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1편)
<매화서옥도>
종이에 수묵담채, 106×45.4cm, 간송미술관 소장
둥근 창 젖혀진 커튼 사이로 한 인물이 앉아 있다.
마주한 낮은 책상에는 책갑이 여럿 포개져 있고, 목이 긴 병에는 매화 한 가지가 촛불처럼 봄밤을 밝힌다.
향기 그윽한 찻잔을 앞에 놓고 기대 앉아 매화 시를 읇조린다.
기름불 지글거리는 명리(名利) 속을 뚫고 나와 매화와 함께 지내노라니
철석(鐵石)같은 마음이 모두 꽃 기운이라네.
글을 읽다 매화에 빠져 그림을 그린 지 수십 년. 가슴을 울린 매화는 시가 되고 난이 되고 돌이 되었다.
풍족한 삶, 그저 즐기고 살 수도 있었지만 문자를 아는 사람의 소임 다하려다 인생의 큰 굴곡을 겪었다.
후회는 없다. 한 시대가 바뀌는데 나의 예술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다면. 봄바람에 매화향이 서재를 감싼다.
19세기 여항문인(閭巷文人)이었던 우봉의 삶과 예술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당연 신분제.
영 · 정조 연간의 통청(通淸) 운동을 비롯, 숫자상의 양반은 많아졌지만 사회 정점에 있는 극소수 양반들의
위세는 여전 했던 것. 20세기 전반까지도 향촌 사회에 반상을 구별하는 유습이 남아 있었음을 떠올리면
우봉이 살던 당시의 정황은 미루어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이런 와중에, 이른바 중간 계층에 속하던 사람들이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신분에 대한 울분과 격정을 글과 그림으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19세기 문화의 다채로움 속에는 이들의 활약이 활발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 핵심에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치운(致雲), 호는 우봉(又峰)·석감(石憨)·철적(鐵笛)·호산(壺山)·단로(丹老)
또는 매수(梅叟)라 일컫는 여항문인 조희룡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조선 개국공신 조준(趙浚, 1346~1405)의 15대 손으로 본디 명문가의 후손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항인으로 전락했다.
신분상의 변동은 있었지만 여전히 그는 문인으로서의 교양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풍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신분상의 이중성은 그의 문학과 예술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유숙, <벽오사소집도>종이에 수묵담채, 14.9×21.3cm, 서울대학교박물관
조희룡도 참여했던 벽오사(碧梧社) 모임을 그린 <벽오사소집도(碧梧社小集圖)>를 보면 아회(雅會)가 열리는 울타리 바깥으로
물결이 그려져 있어 벽오사의 맹주 유최진(柳最鎭, 1791~1869)의 집 또한 물가에 있었음을 알 수 있겠다.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분명치는 않지만 조희룡 역시 중인들이 모여 살던 청계천 근처에 살았을 것으로 본다고.화면 중앙에 화폭을
펼쳐놓고 앉아 있는 인물이 73세 때의 조희룡이다. 나이 육십에 아내 진씨를 잃었고 같은 해에 동생도 잃었으며
신안 임자도에서의 3년 유배를 겪고 돌아와 문예활동에 전념 78세로 생을 마감한다.
신윤복 <주유청강>
종이에 수묵담채, 28.2×35.2cm, 간송미술관
배에 관심이 많았고 친구들과 배를 빌려 선유(船遊)를 즐기기도 하였다는 우봉.
한강 선유는 조선시대 상류층 문인들의 호사 풍류로, 위 그림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풍속화 중에는 이들의 뱃놀이를 그린 그림이 다수 전한다.
배에 대한 관심과 선유 기록은 조희룡의 생활환경과 수준을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조희룡의 인장들
『수경재해외적독 외』도판 인용.
삼백 개가 넘는 호를 썼다는 김정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호도 적지 않았다.
조희룡의 호는 그가 모범으로 삼고자 한 문인화가들과 연관이 있다.
우(又) 자를 쓴 것으로 보아 봉(峰) 자가 들어간 호를 쓰는 어떤 화가를 잇는다는 뜻. 원나라 황공망(黃公望)의
호 중 하나가 일봉(一峰)이고, 매화도로 유명한 청나라 화가 나빙(羅聘)의 호가 양봉(兩峰)인데
자신의 매화도가나빙에 연원을 두었다고 했던 만큼 나빙의 호인 양봉을 따라 우봉이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매도인(又梅道人)이라는 호 역시 매도인을 잇는다는 뜻.
매화도인이라면 원나라 화가 오진(吳鎭)의 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진이 매도인이라 했듯이 그도 우(又) 자를 써 우매도인이라 한 듯하다. 앞서의 예가
역대 문인서화가들과 관계가 있다면 도교나 불교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도교와 불교를 넘나드는 그의 의식은 그림에 쓴 화제에서도 확인된다. 한 폭의 그림에서 매화가
부처도 되고 신선도 되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