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벽은 門 이다
먼동이 튼다.
어두움도 아니고 밝음도 아닌...
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좋아한다.
뒷모습에는 연민과 그리움이 있다. 그리고 그늘이 있다...
어두움도 아니고 밝음도 아닌, 어두움 속에서 어두움을 보는 것.
그것은 알 수 없는 세계이자, 알고 싶은 세계이다...
우리 시대의 대선사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나는 이 분들을 만나면서 나누었던 인연들을 소중히 생각한다...
김호석 화백 著 『모든 벽은 門이다』서문(序文)중에서
성철 스님 (1912-1993) 종이에 수묵 채색, 1994
스님의 진영 중 가장 먼저 그린 그림이 성철 스님 초상화다.종이가 황색을 띠는 것은 전통방식 그대로 들기름을 먹였기 때문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185×95cm, 수묵, 1994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산이 물 위로 간다.스님은 백련암 앞마당에 머물다 가는 노을 속에서서 함께 물들었다.
성철 스님, 142×116, 종이에 수묵, 1994
빈대 잡는 선승, 141×139cm, 종이에 수묵 담채, 1996
성철 스님, 164×125cm, 종이에 수묵, 1994
스님은 아이를 좋아하고 아이는 스님을 무서워했다.스님은 아이의 낮가리는 모습조차 사랑스러워했다.
그날의 화엄, 365.5×160cm, 종이에 수묵 채색, 1995-98
이 그림을 본 일감 스님은 "혈서를 쓰듯 손끝을 갈아 피로 쓴 화엄경변상도"라고 말했다.
상단 - 가야산 해인사 풍경
중단 - 운구 행렬
하단 - 다비식 현장
다비장 그 주변의 이야기들, 종이에 수묵 채색, 1995-98
성철 스님을 보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비탄, 아쉬움, 그리움 등의 표정이 제각기 떠올랐다.
89×60cm, 종이에 채색, 1994
성철 스님의 얼굴형은 매우 원만한 형태이다. 스님의 머리는 흰머리가 거의 없는 검은 머리로 항시 푸르스름한 빚깔이 감돌았다.눈은 크고 뚜렷해 빛이 났고, 눈동자가 흔들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확신에 찬 스님의 인상은 이렇게 형성된 것이라 생각한다.
성철 스님 진영, 253×183, 종이에 수묵 채색, 1994
진영은 표현 대상자이 외모는 물론 삶과 정신까지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깨달음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화가의 인생을 걸 만큼 즐거운 멍에였다.
162×128, 종이에 수묵, 1994
스님은 장좌불와 수행을 8년 동안 했다. 수행을 마친 후 스님은 고행승처럼 빼빼한 모습이었지만 자유로움이 넘쳐 흘렀다.산은 산대로 보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보아도 무방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상, 115×79cm, 종이에 수묵 채색, 2008
"옷에 덧씌워진 권위나 허울을 보지 마라. 스님은 가셨어도 스님이 일군 법맥은 긴 생명력을 가질 것이다. 모든 것은 영원이면서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나름대로 탁견을 제시하셨다. 나도 오랜 침묵을 깨고 한마디 했다."스님은 외출 중이십니다."
노 대통령께서는 이런 상징성을 중시하며 또 다른 의미의 그림을 주문했다.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의 공가 평가는 후세 사가史家의 몫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 그럼에도 물러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업적을무위화無爲化 하고 형해화形骸化 시켜 단죄하는 현실을 목도하였다. 나는 원칙도 소신도 없이 과거 지우기에 급급한 우리의 현실을대통령의 모습에 담아 기록해 놓기로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 없는 초상화 작품은 성철 스님과의 이런 인연으로 탄생한 것이다.
성철 스님, 223×184, 종이에 수묵, 1994
법, 153×95cm, 종이에 수묵, 2012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 없는 초상화는 성철 스님 초상화와의 인연으로 탄생했다.
관응 스님 (1910-2004) 100×62cm, 종이에 수묵 채색, 1995
진영 작업은 그려 나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곧 그림이다.화가 자신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완성한 그림만이 다른 예배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기억의 저편, 138×118cm, 종이에 수묵, 1997
선하고 따뜻했던 관응 스님의 삶을 보고 화폭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응 스님, 174×114cm, 종이에 수묵 채색, 1995
정성과 진심을 다했다. 그 덕분에 미술사학자와 평론가로부터 관응 스님 그림이 내 그림 중 최고의 득의작(得意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나는 작품을 보내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사람들이 좋은 작품을 통해 그분을 기리는 것이 더욱 의미있는 일이라 판단해 사욕을 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그림을 보여 준 뒤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진영을 부탁한 측에서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몇 가지 부족하다는 점을 참고해 다시그려 달라는 전갈이 온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남겨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기분 좋게 재작업을 하였다. 작업은 1주일 만에 완성되었다.주문자는 새로 그린 작품에 만족해했다. 1년여간 지난한 흔적이 배어 있는 작품이 작가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은, 불합경의 수치가 아니라작가를 생각한 또 다른 배려 방식이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선-산빛이 가늘게 어깨를 눌렀다. 191×97cm, 종이에 수묵, 1997
작업은 무엇보다 대상자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워야 한다. 대상에 대한 관찰의 힘도 중요하지만 특징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대상자만의 특정 요소를 포착하는 것은 화가의 몫이다.
125×111, 종이에 수묵, 2015
깨달음과 해탈은 무엇인지, 선은 왜 하는지끝없이 질문하는 내게 스님은 아무 말씀 없이 몸을 돌려 앉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스님께서 나의 영적 의식 수준을 높여 주기 위해 여러 방편을 설하신 것으로 생각이 든다.
단맛, 140×73cm, 종이에 수묵, 2015
관응 스님과의 대화에 열중한 사이 차가 식어버렸다. 차에서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스님께서는 "황악산 중턱에 사는 장수말벌이 와서 찻잔 속에 있는 차의 닷맛과 맑은 색을 다 빨아먹고 표표히 날아갔다"고 하셨다.
법정 스님 (1392-2010) , 139×73cm, 종이에 수묵 채색, 2012
스님의 정제된 문학작품은 나에게 문학이 아니라 법문이었고 화두였으며 미학이었다.불교를 설파한 방편이었다.
헌화가(부분), 140×70cm, 종이에 수묵 채색, 2012
법정 스님의 눈동자는 새까맣다. 이로 인해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나는 눈동자에 특징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되어 그 표현에 특히 주의하였다. 동공은 빛이 약할 때 커지고 빛이 강할 때 작아진다. 여기에 비밀이 숨겨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물이나 현상을볼 때 동공은 커진다. 그러나 싫어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앟은 물체자 모습을 바라볼 때 동공은 매우 작아진다. 동공이 축소하는 모양을 보고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읽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덧 , 137×132cm, 종이에 수묵, 2014
껍데기가 있다. 그것은 껍데기일 뿐 내용은 아니다. 불일암에서 스님을 아무리 불러 보았자 스님은 없다.스님께서 남기신 자취만 있을 뿐이다. 막 수행을 마친 스님이 겉옷을 벗어 놓은 채 나가신 이유가 뭘까?
불일암, 125×111cm, 종이에 수묵, 2014
스님의 포행길에는 늘 배추가 함께 있었다. 지금도 스님의 배추밭에는 배추 한 포기가 있다.배추는 겨우 내내 불일암으 지키는 주인이다. 살아서 계승하고 있는 법정의 정신이다.
화삼매, 65×91cm, 종이에 수묵 담채, 2015
꽃은 그 향기가 지고 난 뒤 마르면서 고혹적이라 했다.
꽃은 그저 꽃일 뿐 떨어진 것이든 붙어 있는 것이든 그 의미와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림도, 물질도, 대상도 세상사이며 세월의 흐름이다. 나는 법정 스님을 그리며 찾은 불일암에서 여백을 보았다.자연은 남겨 놓음으로써 담담하게 본질을 이야기한다. 공영함, 정서나 함의를 여백에 기탁해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신 생명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여백이 본질이다.
불이, 125×111cm, 종이에 수묵, 2014
관음, 188.5×94.5cm, 종이에 수묵 채색, 2012
풍경은 고양이를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보고 있다.
법정 스님은 충분히 가질 수 있었으나 갖지 않았고 높아질 수 있었으나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은일隱逸했다. 안으로는 마음의 여유를 얻고 고고함을 지켰다. 삶은 깨끗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자존심과 정신의 자유를 만족시켜 주며 누리게 했다.스님은 버리고 떠났지만 명성은 널리 알려졌다.
나무꾼 대선사, 185.5×183cm, 종이에 수묵 채색, 2014
불교는 당신한테 있습니다. 당신한테 있는 불교를 찾으십시오.
광덕 스님 1927-1999)
불광, 88.5×59.5cm, 종이에 수묵, 2002
광덕 스님의 진영을 제작하기에 앞서 스님의 독경하시는 모습을 먼저 그려 붙여 놓았다.
스님의 독경소리는 진영 작업을 하는 내내 내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광덕 스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대학생 때부터 대불련 활동을 통해 스님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직접 몸으로 확인했다.
불교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천착해 들어갔던 시대를 아는 분이었다.
스님께서 열정을 쏟았던 월간지 『불광』도현실의 삶을 긍정화 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대학과 군 생활 그리고 교사 시절에 이르기까지 『불광』지는 나의 또 다른 삶이었고 희망이었다.
나아가 마음의 창이었고 한량없이 정신적 자유를 누리게 하였다.
무꽃, 70×46cm, 종이에 수묵 담채, 2015
모든 사물은 각각의 존재 방식이 있다. 무꽃은 그 뿌리가 땅 속에 있을 때만 피는 게 아니다.
썩은 무에도 봄은 있다. 스님께서는 차별이 없는 삶을 실천하셨다.
금하당 광덕 대선사 170×124cm, 종이에 수묵 채색, 2003
스님의 자태는 순일하다. 특히 앉아 계실 때 모습을 보면 얼굴은 왼쪽으로 기울어지고 어깨는 오른쪽이 내려가 있어 수줍은 듯 단아하다. 여기에 손과 발까지 가지런하여 자기 근신의 생활화가 읽혀진다.
싹, 70×70cm, 종이에 수묵 담채, 2015
배추를 본다. 김장이 끝나고 남겨진 배추는 추운 겨울을 나면서 마르고 썩어 볼품없이 버린 물건이 되었다.그러나 그 석은 배추 속에도 생명의 가치는 빛을 발하고 있다. 살아 있는 가르침이다.
일타 스님 (1929-1999), 170×124xcm, 종이에 수묵 채색, 2003
스님의 눈은 빛이 난다. 총기가 느껴진다.검고 굵은 뿔태안경은 이런 지적 풍모를 돋보이게 했다.
나는 스님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날은 바람이 많이도 불었다. 만장을 든 스님과 보살들이 무던히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바람이 만장을 하늘로 추켜올렸고 올라간 만장은 한량없는 곡석을반복하며 무한대로 증폭시켰다. 긴 폭의 만장이 만들어내는 곡선은 바람의 섬세한 빗질이었지만ㄴ 그것은 또 다른 생명이었다.
스님은 마지막 가실 때에도 오색찬란한 색깔로 허공에 춤을 추었고 바람 소리로 순간을 가르며 법문을 하셨다.그 모습은 퐁소 스님의 모습 그대로였다. 은해사銀海寺에서 본 마지막 스님의 이미지는 꽤나 오랫동안 뇌리에 박혔고, 지금도 '일타'라는단어만 보아도 다비장 가는 길에서 보았던 하늘의 춤이 각인되어 있다. 일타 스님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생존, 90×58.5cm, 종이에 수묵 담채, 2015
스님은 오른손 손가락 4개 12마디를 연비하였다. 나는 스님의 손을 볼때마다 혜가慧可의 구도 행위가 생각이 났다.아니 혜가보다 더한 자기 향상과 성찰을 생각했다. 손에 작은 가시만 박혀도 온몸을 꼼짝 못하게 들어 올리는데 스님은 자신의 살과 뼈가 타들어 가는 것을 눈으로 지켜 보며 자신의 불교적 삶을 확인했다. 연비는 자기 확신과 의지는 물론 구도를 향한 무서운 집념의 상징이다.그리고 처절한 절박감의 표출이고 자아 의지의 확신이다. 스님께서 큰길을 걸아나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런 자신감의 충일과 당당함에 기초했다고 본다.
달마, 125×111cm, 종이에 수묵, 2014
일타 스님의 구도정신을 파초에 비유했다.
지관 스님 (1932-2012), 140×72cm, 종이에 수묵 채색
스님의 이름 앞에는 항상 우리나라 최고의 학승 중 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스님은 한국불교사에 『불교대사전』편찬이라는 위대한 일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 일은 스님이 입적한 지금에도 후학들에 의해 올곧게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스님이 펼친 대역사에 대해 공감하고 동참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분명 한국 불교의 힘이며 가능성이다.
지관 스님의 눈빛을 처리하는 데 있어 머뭇거렸다. 한국불교의 미래와 장구한 세월을 담을 것인지아니면 세상을 고민하는 눈빛으로 표현해야 할지 붓 속에 마음을 담지 못했다.그래도 그 속에서 스님의 고뇌를 읽었다.
지관 스님, 143×94cm, 종이에 수묵, 2010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지관 스님을 학승으로 그려야 할지 행정승으로 표현해야 할지 고민했다.그래서 스님의 눈빛을 처리하는 데 있어 머뭇거렸다. 한국불교이 미래와 장구한 세월을 눈에 품고 있는 눈빛을 표현할 것인지,아니면 한국사회에서 세상을 고민하는 행정승으로 표현해야 할 지 붓 속에 마음을 담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어느곳에도 방점을 찍지 못했다.
만해 스님 (1879-1944)
한용운-파리, 129×76cm, 종이에 수묵, 1996
파리
- 한용운
이 작고 더럽고 밉살스런 파리야너는 썩은 쥐인지 만두(饅頭)인지 분간을 못하는 더러운 파리다.너의 흰옷에는 검은 똥칠을 하고검은 옷에는 흰 똥칠을 한다.너는 더위에 시달려서 자는 사람의 단꿈을 깨워 놓는다.너는 이 세상에 없어도 조금도 불가(不可)할 것이 없다.너는 한눈 깜짝할 새에 파리채에 피 칠하는 작은 생명이다.그렇다, 나는 작고 더럽고 밉살스런 파리요, 너는 구귀한 사람이다.그러나 나는 어엽분 여왕의 입술에 똥칠을 한다.나는 황금을 짓밟고 탁주에 발을 씻는다.세상에 보검(寶劍)이 산같이 있어도 나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다.나는 설렁탕집으로궁중연회(宮中宴會)에까지상빈(上賓)이 되어서 술도 먹고 노래도 부른다.세상 사람은 나를 위하여 궁전도 짓고 음식도 만든다.사람은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물론하고 파리를 위하여 생긴 것이다.너희는 나를 더럽다고 하지마는너희들의 마음이야말로 나보다도 더욱 더러운 것이다.그리하여 나는 마음이 없는 죽은 사람을 좋아한다.
만해 시의 핵심은 역설과 모순이다. 이 역설과 모순을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고 있는가가 그의 시를 이해하는 바로미터이다.만해는 시를 통해 대립하는 통일을 역설하고 있다. 현실을 돌파해 나가는 것이 예술이고 예술가다. 만해는 저잣거리에 있지만 위대하다. 만해의 상기된 붉은 눈초리가 늘, 어디서나 필요한 이유다.
左) 탁주에 발을 씻다. 64×94cm, 종이에 수묵, 2013한용운의 "파리'를 형상화 한 작품이다. 현실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이해관계에 달려 있다.그것이 현실이고 우리 사회의 병폐다. 만해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右) 길고 긴 잠, 186×94cm, 종이에 수묵 담채, 2015만해의 눈은 항상 빨갛다. 사람의 고통이 있는 곳에 항상 만해의 붉은 눈초리가 필요하다.
지효 스님 (1909-1989), 종이에 수묵 채색, 2016
스님의 눈빛은 깊은 명상에 잠긴 듯 고요하다. 그 모습은 눈이 외부를 향해 열려 있다기 보다,내부를 향하여 자신을 보고 있는 심득의 경지이다.
스님은 출가 전 의류 사업을 하였고 일본과 중국을 왕래하였다. 해방 직전 남한으로 내려와 출가하였다.평생 선방 수좌로만 사셨다. 법분 한 번 한 적이 없고 법상에 올라 설법한 사실도 없다."참된 것은 말에 있는 게 아니다. 확철대오하기 전에 법상에 오르지 않겠다."는 신념을 견지한 철저한 수행승이었다.그리고 자신의 흔적을 한 줄 글로도 남기지 않았다.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투철하였고 깨끗하게 살다 정직하게 가셨다.스님은 불교정화 때 할복으로 조계종 법통을 지키려 했다. 곧고 강한 성품은 평생 일관했다.
지효스님, 91×63cm, 종이에 수묵, 2016
통광 스님 (1940-2013) 124×73cm, 종이에 수묵, 2013
통광 스님께서는 가사 장삼을 갖추시더니 의자에 앉은 동작과 좌복에 앉은 자세 등을 취해 주셨다.동작을 취해 준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매 순간 정성을 다해 응해 주셨다. 스님의 자태는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표정은 없었다. 스님께서 시를 읊으며 자신의 삶을 드러내었다.
산마루에 흰 구름 날고암자 아래 맑은 시냇물 흐르네얼글 얼글한 눈썹 늙은 스님이일 없어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네.
푸른 산 맑은 물 흰 구름 날고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시냇물 고요히 흐르네병든 늙은 승려 주야로 포행하니혹은 앉아 있기도 하고 때로는 누워서 자유자재로 노니네
생성, 72×105cm, 종이에 수묵 채색, 2013
인간은 누구나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숭고하다.나고 자라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생성과 소멸은 우주의 원리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 과정 속에 있다.
몇 달 뒤 스님께서 입적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스님의 다비식에 가지 못했다. 대신 스님의 눈에 고인 눈물과 어지러운 눈썹을 그렸다. 말 못할 번뇌를 가슴에 안고 가시는 눈물 머금은 스님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청화 스님 (1924-2003) 앞뒤, 88×59cm, 종이에 수묵, 2015
스님에 대해 일면식도 없다. 스님에 대한 이미지는 스님께서 남기신 말이 중요하다.나는 이를 통해 스님의 영상이 벽을 뚫고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본질과 바탕, 허구, 앞과 뒤 이런 것은 구분되어 있지 않다.
내려놓다, 60×88cm, 종이에 수묵, 2015
바가지, 쌀, 깨어짐, 실로 꿰맴, 참과 빔, 스님은 쌀 두 되로 일 년을 살았다.그러면서 속박의 자유와 청빈의 풍요를 누리셨다.
어느 가난한 암자에 사시는 서생원, 94.5×66cm, 종이에 수묵, 2002
세상을 아는 분의 눈빛은 다르다.나는 스님의 눈에서 세상을 향한 포용의 생명력을 보았다.
스님은 하루 한 번 쌀가루 두세 스푼과 둥굴레 뿌리 가루를 섞어 드셨을 뿐이다.선정에 들었을 때에는 3일에 한 번만 드신 경우도 허다했다. 스님은 쉼 없이 공부에만 정진했다.스님이 수행 자세는 장좌불와로 일관했다. 확인 가능한 시점으로만 치더라도 최소한 40년 동안 단 한 번도 누워 있지 않았다.역설적이게도 속을 비우는 삶을 살았던 스님에게 생명을 유지하게 한 것은 장좌불와였다."눕지 않았기에 살았지 누웠으면 장기가 들어붙어 돌아가셨을 것이다." 는 한의사의 말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속을 비우니 정신의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라. 이는 수행자의 무서운 집념이다. 노력과 끈기 그리고 투철한 정신력은 스님의 인생관에서 뺄 수 없는 대표적 요소이다.
빔, 122×73cm, 종이에 수묵, 2015
스님의 삶은 본질 그 자체다. 비워서 얻은 상충과 양극의 통일이다.
스님은 은일했다.그리고 묵언했다.오욕칠정에서 벗어나 탈속의 경지에서 삶을 일관하려 했다.무사했다.최고의 미에 도달하려면 자연을 재현하는 것 못지않게자연을 떠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스님은 버려서 얻었다.스님은 정직한 모범생으로 원리 원칙주의자이다.스님의 몸 자체가 교과서이다.스님의 모습은 초발심의 표본이고 겸허함 그 자체다.처음이면서 끝이었다.스님의 살림살이는 단순했다.모든 물건은 질서 정연했고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다.사물를 대하는 자세가 깐깐했고 빈틈을 허용치 않았다.성본 스님은 "스님을 모시는 내내 스님 앞에서 숨 한 번 제대로 쉰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실례로 스님은 글씨를 반듯하게 잘 쓰는 사람을 좋아했다.잘 쓴 글씨를 보고 사람을 평가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신이 반듯하다고 보았던 것이다.스님은 고개를 숙이는 삶을 사셨다.고개 한 번 들어 본 적이 없고 수행하고오나가나 책이나 보며 살았던 분이다.누구에게도 눈빛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사람을 만날 때 두 손을 모으고 정성스례 대했다.그만큼 인자하고 겸손했다.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할 중도로 기백이 있었지만 빛만은 감추었다.자신감이다.스님은 현실적인 것을 중시했다. 그리고 허세를 싫어했다.단순하고 담박했다. 겉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은 싫어했고 금했다.스님의 몸은 야윈 편이다. 뼈는 통뼈로 대인 기질이 있다.스님은 검도 유단자로 운동 기질이 뛰어난 분이다.동작이 민첩했고 발걸음이 빨랐다.온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에서 엄청난 유연성이 발휘된다.손과 발은 길고 컷고 따뜻했다.얼굴에 나타나는 전체적인 느낌은 깊고 맑은 빛이 가득하다.머리 위 정수리는 법랍이 높아질수록 봉긋 솟아올랐다.눈은 크기가 달랐다. 왼쪽 눈은 부릅떠 있고 오른족 눈은 곱다.눈빛이 형형했고 살아있다.눈썹의 색깔도 다르다. 왼쪽 눈썹도 짙고 숱이 많다.눈은 자주 깜빡인다.코는 조금 낮은 편이고 얇다.스님은 치아가 좋지 않아 고생이 많았다. 위아래 모두 틀니이다.때문에 입은 합죽하다.인중 선은 뚜렸하다. 특히 스님에게 인중은 감정선이었다.누가 슬프거나 언짢은 소리를 할 때 더 뚜렷했다.입에는 항상 힘이 들어가 있다.나이가 들면서 이런 현상은 더 분명하게 두드러졌다.입은 꽉 다물어 있고 거기엔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한강한 의지가 숨어 있다.스님은 성질이 급했다. 성질이 펄펄 끓는 분이셨다.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다.스님은 말이 빨랐다. 그러면서도 말을 더듬었다.스님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하다. 그만큼 힘찼고 카랑카랑했다.지신감의 또 다른 모습이다.스님은 귀가 앏았다.
성본 스님은 은사 스님에 대해"말로 공부해서 되로도 사용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한 말씀 덧붙였다.
"스님의 진면목이 그저 세상에 묻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스님의 진영이 살아 있도록 잘 그린 그림이면 좋겠습니다.그러면 스님의 말씀이 다시 살아나제도가 되는 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나는 그런 염원으로 진영을 모시고 싶습니다.
예술 작품의 본질은 근본적인 양극성에 있다. 모든 시대의 위대한 예술은 대립하는 두 힘의 상호 관련지음에 의해 일어난다.대조인 것이다. 미는 그 본성과 본질에 있어 대립하고 있는 두 요소를 통일한다.나는 청화 스님을 공부하면서 결핍의 자유와 상생의 쾌락을 보았다.
성모(聖母), 218×187cm, 종이에 수묵 채색, 2010
청화 스님은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부모님의 제삿날에 가지 못하면 물을 떠놓고 예를 표했다.스님의 몸가짐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대하듯 애틋하고 겸손했다.
전강 스님 (1898-1974), 138×72, 종이에 수묵 채색, 2015
예술 작품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다양한 인식과정을 거친다. 먼저 창작가가 의도하는 이미지가 있고,
다음으로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두 사람의 생각과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그것은 사회 통념을 통해
도달하는 인식과 각자 개인의 선천적인 인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마다 예술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작품은 해석의 문제이다. 해석은 비울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폭이 넓을수록 좋다.
그럴 때 보편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감염력도 크다. 좋은 작품의 조건들이다.
칼에 묻은 꿀, 143×74cm, 종이에 수묵 채색, 2001
어쩌면 인간의 삶은 칼끝에 묻은 꿀 한 방울을 먹기 위한 현실인지 모른다.
먹, 193×95cm, 종이에 수묵, 2012, 생명은 깊은 원리이다.주와 객은 부정과 부정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모순과 역설이다.
법(法), 193×95, 종이에 수묵, 2012
사상이 높다는 것과 사상이 깊다는 것은 다르다.
스님의 법문은 언어의 표현을 넘어선다. 정신의 최고수는 소박하지만 결이 살아 있다.
입주기(부분), 88×59cm, 종이에 수묵, 2013
하늘감(까치밥)은 새들과 교유한다. 그이는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연의 본성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오직 한 물건을 향한 스님의 참모습과 방불하다.
전강 대선사 진영, 140×72cm, 종이에 수묵 채색, 2015스님은 자아를 타자화시켰다.
전강 대선사 진영의 뒷면 배채, 140×72cm, 2015
송담 스님, 143×74cm, 종이에 수묵 채색, 2015
송담 스님, 141×74cm, 종이에 수묵, 2015
선(禪), 53×70cm, 종이에 수묵, 2015
동양예술의 정수는 선(禪)이다.그러나 정신은 눈에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까지 포함한다.
도약, 94×56cm, 종이에 수묵 채색, 1996
명성 스님, 91×63cm, 종이에 수묵, 2015
명성 스님 상, 84×59cm, 종이에 수묵 채색, 2015
새벽, 89×59cm, 종이에 수묵, 2000
초의선사 진영, 93×84.5cm, 종이에 수묵, 2015
- 작가노트 -
검은 먹 한 점으로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그리고자 노력해 왔다.
이런 일이 남에게는 사소해 보일지라도 나는 삶이 예술이고 철학이 되는 순간을 계속해 왔다.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일에 짐심을 다했다...
나는 스님들을 그리면서 그분이 어떤 생각을 해 왔는지, 어떤 정신세계를 이루었는지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그래서 그 경지를 작품 속에 구현해 보고자 했다. 인물화는 그분의 외형 뿐 아니라 성정과 정신세계 그리고 학문적 성과와 인품까지를 그려야 한다...
● 인용서적 / 김호석 著 :『모든 벽은 문이다』
'자연 > 취월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의 장황(粧潢) (0) | 2019.03.10 |
---|---|
한국의 장황(粧潢) (0) | 2019.03.10 |
평양도 / 태평성시도 / 풍류도 (0) | 2019.03.06 |
평생도 (0) | 2019.03.06 |
음악 풍속도 (3) | 2019.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