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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오대산의 불교문화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국보 제48호





기단부는 연화불상대좌처럼 조성되었고, 

초층 탑신 사방에 작은 불상을 안치할 수 있는 직사각형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팔각 지붕돌의 처마 아래론 각형과 호형의 조화를 이룬 삼단의 층단 받침이 조성되었으며

단정한 지붕돌은 모서리마다 풍탁이 매달린 채로 가지런히 층을 지어 솟아오른다.


원래 이 석탑 앞에는 기다란 보관을 쓴 공양보살상이 탑을 향해

무릎을 괴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경내 성보박물관 전시실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팔각구층석탑의 상륜부


상륜부는 전체의 부재가 완전히 남아 있어서 조성 양식을 정확하게 잘 볼수 있는데,

노반(露盤)·복발(覆鉢)·앙화(仰花)·보륜(寶輪)까지는 석제이고 그 이상은 금동제로서

보개(寶蓋)·수연(水煙)·보주(寶柱) 등이 완전하다.





석조보살좌상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기단부


기단부는 4매로 결구된 지대석(地臺石) 위에 놓였는데, 지대 위에는 1단의 각형 받침을 새겼다.

하층기단 면석은 4매석으로 짜여져 있으며, 각 면에는 2구씩의 안상(眼象)이 오목새김되었고, 그 위의 하층기단

 갑석도 4매석으로 되었는데 갑석 상면에는 연화문(蓮華文)을 조각하였다. 상층기단 갑석도 4매로 결구되었는데,

하면에는 각형 1단의 받침이 조각되고 측면은 아무런 조식도 없으며, 정면에는 1단의 각형 받침을 마련하여

윗부재를 받고 있다. 그리고 상면은 하층기단 갑석 상면과 같이 경사가 있어 8각마다의 합각이 뚜렷하다.

상층갑석 위에는 1매의 판석으로 된 굄돌이 놓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는데, 이 굄대의 모양은 하면에

각형받침과 경사진 받침이 각출되고 상면은 약간의 경사로 8각마다의 합각이 뚜렷하며,

그 중앙부에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조각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연화문은 복판(覆瓣)·복엽(複葉)인데 모마다 1판씩과 각 면에 3판씩으로 도합 32판이 돌려졌다.

 그리고 갑석 상면에는 각형의 낮은 받침을 조각하여 그 위에 굄대석을 받치고 있는데, 이 굄돌은 1단으로

 4매의 판석으로 짜여졌다. 굄돌의 형태는 하면은 원호(圓弧)를 리고 측면은 굽을 돌렸으며, 상면은 경사로 인하여

각 모퉁이에 합각이 뚜렷하다. 그리고 그 정면(頂面)에는 1단의 낮은 각형 받침을 새겨서 상층기단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4매석으로 짜여졌는데 각 면에는 양쪽에 우주(隅柱: 모서리기둥)가 모각(模刻)되었다.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87호


 각 부재는 높이에 비하여 기단이 넓어서 안정된 감을 주며,

층마다 끼여 있는 별개의 굄돌로 인하여 전체의 균형은 어느 정도 잡히는 듯하다.

이와 같이 별도의 판석을 끼우는 수법은 고려시대 석탑에서 많이 볼 수 있어 이 시대 석탑의 하나의 특징이 된다.

 층마다 굄판석이 삽입된 유례는 드물어 목조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난간의 퇴화된 형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의 독특한 이중기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석탑으로

전 부재가 잘 남아 있어 매우 가치가 높으며, 석탑 앞에 공양자상이 조성된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함께

이 지역의 독특한 석탑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탑 앞에 자리한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보물 제84호


 탑 앞에는 머리에 원통형의 높은 보관을 쓰고

탑을 향해 공양하는 모습으로 왼쪽 무릎을 세우고 꿇어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보살상은 연산 개태사(開泰寺) 석조공양자상이나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석탑 앞에 놓인 공양상과 같은 형식으로 모두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





 아래로 상원사가 보인다.




상원사 확대 이미지


현재의 상원사




평창 상원사 전경 확대 이미지


과거의 상원사


옥천(玉川) 조덕린은 1708년 4월 26일 월정사에서 첫날밤을 묵고 다음 날 사고와 영감암, 상원사와 중대, 적멸보궁

그리고 화엄암과 사자암을 거쳐 다시 상원사에 들렀다가 월정사로 돌아와 하루를 더 묵고 28일 아침에 산을 나갔다.

그가 남긴 기문 중 상원사의 계단 부분이 흥미롭다.


또 사자암, 화엄암을 거친 후에 가마를 타고 상원사에 도착하니 대여섯 명의 중이 길 옆에서 합장을 하고는 인도해

절로 들어갔다. 절은 전체가 백여 칸이었으며, 만듦새가 지극히 정교하였다. 절집의 소상(塑像)과 평상, 탁자와 그릇

따위가 다 기이하고 화려하였으며, 간혹 외국의 물건도 있었다. 섬돌은 모두 흰 돌을 갈고 다듬어 놓아서 매끄러웟으며

횡으로 잇달아 포개어 놓았다. 계단을 오를 때에는 손으로 잡도록 모두 돌난간을 좌우 양쪽에 세웠는데, 엄연하게

궁궐의 법식이 있었다. 다른 건물도 정밀하게 꾸며져 있었고 물상을 솜씨있게 새겨놓았는데, 극도로 뛰어난 기교에

눈이 아찔하고 괴이하여 사람이 만든 것 같지 않았다.






상원사 동종. 국보 제36호


 높이 167㎝, 입지름 91㎝. 용뉴 좌우에 오목새김된 명문에 의해 이 종이 725년(성덕왕 24)에 주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 어떠한 목적으로 주성되어 어느 절에 보관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안동의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안동루문(安東樓門)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예종 1) 국명(國命)에 의하여 현 위치로 옮겨 보관해 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종구(鐘口) 일부에 작은 균열이 생겨 수리를 거친 뒤 모작품(模作品)을 만들어 사용하고,

이 종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평창 상원사 동종 확대 이미지


상원사 동종 유곽(乳廓)과 유두(乳頭). 1935년 촬영





상원사 동종 주악천인상





상원사 동종 천판의 시주자 명문





상원사 동종 천판의 주조년도 명문




원사 동종(국보 제36호) 탁본 확대 이미지


동종 탁본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국보 제221호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앞 선재동자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1호)






상원사 영산전 앞 석탑의 몸돌 부조





상원사 영산전 앞 석탑





월정사 일주문 부근 오대천.





지부면 수항리사지 석탑.





오대산 지도(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동대 관음암


오대산의  오대는 음양오행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 음양오행에 따른 오방색을 말 하기도 하는데

청(靑)은 동방, 적(赤)은 남방, 황(黃)은 중앙, 백(白)은 서방 그리고 흑(黑)은 북방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동대는청색이며 관음암은 월정사와 마찬가지로 만월산이 에워싸고 있다.

한국 전쟁 당시 불타 사라졌다가 1971년 중건 되었고,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다.







서대 염불암


백색 방위인 서대(西臺) 남쪽 면에는 비타방(彌陀房)을 두어 원상(圓象) 무량수불(無量壽佛)과 흰 바탕에 그린

무량수여래(無量壽如來)를 우두머리로 한 1만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모시게 하라.

서대 염불암의 창건 연대는 『삼국유사』에 기인한다.




한강의 발원지 우통수


염불암 에서 오십여 미터 떨어진 곳의 샘으로 茶泉으로 첫 손가락에 꼽히기도 한다.

『양촌집』에 나오는 「오대산 서대 수정암 중창기」중 한 부분.


서대 밑에서 함천(鹹泉,솟아나는 물)이 솟아나서, 빚깔과 맛이 보통 우물물 보다 잣고 물의 무게도 또한 무거운데

우통수라고 한다. 서쪽으로 수 백리를 흘러가다 한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가는데, 한강이 비록 여러 군데서

흐르는 물을 받아 모인 것이지만 우통수가 중령(中泠)이 되어 빛갈과 맛이 변하지 아니하여,

마치 중국의 양자강과 같으므로 한강이라 이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대 지장암


오대산의 각 대에는 샘이 있다. 각종 문헌 자료를 종합해보면 그 샘에서 흐르는 물에는 모두 이름이 있는데

중대는 옥계수(玉溪水), 동대는 청계수(淸溪水), 북대는 감로수(甘露水), 남대는 총명수(聰明水)이며 그중

으뜸은 한강의 발원샘인 서대의 우통수이다. 이 다섯 곳의 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산중에 계곡을 이루어

흐르는데 오대천(五臺川)이라 일컬으며, 그 오대천이 흘러 비로소 큰 못을 이루는데 그곳이 반야연(般若淵)이다.

오대천은 반야연을 지나 월정사 곁에서 다시 한 번 웅장한 폭포와 함께 못을 이루니

 한강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금강연(金剛淵)이다.



홀로 남대사에서 자려하니

밤 되기도 전 별이 보이누나

높은 등불은 그림자 드리우고

지게문 틈으로 달빛이 스미네

울창한 숲 다람지 밤을 탐내고

빈방의 탑상은 새가 쪼는구나

먼지 낀 마음 쓸쓸히 바라보는데

오직 차 달이는 노구만 들썩이네


- 풍계 명찰 -




미륵암 북대나한암 확대 이미지


북대 미륵암


북대는 오대 중 가장 먼 곳에 있다. 그곳에 본래는 오백나한(五百羅漢)이 모셔져 있었다.

그러나 고려 시대, 나옹 선사가 북대에 머물 당시 나한들이 스스로 상원사로 날아서 갔다. 그 후, 미륵불이 모셔졌으며

또 1996년부터 미륵불을 주존불로 모신다. 지금은 다시 오백나한을 조성하여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파키스탄 라흐르박물관의 고행상을 본떠서 모셨던 고행상.





중대 사자암과 적멸보궁


중대는 오대의 중심이며 색으로는 황금빛을 상징한다.

자장율사가 부처님 정골 사리를얻어 돌아올 당시 사리를 싣고 온 사자가 머문 곳이어서 자자암이 되었다.

그때 모셔 온 정골 사리는 나라 안 다섯 곳에 모셨는데 오대산 월정사,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그리고 사자산 법흥사가 그곳이다. 적멸보궁에 모신 사리는 부처님의 진신(眞身)이므로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사자암 비로전


여말선초, 태조가 이곳을 참배한 적이 있다. 태조는 정종에게 양위한 후, 정종 2년인 1400년 10월 15일,

송경에서 신도인 한양의 정릉에 거둥하여 정근 법석을 베풀고 난 후,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대산으로

거동한 것이다. 약 일주일 남짓 오대산에 머물며 사자암의 낙성식 참석은 물론 산중 사암들을 두루 둘러본

것으로 짐작된다. 사자암과 상원사가 두 왕의 원찰이었으며 후에 서대 염불암 또한

영조의 첫째 딸인 화순옹주의 남편 월성위 김한신을 기리는 원당이 되었다.





비로봉에서 본 적멸보궁



중대 상원사와 사자암

임금이 거듭 와서 부처님께 예를 갖췄네

덩굴 길엔 아직 불전행차 그림자 희미하고

법당엔 오히려 곤룡포의 티끌만 어지럽네

강릉 땅에는 다만 세조의 행차만 알거늘

세상에 누가 태상왕이 순행한 일 알리오

신령한 자취 사람의 일 따라 변하지 않고

당시 남긴 기록 누각에 새롭게 결렸구나


- 허응당 보우 -




평창 월정사 적멸보궁 확대 이미지


적멸보궁


오대산 월정사의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자장은 신라를 불국토로 재편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귀국하면서 부처의 정골(頂骨)과 불사리 100과를 가져왔다고 전하며,

 당시 신라 영토 각지에 불사리를 나누어 봉안하면서 보궁들을 창건했다.





적멸보궁 전각 뒤 불뇌보탑.





오대산 적멸보궁 불뇌보탑의 앞면 탁본.





불뇌보탑의 뒷면 탁본.



비단 병풍 펼친 곳에 푸르른 구름 묶였고

일찍 들었다네 부용화 꽃잎 빼어난 자태를

석가모니 뼈 푸르고 신령한 자취 아득한데

치자꽃 향기 청묘하게 피어오른다네

종고(鐘鼓) 큰소리는 하늘 밖으로 떨어지고

나부끼는 깃발 그림자 거울 속에 갈라지네

높고 높은 불탑 사람들은 모두 우러르고

이제야 믿는다네 부처가 큰 공업 세운 것을


- 범허정 송광연 -





영감사와 사고


가까이 보이는 건물이 선원보각이고 멀리 보이는 건물이 사고이다.

오대산 다섯 개의 봉우리가 봉마다 기이하게 빼어나 부도씨(浮屠氏)가 그 사이에 집을 많이 지었다.

그 남대 남쪽에 염감이라고 부르는 암자가 있으니 옛날 보제존자 나옹이 법평산(法平山)처림선사를 여의고

동쪽으로 돌아오기에 미쳐서 드디어 오대산에 들어가 이절에 있었다. 공민왕이 왕사로 봉하고

법상을 갖추어 자로 나가 맞이했는데 지금까지 고사로 전하여왔다.





영감난야


염감사는 나옹 혜근이 머물기도 했으며, 그의 자취를 좇아 함허 기화가 머물기도 했다.

이처럼 선방으로 꽃을 피우던 염감사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월정사 중창불사를 이끌던 사명 유정이 머물던

 염감난야에서사고를 지키는 승려들이 머무는 수직사(守直舍)가 된다. 암자 곁에 실록을 보관하던 사각과

조선 왕실의 족보인 선원보(璿源譜)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남대 영감사는 오래된선방인데

지팡이 하나로 4월 초순에 지난다네

흰 변긔 조사 진영에 옛 모습 보이고

추운 뜰 새 발자국 새로운 글씨로 보이네

들 사슴은 숲속에서 선화 향기 맡고

산승은 비 온 뒤 약초밭에서 김을 매네

게다가 배꽃 향기는 나무에 그득하고

두견새는 성긴 가지에 날아와 운다네


- 허응당 보우 -





행선(行禪)











 『보보담(步步譚)』(2017년 가을호) 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오대산의 가을 풍경과 함께 오대 불교문화를 주섬주섬 해보았다.




Flying In Dream - Wang Sen 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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