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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중국의 장황(粧潢)

 

          중국의 장황(粧潢)                

                      

 

중국의 장황은 한대(漢代)에 비단과 종이를 글과 그림의 바탕으로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

두루마리 장황은 당대(唐代)에 이어 완벽한 수준으로 발전했고, 이 시기 만들어진 기본형식은 송 · 원 · 명 · 청대까지 이어진다.

족자는 중당(中唐)까 무렵에 불교의 걸개 그림의 세로 형식과 두루마리의 앞부분 회장 방식이 결합하면서 나타났고, 명대(明代)를

거치면서 설치장소와 장식성이 고려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다. 한대에 시작된 병풍은 당대에 이르러 비단과 종이로 장황한

접이식과 화려하게 장식한 나무 받침대에 끼워서 세우는 형식이 나타나 궁궐의 황제 자리를 상징하거나

 실내를 분할하는 용도로 쓰였다.

 

중국황실의 장황은 한 · 당대에 발생하여 비단 · 종이 · 풀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여 북송 휘종대에 무늬비단과 최고급 종이를 사용한

황실 장황인 선화장(善和裝)에서 높은 수준에 이른다. 청(淸) 건륭제 시기 황실 장황은 선화장을 모델로 삼아 중국 전통 장황의

절정을 보여준다. 용도에 따라 병풍 · 두루마리 · 책 · 부채를 적절히 활용하고, 비단 · 종이 · 금 · 은 · 상아 등

 최고급의 장황 재료를 사용하여 황실의 품격을 드러냈다.

 

 

 

◐ 건륭황제가 쓰고 그린 '황정경黃庭經' ◑

 

청淸 건륭乾隆연간 (1736-95)

두루마리香 | 금축두 · 옥꽂이

종이에 채색 | 전체 29.0×165.0cm, 화면 28.0×63.6cm, 글씨 28.0×64.5cm,

북경 고궁박물원

 

 

 

송宋나라 때의 고급종이인 장경지(藏經紙)에 건륭황제가 도교경전을 쓰고 그림도 그린 두루마리이다.

청대 두루마리는 축두(軸頭)가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평두(平頭)인데 반해 이 두루마리는 바깥으로 돌출된 출축(出軸)이다.

화려한 채색무늬가 직조된 그림 덮개의 안쪽에는 건륭황제의 여섯째 아들, 영용(永瑢)이 그린 세한삼우(歲寒三友)가 있다.

 

 

 

 

 

 

 

 

 

 

 

 

◐ 건륭황제가 쓴 '라마설' ◑

御筆行書喇嘛說卷

 

청淸 건륭乾隆연간 (1736-95)

두루마리香 | 옥꽂이

종이에 채색 | 전체 36.4×970.0cm, 35.4×271.0cm, 북경 고궁박물원

 

 

 

건륭황제가 라마교를 믿는 몽고와 티베트 등 변방민족 통치에 관해 쓴 글이다.

북송 휘종제 때 황실 장황인 선화장(善和裝)을 따라 종이로 테두리를 둘렀고, 면지에 '종속포공(從俗布公' 네 자를 쓰고,

백옥으로 만든 꽂이에 '건륭어필라마설'을 금으로 박아 넣었다. 명주 겹보자기와 자단목으로 만든 상자도 함께 남아 있다.

 

 

 

 

 

 









 

 

 

 

 

 

◐ 명나라 선종황제의 활쏘기 ◑

 

명明 선덕先德연간(1426-35)  | 청淸 1748년 장황

일색식족자一色式簇子 | 나무축두

비단에 채색 | 전체 214.0×60.5cm, 화면 29.5×37.5cm, 북경 고궁박물원

 

 

 

명 선종황제가 사냥을 즐기는 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미색무늬 비단 한가지로 장황한 일색식(一色式) 족자에 자단목 축두를 달았다.

족자의 뒷면 윗부분의 황색 비단 표지에 청 건륭 13년(1748)에 새롭게 장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군복 차림의 강희황제 ◑

 

청淸 강희康熙연간(1662-1722)

이색식족자二色式簇子 | 상아축두, 비단에 채색

전체 211.0×101.2cm, 화면 112.5×71.5cm, 북경 고궁박물원

 

 

 

 

 

 

 

 

 

 

 

 

 

 

◐ 강희황제 30세 무렵의 초상 ◑

 

청淸 강희康熙연간)(1662-1722)

삼색식족자三色式簇子 | 상아축두, 비단에 채색

전체 253.0×75.5cm, 화면 50.8×32.0cm, 북경 고궁 박물원

 

평상복 차림의 강희제이 초상을 세 가지 비단으로 회장한 삼색식(三色式) 족자이다.

윗부분의 진남색 비단 위에 황색띠를 달아 장식하였고, 그림 바로 위에 그림 평을 써 넣을 수 있도록 시당(詩堂)을 두었다.

상아로 만든 축두로 화려하게 꾸몄고 뒷부분 상단의 표지는 황색 비단으로 배접하였다.

 

 

 

 

 

 

 

 

◐ 강희제가 쓴 '정명원에 내리는 비' ◑

 

청淸 강희康熙연간(1662-1722)

삼색식족자三色式簇子 | 나무축두

종이에 먹 | 전체 265.0×58.0cm, 화면 112.5×33.5cm, 북경 고궁박물원

 

 

 

 

 

 

 

 

 

 

 

 

◐ 김정표의 효경도를 본 뜬 그림 ◑


여명黎明청淸 건륭乾隆연간(1736-95)호접장첩(蝴蝶裝帖)종이에 채색 | 29.0×36.8cm, 북경 고궁박물원

 

유교경전의 하나인 효경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좌우로 펼쳐 보는 호접장(蝴蝶裝)이다.

첩 앞부분의 밀랍 입힌 종이에 견륭황제가 '수모경의(垂模經義)' 라고 썼다.

짙은 감색 비단의 겉표지 중앙에 제첩을 붙였다.

 

 

 

 

 

 

 

 

 

 

◐ 옛 한자서체를 베껴 쓴 '선기원금璇㼄鴛錦' ◑

 

이격二格

청淸 건륭乾隆연간 (1736-95)

경절장첩經折粧帖

종이에 채색 | 24.8×12.1cm, 북경 고궁박물원

 

 

 

세 권의 첩으로 오색 비단 바탕에 여러 가지 전서체(篆書體)를 베껴 쓴 것이다. 본문 배접은 회장 비단의 한가운데를 

따내어 본문 주위에 한판으로 붙이는 방식으로 장황하였다. 겉은 호접장(蝴蝶裝)인 듯 보이지만

 펼치면 전체가 한 폭이 되는 경절장(經折粧) 형식이다.

 

 

 

 

 

 

 

 




◐ 당나라와 송나라의 명신 초상 ◑
명 明 | 청淸 1748년(乾隆 13) 장황
호접장첩(蝴蝶裝帖)비단에 채색 · 종이에 먹 | 39.0×29.5cm, 북경 고궁박물원


당 · 송 양대에 걸친 22명의 이름난 신하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짙은 감색 명주 겉표지에'당송명신상 건륭무진년중장 唐宋名臣像 乾隆戊辰年重葬' 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명대의 작품을 청의 황실에서종이를 사용하여 호접장 형식으로 새롭게 장황한 것이다.



 

 

 





◐ 건륭황제의 서화상자 ◑御筆書畵帖冊 · 盒
청淸 건륭乾隆연간(1736-95)두루마리 · 첩 · 족자 · 붉은칠 상자상자 나무에 주칠 | 32.5×32.5×32.0cm, 북경 고궁박물원


건륭황제의 서화 두루마리 13권, 책 7권, 첩 1권, 족자 1축과 이를 보관하기 위한 3단 서랍 상자이다.한 세트의 감상물로 만들어 황제가 즐기로독 한 것이다.붉은칠을 두껍게 하여 구름과 용무늬를 조각한 상자 안에 담겨 있다.

 







 




◐ 건륭황제이 글씨와 홍오의 산수병풍 乾隆書字弘旿畵山水屛 
건륭황제 · 홍오弘旿청淸 건륭乾隆연간(1736-95)위병풍(圍屛風)비단에 채색 · 나무전체 206.0×345.0cm, 화면 111.0×28.0cm / 9폭, 북경 고궁박물원

 

건륭황제가 쓴 글씨 두 폭과 그의 동생 홍오가 그린 산수 일곱폭을 자단목 틀에 끼워 구민 병풍이다.

궁궐 내부에 둘렀던 병풍으로 하단 보좌 위에 각 폭을 끼워서 세웠다. 나무틀에는 다른 나무 재질로 대나무를 새겨 넣었고

뒷부분에도 매화와 대나무를 새겨 장식하였다.

 

 

 

 

 

 

● 인용서적 :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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