목걸이를 하고 있다. 그녀는 한 손에 여러 개의 붓을 쥐고 있고, 이미타치오(모방)라는 글자판을 들고 있다.

- 체사레 리파, ≪이코놀로지아≫(그림 상징 사전)의 독일어 초판, 1704년.

 

 

 

 

 

<대관식의 제왕 성장(盛壯)을 한 프랑스의 루이 14세>

아이생트 리고, 1701/02년, 캔버스에 유채, 277×194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왕은 통치자이자 지상에서의 신의 형상이고, 그의 위엄은 신적인 존엄의 반영이다.

국가 전체와 백성의 뜻이 그 속에 담겨 있다. 왕에게 봉사하는 자만이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다.

- 자크 베닌 보쉬에(1627~1704), 모(Meaux)의 주교. ≪성서의 말씀에서 이끌어낸 정치술≫(1678/79년에 시작).-

 

 

 

 

<질>

장 앙투안 와토, 1718/19년경, 캔버스에 유채, 184×149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의상을 주워 입고, 수염을 잘 붙여 달고, 무대신에 새 줄을 매고, 곧바로 궁정에서 만나세.

각자 맡은 역을 한 번 더 읽어보게.

..... 하여튼 티스비는 깨끗한 모시 천을 쓰게 하고, 사자 역을 하는 이는 손톱을 자르면 안 되네.

그것은 사자 발톱처럼 길게 툭 튀어 나와야 할 테니까. 그리고 친애하는 광대들이여, 파나 마늘은 먹지 말게.

향기로운 입김을 내뿜어야 할 테니 말이오. 그러면 틀림없이 우리는 그들이 우리 극을

감미로운 희극이라 말하는 것을 듣게 될 거요.

- 윌리엄 세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4막, 2장, 36~46)에서. 보텀의 대사. 1600년.

 

 

 

 

<승전기념일에 방파제로 돌아오는 부친토로 호>

조반니 안토니오 카날. 일명 카날레토, 1732년경, 캔버스에 유채, 77×126cm, 왕립도서관 수집실, 윈저

 

그리하여 그는 그것을 다시 보게 되었다.

- 그 놀라운 부두를, 경외심에 가득 차서 다가오는 향해자들에게 그 공화국이 내보였던 저 멋있는 건물들의

훌륭한 구조를. 궁전의 경쾌한 장엄함을, 탄식의 다리를, 강가에 늘어선 사자와 성인이 달린 기둥들을,

눈부시게 빛나는 동화사원의 측면을 성문 통로와 거대한 시계가 보이는 전망을 말이다.

- 토마스 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1912년.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화>

프랑수아 부세, 1756년, 캔버스에 유채, 201×157cm, 알테 피나코테크, 뮌휀

 

내각의 잘못된 계획들, 전쟁의 실패, 그리고 적들의 대승리

- 사람들은 내가 이런 전반적인 불행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모든 것을 팔아치우며, 매사에 참견하고, 모은 것을 지배한다고도 했다. 어느 날 만찬 때

한 나이든 노인이 왕에게 다가와 자신을 제발 퐁파두르 후작 부인에게 추천해 달라고 간청했다.

모두들 그 노인의 단순함에 대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나는, 나는 웃지 못했다.

- 퐁파두르 후작 부인(1721~1764), ≪편지들≫, 1922년.

 

 

 

<그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1767년, 켄버스에 유채, 81×6cm, 웰레스 컬렉션, 런던

 

즐거운 얼굴, 요정 같은 자태, 크고 검은 눈, 열일곱 살,

사랑스런 그녀의 수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본다.

- 베르나르 슈발리에 드 보나르(1744~1784). ≪다양한 시들≫, 1791년

 

 

 

 

<조나단 버톨 - 푸른 옷을 입은 소년>

토머스 게인즈버러, 1770년경, 캔버스에 유채, 177.8×121.9cm,

헨리 E. 헌팅턴 도서관 및 아트 갤러리, 산마리노

 

행운과 명예와는 담을 쌓았던 소년이 여기 대지의 품안에 부드럽게 머리를 누인다.

뮤즈 여신에게 미소짓는 것은 그의 운명이었고, 우수(憂愁)는 그를 총아(寵兒)로 임명했다.

- 토머스 그레이, ≪시골 묘지에서 읊은 만가(輓歌)≫, 1750년.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로버트 워커 신부>

헨리 레이번, 1784년, 캔버스에 유채, 76.2×63.5cm,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에든버러

 

하루를 찬양하려거든 저녁에 하라. 여자를 칭찬하려거는 화장을 마친 뒤에 하라.

쳐녀는 첫날밤을 지내야 알아보는 법. 마시지도 않은 맥주 맛을 어찌 알 수 있으리.

폭풍이 지난 뒤에 나무를 베고, 바람이 불면 배를 띄워라.

술은 부뚜막에서 마시고, 스케이트는 얼음 위에서 지쳐야 하는 법이다.

- 신들의 아버지인 보탄이 지크프리드에게 하는 충고. ≪시(詩) 에다≫(13세기에 편찬된

고대 아이슬란드의 서사시집, 혹은 ≪옛(舊) 에다≫라고도 한다. - 옮긴이) 13세기 필사본.

 

 

 

 

<미국 독립 선언서 서명>

존 트럼벌, 1787/1820년, 켄버스에 유채, 53.7×79.1cm, 예일 대학교 미술관, 뉴 헤이븐, 코너티컷

 

다음과 같은 진리를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양도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것, 생명, 자유, 행복 추구가 거기에 속한다는 것,

언제라도 국민은그 정부 형태를 고치거나 폐지시키고, 새 정부를 설립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 미국 독립 선언, 1776년 7월 4일.

 

 

 

 

<마라의 죽음>

자크 루이 다비드, 1793년, 서명과 '제2년' 이란 연도가 기입되어 있음.

캔버스에 유채, 165×128cm, 왕립미술관, 브뤼셀

 

전능하사 자유와 평등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희망이자 귀족들의 공포인 마라를 내가 믿사오니, 이는 민족의

심장에서 나시고 혁명 가운데에 거하시며, 공화국의 적들에게 살해되시고, 우리 위에 평등의 숨결을 부으시며,

엘리시움에 내려가셨다가, 거기서부터 어느 날 귀족들을 심판하고 벌하기 위해 오시리라.

- 익명 '기도문' 1793년 7월부터 1795년 2월 사이.

(엘리시움은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과 선인이 사후에 간다고 하는 낙원을 말한다 - 옮긴이)

 

 

 

 

<아르콜 다리에 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796년 11월 17일>

앙투안 장 그로, 캔버스에 유채, 73×59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군인들이여, 제군들은 헐벗고 굶주렸다.

나는 그대들을 지구에서 가장 비옥한 평야로 인도하겠다.

부유한 지역과 대도시들이 그대들 손 안에 들어올 것이다.

거기서 그대들은 명예, 영광, 그리고 부귀를 얻을 것이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이탈리아 지역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군인들에게 한 연설, 1796년.

 

 

 

 

<1808년 5월 3일>(<반란 가담자들의 총살>)

프란시스코 데 고야, 1814년, 캔버스에 유채, 268×347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내가 본 것을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무죄일 수 없다

고귀한 자유와 진보의 이념이 어떻게 창, 칼, 총검으로 바뀌는지를 난 지켜보았다.

방화, 약탈, 그리고 폭행은 새 질서의 확립을 내걸고 자행되었지만,

사실 교수대 대신 등장한 살인 수단에 불과했다.

- 프란시스코 데 고야, ≪일기≫, 1808년.

 

 

 

 

<북 빙양(氷洋)>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1823/24년경, 캔버스에 유채, 96.7×126.9cm, 함브르크 미술관

 

"무슨 충돌이오?" 라고 스미스 선장이 물었고, "빙산입니다, 선장님" 하고 일등항해사 머독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배를 급히 우측으로 돌렸고, 전속력으로 배를 후진시켰습니다. 그나나 우리는 이미 너무 가까이 접근해 있었습니다.

저는 빙산을 비켜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벌써 너무 늦은 상태였습니다.

- 타이타닉호의 이등항해사 찰스 허버트 라이툴러가 미국 상원 조사위원회 앞에서 행한 진술에서 재인용. 1921년 4월 -

 

 

 

 

 

<스톤헨지>

존 컨스터블, 1836년, 수채화, 38.7×59.1cm,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 런던

 

저녁 무렵의 황혼 속에서 약한 빛이 물러가는 낮을 금빛으로 물들이면, 게르른 양치기는

달이 차갑게 빛나는 자정에 저 세상의 그림자들이 춤을 추기 위해 줄을 선다는 옛날 이야기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힌다.

곧이어 양치기는 긴장된 눈초리와 겁에 질린 창백해진 뺨으로 바람의 속삭임에서 둔중한 탄식의 소리를 듣는다.

- 토머스 스톡스 새먼, ≪스톤헨지≫, 1823년.

 

 

 

 

<1830년 7월 28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1830년, 캔버스에 유채, 260×325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아, 파리의 위대한 1주간!

거기서 불어오기 시작한 자유에의 용기는 물론 도처에서 침실 등불을 넘어뜨렸고,

그리하여 몇몇 왕좌의 붉은 커튼이 화염에 휩싸이고,

금빛 왕관이 활활 타오르는 취침용 모자 밑에서 달아 올랐다.

그러나 옛 추적자들은 금방 소화용 양동이를 끌어오고, 이젠 더 주의 깊게 염탐하고 다닌다.

-하인리히 하이네, ≪영국 단장(斷章)≫, 1830년 11월.

 

 

 

 

<전함 테메레르가 마지막 정박지로 끌려오고 있다> 부분

조셉 맬러드 윌리엄 터너, 1838년, 캔버스에 유채, 91×122cm(전체), 내셔널 갤러리, 런던

 

기선이란 작은 악령이 악취가 진동하는 섬뜩하고 음흉한 붉은빛을 내는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그 뒤를 천천히 애통하고 장엄하게 용감한 옛 선박이 따라온다.

죽음의 티가 역력한 채로.

-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1839년 이후.

 

 

 

 

<터키탕>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1863년, 캔버스에 유채, 직경 108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여성 전용탕에서 목욕하는 이들은 2백 명 남짓 되었다.

첫째 줄의 소파는 배개와 비싼 카펫으로 덮혀 있었다. 귀부인들은 거기에 앉았고,

여자 노예들이 그들의 머리를 빗겼는데, 모두들 자연의 상태에 있었다. 완전히 나체로...

나는 그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만약 여탕에 들어오려는 남자가 있다면 그는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 메리 워틀리 몬터규 부인이 엘리자베스 리치에게 보내는 편지.

소피아의 여탕에서 자신의 체험에 대해 쓰고 있다. 1717년 4월 1일.

 

 

 

 

<풀밭 위의 점심>

에두아르 마네, 1863년, 캔버스에 유채, 214×279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점잖은 방문객에게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그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의 외설적 음탕함에 직면해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화가 에두아르 마네는 세상의 모든 심사위원단들로부터

만장일치로 거부될만한 모든 특징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가제트 드 프랑스≫에 실렸던 익명의 독자 편지. 1863년

 

 

 

 

<공포의 머리>

에드워드 번 - 존스, 1887년, 캔버스에 유채, 155×130cm, 국립미술관, 슈투트가르트

 

페르세우스는 깊이 잠들어 있는 고르곤 자매들을 덮쳤다. 그들은 머리에 뱀과 용비늘을 달고 있었다.

그들을 보는 이는 누구나 돌이 되고 말았다. 페르세우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린 채 번쩍이는

방패를 비추자 얼굴 셋이 나타났고, 그는 그 중 메두사를 식별해냈다. 그는 조용히 아테네 여신에게

자신의 손을 인도해줄 것을 빌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잠들어 있는 그 괴물의 머리를 떼어냈다.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서기 8년.

 

 

 

 

<아니에르에서의 물놀이>

조르주 쇠라, 1883/84년, 캔버스에 유채, 201×301.5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무자비하고 지루하며 무겁게 여름이 펼쳐져 있다. 마치 빈둥거리는 왕이 죽음의 형벌을 선포하듯 -

밀집되어 모이기도 하고, 아가리를 벌리기도 하는 백색으로 작열하는 하늘에서.

사람은 작품을 떠나 자유롭게 휴식을 취한다.

- 폴 베를렌. ≪알레고리≫에서 발췌, 1884년.

 

 

 

 

<절규>

에드바르드 뭉크, 1893년, 카드보드에 유채, 파스텔, 카세인 물감, 91×73.5cm, 국립미술관, 오슬로

 

어느 날 저녁, 나는 친구 두 명과 지치고 아픈 몸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도시의 피오르드가 우리의 발 아래 있었다. 그때 나는 자연의 색채들이 외치는 것을 들었다. -

그리고 이 외침은 피오르드 위로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에드라르드 뭉크, ≪내 일기에서≫, 1929년, (피오르드는 스웨덴, 핀란드 해안의 협만이다). -

 

 

 

 

<키스>

구스타프 클림트, 1907/08년, 캔버스에 유채, 180×180cm,, 벨베데레 궁, 빈

 

떨리는 첫 애무를 난 좋아한다. 반은 아직 물음이고, 반은 이미 고백이기도 한

그 애무는 붉은 유혹의 불꽃처럼 바스락거리고, 밤의 화염 속에

불꽃송이를 떨어뜨린다.

- 슈테판 츠바이크, ≪은빛 현(絃)≫, 1901년.

 

 

 

 

<거리의 신비와 우울>

조르조 테 키리코, 1914년, 캔버스에 유채, 87×71.5cm,  개인 소장

 

한밤중에 누군가가 영적인 모임을 집행하는 어두운 방보다

정오의 햇살 속에 얼어붙은 광장이 더 신비롭다고 나는 믿어.

- 조르조 데 키리코가 친구 카셀라에게, 1919년 1월.

 

 

 

 

<목걸이를 한 누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917년, 캔버스에 유채, 73×116cm,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

 

오늘밤 달의 여신은 게으른 꿈을 꾸겠지. 은빛 배게 속에 찾아드는 아름다운 여인처럼.

젖가슴 언저리의 레이스를 만지작거리며 잠에 빠져드는 동안, 비단 겉감을 덧댄 푹신한 안락의자처럼 오만하게,

그러나 가볍게, 의식 없는 손을 놀리며, 달의 여신은 오랜 실신으로 가라앉겠지.

- 샤를 보들레르, ≪슬픈 루나≫. (루나는 로마 신화에서 여신을 말한다).

 

 

 

 

<녹색 얼굴의 바이올린 연주자>

마르크 샤갈, 1920년 모스크바 이디시 극장의 벽화. 213×104cm,

캔버스에 템페라, 과슈, 불투명한 흰색 물감

 

솔렘 알레이햄에 대한 마르크 샤갈의 서정적 해석의 중심에는 도피 중인 풍선인간이 허깨비처럼 서 있다.

그는 단지 지상에서만 없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낯선 세상에서도 견뎌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이

곡예사란 것을 증명한다. 그는 책과 꿈의 세계에 사는 기이한 피조물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는 계속해서

풍요로움과 고귀함에 대한 새로운 망상과 꿈을 지어내며, 자신이 처한 상황의 비참함과 절망감에서 자유롭다.

- 아르람 캄프, ≪모스크바 이디시 극장에서의 샤갈≫. 1991년.

 

 

 

 

<프라다와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1931년, 캔버스에 유채, 100×79cm, 현대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가정의 천사>(<초현실주의의 승리>)

막스 에른스트, 1937년, 캔버스에 유채, 114×146cm, 개인 소장

 

공화주의자들의 패배를 보고 나는 <가정의 천사>를 그렸다.

장애가 되는 것은 모조리 부수고 없애는 일종의 쌍봉 낙타를 뜻하는 그것은 반어적 제목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당시 내가 받은 인상이었고, 내 생각은 옳았다.

- 막스 에른스트, ≪그림을 넘어서≫, 1948년.

 

 

 

 

<머리 VI>

프랜시스 베이컨, 1949년, 캔버스에 유채, 93.2×76.5cm, 미술협회 컬렉션과 헤이워드 갤러리, 런던

 

나는 늘 입의 움직임, 입과 치아의 형태에 매료되었다. 각종 성적 의미가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는 입안의 반짝거림과 입에서 나오는 색이 좋다.

하여튼 나는 모네가 일몰을 그린 것처럼 입을 그릴 수 있기를 항상 바랐다.

- 프랜시스 베이컨, ≪담화≫, 1975년. -

 

 

 

 

인용: 클라우스 라이홀트 · 베른하르트 그라프 <세계를 움직인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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