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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예술은 어떻게 세상을 만들었나?

THE HUMAN ARTIST

인간 예술가







바위 표면의 손 그림, 오스트레일리아 아넘랜드, 연대 미상.


인류 진화의 역사가 담긴 화석을 살펴보면, 세 마디로 분절된 손가락뼈와 폭넓게 자리 잡은 엄지손가락은 인류의 또 다른 신체 특징인

엄지발가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약 400만 년 전에 지구 위를 방랑했던 오스트랄로피테신이라는 원인(猿人)의 엄지발가락은

유인원의 것보다 현저히 크다. 이는 두 발로 균형을 유지하며 걸을 때 역학적으로 매우 유리한 점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이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몸속 혈액순환 체계가 크게 달라졌고 이에 따라 두뇌가 점점 커졌다.


어쨌든 직립 보행의 효과는 자명하다. 손이 해방되었다. 이제 땅을 짚을 필요 없이 다른 일을 한다.

도구와 무기를 제작하고 운반한다. 예술 창작도 한다.




근대 과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발견은 아마도 DNA 미세 분석일 것이다.

혹시 유인원이 인간과 예술적 성향도 공유하고 있는지 조사한 결과 모방 이상의 능력을 가지지 못했음이 증명되었다.

인간 예술가. 이외에 또 어떤 예술가가 가능할까? 오직 우리 인간만이 상상력을 발휘해 상징을 만든다.

인간 예술의 기원을 추적하려면 우선 그때 그 시절을 알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의 손재주와 지능을 결합해 재현하는 요령을 터득했을까?



THE BIRTH OF THE IMAGINATION

상상의 탄생



작은 사자 인간 조각상

독일 남서부 홀레슈타인 스타델, 기원전 3만 2000~3만 년경, 아마 펜던트나 부적으로 쓰였을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일부. 기원전 1만 1000년경.

붉은색과 검은색이 주로 쓰인 가운데 갈색, 자주색, 노란색, 분홍색과 흰색이 군데군데 섞이면서 형태에 음영을 부여한다.

여러 가지 산화물과 탄화물로 이루어진 유기 색소가 진한 빚깔을 내며 벽화에서 웅숭깊은 흙빛과 질감을 느끼게 한다.

아무튼 이 벽화는 선사시대의 인류가 그린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하다.




라스코 동굴벽화중 '황소의 방' 일부, 프랑스 몽티냐크 부근, 기원전 1만 8000년경.





쇼베 동굴의 '사자 벽' 중 능숙한 솜씨로 그려진 고양잇과 동물의 옆얼굴, 프랑스, 기원전 3만 2000~3만 년경.





페슈메를 동굴 속이 '점박이 말' 프랑스, 기원전 2만 년경,

흥미롭게도 말의 윤곽선 안팎에 많은 반점이 진하게 찍혀있다. 손자국은 후대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니오 동굴벽화 중 상처 입은 들소, 프랑스 아리에주 근처, 기원전 1만 4000년경.





벽에 띠 모양으로 그려진 '사냥감 통로'의 한 장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캄버그, 연대 미상.




'사냥감 통로' 중 일부 상세 그림. 발굽이 있고 동물 머리를 한 인물상과 죽어가는 일런드.





필레타 동굴 속의 추상 문양. 에스파냐 안달루시아, 기원전 2만 5000년경,

정신이상 상태에서 '눈 속에 떠올랐던 문양을 잘 보여준다.




MORE HUMAN THAN HUMAN

인간보다 인간처럼


인체 모델을 이용한 미술 수업을 이해한다는 말은

 나체nudity와 벌거숭이nakedness의 차이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헨리무어, 「모자상」1983년.





빌렌도르프 비너스, 기원전 2만~2만 2000년경.





아케나텐의 부인 네페르티티 여왕의 조각상(추정), 아마르나(추정), 기원전 1345년경.

아테나텐 왕조는 이집트의 전통 예술에서 크게 이탈한 작품을 선보였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봉헌된 작은 청동 조각상, 기원전 630년경.





左) 람세스 2세의 거상, 룩소르 신전, 기원전 1400년경.

右) 쿠로스 조각상, 밀로스 섬, 기원전 600년경, 이보다 앞서 제작된 이집트 조각상들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창을 든 사람', 폴리클레이토스 작품의 모작, 기원전 440년경.








로마 시대의 모작, 180년경. 원작은 프락시텔레스의 「크니도스 아프로디테」, 기원전 350~340년경.






티치아노, 「우르비노 비너스」, 1538년경.





리아체 청동상(A상)의 일부, 기원전 450년경, 팔과 손에 섬세한 혈관이 도드라져 있다.





인도 중부 산치의 대스투파에 있는 약시 조각상, 기원전 50~25년경.


과장법


시인 T.S. 엘리엇은 "인류는 현실을 잘 견디지 못한다Human kind cannot bear very"고 노래했다.

이 말로써 정점 이동원리를 설명할 수도 있고, '긍정적인 것을 강조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인간의 몸을 왜곡해 형상을 만드는 인간의 습성은 수많은 문화에 만연하고, 또 수많은 세기에 걸쳐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형상은 대부분 왜곡괸 이미지다. 매끈한 몸매로 부와 다산을 상징하며, 불교의 성지를 장식하는 약시yakshi 조각상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몸매를 상품처럼 취급하는 시대가 되면서 외모의 일부를 과장하는 기술이 시장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성형수술은 육신을 조각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체를 왜곡하고 과장하는 경향, '인간보다 인간처럼' 생긴 몸을 선호하는 경향은

여전히 활발하다. 빌렌도르프 비너스가 만들어질 때 함께 일어난 일은 단지 과거에 그치지 않았다.










ONCE UPON A TIME

옛날 옛적에







인디에나 존스 역할을 맡은 헤리슨 포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1981) 중에서.





『성서』에 에레크Erech라는 지명이 있다. 오늘날 이라크인들이 '와르카'라고 부르는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을

'우르크'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바그다드 외곽과 바스라 중간쯤에 있는 페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유적들 중

하나로서 태곳적 영웅 길가메시Gilgamesh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루크의 여러 지층 중 기원전 3200년경에 생긴 네 번째 층에서

다수의 점토판 문서가 출토되었는데, 이는 참으로 중대한 발견이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였던 것이다.

여기에 음성 체계까지 더해져 마침ㄴ내 설형(쐐기 모양)문자로 발전하였던 것. 길가메시 전설은 극히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상당히

'역동적'이다. 그에 관해 설형 문자로 기록된 서사시의 새로운 파편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찬란히 빛나는 그는 길가메시,

산속에 길을 내고

산기슭에 구덩이를 파고

저 드넓은 바다 건너, 저 멀리 태양이 떠오르는 곳까지,

이 세상 끝까지 돌아보고 온 사람......

많고 많은 인류의 왕들 중에

그와 견줄 만한 왕은 없네......



길마메시 서사시는 불후의 명성을 찬미한다

길가메시 왕은 영생을 얻는 데 실패하고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후세의 기억 속에 그는 영웅으로 길이 남았다.




'길가메시 모티프Motif', 기원전 400년경,

수염 달린 왕이 사자 두 마리를 제압하는 모습이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재위 기간(기원전 8836~859)중에 제작된 돋을 새김.

앗규르나시르팔의 장대한 왕궁은 님루드에 있었는데, 레야드가 1845~51년에 최초로 발굴했다.

사자 사냥은 이전부터 아시리아 왕실 도상에 쓰인 주제 중 하나였다.




니네베이 아슈르바니팔 왕궁에서 발견된 사자 사냥 장면의 일부.

기원전 650년경, 단말마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 꽃병에 그려진 그림. 오디세우스와 동료들이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는 장면이다.

폴리페모스는 어느 희생자의 다리를 들고 있고 눈에는 말뚝이 박혔다. 술잔도 보인다. 위에 있는 긴 뱀은 위험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 장면은 이야기의 개요인 셈이다.













오디세우스의 얼굴.

 배는 바다 괴물 스킬라의 공격을 받는 중이다. 스페롱가 조각상의 일부





크라야누스 원주. 로마, 117년,

황제의 무덤에서 나선형으로 올라가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프리즈 조각상으로

웅대한 서사시이자 고대 세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각적 이야기로 손꼽을 수 있겠다.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일부.11세기 말,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왕이 왕이 치명상을 입는 장면이다.




인자락 힐 암벽에 있는 배러먼디 그림, 오스트레일리아 아넘랜드, 오엔펠리 근처, 연대 미상.









보라데일 산의 암ㅂ겨에 그려진 '무지개 뱀'의 일부, 오스트레일리아 아넘랜드, 연대 미상.





인자락 공예 센터에서 후원하는 군무,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2004년.



second nature

제2의 자연



카카두 국립공원의 경치, 오스트레일리아 노던 테리토리.









존 컨스터블, 「느릅나무 몸통」, 1821년경.

컨스터블의 친구가 말했듯이, 이 화가는 멋진 나무를 발견하면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나일강 모자이크, 로마 동쪽 팔레스트리나, 기원전 120~110년경.





17세기 중국 강주(江注) 작.

황산의 소나무와 시냇물 사이에서 신선처럼 사는 기쁨을 찬미하는 화제이다.

실제로 강주는 이곳에 은둔해 수도자처럼 살았다.








알브레히트 뒤러, 「장대한 잔디」, 1503년 풀밭을 치밀하게 묘사한 노작이다.




프레더릭 처치, 「버지니아의 자연 다리」, 1852년.




티모시 오설리번이 촬영한 풍경 사진, 애리조나 주 콜로라도 강의 블랙 캐니언, 1871년.





ART AND POWER

예술과 권력



날개가 달린 모자를 쓴 베닌 왕의 두상, 19세기.








스톤 헨지의 현재 모습.






마리의 왕궁 벽화 중 일부, 시리아 텔 하리리, 기원전 18세기,

희생제를 위한 행렬 중에 황소가 보인다.









페르세폴리스의 계단 측벽에 있는 돋을 새김. 연꽃을 든 사절단 행렬, 기원전 500~450년경.






알렉산더 두상, 마케도니아 펠라 부근의 야니차, 기원전 300~270년경.




베르기나에서 발견된 상아 조각상 파편, 기원전 336년경, 젊은 알렉산더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이수스 전투」중 알렉산더 일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로마, 약 176년.













베라 무히나, 「공장 노동자와 집단농장 소녀」,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세워진 것이다.





SEEING THE INVISIBLE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




바미얀 불상(높이 55미터)이 파괴된 후 암벽 속에 남은 커다란 구멍.  2001년.




송아지를 둘러멘 참배자 조각상, 아테네, 기원전 570~560년경.





이집트의 작은 조각상, 하마 여신 타와렛.




부처의 출생 장면을 담은 석판 조각, 파키스탄 간다라, 2세기.





땅으로 손을 뻗는 부처, 티베트, 11세기.





설법하는 부처를 표현한 석조 돋을새김, 파키스탄 무하마드 나리, 175~200년경.




左) 파드마파니 또는 연화수 보살 아잔타 1번 석굴 벽화의 일부, 5세기.

右) 미륵보살상, 파키스탄 간다라, 2세기경.




무신舞神 시바 청동상, 10~11세기.





가네샤 신상, 캄보디아, 7~8세기




로마 시대의 아르테미스 신상, 에페수스, 기원전 2세기, 이보다 더 오래된 신상의 복제품이며

좌우에 사슴 한쌍이 있다. 아르테미스는 '동물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 「영광의 예수」, 1410~1415년경.




생드니에 있었던 스테인드글라스, 일 드 프랑스, 1140~4년경.





조토의 그림으로 알려진 「성 프란체스코의 스티그마타」, 아시시, 1295~1300년.





조반니 벨리니, 「부활」, 조르지의 예배당을 위한 제단화, 베네치아, 산미켈레 성당, 1476~1479년경.





左) 미헬 에르하르트, 「자비로운 성모」, 1480~90년경.

右) 암브로조 로렌체티, 「마에스타」으 일부, 군청색 옷을 걸친 천상의 마리아, 1335~1340년경.





잔로렌초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황홀경」, 로마, 1644~1647년.







엘 그레코.EI Greco, 「십자가를 든 성 도미미크」, 1606년경.




예불 중인 신자의 木像, 앙코르와트, 16세기경.




라오스 빡우의 한 석굴 사원에 불교도가 봉헌한 성상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 『유럽, 예언』중 머릿그림, 1794년.




IN THE FACE OF DEATH

죽음을 앞두고







맨투호텝의 무덤에서 발견된 나무배와 샤브티 인형, 아이르 알 바하리, 기원전 2000년경.

하류로 향하는 배에 21명이 타고 있다. 뱃머리에 서 있는 사람이 진로를 가리킨다.




개조되어 조가비 눈을 지닌 두개골, 예리코, 기원전 약 7000년.

이 두개골은 틀림없이 인간의 것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두개골이 아니었다.

 코의 연골 부위는 석고로 채워졌고, 두 눈구멍 속에는 별보배조개 껍데기가 들어 있었다.

누구라도 이것을 보면, 어느 고대인이 유골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했다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다.

특정한 망자들은 '구언을 받고' 살아 있는 사람들과 동거했을 것이라는 결론이자 조상 추념追念.의 증거일 터.




이스터 섬의 거대 석상, 1000~1500년경.

이 역시 별세한 조상을 문자 그대로 중대하게 여기고 숭배한 문화의 표본이라고.




 모체 종족의 참수형 도기.

몇몇 사람들이 남긴 무시무시한 목격담에 의하면 아즈텍은 공포로 세워진 제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채로운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소년들. 「사냥과 낚시의 무덤」벽화 중 일부. 타르퀴니아, 기원전, 500년경.






푸른 악마의 무덤 내부 벽면에그려진 매부리코 악마, 타르퀴니아, 기원전 420년경.





루카 시뇨렐리, 「저주받은 사람들」, 오르비에토, 1499~1502년.



마침내.......


오르비에토 성당의 그림들은 참배자에게 내세를 고려해 신중한 선택을 하라고 촉구한다.

구원이냐, 저주냐? 영원한 축복을 받겠느냐, 아니면 영원한 고문을 받겠느냐?

한쪽에는 죽음에 대비하는 격려와 위안이 있고, 다른 쪽은 순전히 공포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요즘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예전과 같지 않고, 지옥에 대한 공포심도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인간이 최후를 상상하는 경향은 범속한 사회에서도 굳건히 계속된다. 화랑 안에서, 연극 무대 위에서, 또는 영화나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아니 어쩌면 주말마다 발행되는 다채로운 잡지만 보아도 충분하다.

대개 그런 잡지의 지면은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것(요리, 포도주, 건강, 미용, 패션, 여행)으로 가득 차 있지만,

죽음에 관한 얘기도 필수 요소처럼 실린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전쟁과 기근,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통 글보다 사진 위주의 편집으로 보여준다.


이런 사진을 보고 나서 식사를 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가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수명은 늘어났지만,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불사신이 아니다. 우리가 이 점을 기억하도록 때때로 이미지가 도움을준다.







통일 전 북베트남 군인의 시신과 노획당한 후 남은 소지품, 1968년.

돈 맥컬린이 베트남 중부 도시 후에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참고 서적맞서는 엄지』

작가이자 고고학자인  나이즐 스파이비는 1958년 영국에서 태어나

고대 그리스 . 로마 미술을 전공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 및 엠마누엘 칼리지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 중.

영국 - 그리스 연맹이 수여하는 런치먼 상 수상작 『그리스 조각 이해』를 비롯해 『그리스 미술』,

많은 호평을 받은 『인내의 창조』등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미술에 관한 여러 저서가 있다.

이 책을 바탕으로 제작된 BBC TV시리즈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 옮긴이 : 김영준 -






Intermezzo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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