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로 가장 많이 그려진 산수화는 소상팔경도일 것이다. 12세기 고려에 전래된 소상팔경도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물경 800여 년 동안 꾸준히 우리네 의식 속에 자리 잡았다.
민화 속에서 중국의 소상팔경도와 우리의 관동팔경도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예를 잘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그리하여 평안도의 관서팔경도, 충청도의 단양팔경도 등의 유행과 더불어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민화 뿐만 아니라 도자기의 무늬, 자수의 무늬, 심지어는 인장의 무늬까지 소상팔경의 이미지가 확대 재생산되었다.
소상팔경도 못지 않게 인기가 높았던 주제가 바로 금강산도이다.
그 명성은 중국 및 일본에까지 알려져 사신들이 한국에 오면 꼭 한 번
금강산을 방문하기를 원할 정도였다고 한다.
'금강' 이라는 명칭 자체가 불교에서 비롯되었지만, 조선조에 오면 '신선의 산' 또는
'천하의 명승' 으로 보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웬만한 시인묵객치고 금강산을 찾지 않은 이가 없었음은 물론, 심지어 행상, 품팔이,
시골 노인에 이르기까지 금강산 기행이 붐을 이루게 된다. 거기에는 금강산에 다녀오면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생겨날 만큼 조선후기 금강산에 대한 우리네 인식은 다채롭고 복잡다단했던 듯.
조선후기 금강산 열풍 속에서 금강산도 또한 활발하게 제작되었다고 한다.
민화에서는, 불교의 성지인 금강산이 주술신앙이나 풍수지리사상의 관점에서 재구성되었고,
궁화나 사대부회화는 사실적 묘사 보다는 데포르메(회화적 변형)가 두드러진
표현주의적 경향을 보인다는 게 학자들의 전언이다.
일월부상도(日月扶桑圖)
149.5×122.0 마본채색 19세기 후반 삼성미술관 리움
일월신화를 배경으로 한 그림으로 음양오행에 따른 일월의 출입처에 있는 나무와 일월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다.
'유파산(流波山)'에는 '부상(扶桑)'이라는 뽕나무가 있는데, 이곳에서 해와 달이 뜨고, 반대편에 있는 '방산(方山)'에는 반격송(盤挌松)
이라는 소나무가 있어 이곳에서 해와 달이 진다. 이 그림의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부상과 반격송을 그리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동쪽(오른쪽)에 그려지는 부상이 달과 함께 왼쪽4에, 서쪽(왼쪽)에 그려지는 반격송이 해와 함께 오른쪽에 그려져 있다.
두 나무에는 각각 해와 달이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고, 신화적 배경을 나타내는 서기 어린 오색구름이 나무를 감싸고 있다.
산수도8폭병풍
134.0×27.5 지본담채 19세기 말~20세기 초 영남대학교박물관
여러 가지 산수화의 화제와 고사도가 부분적으로 혼합되어 그려졌다. 1-3폭은 아랫단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연명, 위수에서
세상을 낚고 있는 강태공, 상산의 네 노인 이야기가 그려져 있고, 윗부분의 산수는 뚜렷한 화제로 구분되기 어려운 그림이다.
4-8폭 가운데 4폭은 소상야우(瀟湘夜雨), 5폭은 연사모종(煙寺暮鐘), 6폭은 동정추월(洞庭秋月), 7폭은 평사낙안(平沙落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체의 폭이 하나의 주제로 연관되지 않아 처음부터 한 틀로 그려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전체적인 공간감은 근경, 중경, 원경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거리에 따른 대상의 크기는 변화가 적으며,
사선으로 이어지는 오행감에 의해공간감을 표현하고 있다. 먹을 주로 하고 백, 적색의 안료를 부분적으로 사용하였다.
먹선은 짙은 선을 따라 선염을 하여 윤곽선만을 그려 표현 하였는데, 종이 표면을 인두로 태워 그린 것 같은 효과를 준다.
산수도 세부
금강산도8폭병풍 90.0×26.0 견본채색 20세기 전반 계명대학교박물관
단발령에서 보는 금강산을 시작으로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으로 전개되면서 금강산의 명소들을 각 폭에 나누어 담았다.1폭은 단발령에서 바라보는 금강산을, 2폭은 장안사(長安寺) · 명경대(明鏡臺), 3폭은 표훈사(表訓寺) · 정양사(正陽寺)에서 시작하여삼불석(三佛石) 불지암(佛地庵)으로 이어지는 산속의 암자들을, 4폭은 대룡담(大龍潭) · 진주담(眞珠潭) · 만폭동(萬瀑洞)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를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진 경관을, 5폭은 미륵암(彌勒庵)을 전면에 두고 뒤로 백화암(白花庵)에서 묘길상(妙吉祥) · 비로봉(毘盧峯)까지, 6폭은구룡폭(九龍瀑)을 전면에 두고 뒤로 유점사(楡岾寺)를 비롯한 옥류동(玉流洞)까지를, 8폭은 온정각(溫井閣)에서 뒤쪽 만물초(萬物草)까지를,9폭은 외원통암(外圓通庵) · 은선대(隱仙臺) · 십이폭포(十二瀑布)를, 10폭은 총석정(叢石亭)과 멀리 퇴촌(退村)을 그리고 있다.
폭이 좁고 긴 화면에 3분의 2 시상을 조감(鳥瞰)시점에서 전경을 그리는데 할애하고, ), 나머지 부분은 올려다 본 시점으로 간략하게 그렸다.2폭의 마면봉(馬面峯), 우두봉(牛頭峯), 4폭의 사자암(獅子庵) 5폭의 장암(獐岩)등은 말, 소, 사자, 노루 등 이름 붙여진 능선을 따라 소나무를 둘러 그려 독특한 조형감을 보여준다.
1폭, 단발령에서 바라보 금강산
2폭, 장안사 · 명경대 3폭, 표훈사 · 정양사 · 삼불석 · 불지암 4폭, 대룡담 · 진주담 · 만폭동
5폭, 미륵암 · 백화암 · 묘길상 · 비로봉 6폭, 구룡폭 · 유점사 7폭, 신계사 · 보광암 · 금강문 · 옥류동
8폭, 온정각 · 만물초 9폭, 외원통암 · 은선대 · 십이폭포 10폭, 총석정 · 퇴촌
관동팔경도8폭병풍 62.0×40.0 지본수묵 19세기 후반 국립민속박물관
강원도의 대관령 동쪽(관동, 關東)해안의 대표적인 명승지 여덟 곳, 간성(杆城)의 청간정(淸澗亭), 강릉(江陵)의 경포대(鏡浦臺), 고성(高城)의삼일포(三日浦), 삼척(三陟)의 죽서루(竹西樓), 양양(襄陽)의 낙산사(洛山寺), 울진(蔚珍)의 망양정(望洋亭), 통천(通川)의 총석정(叢石亭),평해(平海)의 월송정(越松亭)을 그린 그림이다. 경치가 좋은 여덟 곳을 꼽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송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절벽에 정자가 있는 형태인데, 이 그림에서도 그러한 실경(實景)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전체적으로 각 장소의 지리적 특징만을 포착하여 먹선으로 윤곽만을 그리고 선을 따라 옅은 선염으로 처리 하였다. 원경에 사선으로 표현한 먼 산이 화면 전체에 리듬감을 더해주어 세련된 느낌을 준다.
총석정 삼일포
낙산사 청간정
경포대 죽서루
망양정 월송정
관동팔경도8폭병풍
58.0×32.0 지본담채 20세기 전반 계명대학교박물관
등고선을 그리듯 구불구불 표현된 암석과 언덕, 소나무 한 그루에 똑같은 모양의 정자, 향한 방향만 다를 뿐 유사하게 묘사된 배와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 젓가락을 꽂아 놓은 듯 그려진 총석과 좌우로 생경하게 돋아난 소나무, 붓끝을 갈라지게 하여 가로 선을 긋듯 그려나간 파도 등의 모습은
실제 산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실물과는 사뭇 다른 도식화된 모습이다. 월송정에서 조선 성종이 조선 팔도에서 가장 풍경이 좋은 활터라고 평했다는 일화를 말해주듯 과녁을 그려 넣은 것과, 망양대에 올라 시를 읊듯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의 설명적인 민간화의 표현방식이다.
월송정 망양대
죽서루 청간정
낙산사 경포대
삼일포 총석정
나전빗접
높이 28.4 19세기 계명대학교박물관
빗접은 여성들의 치례 도구인 빗 · 빗솔 · 빗치개 · 가리마 꼬챙이 · 뒤곶이 · 동곳 등을 넣어 두는 상자로
주로 경대와 함께 머리맡에 두고 사용한 것이다. 이 빗접은 흑칠 바탕에 나전으로 문양을 베풀었는데,
양 측면은 모두 누각 산수문이고, 앞면은 화조문, 뒷면은 국화문이 시문되어 있다.
● 인용서적 : 부산대학교 『행복이 가득한 그림 민화』
'자연 > 취월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화 6 <장수에의 염원> (0) | 2019.03.23 |
---|---|
기해탐매(己亥探梅) 2 (0) | 2019.03.22 |
민화 4 <삼국지도10폭병풍 > (0) | 2019.03.22 |
민화 3 <문자도> (0) | 2019.03.21 |
민화 2 <귀한 자식, 높은 벼슬> (0) | 2019.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