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엽서화
이중섭은 일본 유학기 도쿄의 문화학원에서 후에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를 후배로
처음 만났다. 문화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이중섭은 1943년까지 도쿄에 머무르며 마사코에게
수많은 '그림엽서' 를 보냈다. 한 면에는 가득 그림을 그리고, 다른 면에는 오로지 주소만 적혀
있으며, 글은 전혀 없는 '무언의 엽서' 들이다.
총 90여 점 이상의 엽서화가 알려져 있으며, 그 중 일부가 전시되었다.
처음에는 먹지를 대고 선을 그린 후 옅은 색채를 가미한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리다가,
점차 자신감과 투지가 불타는 그림으로 발전한다. 엽서화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두 연인의 사랑이 점차 진전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화에서> 1941, 종이에 청묵, 채색, 9×14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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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연못가에서 노는 세 어린이> 1941, 종이에 청먹, 14×9cm, 개인소장
우) <남자와 여자> 1941, 종이에 청먹, 14×9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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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바닷가에서>1941, 종이에 청먹, 채색, 14×9cm, 개인소장
하)<연꽃봉우리를 든 남자> 1941, 종이에 펜, 채색, 9×14cm, 개인소장
<누운 여인> 1941, 종이에 펜, 채색, 9×14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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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발 치료해 주다> 종이에 펜, 채색, 4×9cm, 개인소장
우) <파도와 물고기>종이에 펜, 크레파스, 9×14cm, 이중섭미술관 소장
<연꽃> 종이에 펜, 9×14cm, 개인소장
<말을 타는 사람들> 종이에 채색, 9×14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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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사과 따는 남자> 종이에 펜, 채색, 14×9cm, 이중섭미술관 소장
우) <과일 따는 연인> 종이에 펜, 채색, 14×9cm, 서울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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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신화에서> 1941, 종이에 펜, 채색, 14×9cm, 개인소장
우) <활쏘는 남자> 1941, 종이에 펜, 채색, 9×14cm, 서울미술관 소장
<작품> 1941, 종이에 펜, 채색, 9×14cm, 서울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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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작품> 1941, 종이에 펜, 채색, 9×14cm, 서울미술관 소장
우) <작품> 1941, 종이에 펜, 채색, 9×14cm, 서울미술관 소장
<활쏘는 남자> 1941, 종이에 펜, 채색, 9×14cm, 개인소장
<신화에서> 1941, 종이에 펜, 채색, 9×14cm, 개인소장
<신화에서> 1941, 종이에 펜, 채색, 9×14cm, 개인소장
<소와 아동> 1942, 종이에 펜, 채색, 9×14cm, 개인소장
<소를 든 사람> 1942, 종이에 펜, 채색, 9×14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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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무제> 1942, 종이에 펜, 채색, 14×9cm, 개인소장
우) <소와 여인> 1942, 종이에 펜, 채색, 9×14cm, 서울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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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얼굴> 1942, 종이에 펜, 채색, 14×9cm, 개인소장
우) <얼굴> 1943,종이에 잉크, 펜, 14×9cm, 이중섭미술관 소장
● 편지화
이중섭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7월경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남겨졌다.
이후 그는 여러 지역을 정처 없이 떠돌며 가족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언제든 곧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즐겁고 다정다감한 편지를 많이 썼다. 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을 염려하며
그림을 곁들인 사랑스러운 편지들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1955년 중반 이후 점차 절망 속으로 빠져들면서
편지를 거의 쓰지 않았으며, 심지어 아내로부터 온 편지를 읽어보지도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중섭이 보낸 편지들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약 70통, 150매에 이른다.
이 편지들은 이중섭의 생애와 작품의 관계를 연구하는 근거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록적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자유자재의 글씨와 즉흥적인 그림이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기에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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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아들 태성에게 보낸 편지> 1953, 종이에 펜, 채색, 26.4×20.2cm, 개인소장
우) <아들 태현, 태성에게 보낸 편지> 1953, 종이에 펜, 채색, 26.4×20.2cm, 개인소장
<가족을 그리는 화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
1954, 종이에 펜, 채색, 26.4×20cm, 개인소장
● 신문, 잡지에 수록된 이중섭의 삽화
이중섭은 전문 삽화가도 아니고, 미술으 대중화 운동 차원에서 삽화와 표지화를 제작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중서이 그린 이미지가 인쇄매체를 통해 유포되면서 이중섭의 독특한 도상들이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 되었고, 그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문총구국대 북한지부가 발행하던 타블로이드판 <주간문학예술> 제4호에 실린
김이석의 단편소설 <휴가>에 삽화를 그리기 시작한 이중섭은 1954년부터 1956년까지 <문학예술>, <현대문학>
<자유문학> 과 같은 문학지와 신문에 크고 작은 삽화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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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치하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고난의 일생을 살다 간 이중섭.
그의 작품 감상은 반드시 작가의 생애가 반추되어야만 하리라.
울컥함 때문일까?
이중섭의 '황소' 눈동자가 오늘따라 분노로 더욱 이글거리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