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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기해탐매(己亥探梅) 2

 

 

 

 

모처럼 쾌청하기 그지없는 하늘, 황룡강(黃龍江)을 건너 산책에 나섭니다.

 

 

 

 

 

 

 

지인의 뜨락에 피어난 홍매

 

 

 

 

 

 

 

필암서원

 

 

 

 

 

 

 

 

 

 

 

 

 

 

 

 

 

 

 

 

 

 

 

 

 

 

 

 

 

 

 

 

 

 

 

 

 

 

 

 

 

 

 

 

 

 

 

 

 

 

 

 

 

 

 

 

 

 

 

 

 

 

 

 

 

 

 

 

 

 

 

 

 

 

 

필암서원에 배향된 하서 선생의 백화정을 찾아가는 길

 

 

 

 

 

 

산자락에 조성된 매원

 

 

 

 

 

 

 

 

 

 

 

 

 

 

 

 

 

 

 

 

 

 

 

 

 

백화정

 

1592년 임란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하서의 손자 南重이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재차 소실되었다.

1961년 후손들이 다시 복원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3칸 대문과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관직에서 물러난 하서는 이곳에 거처하면서 학문 연구와 제자 교욱에 힘을 쏟았다.

노수신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비판하여 퇴계와 고봉이 노수신의 설을 반박케 한 것이나

서경덕의 학문이 下學을 소홀히하는 것을 비판하는 등, 조선 성리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 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 등 여러 주옥같은 저술들이  이 곳에서 대량 집필되었다.

말하자면, 하서 김인후 성리학의 모든것은 이곳에서 완벽하게 완성되었던 것이다.

 

 

 

 

 

 

 

 

굳게 잠긴 대문...

 

 

 

 

(하는 수 없이 예전 사진으로 대신)

 

 

화정 (百花亭)

 

- 오석에 적힌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다 -

 

백화정은 1552년에 건립된 하서선생의 외헌(外軒)이다.

민씨할머니께서 낙남(落南)하여 손수 잡은 이 집터에서  태어나신 선생은 선고의 유명을 받들어

복상중에 서둘러 사당과 외헌을 짓고 안채를 개축하였다.

난산을 바라보며 죽림에 둘러싸인 백화정은 선생의 지극한 효성과 충절이 서려있는 곳이다.

선생은 1549년에 순창에서 대학강의발(大學講義跋)과 천명도(天命圖)를 짓고

1550년에 맥동본가로 돌아온 후 10년 동안 오로지 학문에 전심하셨다.

노소제(盧蘇齊), 이일제(李一齊), 기고봉(奇高奉)과의 강론과

질정(質正) 선생의 심오한 도학(道學)을 집약한 주역관상편(周易觀象篇)과

서명사천도(西銘事天圖)의 저술이 모두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뜰에 서면 백화(百花)를 심어 완상하고 천시(天時)를 살펴

천명(天命)에 화순(和順)함을 노래한 

자연가(自然歌)가 들리는 듯하다.

 

 

 

 

 

 

 

 

정려각과 하서선생 유허비  

행주기씨(幸州奇氏)와 태인박씨(泰仁朴氏)의 순절을 기린 정려로서

선조대에 나라로부터 정표를 받았으며 1683년(숙종 9년)에 장성 유림이 건립하였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내부에 정려비(1683)가 있다.

 

 

 

 

 

 

정려비문의 두 주인공.

 

왼편의 열녀는, 고봉 기대승선생의 딸로서 하서의 손자인 선교랑 남중(南重 1570 - 1636)의 처다. 

정유재란 때 친정에서 남편집으로 가다 일본군을 만나 손목을 잡히자 팔을 잘라버리고

물 속에 투신하여 절개를 지킨 인물이고,

 

오른편의 열녀 태인박씨 역시  김인후의 손자인 중곤(仲聰)의 처로,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정유재란 때 피난을 가다가 일본군을 만나 피하기 어렵자 역시 물 속에

투신하여 절개를 지킨 인물이다.

 

 

 

 

 

 

 

 

 

 

 

 

 

 

 

 

 

 

 

 

 

 

 

 

하서 선생 유허비 앞에서면  통곡단이 자리한 난산(卵山)이  눈에 들어온다.

 

 

 

 

 

 

 

 

 

매향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서산에 걸린다.

기해년 매향의 정도는 예년에 비해 다소 못 미치는 듯.  대저, 지난 겨울이 너무 포근했던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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